2021년 6월 날씨 좋은 어느 여름날, 봉선사 절나들이를 위해 길을 떠났다. 일단 먹고 움직이자는 취지에 남양주 쌈밥으로 유명한 '목향원'으로 향했다. 아래 목향원 옆으로 '흥국사' 입구가 있는데, 금번엔 패스했다. 오늘 목적지는 세조와 광릉과 연계되어 있는 '봉선사'이다.
주차를 하고 물길이 있는 계곡 옆으로 올라오니, 널찍한 장독대를 품은 목향원 식당 건물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식당 건물이 3채이고, 그 앞에 연못과 야외 카페까지 마련되어 있다. 아래쪽에서 확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장사가 잘 돼나 보다.
메인 요리는 1인당 16,000원짜리 쌈밥이다. 고기는 미리 구워 나오는데, 김이 모락모락하여 얼른 셔터를 눌렀다. 하얀 찰밥, 검은 찰밥, 노란 조밥의 3색밥이 곁들여진다. 창 너머로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는데, 산 가운데 풀이 없는 바위가 살갖을 드러냈다. 불암산(509.6m)이다.
나머지는 푸른 숲인데, 한 곳만 민숭맨숭, 그래서 지루하지 않다. 모두가 똑같으면 재미없지 않은가. 자기와 다르면 왜 싫을까. 오히려 나와 같으면 더 싫을 듯하다^^
운악산 기슭에 자리한 '봉선사'에 도착했다. 다소 새로운 것은 한자가 아닌 한글명판이라서였다. 봉선사는 969년 고려 광종 때 처음 지어져 운악사라 불리던 절이었는데, 500년 여년이 지난 1469년 예종 1년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조의 능침을 이곳으로 모시고 광릉이라 하면서 이곳을 그의 명복을 비는 사찰로서 '봉선사'라고 이름지었다.
역사는 같은 자리에서 계속 겹쳐지고 스토리가 삭제되고 덧입혀져 변한다. 고려에서 시작하여, 조선 시대를 거쳐, 일제 강점기 1919년 3.1운동 만세 시위지였고, 1950년 6.25때 파괴된 것을 증수한 것이다. 이곳은 봉선사 승려들이 3.1운동 독립 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선언문을 제작하여 진접면 일대에 배포했다고 한다.
2021년 6월 현재 봉선사 연꽃 축제가 한창이다. 매년 이 시기 전국은 연꽃으로 둘러싸인다.
또한 2021년 8월 31일까지 오채현 석조각 초대전 '해피붓다, 해피타이거' 전시가 야외 공원에서 개최되고 있다. 화강석으로 조각한 해피타이거에서 해학과 익살이 느껴진다.
아래 사진 왼켠에 '음식물 주류 돗자리 반입을 금합니다.'라는 팻말이 큼직하게 자리하는데, 언제 저러한 주의사항이 없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이 바뀌면 주변이 훨씬 깨끗할텐데 하면서, 조만간 필요없어지리라 기대해 본다.
아래 조각은 '사방불'이라고 적혀 있는데, 찾아보니 '동서남북 사방에 있는 부처'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모든 공간인 사방에 부처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글쎄 그게 과연 좋을까? 어느 한 곳은 좀 경계도 없고 비어있는 곳도 있어야지 말이다^^
아래 사진의 주인공은 느티나무이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나무도 스토리가 더해 지면 특별한 나무가 된다. 세조의 비 정희왕후는 먼저가신 세조의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절을 넓히고 봉선사로 만들었으며 느티나무 한그루를 심었다. 사찰이 있는 곳에 느티나무는 항상 존재한다. 오래 삶을 영위하는 이유로 느티나무를 심는다고 한다.
'하마비'가 있는 곳이다. 주인공인 비석 촬영을 안하고 설명판만 찍었다는ㅠㅠ 실속없는 나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래도 설명을 하자면, 하마비는 사원이나 종묘, 궐문, 무덤 앞에 세워놓아 말에서 내려 존경을 표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봉선사 하마비는 1469년 세워져 이곳을 방문하는 정승, 판서도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다고 한다.
봉선사 '범종루'로, 보물 제397호인 봉선사 대종이 봉안된 전각이다.
종 아래 동전들과 천원짜리 지폐들도 보인다. 들어가서 가져올 수도 있는 위치였다는^^
범종루 뒤쪽으로 청풍루 건물이 보인다. 그 위쪽으로 올라간다. 그 건물은 1950년 6.25로 전소되기 전에는 천왕문, 해탈문이 있던 자리인데 1985년 다시 세워진 곳이다.
작은 언덕 위에 위치한 '청풍루' 쪽에서 바라본 '범종루' 모습이다. 상층으로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작은 전각의 돌로 된 부처 앞에서 불공을 드리는 신도가 계신다. 몸은 번쩍번쩍 금가루에 뒤덮혀 있는데, 얼굴만 돌이다. '황금보기를 돌처럼 하라' 라는 글이 떠올랐다^^ 전각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양쪽 계단이 부처님 손바닥 형상이다. '내 손(품)으로 들어오너라' 하는 듯하다.
이곳에서 저 멀리 '큰법당'이라고 쓰여진 건조물이 보였다. 일반 사찰의 '대웅전' 격인데, 한글로 써 있는 것이 특이했다. 아래 사진의 왼쪽 위의 단풍나무에 대한 스토리가 있길래 잠시 멈춰섰다. 단풍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둥그런 형상은 실제 열매가 아니라 작은 연등들이다.
두 그루의 단풍나무가 엮어져 있다. 일명 '단풍 나무사랑 연리지'이다. 뿌리가 다른 두 나무가 서로 사랑을 하듯이 줄기와 가지가 서로 엉켜 자라는 나무이다. 남남사이인 부부나 남녀사이에 '연리지'라는 말을 쓴다는 설명이다.
'큰법당'을 촬영하기 위해 그 앞쪽의 건물군에 다다랐다. 주변 건물군에 비해서 연식이 있어보이는데, 공식명칭은 '회랑'이다. 다소 낡은 건물 색깔에서 옛 풍취가 느껴진다.
'청풍루' 위에 올라 촬영한 '큰법당' 건물군이다. 1469년 89칸으로 초창(처음 건축)했던 것을, 1638년 재창(다시 건축)했다. 삼창(세번째 중수)는 1970년 운허스님이 건립한 현 전각으로 스님의 뜻으로 '큰법당'이라고 한글로 이름하였다고 한다. 멋있는 스님이다~
'큰법당' 앞의 삼층석탑에서 촬영한 반대편 '청풍루'의 모습이다.
'큰법당' 가까이 가서 보니 양쪽에도 모두 한글이 보여 이해하기 쉽다. 오른쪽에 '큰바다물을모두마시고', 왼쪽에'허공을재고바람얽어도' 라고 씌어 있다.
대웅전 격인 '큰법당'의 내부 모습이다. 이곳에 보물 제1792호인 '남양주 봉선사 비로자나 삼신 괘불도'가 있다. 큰법당 안의 괘불도함에 들어 있다고 한다. 조선 영조 11년 상궁 이성애가 숙종 후궁인 영빈 김씨의 명복을 빌며 제작한 불화라고 전한다. 직접 볼 수는 없고 스토리로 느낄 수 밖에 없다.
아래는 '관음전' 외벽에 그려진 그림이다. 부처님의 관으로 보였는데, 관 밖으로 발바닥이 나와 있다. 그 앞에 있는 스님들 중에서 초록 머리카락도 있고, 하얀 머리도 있고, 우리와 같은 황인종들도 있다. 하얀 피부 스님은 백인이런가.
뒤쪽으로 산 위로 더 오르면 아래 사진과 같은 전각이 자리한다. 3개의 현판이 있는 것을 보니, 이곳에도 스토리가 있을 듯하다. 뒷산 기슭의 약수터에서 촬영한 것인데, 코로나 때문인지 물을 마실 수는 없었다.
'관음전' 뒤쪽에서 촬영한 '삼성각'이다. 이곳은 1926년 월초 화상이 건립한 전각으로, 6.25때 소실되지 않는 유일한 전각이라고 한다. 즉 다른 전각들은 최근데 다시 개보수 한 건조물이라는 말이다. 산신, 칠성, 독성 3분의 성인을 모신 곳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성각'에서 찍은 봉선사 전경으로, 가운데가 '큰법당'이고 오른쪽이 '관음전', 왼쪽이 '지장전' 건조물이다.
한국의 기와는 소박하면서도 아름답다. 전 세계적으로 누가 높이 오르나 하면서 100층 건물을 지향하는데, 우리나라 전각은 바닥에 딱 붙어서 땅은 내가 지킨다 하는 듯하다^^ 생각해 보면 전 세계에 걸친 피라미드 건축물들도 하늘로 치솟는 형태인데, 우리나라 건축물은 반대로 아래쪽을 지향한다.
신구의 조화런가. 왼쪽은 색이 입혀진 신세대이고, 오른쪽은 전통을 중시하는 구세대같다. 두 건물이 한뼘 차이로 붙어 있다. 다소 간극은 필요하다^^
아래 사진의 석조각을 보고, 순간적으로 가톨릭 성당이 생각났다. 왜 그럴까. 또한 물병을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 특이해 보였다.
1층은 절의 사무실인 종무사, 2층은 강당인 설법전으로 구성된 '청풍루' 건물이 배경이다.
다음에는 연계하여 세조의 능인 광릉과 광릉수목원을 방문해야 겠다. 여행과 책은 꼬리를 물고 끊없이 이어진다. 원을 그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