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사 연구자인 프랑스사 연구자인 서정복 교수의 『프랑스 혁명의 고독한 파수꾼』(푸른사상 서양근대사총서 9).
프랑스 혁명의 추진자이자 파수꾼인 베르트랑 바래르가 혁명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영향을 끼쳤는지 심도 있게 살폈다. 바래르를 통해 프랑스 혁명의 전모가 새롭게 밝혀진다.
2024년 9월 27일 간행.
■ 저자 소개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프랑스 릴3대학교(Université de Lille III) 대학원에서 역사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청주대학교와 충남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명예교수이다. 한국프랑스사학회 회장, 한국서양문화사학회(현 세계문화사학회) 회장, 대학사학회 회장, 한국서양사학회 감사, 역사학회 평의원 및 감사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프랑스 근대사연구』 『프랑스 혁명과 베르트랑 바래르』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대의 교육개혁사』 『살롱문화』 『소르본 대학』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프랑스의 절대왕정시대』, 공저로는 『혁명·사상·사회변동』 『유럽사의 구조와 전환』 『전환기의 시대 대학은 무엇인가?』 『세계사의 만남과 이해』 『우리 시대의 언어와 문학』 『너의 마음, 눈을 밝히사』 등이, 번역서로는 『프랑스인의 아메리카 회상』 『프랑스 혁명과 교육개혁』 『부르봉 왕조시대의 프랑스사』 등이 있다.
■ 책머리에 중에서
프랑스 대혁명이 세계적으로 성공한 혁명이며,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주역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들은 미라보, 라파예트,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 생쥐스트, 바래르 등 몇 명에 불과하고, 이름만 알려졌을 뿐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에 대한 소개가 미흡하여 여전히 프랑스 혁명과 혁명가들을 바르게 이해할 수가 없다. (중략)
평소에 독자들이 좀 더 쉽고 흥미롭게 읽으면서 프랑스 혁명을 심도 있게 조명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프랑스 혁명사 연구가 도입된 지가 오래되지 않아 여전히 부분적으로만 소개되는 벽을 허물어가는 일을 역사학도가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프랑스 혁명의 전 과정에 참여하고 지켜본 혁명의 추진자이자 파수꾼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 혁명가들 가운데 가장 적격인 인물로 바래르를 선정하였다.
■ 책 속으로
바래르는 『새벽신문』에서 드라마의 형태로 입법부의 토론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그것을 기사화하였으며 프랑스의 낙후된 풍습과 봉건제도를 적나라하게 비판하였다. 이폴리트 카르노와 다비드 당제가 쓴 『바래르 약사』에 의하면, 『새벽신문』은 창간호에서부터 발행자가 6월 23일의 친림회의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면서 용기 있는 행동을 하였다. 그는 바로 친림회의가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왕권을 숨기는 짙은 안개였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레오 게르쇼가 쓴 『프랑스 혁명의 중재자 베르트랑 바래르 드 비외작』에 의하면, 바래르가 기초하였고 이 시대의 전반에 걸쳐 이끌어야만 하였으며 프랑스에서 중세적 법률, 봉건적 실체, 그리고 입헌적 결함의 이상한 혼합을 유지한 행정상의 통일성에 대한 분산, 즉 지방 풍속의 다양성이 이윽고 종말을 고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을, 당시 세론을 집중시키고 있는 『새벽신문』에 기고하면서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몰라 하였다. 따라서 『새벽신문』은 프랑스 혁명이 앙시앵 레짐을 타파하고 공화정신을 고양하며 혁명이 혁명을 거듭하며 발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프랑스에 사회적·정치적 동력을 제공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311쪽)(푸른사상 서양근대사총서 9).
프랑스 혁명의 추진자이자 파수꾼인 베르트랑 바래르가 혁명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영향을 끼쳤는지 심도 있게 살폈다. 바래르를 통해 프랑스 혁명의 전모가 새롭게 밝혀진다.
2024년 9월 27일 간행.
■ 저자 소개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프랑스 릴3대학교(Université de Lille III) 대학원에서 역사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청주대학교와 충남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명예교수이다. 한국프랑스사학회 회장, 한국서양문화사학회(현 세계문화사학회) 회장, 대학사학회 회장, 한국서양사학회 감사, 역사학회 평의원 및 감사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프랑스 근대사연구』 『프랑스 혁명과 베르트랑 바래르』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대의 교육개혁사』 『살롱문화』 『소르본 대학』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프랑스의 절대왕정시대』, 공저로는 『혁명·사상·사회변동』 『유럽사의 구조와 전환』 『전환기의 시대 대학은 무엇인가?』 『세계사의 만남과 이해』 『우리 시대의 언어와 문학』 『너의 마음, 눈을 밝히사』 등이, 번역서로는 『프랑스인의 아메리카 회상』 『프랑스 혁명과 교육개혁』 『부르봉 왕조시대의 프랑스사』 등이 있다.
■ 책머리에 중에서
프랑스 대혁명이 세계적으로 성공한 혁명이며,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주역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들은 미라보, 라파예트,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 생쥐스트, 바래르 등 몇 명에 불과하고, 이름만 알려졌을 뿐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에 대한 소개가 미흡하여 여전히 프랑스 혁명과 혁명가들을 바르게 이해할 수가 없다. (중략)
평소에 독자들이 좀 더 쉽고 흥미롭게 읽으면서 프랑스 혁명을 심도 있게 조명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프랑스 혁명사 연구가 도입된 지가 오래되지 않아 여전히 부분적으로만 소개되는 벽을 허물어가는 일을 역사학도가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프랑스 혁명의 전 과정에 참여하고 지켜본 혁명의 추진자이자 파수꾼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 혁명가들 가운데 가장 적격인 인물로 바래르를 선정하였다.
■ 책 속으로
바래르는 『새벽신문』에서 드라마의 형태로 입법부의 토론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그것을 기사화하였으며 프랑스의 낙후된 풍습과 봉건제도를 적나라하게 비판하였다. 이폴리트 카르노와 다비드 당제가 쓴 『바래르 약사』에 의하면, 『새벽신문』은 창간호에서부터 발행자가 6월 23일의 친림회의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면서 용기 있는 행동을 하였다. 그는 바로 친림회의가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왕권을 숨기는 짙은 안개였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레오 게르쇼가 쓴 『프랑스 혁명의 중재자 베르트랑 바래르 드 비외작』에 의하면, 바래르가 기초하였고 이 시대의 전반에 걸쳐 이끌어야만 하였으며 프랑스에서 중세적 법률, 봉건적 실체, 그리고 입헌적 결함의 이상한 혼합을 유지한 행정상의 통일성에 대한 분산, 즉 지방 풍속의 다양성이 이윽고 종말을 고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을, 당시 세론을 집중시키고 있는 『새벽신문』에 기고하면서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몰라 하였다. 따라서 『새벽신문』은 프랑스 혁명이 앙시앵 레짐을 타파하고 공화정신을 고양하며 혁명이 혁명을 거듭하며 발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프랑스에 사회적·정치적 동력을 제공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3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