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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년 6 월 4 일 >
나이로비에서 탄자니아 국경까지 3시간 걸려서 나망가에 도착하였다.국경에서 탄자니아 입국비자를 신청하는데 갑자기 탄자니아 대사관 직원이 안녕하세요“ 하는데 무척반갑다.5일만에 들어보는 우리말이다.비자를 받고 국경을 넘으니 탄자니아 현지여행가이드가 마중나와 있었다. 그와함께 2시간을 달려아루사로 이동. 킬리만자로를 가기위해서 거치는 도시이다. 아루사에 있는 마운트 메루호텔에 여장을 풀고. 하루밤을 묶었다.이곳은 하루 1달러로 생활하는 인구가 25%나 되는 아프리카 빈곤국중 하나다. 호텔복도마다 경비원이 있고,보안과 안전은 확실한 것 같다.그래도 특급호텔인데, 외국인이 90%이용한다고 한다. 시내구경을 잠깐하다가 깜짝놀랐다. 아니! 이곳이 아프리카가 아니고 꼭인도 시내같아서 내가 인도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것 같았다. 거의 상권은 인도인이 쥐고있어서 분위기도 사람도 인도인이 무척많고, 진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인도상인,역시 인구가 많은 나라라서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퍼져있는가보다. 다음날 아침 현지인 가이드와미팅-고드프레이- 그가 산악등반가이드-필립-그리고 산에서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피터- 포터3인- 월리엄,킴티,마틴.을 동행하여 함께 왔다, 서로 인사하고. 8시에 출발하여 마랑구 게이트까지 약 120Km를 두 시간에 걸쳐 도착하였다.
날씨는 맑고 쾌청하다.저멀리 보이는 킬리만자로는 구름에 완전히 가려져 밑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2005년 6월 5일> - 등반 1일째
오는 도중가이드 필립과 대화를 나누는데 절대 무리하면 안된다, 하루에 물 3리터는 꼭먹어야 한다, 필요한 산행주의사항을 들으며
미네랄 워터 1.5리터 4병을 샀다. 이내 가이드와 공원입구 에 도착하여 등록을 마치니 멀리 산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 순간 심장이 얼마나 뛰었는지 알 수 없다.
공원 입구의 경치도 절경이고 하늘을 완전히 뒤덮은 커다란 나무들과 신선한 공기, 맑고 깨끗한 햇빛, 어느 하나 따질 것 없이 모두가 신선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드디어 걷기 시작하였다. 가이드와 우리두사람이 함께등반을 시작한다, 포터는 길이틀리다.
여기서 3시간을 걸어야 만다라 산장에 도착할 수 있다.
해발 2000m에서 2700m까지이다. 매시간 쉬어 가는데 경사가 가파르다.
나이로비에서 듣기로는 골프를 칠 수 있는 평지라던데 하면서 투덜거리며 계속 올라갔다.
나도 약 2시간 정도 걸으니 상당히 힘이 들었다. 과연 정상까지 갈 수 있을는지 이 문제가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예상보다 30분 정도 더 걸려 3시간 30분만에 만다라 산장에 도착하였다.
오는 도주에 비닐봉지에 싸준 점심을 먹었다. 산행중에는 점심을 도시락으로 때운다.
말이도시락이지, 검정비닐봉지에 토스트와 계란삶은것,그리고바나나1개.닭다리1개가 전부다. 이곳에서 참예뿐 원숭이를 보았는데 털이 무척길고 힌털과 검은털로 몸이 덮어있는킬리만자로에만 생활한다는 원숭이다. 이름이 잘생각이 나지않는다.
산장에 도착하면 포터킴티가 더운물을 세수대야에 같다준다, 씻고 나니,차마시라는 연락을 한다. 식당에 식탁보와 함께 커피,홍차,초코차,등을 준비해놓았는데 ,식당안이 모두 서양인으로 가득이고, 동양인은 우리둘뿐이다,
저녁식사 후 가이드와 등반 경로를 상의하던 중 처음 생각보다 덜 힘들 것 같은 설명에 새로운 용기를 얻고, 나 자신도 정상을 정복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을 갖게 되었다.
가이드의 이야기로는 내일 5시간, 모레 5시간 정도 걸어야 한다고 하였다.
나이가 조금 든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이 정말 고맙게 생각되었다.
침낭을 펼치고, 8시경에 잠자리에 들었으나 이런저런 생각들로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 2005 년 6 월 6 일 > - 등반 2일째
슬리핑 백에서 어떻게 하면 잠을 잘 잘 수 있는지를 몰라 밤잠을 약간 설쳤다.
옷을 다 입고 자야 하는 것부터 불편한데 손과 발을 마음대로 움직일수도 없고 불편한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곳도 해발 2700m이기에 밤공기가 상당히 차가웠다.
팔과 발을 내놓고 잘 수도 없어 아무튼 잠은 즐거운 것이 되지 못했다.
아침 8시에 만다라 산장을 출발하여 오늘은 14km를 걸어야 한다.
지도상으로는 평지인양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는 약간의 경사를 계속 올라가야 했다.
해발 약 3000m까지는 울창한 밀림과 아름드리 나무와 바람에 날아다니는 이끼가 나무에 붙어 나무 전체가 마치 수염으로 뒤덮인 듯한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정말 열대의 정글은 깊어져 가는 것만 같았다.
약 30분을 걸으니 구름이 아래로 보이고, 두 개의 거대한 산은 구름 한 점 걸쳐 있지 않았다.
이 두 개의 산은 대조적으로 킬리만자로는 화산이 폭발하여 된 산이고, 무웬지는 지각변동에 의하여 생성된 산이라 한다.
킬리만자로는 평평한 테이블 기분을 자아내는 반면 무웬지(5120m)는 너무 신경질적으로 뾰족뾰족한 봉우리가 예리해 보였다.
따라서 높이는 킬리만자로가 높지만 등반하기가 쉬워 아마츄어들에게 인기가 있고, 무웬지는 높이는 낮으나 프로들만이 등반할 수 있는 산이라 한다.
길은 오솔길이지만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항상 선택을 하여야 했다.
낮으막한 침엽수와 선인장류가 인상적이었다.
오늘 가는 곳은 호롬보 산장으로서 3720m에 있다.
계곡의 절경과 기묘한 열대 고산식물들을 감상하며 아파 오는 다리의 근육통을 잊어버리려 노력하였다.
일반적인 이야기로 3000m 이상은 인간이 살기 힘든 열악한 기후조건의 지대로 분류되며 고산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높이이기도 하나, 식물의 분류로는 ALPINE DESERT(고산 불모지-4500m)가 시작되고 MOORLAND ZONE(황무지-3600m) 의 중심지역으로 기괴한 모습을 한 선인장류들이 자라는 곳이 바로 이 지역이다.
어제의 숲의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인 황량한 모습이다.
게다가 불어오는 바람마저 상당히 차가워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약 3시간 정도를 걸어서 점심을 먹는 곳에 도착하였다.
나의 다리는 나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바람이 적은 움푹 패인 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약 30분 정도 잠을 자기로 하였다.
생전 처음 보는 고산식물들의 을씨년스런 모습과 차가운 바람과 내리쪼이는 강렬한 태양빛, 다리근육통, 약간의 호흡곤란 등 난생처음으로 경험해 본 불편이었다.
맛없는 샌드위치 두 쪽과(그나마 가방 속에서 뒹굴어 모두 부서짐) 오렌지 한 알을 먹으며 한심한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이 고생을 하면서 내일 모레 정상에 오르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높이 올라갈수록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주위에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이국의 등반객들과 다시 걷는다. 약 1시간 정도 더 올라가니 기괴한 식물이 자라는 계곡에 정말 차가운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 기괴한 모양을 한 식물이 자이언트 쎌(GIANT GROUNDSEL)이라고 하는 고산식물이라 하였다.
선인장 모습을 하고 키는 사람 키만큼 큰 것이 목 부분 밑으로는 모두 말라 비틀어진 잎들이고 오직 머리부분만이 파랗게 살아있음을 나타내었다.
가뭄과 추위, 이 두 가지 악조건을 견디어야 하는 식물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요소는 하나도 없었다.
예를 들어 잎 모양은 소철처럼 보이지만 두께는 종이처럼 얇다.
또한 밤이면 잎들이 안쪽으로 오그라들어 차가운 밤이슬을 피한다.
이 기괴한 식물들을 옆으로 하고 누워 쉬고 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야..부럽다, 저렇게 내려가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이 왜 산에 가는지 이제야 알았다. 내려오기 위해서다"
내려오는 일행에게 물었더니 6명중 1명만이 성공하였다고 한다.
내려오는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나중에는 얼굴 표정만 보아도 성공여부를 알 수 있었다.
그 맑은 계곡의 물에서 약 40분 정도를 더 오르니 호롬보 산장이었다.
이 산장 도착 5분전의 길은 완전히 돌로 된 길이었다.
그러나 눈 위에 보이는 휴식의 장의 장소 때문에 사람들은 힘든지도 모르고 마지막 걸음을 재촉하였다.
어느 책에 보면 킬리만자로 정상과 바닷가의 산소량 차이는 50%라고 하였다.
이곳이 해발 3700m이니 여기는 약 25%의 산소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다.
산장에 도착하니 오후 3시 30분이었다.
방을 배정 받고 잠시 누워있으니 두통이 나기 시작하였다.
가이드가 차를 준비해 놓고 오라고 하여 식당에 앉았다. 나와 집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두통이 심해 6시경 두통약을 먹었다.
고산증세라 함은 두통, 허약한 감정, 구역질, 메스꺼움 등이 느껴지는 것인데 나에게 그런 모든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잠들기 전에 약을 한 주먹 먹었다. 내일 아침에는 원기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잠들었다.
< 2005 년 6 월 7 일 > - 등반 3일째
호롬보 산장의 아침도 7시부터 시작되었다.
킴티가 문을 두드리며 더운 물 두 세수대야를 계단 앞에 놓아두고 간다. (집사람과두사람)
어제는 수면제 덕분에 잠을 잘 잔 것 같았다.
전신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유쾌하지 못한 아침은 생전 처음인 것 같았다.
3700m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니 다음의 키보 산장에 가면 식욕은 더욱 떨어지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킴티가 빈물병을 달라고 한다, 물을 채워주기위함이다, 킬리만자로 빙하의 녹은물,알파인 워터이다, 그런데 물속에 웬 먼지가그리 많은지, 맛도없다, 하지만 그물밖에 없으니 어쩔수없이 먹어야한다.
책에는 등반 중 하루 4~6리터의 물을 마시라고 했는데 실제 3리터 정도만 마셔도 더 이상 마실 수 없었다.
약 4100m(last water park) 높이에 마지막으로 물이 있다.
다행인지 날씨는 청명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구름이 꽉 차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우리는 완전히 구름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옛날 동양의 도사들이 높은 산을 찾았던 이유는 이런 이유가 아니겠는가.
여하튼 이곳에서는 일반적인 일기예보는 필요치 않는 것 같았다.
오직 한가지 날씨만 존재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구름속을 헤집고 올라가는데 바람은 왜이리도 부는지 춥고, 고생이다. 할수없이 판초우의를 꺼내 옷위에 껴입는다. 바람에 날아갈 것 같다.
어제와는 또 달리 이제는 돌과 솜털이 붙은 것 같은 잡초들만이 자라고 있었다.
오늘도 14Km를 걸어야 키보 산장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6시간을 쉰 후 정상공격을 해야 하니 이번 등반 중 이제부터가 가장 어려운 시간이다.
그러나 심신은 이미 지쳐있다. 의욕도 많이 줄어들었다.
한 시간에 약 3Km를 걸어야 하니 느린 속도는 아닌 것 같았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오르막 길을 약 3시간 걸으니 키보와 무웬지산 중간의 평지가 나왔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마지막 물이 있는 LAST WATER POINT에 닿았고 휴식겸 물을 보충하고 계속 걸으니 이제부터는 평지를 걷는 것처럼 걸으면 된다는 부분이 바로 여기였다.
그러나 평지라고 좋아했던 기분은 3시간을 더 가야 키보 산장이 나온다는 가이드의 말에 허탈감으로 변했다.
바로 저 앞에 보이는 산장인데 3시간을 더 가야 한다는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앉아 쉬었다.
너무나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왔으니 돌아갈 수도 없고 오직 무의식적으로나마 전진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고도가 4500m 정도이니 빨리 호흡이 막힌다.
10분 걷고 10분 쉬고 하면서 나아가는데, 나의 걸음도 많이 흐트러졌다.
몸에 두통, 구역질, 메스꺼움 등에 더하여 미열까지 느껴지는 것이 상당히 불쾌하였다.
산에 오르기 전 호텔에서 주의사항을 들었던 몇 가지가 생각났다.
호흡장애가 제일 무섭고 그 다음이 말라리아성 고열이라 하였기 때문에 조금의 미열이나마 불쾌하였다.
설사는 치명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스테미나 보충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 3가지 증세가 실패의 주원인이라 한다.
발이 땅에 붙어 아무리 움직이려해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어렵게 왼발을 띄면 이제는 오른발이 붙어버리는 것이 키보 산장까지의 마지막 등정 과정이다.
너무나 평지이고 주위환경이 너무나 변화가 없고 고산증세에 시달려서 기진맥진하고 걸어도 걸어도 산은 가까워지지 않고... 마지막 키보까지의 등정은 정말 지루했다.
이곳 역시 마지막 5분은 상당한 경사였다.
약 오후 3시경 끝내 도착하였다. 경관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절벽 위의 화장실, 그야말로 서부극에서 보는 높은 절벽에 나무로 지은 화장실이다. 볼일을 보려고 밑을 보는데 아득하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20~30명씩 공동으로 들어가는 숙소,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거대한 킬리만자로의 정상이 노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화장실을 갔다오는데 어질어질하다, 헤딩이다, 우와 미치겠네! 집사람은 울고있다, 너무힘들어서 그런다, 괜한 욕심을 ,아니객기를 부렸나, 조금 걱정된다. 하지만 여기 까지왔는데,,,
가이드를 불러 뜨거운 물을 달라고 하였다. 식욕은 없고 그래도 기운을 차리려면 라면이라도 먹어야 겠다.그래도 아직,
키보 산장(4700m)까지 식욕을 잃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빈속으로 정상을 오르는 것이 더 편하다는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따라 최소한의 음식만 먹기로 하였다. 가이드 필립이 오로지 앞 사람의 발자국만 따라 호흡을 조절해 가며 걸으라고 한다.
절벽 위의 화장실은 군대생활 때 경험해 보고는 처음이었으나 몸무게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준비를 다하였다.
그런 따위의 화장실은 공통점이 있다.
바람이 항상 아래에서 위로 불어 올라와 불편함을 더해준다.
이제 6시간 후면 마지막이다. 모든 준비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자기로 하였다. 두통약, 비타민C.영양제 등등. 다시 한번 약을 한 주먹 먹고 슬리핑 백에 누웠다.
필립이 와서 내일의 마지막 등정에 필요한 주의사항을 전달하였다.
호흡장애를 느끼는 사람과 고열, 오한 등의 증세가 있는 사람은 지금 바로 호롬보 산장으로 내려가라고 했다.
밤이 되면 더욱 힘들기 때문이라 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지쳐있는데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일본인은 몸살이 나는데도 말을 않다가 새벽에서야 포기하는 바람에 하산하느라 무척 고생했다고 한다.
나는 미열을 느끼면서도 말하지 않고, 잠을 잔 후에 상태를 보기로 하였다.
아무리 뒤척여도 잠이 오지 않았다.
옷은 윈드불록에 방수복. 고어파카, 그리고 핫팩. 완전히 중무장이다.
< 2005 년 6 월 8 일 > - 등반 4일째
새벽 11시 30분 경 가이드가 문을 두들겨 잠에서 깨어났다.
잠도 안오고 뒤척이다 일어나서 양말 2켤레를 신고
바지는 2겹에 상의는 3개의 셔츠를 입고 고어파카 를 더 입었다.
내가 보아도 장비는 참으로 엉성한 것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 겨울 등산모자와 귀마개까지 가져와 마음이 놓였다.
장갑까지 준비하고 등에 메는 배낭에는 에는 물과 사진기, 여분의 옷 한 벌, 쵸콜렛 등을 넣고 준비를 끝냈다.
새벽 0시 00분 경 키보 산장을 출발하였다.
새벽녘의 찬바람은 매서웠다.
머리에 쓴 모자로 ,마스크-방한용- 가리개 덕분에 방한은 그런대로 성공적인 것 같았다.
모두 옷들을 많이 입어 걷는 모습들이 마치 로봇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머리에 헤드랜턴으로 길을 비추며 천천히 걷는다, 30분 정도 걸었나, 아니 갑자기 랜턴이 꺼진다. 밧데리 소모가 다된것이다, 날씨는 영하 20도, 추운곳에서는 밧데리가 쉽게 달아버리다는데 가방에 예비밧데리를 챙기지 못했다. 큰일이다. 주머니에 조그만 비상용 손전등으로 가이드 필립의 후레쉬에 맞쳐서 올라가는데 그래도 앞뒤로 정상에 오른는 사람이 많아 다행이 었다.
희미한 산의 모습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꾸불꾸불한 길이 위로만 향하고 있었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각오를 새롭게 해야지.
무작정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옮긴다. 머리위에는 뻗으면 잡힐 듯 큼직한 별들이 수도없이 펼쳐있다. 약 1시간정도 걸었을 무렵 또다시 힘들고 어질어질하다. 물한모금 마시고나니 집사람이 힘들어 하는 모습이보인다. 필립이 뭐라고 집사람에게 하는데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않는다.조금쉬다가 일어나다리에힘을 주고 각오를 새롭게 다져먹는다.
다리 근육에 뿌듯한 힘이 느껴지는 것이 아직 상당한 힘이 저축되어 있는 것 같았고 잘하면 올라갈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바닷가보다 훨씬 적은 산소를 최대한 흡수하려고 계속해서 심호흡을 하였다.
정말 걷기가 힘들었다. 10여 발자국 가면 숨이 가빠왔다.
젊은 가이드 필립이 앞에 서고 그 다음 집사람이 서고 다음 내가서고 뒤에 보조로 월리안이 뒤에 섰다. 월리암이 따르는 것은 혹 생길지모를 사고에 보조가이드로서 필립이 함께 데리고 간다고 한다. 조금 든든하다.
서로 말은 안 하지만 각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누가 누구를 위로한다거나 인도할 힘도 정신도 없었다.
앞만 보고 고통을 참으며 묵묵히 전진 할 뿐이었다.
약 1시간30분을 더 전진하였으니 고도로는 약 5100m 정도라고 여겨지는데 정신이 없다.쉬려고 앉는데 중심이 잘안 잡힌다. 월리엄이 뒤에서 붙잡아준다, 아 이것이 뭔일인가,
숨은 아무리 크게 쉬어도 산소가 부족해서 말하기도 곤란해졌다.
숨을 계속 크게 몰아쉬면서 무어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게속해서 물을 마시는데 물이 얼어서 잘안나온다 주먹으로 깨서 마신다.
포기할 수는 없다.다시 한번 마음을 단단히 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올라갈수록 더욱 가파른 길이 되었다.
우리 외에 함께 움직이는 등산객들은 대충 10여명은 될것같았다. 호롬보에서 고산 적응을 위해 하루 더 있는 사람이 있다.
집사람이 고통을 호소한다. 필립이 가슴과 등을 두두려준다, 물마시고 조금씩또 앞으로 나간다. 내가 이렇게 무능력한 사람이 되었나 나 자신도 가늠하기가 힘들어 집사람이 아픈것도 느끼지도, 도와주지도못하고, 어질어질 다리도 안떨어지고,
어느 사이 우리가 제일 느린 팀이 되었지만 나는 성급하게 따라 갈 생각은 없었다.
자기 페이스를 잃으면 호흡장애가 오고, 이를 회복하려면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들어서 잘 알고 있기에 더욱 조심하면서 전진하였다.
드디어 5400m 쯤에 위치한 한스 마이어 동굴에 도착하였다.
독일의 지질학자로 최초로 킬리만자로를 등반하다가 쉬어 갔던 곳이라고 아주 작은 팻말이 붙어있었다.
거의 사색이 되어 이곳에 도착한 우리는 꽁꽁 얼어붙은 돌 위에 앉았다.
물통에서 물을 꺼내 마시려 하니 이미 얼음이 되어 버렸다.
정상에서 물이 얼어버리면 큰일이다 싶어 앞 호주머니에 물병을 넣어 조금이라도 온도를 높이려 하였다.
앞서 가던 여자 중 한 명은 여기서 하산했고, 또 다른 팀의 3명도 하산하였다.
길은 더욱 가파르고 약 30분을 더 올라가니 흰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밑에서 올려다본 신비의 눈이, 신비의 만년설이 눈앞에, 나의 손에 느껴졌다.
장갑을 벗고 추운 줄도 모르고 만져보았다.
낮에는 녹고, 밤에는 얼고 하여 약 10Cm 두께의 푸석푸석한 얼음이라 해야 맞을 것 같았다.
얼음 위와 눈 위와 부서진 돌가루 위를 쉴새없이 미끄러지며, 쉬어가며, 정신없이 움직였다.
5시가 다 된 것 같아 하늘을 보니 수많은 별들이 MOSHI라는 조그만 도시의 불빛과 어울려 황홀한 광경이었다.
마치 하늘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는 거의 3~5 발자국마다 쉬고 가야했다.
그야말로 전신이 깨질 듯이 아프고 모든 신경계통의 감각이 혼선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쓰러질 듯이 힘들어 하다가 아무 아픈 데도 없는 것처럼 다시 올라가기도 했다.
아무튼 힘은 모두 소비된 것 같고 오직 남아있는 것은 맥박을 심하게 뛰지 않게 해야한다는 생각과 오기만 남아 있었다.
정상을 바라보자 10층 높이 정도의 고층건물인 양 느껴졌다. 정상은 눈이 더욱 많았고, 눈이 없는 부분은 가파른 암반이었다.
정상까지는 계속 눈 위를 걸어야 한다.
또걷는다. 필립은 계속 집사람에게 물을 먹이며 가슴과 등을 두두려준다, 고맙다, 가이드로써 함께하는 등반객을 보살피는 모습이 역시 프로다.
오르는 도중 먼저 출발해서 등정에 성공하고 하산하는 다른 등반팀이 있었다.
그들은 다른 루트로 내려가고 있었는데 다른 계곡에서 나를 격려해주는 신호를 보내주었다.
정상에서 모든 길이 하나로 모아지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드디어 앞이 탁 트였다. 정상에 오른 것이다.
숨쉬기가 곤란하고 두통과 함께 근육이 아파 왔지만 이 순간은 무아지경이었다.
그 순간도 잠깐이고 추워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멀리서 일출이 조금씩보인다.
등에 멘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내 내가 여기에 서있다는 것을 증명해 줄 사진을 찍었다.
우선 제일 궁금하던 만년빙벽을 찍었다.
거리가 너무 멀어 조그맣게 나왔지만 세월을 응고시켜 지니고 있는 신비의 얼음 덩어리들은 장엄하였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것이다.
우흐르 피크가 보였지만 거기까지 가려면 1시간 30분 정도를 더 가야 한다.
그곳이 일반적으로 킬리만자로의 정상이지만 내가 서있는 GILMAN'S POINT도 분화구의 다른 쪽 정상인 것이다.
누군가 성경의 시편을 대리석에 새겨 갖다 놓았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대리석 조각을 갖다 놓기도 했다.
누군지 부질없는 짓을 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싶어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하였다.
밑에다 대고 크게 소리를 질러볼까 하다가 그것도 공해가 될 것 같아 포기했다.
내려다보이는 쪽을 향해 사진 한 장을 더 찍고 물 한 모금을 마시려 했지만 모두 얼어있었다.
이곳 길만포인트에서 집사람은 하산 하였으면 하는데 나는 오기가 더 생겼다. 그래도 여기왔는데 정상까지 가자고 집사람에게 이야기하니 어쩔수없이 좋다고 한다.
계속 비틀거리며 올라가는데 와!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만년설과 빙하지대가 보이는것이다. 케냐의 암보셀리 평원에서 바라보이는 킬리만자로의 정상부분인 그곳이다.
이미 해는 밝았고 눈길을 계속오른다. 길만포인트에서 우후르피크 정상은 약200미터도 안되는데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30분이상걸린다, 헤딩과 다리아픔, 온몸이 말이아니다, 집사람을 쳐다볼 정신도 없다, 그래도 가야한다,
드디어 우후루피크, 정상이다. 이미 도착한 외국인들이 환영해준다, 잠시앉아 있다가 가방에서 조그만 태극기를 꺼내 한손에 들고 사진을 찍고 , 5분정도 쉬다가 또출발이다. 하산길이 너무멀다, 내려가는 길도 힘들다, 계속어지럽고, 배고프고, 정신이 하나도없다.
5700m의 눈은 무척 미끄러웠는데 조금 내려오니 발에 푹푹 파이는 눈이 부드러웠다.
내려오는 길이 왜이리 먼지, 가도가도 끝이없다,키보 산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12시30분이다. 그러니깐 꼭12시간30분을 걸은것이다.
키보에 오니 우리보다 먼저도착한 프랑스인 들은 이미 잠들어 있다.
약 1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고 호롬보 산장으로 향하였다.
역시 14Km를 4시간만에 걸어 내려왔다.
호롬보 산장에 도착해 리셉션에 등록하고, ?육? 정상등반 기념으로 같이간 포터들과 가이드함께 맥주한병씩들고 기념을 축하했다, 4700미터까지 맥주를 짊어지고 올라와 1병에 우리돈으로 3000원 에 판다. 우리는 기분이 조금상기되었다. 그러나 그기분도 잠시뿐, 너무지치고 힘들어서 쉬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여지껏 도와준 가이드와 포터에게 내일 아침에 산장앞으로 오라고 하구 이내 잠자러 간다.
<2005년 6월9일> 등반5일째
다음날 아침 머리가 너무아프다, 집사람도 같은 증세다. 타이레놀 두알씩먹고, 그러니깐 진통제를 열알은 동안 먹은것같다, 아침식사후 게이트로 출발전에 가이드와 포터에게 팁을 나눠주고, 가지고간 침낭1개 헤드랜턴2개, 붉은악마 티셔츠,마후라,등산양발, 윈드자케1개, 골고루 나눠주니 신나한다. 이제 내려간다.
정상까지 왕복 14Km, 호롬보까지 14Km, 에제만 약30키로걷고 오늘또 만다라까지 13Km,만다라에서 게이트까지12Km하여 오늘도 하루에 25Km를 걸어 내려왔다.
약 15Km 걸은 후부터는 다리에 힘이 없어 문어다리 같이 휘청거리면서 내려왔다.
약 2일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55Km의 강행군을 하고 나니 육체적으로는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기분은 무척 좋았다.
이 기분 때문에 등산을 하는가 하고 생각되었다.
두통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식욕도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아침부터는 시장기를 느끼기까지 했다.
아침식사 후 국립공원 입구까지 5시간만에 도착하였다.
드디어 킬리만자로 등반은 끝이 났다.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드디어 정상 정복 증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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