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화산석
강우현
각질 제거 용품을 샀다
계란처럼 깎인 화산석
애초의 지상 것과는 모양이 다르다
누가 봐도 불의 자손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지각을 뚫고 나온 그의 특징은 구멍이다
아기 구멍, 엄마 구멍, 할머니 구멍까지
한집에 둥글둥글 산다
천적은 어쩔 수 없었다는 듯
물을 피해 급하게 내달리던 불의 발자국
바람이 알을 슬었다
환경이 바뀌어도 핏줄은 티가 나는 법
시간을 껴입어 단단한 체구는
아직도 물로 씻은 얼굴이 구멍투성이다
뒤꿈치를 밀다 말고
맨틀의 주소를 묻는다
천년 만년 버틴 어둠의 붉은 침묵
내 살을 만지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애지}, 2017년 겨울호에서
이 세상의 근본물질은 물도 아니고, 공기도 아니고, 흙도 아니고, 오직 불이라고 할 수가 있다. 물도 불(에너지)이고, 공기도 불이고, 흙도 불이다. 물이 불을 이길 것 같지만, 그러나 물마저도 불(에너지)의 결정체이고, 물에 의해서 전기가 생산된다. 물질은 에너지이고, 에너지는 물질이다. 우리는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도拜火敎徒이며, 이 불빛의 명암에 따라 웃고 울면서 살아간다.
강우현 시인의 [붉은 화산석]은 각질 제거용품으로 산 도구에 지나지 않지만, 그러나 그 “계란처럼 깎인 화산석”에 대한 사유는 자연과학적인 사유와 철학적인 사유의 결정체라고 할 수가 있다. 우리는 “누가 봐도 불의 자손/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지각을 뚫고 나온 그의 특징은 구멍”이라고 할 때, 또는 “아기 구멍, 엄마 구멍, 할머니 구멍까지/ 한집에 둥글둥글 산다”라고 할 때, 그의 사유는 제일급의 철학자의 사유에 해당된다. 우리는 불의 자손이며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고 말할 수 있는 시인도 보통 시인이 아니고, ‘붉은 화산석’을 바라보며 ‘아기 구멍, 엄마 구멍, 할머니 구멍’을 생각해내고, 우주적인 공동체로서 ‘한집에 둥글둥글 산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인도 보통 시인이 아니다. 시인이자 철학자이고, 철학자이자 자연과학자이다. “물을 피해 급하게 내달리던 불의 발자국/ 바람이 알을 슬었다”는 것은 시뻘겋게 타오르던 용암에 바람 구멍이 생겼다는 것을 뜻하고, “시간을 껴입어 단단한 체구는/ 아직도 물로 씻은 얼굴이 구멍투성이다”라는 시구는 붉은 화산석의 역사성을 뜻하고, 바로 이러한 시구들을 자연과학적인 지식의 산물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강우현 시인의 [붉은 화산석]은 물, 불, 공기, 흙의 총체로서 우주이며, 그 우주에는 아기, 엄마, 할머니 등 모든 인간들이 다 살고 있다. [붉은 화산석]은 삶의 우주이자 모든 생명체의 숨구멍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시인은 물, 불, 공기, 흙으로 ‘붉은 화산석’, 아니, 우주를 창출해낸 천지창조주이다. 시인은 천년 만년, 종합예술가, 아니, 천지창조주로서 모든 사물들과 인간들을 구원하고, 새로운 꿈을 꾸고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