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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61)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의 생애 ①
심오한 영성 지닌 소화 데레사의 영적 자매
가르멜의 성인 중에는 보석처럼 빛나지만 아직 한국 교회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중에 성녀 소화 데레사와 동시대 사람이자 그분만큼이나 깊은 영성을 간직하고 있는 프랑스의 가르멜 수녀님이 한 분 계십니다. ‘복녀 삼위일체의 엘리사벳’이 바로 그분이십니다. 이분의 속명(俗名)은 ‘엘리사벳 카테즈’(Elisabet Catez)고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해서 받은 현의(玄義), 즉 앞으로 수도생활을 이러저러한 지향을 갖고 하겠다 하는 이름은 ‘삼위일체’입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성녀 소화 데레사가 워낙 오래전부터 많이 알려진 데 반해, 사실 복녀 엘리사벳은 그간 소화 데레사의 그늘에 가려져 그 진면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럽 교회에서는, 예컨대 20세기의 대학자 가운데 한 분으로 존경받는 폰 발타사르 같은 경우 복녀 엘리사벳을 소화 데레사에 비견되는 영적 자매라고 부르며 일찍부터 그분의 영성이 지닌 심오함을 주목해 왔습니다.
단명했지만 깊었던 영성
지난 2006년에는 복녀 엘리사벳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서 그분의 영성을 기리는 다채로운 행사가 세계적으로 거행됐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난 올해 교황청에서는 돌아오는 10월 16일에 이분을 시성하기로 공포했습니다. 이제야 그분의 진가(眞價)가 드러나나 봅니다. 그래서 이번 호부터는 20회에 걸쳐 복녀 엘리사벳의 생애와 영성에 대해 함께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분 역시 소화 데레사처럼 단명(短命)했습니다. 소화 데레사는 24살에 세상을 떠났고 복녀 엘리사벳은 26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스갯소리일는지 몰라도 가르멜 수도회에서는 30세가 되기 전에 죽어야 성인이 된다는 낭설(浪說)이 전해져 옵니다.
방금 소개한 두 성인 말고도 20세기 초반 칠레 출신의 안데스의 성녀 데레사라는 가르멜 수녀님은 심지어 수련을 받던 20살에 임종한 후 성녀가 됐고, 16세기 이탈리아의 피렌체 가르멜의 레디의 성녀 데레사 말르가리타는 23살에 임종한 후 성녀가 됐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살아온 햇수가 반드시 영적인 성숙 여부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진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거룩함의 표양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길게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밀도 깊은 사랑의 순도(純度)로 자신에게 허락된 삶을 불사르며 치열하게 사는 것이 성성(聖性)에 이르는 관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버지 여의고 디종으로
복녀의 생애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 세속에서의 삶(1880~1900년), 2) 디종 가르멜 수녀원에서의 삶(1901~1906년 3월), 3) 수녀원 병실에서의 삶(1906년 3~11월). 우선 세속에서의 엘리사벳의 삶에 대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복녀는 1880년 8월 18일 프랑스의 부르쥐 지역의 아보르(Avor)라는 도시에 있는 군영 막사에서 태어났습니다. 복녀의 아버지는 당시 프랑스 군대의 장교로 복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족 역시 그와 함께해야 했고 복녀의 어머니는 엘리사벳을 군영 막사에서 해산했습니다. 복녀의 친자매로 ‘마르가리타’라는 여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복녀는 7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랐습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더 이상 군영 막사에서 살 수 없었던 엘리사벳 가족은 결국 디종(Dijon)으로 이사해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았습니다.
엘리사벳의 생애에 있어 주 무대가 되는 디종은 오늘날 프랑스의 중동부지방에 자리 잡은 중간 규모의 도시에 속하지만, 중세 당시에는 부르고뉴 공국의 수도로서 번영을 구가하던 제법 품격 있는 도시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이곳에는 여전히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고풍스런 건물들이 도시 전체를 꽉 채우고 있습니다.
풍부한 음악적 감수성
디종으로 이사 온 엘리사벳은 7살이 되던 그해에 첫 고해성사를 했는데, 훗날 증언에 따르면 그때부터 신앙심 깊은 아이로 점차 변해 갔다고 합니다. 이듬해인 1888년, 엘리사벳은 본당 신부님께 수녀가 되고 싶다는 원의를 처음으로 얘기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감수성이 예민했던 엘리사벳은 특히 예술가로서의 기질이 남달랐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런 엘리사벳을 ‘피아니스트’로 키우기 위해 아낌없이 지원했습니다. 1888년부터 엘리사벳은 디종에 있는 콘세르바토르에 등록해 열심히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로부터 5년 후인 13살 때에는 콘세르바토르에서 주최하는 피아노 콩쿠르에서 두 번이나 대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당시 디종 시에서 발간된 신문에는 쇼팽의 곡들을 연주한 소녀 엘리사벳을 극찬하는 평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이미 그는 어린 시절에 상당한 피아노 연주 수준에 올라 있었습니다. 엘리사벳은 특히 쇼팽의 피아노곡들을 상당히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독특한 음악적 감수성은 훗날 그가 수도생활에 입문해서 자신의 영성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됐습니다. 복녀의 영성 세계는 예술적 감성과 상당히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으며, 특히 시를 통해 집약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62)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의 생애 ②
‘하느님의 집’으로 거듭난 엘리사벳
첫 영성체로부터 시작된 영적 여정
복녀 엘리사벳의 유년기에서 그의 신앙에 깊은 영향을 준 중요한 사건이라면 단연 첫 영성체를 꼽을 수 있습니다. 어린 엘리사벳은 첫 영성체를 준비하기 위해 상당히 열심이었고 대단한 기대를 품었다고 합니다. 엘리사벳은 7살에 처음으로 고해성사를 본 후 충실하게 첫 영성체를 준비했습니다. 마침내 1891년 4월 19일 12살이 되던 해, 엘리사벳은 첫 영성체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복녀는 성체 안에 현존해 계신 예수님께 많이 끌렸으며 평소에 늘 자기 영혼 안에 계신 그분의 현존에 주의를 기울였다고 합니다. 복녀의 일생에서 예수님의 현존, 더 나아가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현존은 일생을 통해 드러나는 아주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현존에 대한 깊은 자각과 투신 속에서 장차 복녀의 고유한 영성적 색채가 형성됩니다. 이런 일련의 영적 여정에서 볼 때, 엘리사벳의 첫 영성체 그리고 이와 더불어 그 안에서 시작된 그분을 향한 끌림은 이 여정의 첫걸음인 셈입니다. 이때부터 엘리사벳은 자신의 마음을 예수님께 온전히 내어드리며 그분께 애정을 쏟고자 했습니다. 이와 함께 다른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성숙함도 갖춰 갔습니다.
디종 가르멜 수녀원과의 인연
첫 영성체는 어린 엘리사벳에게 장차 자신이 이 지상에서 이루게 될 소명을 꽃피울 못자리와 인연을 맺게 해 주었습니다. 그 못자리는 다름 아닌 디종 가르멜 수녀원이었습니다. 첫 영성체를 한 그 날 오후, 엘리사벳은 어머니와 함께 디종 가르멜 수녀원에 인사하러 갔습니다. 당시 디종의 신자들 사이에서는 자기 자녀 중에 누군가 첫 영성체를 하면 그 아이와 함께 가족이 가르멜 수녀원을 방문하는 좋은 관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맏딸이 첫 영성체를 통해 이제 신앙적인 면에서 한층 성숙한 아이로 자랐음을 기뻐한 복녀의 어머니는 가르멜 수녀원을 찾습니다. 아는 지인의 소개로 엘리사벳을 데리고 그곳 수녀들에게 아이를 소개하며 기도를 청하기 위해 면회를 갔습니다.
현재 프랑스 전역에는 약 100여 개의 가르멜 수녀원이 있는데 디종 가르멜은 1605년 9월 21일 프랑스에서 세 번째로 설립된 유서 깊은 수녀원입니다. 특히 이곳은 성녀 데레사가 가장 아끼던 애제자인 예수의 안나 수녀가 스페인에서 여러 동료, 제자 수녀들을 이끌고 직접 창립한, 성녀 데레사의 정신이 깊이 배어 있는 수도 공동체입니다.
처음 창립될 당시 이 수녀원은 디종 시내의 ‘샤르보네리 거리’에 세워졌으며 그 후 1613년 성녀 ‘안나 거리’로 이전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정부의 반교회적 정책으로 1819년 잠정 폐쇄됐다가 51년 후인 1870년에 와서야 ‘카르노 거리’에 다시 세워지게 됩니다.
복녀 엘리사벳이 훗날 1901년 입회하게 될 수녀원은 바로 이곳으로, 엘리사벳의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엘리사벳을 비롯해 그의 어머니와 동생은 특별한 날이면 이곳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수녀님들과 교감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간적인 인연들이 이어지며 소녀 엘리사벳의 마음에는 가르멜을 통해 자신의 성소를 꽃피우고자 하는 열망이 자라났습니다. 복녀 엘리사벳의 흔적이 깊이 배어 있는 디종 가르멜 수도 공동체는 1979년 디종 외곽에 있는 ‘플라비녜로’(Flavignerot)라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로 이사해서 살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이라는 이름에 담긴 신비적 의미
첫 영성체 후 엘리사벳이 어머니와 함께 수녀원을 방문했을 당시, 그들을 반갑게 맞이한 디종 가르멜의 원장 수녀님은 한껏 기뻐하던 엘리사벳을 축하해 주며 ‘엘리사벳’이라는 이름이 간직하고 있는 의미, 즉 그것이 ‘하느님의 집’이라는 의미라는 걸 설명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엘리사벳’ 이름에 대해 영성적으로 풀어서 설명한 내용이 담긴 작은 상본을 선물해 주셨는데, 이 또한 복녀의 일생에 늘 회자되곤 했던, 장차 복녀의 성품에 영향을 끼친 어린 시절의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름은 그 사람이 누구이며 장차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그의 현재와 미래의 정체성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은 자신의 이름에 담긴 ‘하느님의 집’이라는 의미를 일생을 통해 곱씹으며 자신이 일생을 통해 이뤄야 할 소명을 자각해 갔습니다. 이는 장차 가르멜 수녀원에서의 생활을 통해 심화하게 될 것으로, 무엇보다 자신을 삼위일체 하느님이 머무시는 집으로 인식하며 자기 영혼 안에서 그분을 흠숭하고 찬미하는 것을 온 힘을 다해 이룩해야 할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돼주었습니다.
당시 디종 가르멜 원장 수녀가 엘리사벳에게 준 상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 있었는데 이는 그의 마음에 깊이 각인됐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이름은 위대한 신비를 담고 있습니다 / 주님께서 오늘 그 신비를 이루셨습니다 / 아기여, 당신의 마음은 이 땅에 있습니다 / 하느님의 집, 온전히 사랑이신 하느님의 집이여.”
그로부터 2년 후인 14살이 되던 해, 엘리사벳은 내면에서부터 하느님이 자신을 가르멜 수녀로 부르신다는 내적인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때 주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개인적으로 동정 서원을 했습니다. 또한 이때부터 엘리사벳은 다양한 시를 썼으며 이를 통해 하느님 안에 숨은 생활, 침묵과 고독 중에 오직 하느님과 살고자 하는 자신의 원의를 다졌습니다.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63)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의 생애 ③
가르멜 성소 자랄수록 어머니 시름도 깊어져
사춘기 시절의 엘리사벳
복녀 엘리사벳이 남긴 작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지인들과 나눈 편지입니다. 복녀는 죽기까지 대략 340통의 편지를 썼으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과 교감하고 자신의 삶과 영성을 나눴습니다. 우리는 주로 이 편지를 통해 엘리사벳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복녀가 디종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는 1901년 8월 전까지 쓴 80여 통의 편지를 보면 몇 가지 특징적인 모습이 두드러져 드러납니다.
편지로 보게 되는 당시 엘리사벳의 가정은 중상류층에 속했습니다. 엘리사벳은 품격 있는 어머니의 지인들을 비롯해 친척들 사이에서 제법 교양 있는 아가씨로 성장했습니다. 중상류층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파티나 댄스에 참석하곤 했으며 여러 기회에 피아노 연주를 통해 한껏 흥을 돋우는 분위기 메이커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인들과 크로켓이나 테니스 같은 고급 스포츠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여흥에 참여하면서도 엘리사벳의 마음은 언제나 주님의 현존에 대한 자각으로 깨어 있었습니다. 내적으로는 늘 주님을 향해 있었고 그만큼 그런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거리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첫 영성체로부터 시작된 주님을 향한 영적 여정, 그리고 14살에 체험한 가르멜 수도 생활을 향한 내적 부르심을 엘리사벳은 늘 마음 깊이 간직하며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를 거쳐 갔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창조주께 매료되다
그 시절 엘리사벳이 쓴 많은 편지에는 여러 기회에 걸쳐 가족과 함께했던 다양한 여행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당시 엘리사벳 가족은 주로 프랑스 남부 지역을 많이 여행했는데, 거기에는 엘리사벳 가족과 친분이 두터운 예전 본당 신부님들, 친지들, 친구들이 흩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름 방학이나 부활, 성탄 방학을 이용해서 많은 여행을 다니며 여러 지인과 맺은 관계를 돈독히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여행을 통해 다양한 자연경관들을 보면서 엘리사벳의 마음속에는 이렇듯 아름답고 신비스런 자연을 만드신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생각이 깊게 자리 잡아 갔습니다. 당시 엘리사벳이 여행하며 썼던 여러 편지에는 자신이 보고 방문했던 아름다운 자연경관들에 대한 감탄이 담겨 있으며, 무엇보다 그 안에 숨어 계신 하느님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엘리사벳이 주로 여행한 지역은 프랑스 남서부의 스페인 접경지대에 위치한 피레네 산맥 근처의 아름다운 도시들로 루르드, 타르브, 포, 바욘느 그리고 스위스의 알프스 산맥 인근에 있는 안시, 제네바, 그레노블처럼 그림 같은 도시들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통해 각성된 엘리사벳의 깊은 예술적인 감수성은 그 시절 보았던 아름답기 그지없는 자연경관들을 통해 한층 더 성숙해 갔으며 무엇보다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통해 창조주 하느님의 아름다움에 깊이 매료돼 갔습니다. 예컨대 엘리사벳은 광활한 바다를 바라보며 영원에 대한 갈망을 느끼는 가운데 자신의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 높이곤 했습니다. 그가 바라본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주님께로 인도해 주는 안내자와 같았던 셈입니다.
가르멜 성소를 통해 자신을 완전히 봉헌
이렇듯 사춘기의 엘리사벳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지인들과의 만남, 음악, 파티와 댄스 그리고 여행을 통해 더없이 행복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의 마음 깊은 곳에는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영원을 향한 갈망이 깊어 갔으며 그래서 그에게 사춘기는 동시에 영적인 도약을 위한 내적 투쟁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14살에 가르멜 수녀가 되겠다는 부르심을 느낀 이후로 엘리사벳은 사춘기 내내 이 소망을 키워 갔습니다. 1894년부터 가르멜에 입회하는 1901년까지는 이런 가르멜 성소가 자라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춘기를 거치며 소녀에서 어엿한 아가씨로 거듭나는 가운데 엘리사벳은 예수님을 자신의 정배로 받아들이며 그분의 사랑에 온전히 응답하고자 하는 열망을 키워 갔고 무엇보다도 이를 가르멜 영성 안에서 성숙시켜 갔습니다.
엘리사벳은 주님의 사랑에 대해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응답은 자신을 통째로 그분께 봉헌하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철저한 봉쇄와 침묵 속에서 한 생애를 자신의 정배께 온전히 봉헌하고자 열망했던 엘리사벳의 가르멜 수도 성소가 지닌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엘리사벳에게 가르멜이란 하느님께 자신을 완전히 귀속시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사춘기 시절 엘리사벳의 뇌리에 늘 후렴구처럼 자리 잡았던 화두는 자신을 예수님께 통째로 내어드리는 것, 그분을 만나기 위해 기도에 전념하는 것, 그리고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중재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이 디종 가르멜에 입회하기 1년 전에 썼던 「내적 일기」에는 이런 원의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저는 아직 이 세상에서 1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많은 선행을 하며 이 시기를 잘 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 안에 가르멜 수녀의 마음을 만들어 주소서. 내면에서부터 그것을 살아낼 수 있고 또 그러길 원합니다. 나의 하느님, 제가 온전히 당신의 것이라는 게 이 얼마나 감미로운지요” (「내적 일기」138).
이렇듯 사춘기 시절의 엘리사벳은 이미 세속에서부터 하느님께 온전히 바쳐진 가르멜 수녀이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가르멜에 입회하기까지 엘리사벳은 어머니의 반대라는 난관을 넘어서야 했습니다.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64)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의 생애 ④
‘삼위일체 하느님’ 안의 삶 깨달아
어머니의 입회 반대로 인한 위기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엘리사벳은 엄마가 바랐듯이 전도유망한 피아니스트로 커갔습니다. 비록 아버지는 계시지 않았지만, 어머니와 여동생의 사랑을 흠뻑 받았고 좋은 친척들, 다양한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엘리사벳의 마음속에는 일생을 가르멜 수녀로 살면서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봉헌하고 싶은 원의가 깊이 자리 잡아 갔습니다. 반면, 남편을 잃고 두 딸만 바라보며 살았던 엄마는 그런 큰딸의 생각을 알게 되자 크게 반대했습니다. 엄마는 엘리사벳이 피아니스트로 대성하고 또 좋은 남편을 만나서 평범하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길 바랐습니다.
그러던 차에 엘리사벳은 1899년, 1주일간 루이 쉐스네라는 예수회 신부님이 지도한 피정에 참석하고 이어서 한 달간 구속주회 신부님들이 지도한 디종 본당의 선교 대회에 참석하게 됐는데, 뜻밖에도 그 기간에 어머니는 엘리사벳이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는 걸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후 어머니는 다시 결정을 뒤집고선 혼처가 났으니 결혼하라고 엘리사벳을 어르고 달랬다고 합니다. 엘리사벳을 많이 아끼고 사랑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엘리사벳의 어머니는 신심이 깊은 분이었고 또 가르멜 수녀원을 제집 드나들 듯이 다니며 늘 미사에 참여하며 기도하고 수녀님들과 좋은 영적 친분을 나누던 분입니다. 하지만 자기 딸이 봉쇄 가르멜 수녀원에 가겠다는 것이 영 탐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르멜 수녀가 되고자 했던 엘리사벳의 결심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일련의 사건들은 복녀로 하여금 예수님을 자신의 정배로 받아들이고 더욱더 자신을 그분께 속한 여인으로 자각하게 했습니다.
주님의 구원 신비에 동참
그 시절 엘리사벳의 마음에는 특히 예수님의 구원 신비에 더 깊이 동참하고 싶은 원의가 커 갔습니다. 그래서 복녀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자신을 하느님께 희생 제물로 봉헌하고자 했습니다. 예컨대 엘리사벳 가족은 당시 세를 들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집의 주인은 ‘샤퓌’라는 중년 신사였는데, 복녀의 편지들을 살펴보면, 샤퓌씨는 꽤 마음씨 좋은 사람이었지만 신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그 주인아저씨가 회개해서 신앙을 받아들이고 신자가 되기를 바라는 지향을 갖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결국 이분은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고 임종했다고 합니다.
또한 엘리사벳은 이웃집 여자아이들을 돌봐주면서 그 아이들이 첫 영성체를 잘하도록 준비해 줬습니다. 특히 복녀는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지냈던 친구들이나 입회 전에 돌봐준 어린아이들을 삶으로, 그리고 편지로 동반하면서 영적으로 조언해 줬습니다. 이런 인연들은 훗날 가르멜에 입회한 후에도 이어져 엘리사벳은 편지 왕래를 통해 계속 이들을 영적으로 인도해 주게 됩니다. 이러한 편지들은 복녀의 영성의 핵심을 보여 주는 백미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예를 들어, 「우리 성소의 위대함」이란 작품은 7살 아래의 프랑부아즈라는 소녀에게 보낸 편지로 복녀는 영적인 엄마처럼 그 소녀를 돌보면서 하느님께 나아가도록 여러 가지 영적 조언을 해줬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주(內住)에 대한 자각
1899년 여름, 엘리사벳은 스위스의 유라, 보스쥐 같은 곳에서 지내며 소화 데레사의 「자서전」과 성녀 데레사의 「완덕의 길」을 탐독하며 가르멜 영성에 점차 심취해 갔습니다. 엘리사벳은 이런 작품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기 영혼 깊은 곳에 하느님이 현존하신다는 사실을 더 깊이 깨달았으며 이러한 자각은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온전히 사랑하고 구원 사업에 동참하기 위해 그분의 고통을 나눠 받기를 간절히 원하도록 이끌었습니다.
1900년 1월, 엘리사벳은 요셉 호프노라는 예수회 신부님이 며칠간 지도하신 피정 강론에 참여하게 됩니다. 당시 호프노 신부님이 나눈 피정은 ‘우리 주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신 고독’이란 주제로 진행됐는데, 엘리사벳은 이 피정에 참석한 이후 진심으로 고독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그 시절 복녀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특히 하느님께서 인간의 내면에 거하신다는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이었는데, 엘리사벳은 자신의 영성 생활에서 이 점에 대해 좀 더 깊이 지도를 받기 위해 다양한 영성 서적들을 읽고 주위 신부님들께 조언도 청했습니다. 특히 복녀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1900년 도미니코회 발레 신부님과의 만남으로, 이분은 은총을 통해 이뤄지는 영혼 안에서의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주(內住)가 무엇인지 복녀에게 올바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만남은 엘리사벳의 영성생활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습니다. 그전까지 엘리사벳은 비록 자기 안에 계신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느낌을 갖고 있었지만, 그 하느님이 삼위일체적인 특징을 갖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엘리사벳에게 우리 영혼 안에 거하시는 하느님이 단순한 하느님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라는 걸 정확히 알려 준 분이 다름 아닌 발레 신부였습니다. 그 신부님은 엘리사벳으로 하여금 삼위일체 하느님의 현존에 깊이 몰두하도록, 그리고 그분의 품 안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 맡기도록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줬습니다. 사실, 이때부터 복녀 엘리사벳의 영성에 있어 핵심인 삼위일체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깊은 흠숭, 그리고 그분에 대한 찬미의 영성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65)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의 생애 ⑤
영적 메마름과 질투에 시달려
21살에 디종 가르멜에 입회
1901년 8월 2일, 엘리사벳은 21살의 나이로 디종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했습니다. 당시 복녀의 어머니는 맏딸의 그런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어 한동안 절망스러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복녀 역시 마음이 매우 아팠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을 확신하면서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가르멜 성소를 꽃피우기 위해 수녀원에 입회했습니다. 입회를 반대하던 어머니를 대신해서 엘리사벳의 입회를 위해 꼼꼼하게 준비해 준 사람은 디종 가르멜의 당시 원장인 예수의 마리아 수녀였습니다. 마리아 수녀는 엘리사벳의 영적 여정에 중요한 계기가 된 발레 신부와의 만남을 주선해 준 당사자이기도 했습니다.
청원기와 수련기
리사벳은 수녀원에 입회해서 약 4개월간의 청원기를 지내며 이미 내적 생활에서 진보를 하게 되는데, 두 번째 엄마처럼 따르던 수르동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복녀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전 지상에서 제 천국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천국은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은 제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깨우치던 날 제 안에선 모든 것이 환히 비쳤습니다.” 당시 엘리사벳은 자기 영혼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실제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영성 생활에 진보했습니다.
자기 영혼 안에 천국이 있고 그 천국은 다름 아닌 하느님이 거하신다는 데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엘리사벳은 자신의 가르멜 성소에 더욱 더 확신을 갖고 살게 됩니다. 1901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 축일에 엘리사벳은 수련기를 시작하면서 수도복을 받는 착복식을 하고 정식 수도명(修道名)으로 ‘삼위일체의 엘리사벳’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자신이 목숨을 다해 추구해야 할 화두로 수도명에 각인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 엘리사벳은 약 1년간의 수련기를 통해 가르멜 영성을 깊이 있게 배우면서 자신의 하느님 체험이 무엇인지 가르멜 성인들의 가르침을 통해 성찰하고 다듬어 가게 됩니다. 그리고 1903년 1월 엘리사벳은 수도 서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엘리사벳은 한동안 일종의 영적인 메마름의 시기를 거치게 됩니다. 영성적으로 소위 ‘어두운 밤’으로 표현되는 정화의 시기를 말하는데, 사랑이 많고 예술가적인 감수성을 지녔던 엘리사벳에게 이 시기는 아주 혹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심증도 있었고 그 전에 확신하던 하느님의 현존으로부터 오던 내적인 빛도 사라져 버린 듯했다고 합니다.
다양한 시련을 거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본격적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되면서 여러 수녀님으로부터 야단도 맞고, 또 몇몇 수녀님이 능력이 많고 젊고 예뻤던 엘리사벳 수녀를 시기 질투하는 바람에 적지 않게 힘들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수녀님을 질투하던 안느 마리라는 수녀님은 훗날 엘리사벳을 복자품에 올리기 위해 했던 시복 소송에서 엘리사벳이 복녀가 되는 것을 반대하면서 불리한 증언을 했다고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질투는 인간의 보편적 심성 가운데 하나인가 봅니다.
더욱이 디종교구장으로 엘리사벳 가족과 친분이 있으신 노르데 주교님이 당시 반교회적인 정치인들과 친분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디종교구 내에서는 주교님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들이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던 주교님 소문을 들으며 엘리사벳은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엘리사벳의 영적 지도자들
수도 생활 초창기에 겪었던 이런 일련의 시련을 엘리사벳이 잘 넘어서게 된 데에는 디종 가르멜의 원장인 예수의 제르멘 수녀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제르멘 원장 수녀님은 어려움에 처한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동반하면서 하느님 은총에 응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가르멜 수녀로서 올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여러 면에서 가르침을 준 분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수도 공동체의 원장이었지만 엘리사벳에게는 원장 이상으로 스승이자 영적인 어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녀는 적지 않은 편지를 통해 제르멘 수녀님과 영적인 교감을 나눴으며, 훗날 생의 말년에 임종하기 전에는 자신이 이승에서 걸어왔던 ‘영광의 찬미’로서 자신의 소명을 이 수녀님께 맡긴다고까지 말하며 깊은 신뢰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 분 말고도 엘리사벳은 수련기 동안 자신을 이끌어 줄 또 다른 중요한 영적 지도 신부님을 만나게 됩니다. 에드몽 베르느 신부님이라고 하는 예수회원으로, 당시 디종 가르멜 수녀원의 영적 지도 신부님으로 공동체에 큰 도움을 주던 분이었습니다. 에드몽 신부님은 혹독한 내적 시련 중에 있던 엘리사벳의 상태를 식별하고 그 시련을 넘어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으며 서원을 할 때까지 엘리사벳에게 큰 힘이 돼 주었습니다.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66)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의 생애 ⑥
주님 사랑으로 세상 품기를 꿈꾸다
상존 은총에 대한 깨달음
1903년 1월 11일 공현 대축일에 엘리사벳은 서원을 발했습니다. 이때부터 복녀는 그간의 시련을 뒤로 하고 더욱더 깊이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복녀는 「서간」 154번을 통해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전합니다. “아, 이모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제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답니다!”
서원을 기점으로 엘리사벳의 영적 여정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특히 복녀는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이 담고 있는 ‘관상적인 측면’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동시에 이때부터 십자가의 성 요한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달아 갔습니다. 우리 영혼 안에 거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 안에서 은총을 통해 신적으로 변모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깊어갈수록 인간은 점점 하느님처럼 변해 가는데, 그것을 ‘신화’(神化) 또는 ‘성화’(聖化)라고 부릅니다. 통상, 신학에서는 은총을 ‘조력(助力) 은총’과 ‘상존(常存) 은총’으로 구분하며 이 중에서도 상존 은총은 신앙생활에서 안내자가 되어 우리를 인도해 주는 주된 은총입니다. 이 상존 은총을 ‘신화 은총’ 또는 ‘성화 은총’이라고도 부릅니다. 하느님께서 이 은총을 통해 인간을 당신처럼 거룩하게 변화시켜 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엘리사벳이 십자가의 성 요한을 통해 알아들은 은총은 다름 아닌 이 상존 은총입니다. 이 은총에 대해 좀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상존 은총은 다시 ‘내주(內住) 은총’과 ‘변모(變貌) 은총’으로 나뉩니다. ‘내주 은총’은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 안에 항시 거하시는 은총을 말합니다. 이 은총은 우리가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받게 되며, 세 위격과 우리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 주고 성장시켜 줍니다. 이 관계가 성장함에 따라 인간은 점차 하느님을 닮아 가게 됩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당신과 사랑의 관계를 나누는 우리를 점차 당신처럼 변화시켜 주시는 은총을 ‘변모 은총’이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의미하는 ‘내주 은총’이 먼저 주어지고 그 다음에 이를 통해 인간이 하느님처럼 변화되는 ‘변모 은총’이 주어집니다.
‘오, 흠숭하올 삼위일체, 나의 하느님’
엘리사벳은 1904년부터 영적 여정에서 자신을 인도해 줄 새로운 성녀를 만나게 되는데,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가 그분이었습니다. 특히 성녀 가타리나가 쓴 「대화」라는 작품에 수록된 ‘삼위일체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는 엘리사벳이 가장 좋아하는 기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하느님을 향한 자신의 모든 원의를 담아낼 수 없었던 엘리사벳은, 마침내 1904년 11월 21일, 자신의 영성에 있어서 핵심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삼위일체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기도문을 작성하게 됩니다.
‘오, 흠숭하올 삼위일체, 나의 하느님’이라 불리는 이 기도문에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향한 엘리사벳의 열렬한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그분의 내주(內住) 안에 깊이 잠겨 이승에서부터 이미 천국을 살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 더 나아가 이승에서부터 삼위일체 하느님을 흠숭하며 그분께 ‘영광의 찬미’를 드리며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어 이 세상에서 자신의 소명을 살겠다는 엘리사벳의 굳은 결심이 담겨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 기도문은 엘리사벳의 영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입니다.
세상 구원을 향한 사도적 열망
이렇듯 영적으로 진보할수록 엘리사벳은 자신의 구원이나 성화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 대한 성화와 영혼 구원에 보다 더 자신을 열어젖혔습니다.
외견상 봉쇄 수녀원으로 들어가 평생을 산다는 것은 외부 세계와의 절대적 단절을 의미하지만, 영적인 세계에서 본다면 그것은 오히려 더욱 깊이 하느님께 자신을 투신함으로써 그 안에서 세상을 끌어안고 세상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 자신을 봉헌하는 예언자적인 행위입니다. 엘리사벳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서원을 한 다음부터는 종종 면회실에서 가족들을 비롯해 지인들을 만나며 또는 서신 교환을 통해 그들과 자신의 영적 체험을 비롯해 이를 통해 얻은 은총을 나누곤 했습니다.
특히 엘리사벳은 맏딸과의 이별로 힘들어하는 어머니와 언니를 잃은 아픔을 겪어야 했던 여동생에게 영적인 엄마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며 그들이 인간적인 애착을 넘어서 그들 안에 현존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사랑하며 이미 이승에서부터 천국을 살도록, 그리고 자신처럼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감사의 삶을 사는 영혼이 되도록 끊임없이 격려하고 이끌어 주었습니다. 이는 후에 여동생 기트를 위해 ‘믿음 안에서 천국’이라는 주옥같은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엘리사벳의 마음 안에서는 인류를 위해 수난하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로해 드리고자 하는 열망이 더욱 커갔습니다. 이는 이미 수녀원 입회 전부터 가졌던 열망으로, 입회 후에는 그분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 엄격한 수도 생활을 통해 자신의 기도와 희생으로 많은 영혼들, 특히 죄인들을 그분께 데려가겠다는 사도적인 삶으로 그를 이끌었습니다.
한 마디로, 봉쇄 가르멜 수녀로서의 그의 수도 생활의 이상에는 사도가 되어 주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깊이 끌어안겠다는 꿈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와 가르멜 수녀, 그건 결국 같은 말입니다”(「서간」 124).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67)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의 생애 ⑦
불치병의 고통, 십자가 희생 제물로 승화
애디슨병이라는 불치병에 걸리다
1905년 봄부터 엘리사벳은 자신에게 이 병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당시 엘리사벳은 자신에게 애디슨병과 관련된 징후가 나타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애디슨병이란 1849년 영국 의사인 애디슨이 처음으로 발견해서 규명한 질병으로, 우리 몸의 콩팥 위에 있는 부신에 병이 생겨 여러 가지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김으로써 몸이 전체적으로 제 기능을 못 하게 되는 병입니다. 지금은 치료가 가능하지만, 100년 전 엘리사벳이 살던 시절에는 불치병 중 하나였습니다. 약 1년간 병을 앓던 엘리사벳은 이듬해 3월 병이 심해지자 수녀원 내 병실로 옮겨져 그때부터 임종할 때까지 약 9개월 동안 생의 마지막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 기간 엘리사벳은 병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그 고통을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에 동참하려 했습니다. 당시 엘리사벳은 유순하면서도 단순한 마음으로 그 많은 고통을 감내했습니다.
‘영광의 찬미’라는 소명의 발견
하지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1905년은 엘리사벳의 영성에 있어 중요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해 가을, 복녀는 사도 바오로의 서간들을 묵상하던 중에 “삼위일체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리라는 자신의 성소를 발견하는 깊은 영적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발견은 그때 처음 이뤄진 것이라기보다 1904년부터 사도 바오로의 서간들을 읽고 묵상하면서부터 준비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복녀는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장 12절에 나오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미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라는 구절이야말로 자신이 목숨을 다해 이뤄야 할 소명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때부터 엘리사벳은 자신을 표현하는 새로운 이름으로 ‘영광의 찬미’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함
1906년 들어 병이 점차 악화되는 과정에서 엘리사벳은 예수 승천 대축일인 5월 25일,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한, 사랑의 충만함 속에서 영적 여정의 최고봉인 하느님과의 변모적 합일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 피정」 17번에서 복녀는 이렇게 당시 심경을 전하고 있습니다. “제 영혼은 ‘천상 예루살렘’을 고대하면서 제가 살아가는 하늘이므로 이 하늘 역시 영원하신 분, 오직 영원하신 하느님의 영광만을 노래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이 찬미가 속에서 엘리사벳은 교회 안에서 완수해야 할 자신의 소명을 발견했으며 동시에 모든 이를 그 소명으로 초대했습니다.
1906년 7월 8일 엘리사벳은 소화 데레사에게 전구를 청한 다음 기적적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은혜를 받기도 했습니다. 복녀의 생애 중 마지막 몇 달간은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동시에 후대 신자들을 위해서는 은총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복녀는 그 시기에 여러 가지 작품들을 썼는데, 복녀의 작품 중에 백미로 손꼽히는 작품들이 주로 이때 작성됐습니다. 「믿음 안에서 천국」, 「마지막 피정」, 「우리 성소의 위대함」, 「사랑받도록 당신을 내어 놓으십시오」.
“빛이요 사랑이요 생명이신 분께 나아갑니다”
가을로 접어들어 점차 병이 악화되면서 엘리사벳은 자신에게 신비적인 은총과 영적 현시가 동반된 감미로운 죽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아주 처절한 고통이 수반된 죽음이 닥칠 것을 예견합니다. 오히려 그런 절망스러운 상태에서 주님은 순수한 신앙 속에서 당신께 온전히 의탁하고 당신만을 희망하도록 초대하고 계시는 것이라 생각하며, 엘리사벳은 그 고통을 십자가처럼 끌어안고 죽어갔습니다. 복녀는 임종의 고통을 통해 그간 하느님과 합일했던 당시 자신의 영혼을 더욱더 순수하게 정화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심경을 임종하기 몇 달 전에 쓴 아주 가까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표현했습니다. 마지막 몇 달 동안 임종의 고통을 당하면서 엘리사벳은 자신을 예수님처럼 희생 제물로 봉헌하겠다는 마음을 더욱 굳혀갔다고 합니다.
엘리사벳은 1906년 10월 31일 마지막으로 병자성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11월 1일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에 공동체의 모든 수녀님께 그간 함께 살면서 범한 자신의 모든 부족함에 대해 용서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11월 7일 마지막으로 성체를 영하고 그로부터 이틀 후인 11월 9일 극심한 고통 속에서 임종을 맞이했습니다. 엘리사벳은 임종하면서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저는 빛이요 사랑이요 생명이신 분께 나아갑니다.”
이렇게 해서 엘리사벳은 2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애디슨병으로 임종했습니다. 그 후 1984년 11월 25일 시복됐으며 2016년 10월 16일 시성을 앞두고 있습니다.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68)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의 영성 ①
‘침묵’으로 하느님 영광을 노래하다
복녀 엘리사벳의 영성 : 영광의 찬미
영성은 하느님께 대해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고유한 사랑의 색깔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독특함과 고유한 삶의 자리를 바탕으로 하느님과 맺는 나만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 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에 고유한 방식으로 하느님께 사랑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영성’입니다.
복녀 엘리사벳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지녔던 그만의 고유한 색깔, 영성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영광의 찬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광의 찬미’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가르멜 수도회의 영성적인 전통에서 ‘침묵’은 가장 중요한 환경적인 요소입니다. ‘영광의 찬미’, 즉 하느님을 찬미하며 일생을 살고자 했던 복녀 엘리사벳의 영성 세계에 있어서도 ‘침묵’은 영성의 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찬미가’라고 하면 일종의 소리이고 노래인데, 어떻게 그 반대인 침묵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복녀는 침묵을 참 사랑했습니다. 침묵이야말로 그가 하느님과 깊은 만남을 이루게 해주는 중요한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어느 수녀님이 엘리사벳에게 가르멜에서 무엇이 가장 좋은가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물음에 엘리사벳은 서슴없이 ‘침묵’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주의 모든 음을 담아내는 침묵
그런데 복녀 엘리사벳의 영성에 있어서 특징으로 저는 ‘침묵’과 더불어 ‘음악적 감수성’을 들고 싶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우주의 근본 원리를 ‘숫자’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주를 ‘숫자’로 풀어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주 전체가 이루는 아름다운 조화를 음악적으로 풀어내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음악을 숫자로 풀어내려고 했던 독특한 사람이었습니다.
피타고라스가 자신이 살던 마을의 길을 지나갈 때면 대장간에서 거칠게 쇠를 두들기는 소음을 듣곤 했답니다. 망치로 쇠를 두드리는 찢어질 듯한 소리죠. 그런데 어느 날인가는 그 소리가 아주 조화롭게 들리더랍니다. 그래서 들어가 곰곰이 알아봤더니, 기다란 쇠봉이 있고, 그 쇠봉의 삼 분의 이 되는 길이의 쇠봉이 있더랍니다. 그래서 그것보다 더 작은 삼 분의 이 길이의 쇠봉들을 더 만들어서 두들겼더니 일정한 음계를 이루더라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음악의 기본이 되는 8음계였습니다. 그때부터 인류는 소리를 활용해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피타고라스는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그런 그의 문하에 들어가서 공부하기 위해서 지원자들에게 요구한 조건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지원자들은 5년 동안 침묵 수행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음악의 모든 음을 담아내는 그릇이 바로 침묵이라고 그는 보았던 것입니다. 침묵은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아름다운 음을 담아내는 근본 바탕입니다. 복녀 엘리사벳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침묵을 사랑했던 엘리사벳
그래서 지극히 예민한 예술적 감수성을 가진, 그래서 음의 아름다움, 소리의 아름다움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복녀 엘리사벳에게는 역설적이게도 영성적인 차원에서 ‘침묵’이 근본적인 바탕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복녀는 어린 시절부터 ‘침묵’을 많이 사랑했다고 합니다. 부산한 상태, 외적인 소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어린 시절 파리 국제 박람회에 참석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 박람회가 보여준 온갖 화려함과 소란스러움을 들으면서 많이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복녀 엘리사벳이 지향했던 침묵은 단순히 외적인 소음으로부터 피해서 조용한 환경에 자신을 둠으로써 자신을 거둬들이는 수동적인 행위만이 아니라, 적극적인 자기 표현의 형태로 드러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복녀가 디종 수녀원에 살 당시, 어느 해인가는 복녀의 옆방에 어느 수녀님이 사셨는데 상당히 민감한 분이셨다고 합니다. 게다가 건강도 많이 좋지 않으셨습니다. 그 수녀님은 조금만 자기 신경을 건드리는 일이나 아주 작은 소음이라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불평을 터트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많은 수녀님이 그 수녀님의 예민함 때문에 힘들어했습니다. 그러나 복녀 엘리사벳은 그 옆방에 살면서 적극적으로 침묵을 살았습니다. 그 침묵은 바로 형제적인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내적 침묵과 영광의 찬미가
또한 이러한 복녀의 침묵은 내적인 침묵으로 이어졌는데, 이 내적 침묵은 복녀의 영성이 표방한 모토인 ‘하느님께 영광의 찬미’를 드리는 것과 깊이 연관돼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복녀 엘리사벳이 지향한 성성의 색깔은 ‘영광의 찬미’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하느님을 향한 가장 아름다운 음을 내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영원히 부르는 영혼이 되겠다는 게 엘리사벳이 살아생전에 그토록 원했던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천상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위해 복녀가 지향했던 방법은 다름 아닌 ‘침묵’이었습니다. 그래서 복녀 엘리사벳이 스스로의 소명이라고 본 ‘영광의 찬미’와 ‘침묵’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입니다. 복녀는 모든 내면의 생각과 감정들을 정리하고 조율하면서 영혼 깊이 내려가 침묵에 잠길 때 비로소 영혼이 맑고 고운 목소리로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69)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②
삼위일체와 친교 맺을 때 천국의 문 열려
신앙 고백의 핵심인 삼위일체 하느님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요소로 우리는 인간 영혼 안에서의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주(內住)에 대한 깊이 있는 체험과 증거를 들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녀는 자신이 아는 많은 사람에게 이 소중한 체험을 나누고 그들 또한 그러한 삶을 살도록 초대했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그리스도교에서만 드러나는 독특한 신(神) 체험입니다. 세 분이면서 동시에 한 분이신 하느님, 도무지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 신비 앞에서 초대 교회 당시 많은 신학자는 이 하느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세상에 전할지 많이 숙고했습니다. 그 와중에 하느님의 유일함, 단일함을 강조하던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성자와 성령의 신성(神性)을 부인하기에 이릅니다. 오직 성부만이 하느님이시며 다른 두 분은 피조물에 불과하다고 본 것입니다. 반면, 또 다른 이단은 세 위격의 고유성을 지나치게 주장한 나머지 각 위격이 본질마저 다른 세 분의 하느님이라는 소위 삼신론(三神論)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다양한 이단을 접하며 교회 지도자들은 구원 역사에서 계시된 하느님의 신비를 끊임없이 묵상하고 성찰하며 이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인 언어로 표현하고자 노력했고, 결국 여러 보편 공의회를 통해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세 위격(位格)이시며 동시에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는 한 분의 하느님이시라는 ‘삼위일체 교리’를 고백하고 장엄하게 선포하게 됩니다. 이는 성부만을 하느님으로 보는 유다교, 이슬람교와 분명히 구별될 뿐만 아니라 힌두교 같은 다신교와도 확연히 구별되는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만이 믿고 고백하는 하느님이십니다.
구원 역사를 통해 계시된 세 위격
하느님께서 세 분이며 동시에 한 분이시라는 신비는 무엇보다도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계시됐으며, 우선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해내신 하느님, 그들과 더불어 계약을 맺고 당신의 백성이라 부르신 하느님, 그 하느님은 다름 아닌 성부(聖父)이셨습니다.
성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구원하고자 메시아를 보내셨으며 그분이 바로 우리가 주님으로 고백하는 성자(聖子)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신 새로운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너무도 지고하고 거룩해서 감히 입에 올릴 수조차 없던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며 받아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분은 당신 자신을 성부의 유일한 아드님으로 계시하셨습니다. 그분은 공생활을 마치고 죽음과 부활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통해 인류를 향한 새로운 구원의 문을 열어젖히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며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성부와 성자께서는 인류 구원이라는 지상 최대의 사명을 이어받은 교회에 성령을 파견해 주셨습니다. 구원 역사에서 성령(聖靈)이 계시되는 순간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하느님은 구원 역사를 통해 점진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으로 계시되셨습니다. 초대 교회의 교부들을 비롯해 여러 보편 공의회에 참석한 교회 지도자들은 다양한 이단에 맞서 한 분이면서 동시에 세 분이신 하느님을 고백하고 이를 ‘위격’, ‘본질’, ‘본체’ 같은 철학 개념들을 차용해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핵심적인 신앙 고백을 후대의 모든 신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장엄한 ‘신경’(信經)에 담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변함없는 신앙을 고백하며 살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내주를 통해 천상 지복을 미리 맛보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우리들의 영혼 안에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은총을 통해 머물기 시작하십니다. 물론 하느님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존재의 근원이시므로 모든 곳에 현존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 영혼에 내주하시는 것은 ‘조력(助力) 은총’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면서부터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분께서 건네시는 사랑의 관계에 명시적으로 응답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비로소 하느님께서 은총을 통해 우리 안에 거하기 시작하십니다. 이것을 ‘내주(內住) 은총’이라고 합니다. 성녀 엘리사벳이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더욱 뚜렷하게 알아들은 은총은 바로 이것이며, 훗날 발레 신부의 영적 지도를 통해 깨달은 것은 그 하느님이 세 위격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영성 생활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이 세 분과 각각 고유한 인격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서로 자신을 다른 위격에게 온전히 내어주고 받는 상호 간 사랑과 생명의 친교에 우리 또한 참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이러한 삼위일체의 내주에 대한 체험을 신비 체험의 바탕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성녀는 신비 생활이란 믿음을 통해 우리 영혼 안에 거하시는 삼위일체에 대해 체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체험은 우리가 장차 천국에서 온전히 누리게 될 천상의 지복을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승에서 미리 천국을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자신 안에 거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과 사랑과 생명의 친교를 나눔으로써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을 살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70)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③
손 내미셨을 때 구원의 역사는 시작됐다
삼위일체 각 위격과의 고유한 관계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앙은 엘리사벳의 일생을 통해 일관되게 드러나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엘리사벳은 삼위일체를 이루는 각 위격, 즉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해 그 이상으로 언급하며 각 위격과의 고유한 관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삼위일체 하느님을 그저 막연하게 추상적인 분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삶에 동반하는 구체적인 존재로 받아들였으며, 무엇보다도 각각의 위격과 친밀하면서도 고유한 인격적인 관계를 맺었음을 반증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각각의 관계는 서로 씨실과 날실처럼 긴밀하게 연결돼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삼위일체 하느님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
엘리사벳은 주로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성부 하느님에 대해 전하며 그분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특히 성녀는 에페소서, 로마서에 드러나는 가르침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가 됨으로써 그분의 영광을 찬미하고 그분의 충만한 생명에 참여하도록 선택되고 예정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우선, 엘리사벳은 성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부는 본체(本體)이시고 만물이 그분에게서 유래하며 그분은 늘 일하십니다”(시 101).
그러나 이런 교의신학적인 정의와 별도로, 성녀에게 하느님은 무엇보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드러납니다. 아버지께서는 인류의 비참한 상황을 목도하고 연민을 갖고 그들을 위해 당신 아드님의 중재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성자의 청원을 받아들이셨다고 합니다 “성자: 아버지, 저는 그들을 너무도 사랑합니다. 아, 제가 사람이 되고 세상에 살면서 그들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일기 21). 성녀의 전망에는 이미 영원으로부터 인류를 향한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성자의 강생과 수난이 예정돼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자 안에서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보았습니다.
하느님 영광의 계시인 구원 역사
엘리사벳에 따르면, 우리는 성자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써 그분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를 받아들이며 이로써 우리가 그 아버지에게 속할 뿐만 아니라 그분 역시 우리에게 속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느님은 무엇보다 영광의 하느님으로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가장 신적인 특성 가운데 하나로, 당신이 간직한 모든 총체적인 풍요로움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게 자신의 평생 소명이라고 생각했던 엘리사벳, 20세기 가톨릭 교회의 대표적인 석학 가운데 한 분인 발타사르 역시 그 성녀만큼이나 하느님의 영광에 꽂힌 분입니다. 발타사르 같은 경우는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아예 하느님의 영광이 점진적으로 계시되는 역사라고 봤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이미 존재 그 자체로 영광이 충만한 분으로, 그분의 영광은 온 우주에 차고 넘칩니다. 굳이 한 줌의 재로 돌아갈 우리 인간이 그분의 영광을 찬미한다고 해서 그분의 영광이 더해지지도 않을뿐더러, 그분은 우리의 찬미를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분도 아니십니다.
발타사르는 하느님의 영광은 특히 인류를 향한 그분의 자비하신 사랑이 드러나는 곳에서 그리고 그런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응답하는 곳에서 밝게 빛난다고 합니다. 이런 그분의 사랑은 세상 창조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 부르심을 비롯해 그들을 통해 이루신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그리고 그리스도의 강생을 통해 결정적으로 드러납니다.
하느님 영광의 계시가 정점에 이르는 것은 십자가 위 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 인류를 위해 당신 아드님의 생명을 내어놓으신 하느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이 그 순간 결정적으로 계시됐으며 바로 그때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이 최고로 드러난다고 발타사르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에 대한 체험이 인간에게는 아름다움으로 비춰진다고 해서 그의 신학을 소위 ‘미학적 신학’이라 부릅니다.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갖고 있던 발타사르는 엘리사벳이 말하는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찬미가 다름 아닌 인류 구원을 향한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사랑에 대한 인식과 그에 대한 감사 가득한 응답이라고 봤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피아니스트로서 예술적 감수성을 지녔던 엘리사벳은 인류를 위해 영원으로부터, 죄로부터의 구원(救援)과 인간의 신화(神化)라는 원대한 계획을 준비하신 아버지 하느님 안에서 최고의 아름다움, 즉 그분의 영광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고자 했습니다.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71)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④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사랑을 머금고 자란다
가난한 피조물에게 숙이시는 성부 하느님
“오, 성부여, 이렇듯 작고 가난한 당신 피조물에게 숙이시어 당신 그늘로 감싸 주소서. 그에게서 당신의 모든 기쁨을 두는 지극히 사랑하는 임만을 바라보소서.”
이는 성녀 엘리사벳의 유명한 기도문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로, 엘리사벳이 성부 하느님과 맺었던 관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성부께서 우리를 영원으로부터 당신의 자녀로 선택하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서 실제로 그렇게 받아들이셨음(로마 5,1)을 알아들었습니다. 또한 성부께서는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심으로써, 우리 내면에 당신이 사랑하고 흡족해하시는 성자의 모습을 새기고 완성하는 가운데 당신의 기쁨을 우리와 함께 나누길 원하셨습니다(콜로 1,12). 그래서 엘리사벳은 성부께서 우리에게 이 일을 이루시도록, 그러기 위해 성부께서 작고 가난한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에게 숙이시어 우리를 당신 은총의 그늘로 감싸주실 수 있도록, 그분께 우리 마음의 자리를 내어드려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영과 진리 안에서 성부께 예배드림
그리고 성녀는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는 구절을 통해 성부를 흠숭하는 위대한 영혼들이 되도록 독려했습니다. 성녀에 따르면, 아버지를 영(靈)으로 흠숭하는 것은, 곧 그분께 온전히 고정된 마음과 생각을 갖는 것이며, 믿음의 빛을 통해 그분을 충만하게 아는 영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분을 진리 안에서 흠숭한다는 것은 우리의 행동, 즉 진실한 우리의 행동을 통해 그분을 흠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삶 속에서 언제나 성부께서 기뻐하는 것을 하며 사는 걸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녀 엘리사벳은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와 더불어 예배를 드리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과 진리 안에서 진실로 하느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는 분이기 때문입니다.우리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림
성녀는 이렇듯 우리가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을 흠숭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고 그리스도를 향해” 그렇게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우리는 내면에 품고 있는 열망과 원의, 감정을 비롯해 일상 중에 하게 되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사랑에 뿌리내리고 그것을 기초로”(에페 3,16) 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한 마디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우리 심장의 매 박동이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으로 뛸 때, 그리스도와 함께 성부를 흠숭하고 예배하는 그분의 진정한 자녀로 거듭나게 되리라는 겁니다.
성녀에 따르면, 성부에 대한 흠숭은 우리를 이 지상에서 천상으로 끌어올려 주는 ‘사랑의 황홀경’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를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이 보여주는 그 위대하심과 광대하심 그리고 아름다움을 관상하며 우리 안에서 솟아오르는 사랑의 응답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것은 충만하고 깊은 침묵 속에서 일종의 실신과 같습니다.…침묵은 아름다운 찬미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고요한 삼위(三位)의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히 노래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영과 진리 안에서 하느님을 흠숭하는 이는 지상에서 미리 천국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것만이 유일한 걱정일세
엘리사벳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언제나 우리가 성장하길 바라신다는 점을 상기하시며, 그렇게 성장하기 위한 비결은 다름 아닌 ‘사랑’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상기시킵니다. 그에 따르면, 하느님의 가장 큰 기쁨은 우리 영혼이 자라는 것을 보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영혼이 하느님과 동등해질 만큼 우리를 들어 올리고 성장시키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베푸신 당신 사랑의 대가를 요구하신다고 합니다. 사랑의 고유한 특성은 사랑하는 이가 사랑받는 이와 동등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은 우리가 이런 사랑에 이르려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통째로 하느님께 내어드려야 하며 자신의 뜻을 하느님의 뜻 안에서 녹아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일한 걱정은 사랑하는 것이 돼야 한다고 전하며, 성녀는 그분을 향한 사랑의 길로 내달리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72)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⑤
남다른 성자 사랑으로 영적 성숙 도모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에서 중심적으로 드러나는 주제로 삼위일체 가운데 제2위격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사랑을 들 수 있습니다. 성녀는 세 위격 가운데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습니다. 성녀는 특히 사도 바오로의 서간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다양한 모습들을 접했으며, 그래서 메시아이자 성자이신 예수님, 인류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시는 성자, 그분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신앙을 심화시키며 영적인 성숙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속죄주,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성녀 엘리사벳의 작품 곳곳에는 예수님에 대한 표현이 ‘나의 그리스도’, ‘나의 예수님’처럼 거의 대부분 ‘나의’라는 소유 형용사와 함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그분과 동일시하고 그분과 더불어 긴밀한 친교를 나누고 있음을 드러내는 친밀감의 표현입니다. 성녀는 일생을 통해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언제나 그분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으며 그분과 운명을 함께 나누고 그분을 흠숭하며 그분과 아주 친밀하고도 내밀한 친교를 나누는 가운데 일생을 보내고자 했습니다.
성녀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보다 성부 하느님과 깊은 사랑의 친교를 나누며 성부와 동일한 신성(神性)을 충만히 간직하고 계신 분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녀는 그런 성자 그리스도를 인류를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수난 받고 돌아가심으로써 인류의 구원을 이루신 ‘속죄주’이자 ‘구세주’로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성녀가 사춘기 때부터 가졌던 영혼 구원에 대한 열망은 사실상 자신이 사랑하는 예수님의 인류 구원을 향한 열망을 나눠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유일무이한 자신의 정배로 받아들였던 엘리사벳은 자신이 사랑하는 그분이 염원했고 목숨을 걸고 이루려 했던 영혼 구원에 대한 열망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 자신의 모든 기도와 희생이 영혼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 쓰이기를 염원했습니다. 성녀는 「일기」를 비롯해 지인들에게 보낸 여러 편지에서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많은 영혼들을 그분께 데려가는 게 소원이라고 늘 후렴구처럼 되뇌곤 했습니다. 세상 구원에 대한 열망, 사람들의 회개와 성화에 대한 열망은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삼위일체와 인간의 신비를 열어젖히는 그리스도
우리 영혼 안에서 삼위일체의 하느님의 내주(內住)에 대한 언급은 성녀 엘리사벳에게서 드러나는 특징적인 체험이지만, 무엇보다도 성녀는 요한 사도(요한 15,4-5)과 바오로 사도(로마 8,1-2)의 말을 빌려 우리 영혼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내주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들의 삶에 대해 자주 언급했습니다. 같은 선상에서 성녀는 우리 영혼과 성령 간의 상호 내주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또한 성녀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를 당신과의 내밀한 친교로 초대하고 인도하시며 이를 위해 당신 사랑으로 우리를 매료시켜서 당신께로 끌어들이십니다. 그럼으로써 당신을 통해 삼위일체 세 위격 간의 생명과 사랑의 영원한 친교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성녀는 그리스도를 성부를 계시하는 그분의 완벽하고 무한한 모상이자 그분께로 안내하는 길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녀는 강생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이 땅을 밟으셨으며 영원으로부터 숨겨져 있던 삼위일체의 신비가 드러났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성녀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삼위일체의 신비뿐만 아니라 인간의 신비를 열어젖히는 핵심적인 열쇠이기도 합니다. 성녀는 「믿음 안에서 천국」 22번에서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장 4절의 말씀을 인용하는 가운데, 성부께서 우리를 위해 영원으로부터 준비하신 당신의 계획은 성자 그리스도 안에서 준비되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미리 선택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중세 영성가인 뤼스브뤽의 말을 빌려 “성삼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우리에 대해 당신 품 안에 지니셨던 영원한 모형에 따라 우리를 당신 모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라고 하며 인간을 향한 성부의 계획이 성자의 모습에 따라 그를 창조하심으로써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마디로, 성녀는 인간을 향한 성부의 계획은 그리스도 안에서 준비되고 시작되며 완성된다고 보았습니다.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73)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⑥
성자의 ‘삶’을 따르면 성부의 ‘뜻’이 보인다
‘완전한 영광의 찬미’인 그리스도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에는 삼위일체적 색채가 짙게 배어 있지만, 그 이상으로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컨대 성녀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됐으며 그분은 강생을 통해 우리가 처해 있는 상태를 온전히 받아들이셨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성부를 보여 주셨으며 어떻게 하면 그분의 마음에 들 수 있을지 그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자 성화하는 분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성녀 엘리사벳은 그리스도야말로 성부 하느님에 대한 ‘완전한 영광의 찬미’이며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이 지상의 여정을 통해 닮아야 할 모델이 되신다고 가르쳤습니다.
성녀는 복음서와 사도 바오로의 서간에서 소개된 그리스도는 언제나 구원 역사의 중심으로 드러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녀는 사도 바오로의 전망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자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성부께 드리는 영광의 찬미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엘리사벳의 사랑에는 그리스도적인 색채가 배어 있으며, 역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사랑에는 삼위일체적인 색채가 배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녀는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성부를 알 수 있으며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선물도 받을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인 그리스도를 닮음
성녀는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적은 흠숭하올 우리 스승님을 더욱 닮는 것이요 더 나아가 그분 안에 깊이 녹아드는 것입니다.… 이 죽을 육신 안에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셨고 나를 위해 당신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아! 이 거룩한 모범을 공부하기로 합시다”(「믿음 안에서 천국」 28).
성녀는 우리가 이 목적을 이루려면 성부의 뜻을 온전히 이루신 그리스도, 우리의 스승이자 모범이신 그분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며 그분과 일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성녀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10장 5-7절을 인용하는 가운데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오직 ‘성부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분명히 상기시켰습니다. 예수께서 이 지상에서의 33년 여정 동안 매일 드셨던 음식, 그것은 다름 아닌 ‘성부의 뜻’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그 뜻을 이루심으로써 성부를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매일의 양식으로 삼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녀는 하느님의 뜻이라는 이 빵을 사랑으로 먹도록 권고했습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성부께서 마련하신 잔을 예수께서 기꺼이 받아 드셨듯이, 우리 또한 삶의 일상 중에 찾아드는 모든 일을 침착함과 용기 중에 대면하는 가운데, 성부께 감사의 찬미가를 드리며 예수님과 함께 우리의 골고타 동산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럴 때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종국에는 그분과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제가 이 거룩하신 모델과 완전히 일치하게 될 때, 저는 그분 안에서 그분은 제 안에서 완전히 변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제 영원한 소명은 완성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 때문에 시초에 저를 당신 안에서 선택하셨습니다”(「마지막 피정」 1).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게 하소서
또한 엘리사벳은 1904년 11월 21에 작성한 기도문인 ‘오, 나의 하느님, 흠숭하올 삼위일체시여’의 마지막에서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당신의 모든 신비를 새롭게 이루실 수 있도록 우리가 그분의 또 다른 인성(人性)”이 되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청하며 동시에 우리 역시 이 길을 걷도록 초대했습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작용을 통해 내적으로 변모되고 싶다는 그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성녀는 자신 안에서 그리스도가 새롭게 강생하시길 바랐으며, 동시에 자신을 통해 그리스도의 모든 신비가 쇄신되기를 바랐습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인성이 되는 것”, 한마디로 그것은 오늘 바로 이곳에서 우리가 또 다른 그리스도로 탄생하고 우리의 삶을 통해 그분의 파스카 신비를 재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영혼 안에 깊이 뿌리내리셔야 합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이 드린 기도의 중심에는 다음과 같은 염원이 늘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제 안에서 흠숭하올 분, 속죄주, 구세주로 자리 잡으실 수 있도록 그분께 청했습니다.”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74)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⑦
성령, 우리를 변모시키는 사랑의 불
성녀 엘리사벳이 체험한 성령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에서 주목할 또 다른 주제로 성령과의 관계를 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녀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2장 10절을 바탕으로 성령이야말로 “하느님에 대한 사정을 유일하게 아시는 분”(서간 274)이라고 소개하며 우리가 하느님의 심오한 신비를 통찰할 수 있는 은혜를 얻기 위해 성령께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성녀는 성령을 삼위일체 안에서 세 위격 간의 ‘일치’를 완성하시는 사랑의 영(靈)으로 보았습니다(서간 193). 특히 성녀는 성령을 성부와 성자를 하나로 일치시키는 “두 위격 사이의 결속”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를 알아들으려면 무엇보다 성령의 움직임에 자신을 열고 그분께 온전히 의탁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성령이야말로 우리와 삼위일체 하느님 사이를 이어주고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신비 안에 살게 하며 신적인 생명을 전해 주는 가운데 그 관계를 완성으로 인도함으로써 우리의 성화 과정을 실제적으로 완성시켜 주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살라버리고 변모시키는 불이신 성령
그러면 성녀의 글에서 성령은 어떤 상징으로 드러날까? 성녀 엘리사벳은 우리를 ‘살라버리는 불’, ‘변모시키는 불’로 성령을 표현하곤 했습니다. 사실, ‘불’이라는 상징은 성경에서 그리고 신비가들의 여러 작품에서 생명의 시작이자 인간을 쇄신하고 정화하며 변모시키는 거룩한 힘으로서의 성령에 대한 체험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곤 했습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12장 29절의 “우리의 하느님은 다 태워버리는 불이십니다”라는 말씀을 바탕으로 성령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설명했습니다. 성녀에게 있어서 성령은 “건드리는 모든 것을 당신 안에서 소멸시키고 변모시키는 사랑의 불”(믿음 안에서 천국, 13)입니다. 성녀는, 이 신적인 불이 간직한 쾌감은 결코 식을 줄 모르는 활동을 통해 우리를 존재의 근본에서부터 새롭게 해주신다고 보았습니다. 성녀에 따르면, 성령은 무엇보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모시키는 신성한 사랑의 힘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삶이 더욱 더 거룩하게 되는 가운데 성부께서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이실 때 우리 안에서 당신이 총애하고 사랑하는 성자의 모상을 알아볼 수 있게”(믿음 안에서 천국, 12) 해주십니다.
신비적인 죽음으로 인도하는 성령
그런데 성령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시는 우리의 변모 과정은 우리로 하여금 매일 우리 자신을 더 포기하는 가운데 점점 더 작아지게 해줍니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점점 더 자라고 높이 들어 올림을 받게 합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이 과정을 ‘신비적인 죽음’이라 불렀습니다. 이렇게 신비적인 죽음의 과정을 거치는 사람들은 자신을 불태우는 사랑의 불 속에 잠기기 위해 서슴없이 자신을 없애고 벗어던집니다. 그들에게 이 죽음은 고통과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감미로움으로 내적인 기쁨으로 다가온다고 성녀는 전합니다.
우리를 이 신비적인 죽음으로 인도하는 사랑의 불은 다름 아닌 성령이십니다. 이 신비적인 죽음의 과정은 믿음과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이는 루카 복음 12장 49절(“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에서 보듯이 예수께서 간절히 바라신 소망이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성령의 불을 통해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시키시고 그럼으로써 당신과 동등하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당신과 더불어 삼위일체의 내밀한 친교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이를 관상적인 삶이라고 불렀습니다.
내적 여정으로 초대하시는 성령
성녀는 또한 우리 존재를 거둬들여 내면으로 집중하게 해주는 성령의 활동에 주목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존재의 중심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가게 함으로써 그곳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실현해 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실제적인 자녀로 거듭난 우리는 성령의 움직임에 우리를 내어 맡김으로써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친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실제적인 변모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자극하시고 인도하시는 가운데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도모해 주십니다. “실제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영혼은 성령에 의해 움직여진 사람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영에 인도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믿음 안에서 천국, 31). 성녀에 따르면, 성령께서는 우리 영혼의 하늘 안에 거하시며 그 중심에서부터 일하심으로써 우리를 변모시켜 주시고 우리 안에 “거룩한 아름다움 자체이신 분”(서간 239), 즉 그리스도의 모습이 새겨지게 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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