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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역사에 위기가 찾아올 때
성경본문 : 느헤미야 3: 4-19
4.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중수하였고
5.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치 아니하였으며
6. 옛 문은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드야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7. 그 다음은 기브온 사람 믈라댜와 메로놋 사람 야돈이 강 서편 총독의 관할에 속한 기브온 사람들과 미스바 사람들로 더불어 중수하였고
8. 그 다음은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등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향품 장사 하나냐등이 중수하되 저희가 예루살렘 넓은 성벽까지 하였고
9.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중수하였고
10. 하루맙의 아들 여다야는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하삽느야의 아들 핫두스가 중수하였고
11. 하림의 아들 말기야와 바핫모압의 아들 핫숩이 한 부분과 풀무 망대를 중수하였고
12.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 딸들이 중수하였고
13. 골짜기 문은 하눈과 사노아 거민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분문까지 성벽 일천 규빗을 중수하였고
14. 분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15. 샘문은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골호세의 아들 살룬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고 덮으며 문짝을 달며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왕의 동산 근처 셀라 못가의 성벽을 중수하여 다윗성에서 내려오는 층계까지 이르렀고
16. 그 다음은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아스북의 아들 느헤미야가 중수하여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또 파서 만든 못을 지나 용사의 집까지 이르렀고
17. 그 다음은 레위 사람 바니의 아들 르훔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하사뱌가 그 지방을 대표하여 중수하였고
18. 그 다음은 그 형제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헤나닷의 아들 바왜가 중수하였고
19. 그 다음은 미스바를 다스리는 자 예수아의 아들 에셀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 맞은편까지 이르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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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1절까지 - 모든 성문들이 불에 타고 사방팔방 성들이 무너졌습니다. 꼭 우리나라 현실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어디든지 쳐다보면 썩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만져보 면 푹썩푹썩 주저앉습니다. 정치를 봐도 기업을 봐도 교육을 봐도 종교를 봐도 교회를 봐도 젊은이들에게 보여줄 것이 없어요.
제가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랄 때 저희 앞마당 뒷동산에는 큰 나무들, 아름들 이 나무들이 높이 뻗어 있었어요. 저는 어릴 때 그 나무밑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높은 나무를 보고 살았어요. 요즘 아이들 곁에는 높은 나무가 없습니 다. 정치를 하려면 누구를 닮아라. 앞으로 목회자가 되려면 어떤 사람처럼 되거라. 기업가가 되려면 유일한 박사와 같은 그런 사람이 되거라. 앞으로 성직자가 되려고 하면 손양원이나 주기철같은 사람이 되거라. 보여줄 만한 큰 나무가 없어요.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고 살라고 얘기를 할 수 있을는지 참 으로 암담하기까지 합니다.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내렸습니다.
느헤미야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때 제일 먼저 문 하나를 수축하기로 작정합니다.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지도자와 함께 제일 첫 번째 문 양문. 이 양문은 양을 잡는 문입니다. 이 양문을 통과해서 양을 잡게 되는데 양을 잡아서 뭐하게 요? 제사 지내게. 예배를 회복했다. 무너진 기도를 세웠단 말입니다.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관계가 파괴되어지고 무너졌는데, 무너진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의 관계를 제 일 먼저 회복했다. 이것이 급선무였다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나무의 뿌리와 같고 시계의 밧데리와 같습니다. 우리가 세상 살아가다가 예배 할 수 없을 만큼, 기도할 시간을 갖지 못할 만큼 사업이 너무나 잘되고 번창한다 그러면 축복이 아니예요. 이미 사탄의 유혹이 그 자리에 무섭게 도사리고 있는 겁니다. 사업이 무너지고 어려워졌어요. 장사가 잘 안돼요. 그래서 예배당에 찾아갈 마음조차 기도할 마음조차 없어졌어요. 그것은 사업이 무너진 것보다 더욱 더 심각한 것이 무너지고 있 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함정이 있는 겁니다. 사탄이 지금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것 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예배보다 우선순위를 갖는 것이 남편 이든 자식이든 사업이든 친구든 어떤 모임이든 그것은 우상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우리는 성을 수축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지요.
우리 내년도 우리교회 목표를 Vital-2000이라 그렇게 이름했습니다. 그 가운데 첫 번 째 생동감 넘치는 예배입니다. 여기에 내년 일년동안 목회에 생명을 걸려고 해요. 여러 분들도 주님 전에 찾아올 때마다 예배 시간에 찾아나올 때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임 재를 경험하고 찬송 한 곡을 불러도 저 찬송은 하나님께서 2000년도에 우리가정을 나를 축복하기 위해서 주신 음성이다 그렇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배시간 찾아나올 때마 다 이 설교는 우리교회 5,000성도를 환영하여 선포하는 메시지가 아니고 바로 나를 위하 여 하늘 문을 열고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그렇게 믿으시기를 바 랍니다. 생동감 넘치는 예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승리해 야 삶에 승리합니다. 예배가 행복해야 살림살이가 행복해 집니다. 예배가 살아야 교회 가 삽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오늘 교회가서 예배에 은혜 받고 왔습니까? 물었는데 오늘 예배 를 왜 드렸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80%예요. 다음 주일날 다른 교회가서 한 번 예배를 드려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국교회 그리스도인 가운데 80%예요. 이사를 가게되면 그때 핑계삼아 교회를 옮겨 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80%예요. 그만 큼 한국교회 예배가 다 죽었어요. 예배가 죽었다는 얘기는 성도가 죽었다는 얘기이고 예배가 죽었다는 얘기는 교회가 죽어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만큼 우리 민족사에 가장 시 급한 것은 예배를 살리는 예배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새해에 지각을 잘하는 성도들이 있었으면 새해에는 마음에 다짐하세요. 내가 예배시 간에 절대로 지각하지 않겠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데 흠없는 제물을 드 려야 돼요. 눈먼 것, 부스럼 딱지가 붙은 것, 다리 저는 것 이것은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받지를 않으세요. 무슨 얘기냐 하면 예배에 지각해서 흠이 생기면 온전한 제물이 못되 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와서 설교시간에 내가 몇가지 느낌과 감동을 가졌다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상달된 게 아니란 말이예요. 하나님 앞에 예배하려고 하면 온전한 제사를 드려야 돼요. 적어도 예배가 시작되기 5분 10분 전에는 와서 마음으로 준비하고 시작하는 시간부터 예배가 된다는 거예요. 만약 그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다리하나 짤라 먹은 거예요. 그러니까 흠없는 제사를 드려야 돼요. 예배에 지각하시는 분들은 새 해에는 내가 우리교회에서 예배시간에 내가 1등 하겠다. 다짐하고 예배 참여하셔야 돼요.
예배를 향상시켜야 됩니다. 주일 낮 예배만 참여하셨던 분들은 주일 밤 예배까지 드 리셔야 그게 온전한 성수주일이 되는 겁니다. 주일밤 예배까지 참여하셨던 분들은 일주 일에 한두번정도 매일 예배에 내가 참여해야 되겠다. 정히 월화수목금 참여하지 못하면 토요일날 교회가서 영화 한편 보는 것 그게 은혜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자꾸 마당의 뜰을 밟는 것이 은혜가 되는 겁니다. 그런 마음가지고 예배를 향상시키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신앙이 살아있을 땐 예배가 그리워져요. 예배가 가고 싶어져요. 그리고 헌금 한번을 드리더라도 토요일부터 준비를 해요. 헌금이 토요일부터 준비가 되어진다 그땐 내 믿음이 살아있는 거예요. 그러지 못하고 교회 와 가지고 입구에서 준비되는 것은 이 미 믿음이 식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혼자 예배가고 싶지가 않아요.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 예배에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미 여러 분들의 마음속에 예배의 감동이 지금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양문을 수축하고 이어지는 본문 느헤미야 3장은 아주 지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3장의 메시지가 뭔지 궁금합니다. 무슨 성문은 누가 달았고 누가 무슨 기둥을 세웠고 복잡하 고 난해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에 의미없는 기록은 없다. 내 마음에 이해가 안되어도 납득이 안되어도 구약의 메시지와 신약의 메시지가 이해가 안되어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높은 차원에서 보면 모두다 의미가 있고 이유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성경을 공부할 때 생선을 발라먹는 것처럼 먹어라는 말이 있어요. 생선 먹을 때 살만 발라먹고 못된 가시는 옆에 제쳐 놓잖아요. 살을 먹으면 그게 살이 되고 뼈가 되고 유익해져요. 꼭 못된 성도들은 살은 옆으로 제쳐놓고 못된 가시만 주워 먹겠다고. 요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못된 강아지가 닭 뼈다귀 먹다가 캑캑거리듯이 성도들이 성경공부를 하더래도 그게 목에 걸려가지고는 캑캑거리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 보면 난해하기 짝이 없지만 여기 이유가 있어요.
여러분들이 성경을 공부할 때에 자꾸 입에 걸리는 단어가 하나 있어요. 중수보다도 더 많이 나온 단어가 있어요. "그 다음은" 하는 단어가 계속적으로 등장합니다.
1.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 "그 다음은" next him, next them. 그 다음은 그 다음은, 계속적으로 한 29번 정도 등장합니다.
이 무슨 얘기냐하면? 마땅히 있어야 될 그 자리에 내가 서 있고 거기서 내가 그 일을 감당했다. 그리고 그 옆에 또 그 자리를 지켜야 할 사람이 거기 서서 자신의 일을 성실 히 감당했다.
내 곁에 김집사가 서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 김집사가 감당해야 될 자신의 임무를 성 실히 감당하고 있었다. 김집사곁에는 박권사가 서 있어서 박권사는 남의 위치에 서 있 지 아니하고 꼭 있어야 될 자리에서 자기의 일을 성실히 감당하고 있었다. 할렐루야!
이것이 교회요, 하나님 나라요,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저를 한번 쳐다보세요. 얼굴이 운동장처럼 넓직하고 이마가 있지요. 열심 히 운동을 하다보면 땀이 흘러요. 그런데 걱정할게 없어요. 왜냐하면 방파 제가 있걸랑요. 땀이 흘러내리면 옆으로 다 비켜 가게끔 되어 있어요. 그리 고 눈은 보는게 자기 역할이예요. 코구멍! 이게 기가막힌 겁니다. 사람의 인체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코구멍 하나만 연구해도 하나님이 살아계신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코구멍이 이렇게 생겼으니까 다행이지 위로 향해서 뚫려 있어 보세요. 비오는 날 어떻게 되겠어요. 귀! 이게 기가막힌 레이다입니다. 파장이 너무 커도 안들리고 너무 작아도 안들리 고 지금 지구 돌아가는 엄청난 큰 소리가 안들려요. 지금 개미 기어 다니는 소리가 안들리잖아요. 그것까지 다 들려 보세요. 은혜가 되겠는지. 이게 꼭 들을 것만 듣는 거거든요. 그리고 입은 말도하고 숨도 쉬고 참 기가 막히게 만들어져 있어요. 그런데 아무리 귀가 성능이 좋아도 된장국 끓여서 귓구멍에 넣을 순 없어요. 된장국 끓여서 후후 불어 어디 넣어요. 입으로 넣어야 돼요. 각자 자기 위치가 있고 자기 역할이 있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위치 분간을 못해서 입 귀 코 눈들이 마음대로 붙어 있다면 그건 괴물이지요.
교회에 봉사를 하더래도 next! next him! next them! 바로 그 자리에 그 사람이 서 있고, 그 사람 곁에 반드시 있어야 될 그 사람이 서 있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히 감당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격려>
3장에 보면 15가지 이상의 직업이 나오고 75명 이상의 사람이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느헤미야 자기 이름은 한번도 기록하지 않아요. 느헤미야란 이름이 한번 나오긴 합니다만 본문을 기록한 지도자 느헤미야가 아닌 동명이인이예요.
분명 예루살렘 성의 건축은 느헤미야의 공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당시 역사가들 은 느헤미야가 그 일을 이루었다고 기록했을 거예요. 그런데 성경에 느헤미야 이름은 기록되지 아니하고 문짝은 누가 달았다. 기둥은 누가 세웠다. 어디 돌멩이는 누가 갖다 놓았다 이렇게 기록한단 말이지요.
한소망교회 얘기를 할 때에 한국교회에서 모두다 류영모 목사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가면 여러분들이 이 교회를 위해서 했던 기도 한마디, 진실로 헌신했던 물질 한토막, 주웠던 휴지 한조각, 예배시간마다 옮겼던 드럼... 헌신하고 봉사했던 손길 들이 기록되어 있단 말이지요.
이 땅에서 박수와 갈채가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이 세상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여러분들이 교회를 섬겼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 가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는데 참여했던 사람들을 격려하고 있는 것이지요. 교회를 섬겨나갈 때에 이 격려자가 필요해요. 오늘 토요일 쯤 교회나오신 분들쯤 되며는 대부분 교회 중진들 쯤 되었을텐데 여러분들은 지금 격려하는 게 중요해요. 지금 청년들이 수련회 하잖아요. 청년들이 지금 수련회하고 있는데 눈치 빠른 안수집사 권사님들은 벌써 아이스크림 사가 지고 갔을 거라구요. 그래 가서는 얘들아 참 정월초하루날부터 참 기특하다. 너희들이 라고 제주도 성산포에 가서 그거 구경하고 싶지 않겠니. 그런데 이시간에 너희들이 교 회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구나. 내가 가진 것이 모자라니 이것만 내놓는 다. 내가 오십만원만 받아라. 얘. 아 눈치 빠른 사람은 벌써 그럴 거라구 벌써. 그게 격려예요. 집사님들이 식당에 와서 봉사하고 청소할 때에 가가지고 돈 없어도 괜찮아. 아 집사님 일하는 것 보면 참 은혜가 됩니다. 참 잘하십니다. 칭찬하고 다니는 것 얼마 나 귀한지 몰라요.
여러분 카누 경기를 보면요 노를 젖는 사람이 있고요 가운데 앉아 가지고 소리지르는 사람이 있어요. 박사 맞추는 사람. 격려하는 사람이예요. 힘을 더해주는 사람이예요. 이 사람이 무슨 차력하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예요. 그게 격려예요. 하나님 나라는 격려 자가 필요합니다. 격려자가 복을 받습니다.
제가 별로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인데 언젠가 보니까 키가 작더라구요. 그래서 이게 콤플렉스가 되는데 이걸 누가 건드리면 이게 아킬레스 힐이거든요. 그런데 날 보고 전 혀 작다고 얘기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서 날보고 하는 얘기가 작은 사람이 다 부지다는 겁니다. 그리고 하는 얘기가 날 볼 때 마다 정말로 큰 거인을 보는 것 같은, 리틀 자이언트를 보는 것과 같다. 앞에 리틀을 안붙이면 좋겠는데 그냥 자이언트를 본 다고 그러면 되는데 리틀 자이언트를 보는 것 같다. 그래도 자이언트라는 말 가지고 기 분이 좋더라구요. 그래서 자꾸 그 사람을 만나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결혼했어요. 그 래서 함께 사는 거예요. 내가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가 그 양반에게 콤플렉스로 여겨지 지 않으면 그게 사랑의 눈이잖아요. 이게 격려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설교를 하고 나면 죽을 쒔다 싶으면 살고 싶은 마음이 없거든요. 목사가 죽쑤는 날은, 설교 죽 은 살고 싶은 마음이 안생겨요. 그러면 아무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눈치 빠른 제 아내가 아무개 집사가 은혜 받았데 글쎄. 오늘 당신 설교를 들으니 내가 힘이 되더라구. 그런데 내가 알지요. 아 내가 죽쑨 걸 알고 뒤에서 벌써 궁뎅이 떠 받들고 있구나. 그 래도 기분이 좋아.
부부 간에도 격려가 필요합니다. 부모 자식간에도 격려가 필요합니다. 어떤 남편이 회사에서 칭찬을 들었어요. 그래서 뭔가 업적을 쌓아가지고는 사장님이 부르더니 자네 때문에 우리회사가 큰 유익을 받았는데 3일동안 쉬고 오라고 휴가를 얻어가지고 왔네.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가지고 그날 밤에 일찍 집에와가지고 부인하고 아이들한테 여보 내 가 말이야, 아빠가 말이야, 이거 기안해서 추진했더니 업적이 딱 쌓여서 3일동안 휴가를 얻었다고 그랬더니 그리됐으면 아니 당신은 3일 가지고는 모자라지 3달은 휴가 받았어야 될 사람인데, 당신 아니면 그 일을 누가 했겠어. 그렇게 격려해 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3일 휴가 가지고 뭘 잔소리야. 옆집에 아무개 아저씨는 지난번에 기안을 잘해서, 판매를 잘해가지고는 자동차 1대 공짜로 얻었다던데. 당신은 자동차도 얻어오지 못하고 고작 3 일 휴가 받아 가지고 와서 큰소리쳐.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는 3 일 부인하고 아이들하고 어디 데리고 가려고 하다가 혼자 가서는 돌아오지 않더래요. 그래서 일주일만에 돌아왔는데 만취가 되어서 돌아왔더랍니다.
여러분 작은 일을 해왔 을 때에 격려하면 큰 인물 됩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들은 뭘 먹고 사는가? 잔소리 먹고 사는 아이를 제가 눈알 생기고 본적이 없어요. 청년들 한테 물어봐요. 제 일 듣기 싫은 게 잔소리예요. 그런데 우리는 잔소리가 너무 습관화되어 있어요. 여러분 아이들은 사랑과 격려를 먹고 삽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내와 남편은 여러분 나이 가 들어도 부부간에 서로 격려와 칭찬을 먹고 살아요. 새천년에는 칭찬하는 가정들 되 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칭찬하면 칭찬 때문에 사람이 좋은 점이 자꾸 눈에 들어와요. 그 사람이 인격이 아름다워져요. 칭찬처럼 변해가요. 그러나 그 사람의 단점을 비판하 고 비난하기 시작하면 장점은 사라지고 비판하는 그 모습이 자꾸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칭찬이 그렇게 멋있는 거라구요.
이 땅에 살아갈 때에 사람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했던 느헤미야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 운지 몰라요. 제가 이것을 배우기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도 잘 안돼요. 이거 아무나 하 는 것 같지 않아.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금년 기도제목이 있어요. 우리교역자들 제가 격려하고 칭찬하게 해 주세요. 여러분들도 교역자들도 격려하고 칭찬하는 여러분 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드고아 귀족>
이런 아름다운 역사속에서도 낙오자 구경꾼 방관자들이 있었어요.
3장 5절에 보면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치 아니하였으며" 중수하였는데 그렇게 가야 하는데 중수하였으나 이러구 간단 말 이지요.
"그 다음은" next him next him 잘 나가다가 그러나 중수하였으나 다른사람들은 전부 다 중수하였는데 이렇게 잘되었다. 이렇게 재건하였는데 잘 되었다. 기둥을 세웠는데 잘 되었다. 문짝 달았는데 잘되었다. 망치질 했는데 잘 되었다. and and and and next next next next 가다가 But 이러구 간단 말이지요. 여러분 여기에 함정이 있어 요. 이것은 아름답지 못한 것입니다.
류목사를 처음 만났을 때에 처음부터 사람이 쌀쌀맞고 인정머리가 없어 뵈더니 그러나 보면 볼수록 사귀면 사귈수록 더 인정머리가 없더라. 이런 말은 있을 수가 없어요. 그 러나 그랬으면 그 다음은 좋은 말이 나오는 거예요. 그지요. 그런데 앞에 좋은 말이 나 오고 그러나 그러면 그 뒤는 좋지 않은 거예요.
"중수하였으나 그러나" 그러나에 불행이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 드고아 귀족들은 바로 방관자, 구경꾼의 위치, 낙오자의 위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본 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 태어나 예루살렘성을 중건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 지요. 그때 태어난 보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드고아 귀족들은 이 거룩한 주의 사역 에 동참하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열두제자 사도가 될 수 있는 거룩한 기회를 망각했던 가롯유다처럼, 사도바울 의 선교사역에 아름다운 동역자가 되어서 천국에 주님 곁에 사도바울 곁에 지키고 있을 수 있었을 아름다운 자리 데마, 그 자리 잃어버린 못난이, 바로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실 때에 경배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아있었던 헤롯대왕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중한 기회를 주었는데 그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못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드고아의 귀족, 가롯유다 데마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것입 니다. 바로 혹시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가?
새천년을 보내면서 맞이하면서 바로 내게 하나님께서 거룩한 기회를 주었는데 멋지고 아름다운 기회를 주었는데 내가 그 기회를 놓친 방관자는 아니었던가? 하나님 날 불러 쓰시길 원하셨는데 바로 구경꾼으로 낙오자로 전락해 있는 상태에 남아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성경에 보면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슈브" 돌아 오라는 말입니다. 너의 자리가 잘못되었으니 그 자리에서 잊지말고 주저앉아 있지 말고 누워있지 말고 돌아오라는 겁니다. 네가 가는 길이 잘못되었으니 돌아오라. 그래서 성 경에 메시지는 끊임없이 돌아오라는 거예요. 사탄은 우리의 귀를 막아서 하나님의 음성 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성령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돌아오라는 음성으로 외치고 있습니 다.
꽃피는 동백섬 돌아와요 부산항에 빨리 돌아오라는 거에요 꽃피는 동백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축복이고 그게 들리지 않으면 우리 는 망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겁니다.
<사명> 밀레니엄
느헤미야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 성을 재건할 사명 있었던 것처럼 어느시 대 누구에게나 어느 공동체에게나 사명이 있습니다.
누가 알더래도 누가 보더래도 우리 민족은 한국교회는 통일과 세계선교의 사명이 있었 습니다. 통일과 세계선교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풍요가 있어야 될 것이고 바른 가치관을 가진 정신이 있어야 될 것이고 풍성한 영성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래서 우리 민족에게 넉넉한 재산을 우리에게 주었어요. 그러나 우리는 이걸 가지고 사 치했습니다. 방종했습니다. 방만했습니다. 그러다가 21세기를 맞이하기 2년을 남겨두 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민족에게 IMF의 어두운 터널을 달려올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 민족을 사랑한 하나님의 거룩한 채찍이었다고 분명히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밀레니엄. 새 시대를 맞이하기 전에 우리 민족이 주님 앞으로 돌아가야 됩니 다. 이 밀레니엄이라고 하는 단어는 참 환상적인 단어입니다. 이 밀레니엄은 그냥 천년 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평화와 번영의 황금시 대"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찾아오면 천년왕국이 건설되어지는 바로 그것이 천년왕국이 밀레니엄이예요. 새천년이 될 때마다 이 환상이 싹트고 있었어요.
지금부터 천년전 999년 천년왕국을 꿈꾸던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공중에 재림 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Henry Focillon이란 사람이 썼던 「The year 1000」 그래서 1000년. 천년이라고 하는 책에 보면 그 당시 상황을 그렇게 기록하고 있어요. - 당시 유럽은 암흑의 시대였다. 마잘족 - 헝가리 족이 유럽을 침공하여 피투성이를 만 들고 있었습니다. 사마진 족과 노르만족이 약탈과 전쟁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유럽의 시민들은 예수님이 재림할 때가 되었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999년 12월 31 일 밤 로마시민들은 한사람도 집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손을 붙들고 다 광 장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길거리로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먼저 보기위해서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리고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면서 하 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소나무가지를 붙들고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 습니다. 0시가 째깍째깍 째깍째깍 다가오자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온유럽은 쥐죽은 듯 이 고요해졌습니다. 천군천사들 나팔소리와 함께 구름이 갈라지면서 구름속으로 예수님 이 재림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도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때 공허를 이길 수가 없어서 유럽은 무서운 영적인 침체기에 빠져드는 얘기가 나옵니다. 천년이라 는 포실리라는 사람의 책에 나오고 있어요.
그리고 1000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1999년 지난 1000년 과학기술 혁명, 정말 천년 왕국이 이땅에 건설되는 것은 아닌가? 기대에 찬 눈으로 우리는 이 시대를 바라보았습 니다. 원자력 시대, 우주공학시대, 유전공학시대, 디지털 전자통신시대가 우리 앞에 펼쳐 지고 있습니다.
1999년을 향한 다양한 예언들이 등장했습니다. 노스트라 다무스와 시한부 종말론자들 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하나도 적중된 것은 없습니다. 오직 2500년전 유태인 노인 다니 엘의 예언만 우리의 관심을 오늘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게 될 것이다"(단12:4). 지금부터 2500년전에 마지막 때가 되면 지 식이 팽창하게 될 것이고 사람들의 속도감이 엄청나지게 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 다. 이보다 간단명료한 예언이 어디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부터 10년전 컴퓨터가 대형백과 사전전체를 전송하는데 걸린 시간은 84시간 3일하 고도 한나절이 더 걸렸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광섬유를 이용한 디지털로 전송을 하게 되면 5초만에 끝납니다. 지금부터 10년전에 84시간이 걸렸던 대형백과사전이 5초 면 끝나 버린단 말이예요. 폭발적인 지식의 증가.
그런데 다니엘서를 잘 연구해보면 지식이 증가하리라 그래놓고 지혜에 관한 지혜문학 인데 지혜에 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어요. 무슨 얘기입니까? 우리에게 무서운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식은 늘어나는데 지혜는 감소된다. 무슨 얘기입니까? 지혜 가 없는 지식의 팽창은 밀레니엄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밀레니엄이 아니고 천번만범의 밀레니엄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하늘의 지혜를 잃어 버리고 나면 아무리 지식이 폭발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밀레니엄을 우리에게 약속 해 주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빠른 속도를 이용해서 팽창된 지식으로 부를 사냥하는 강도들만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IMF니 뭐니 모두 이 서양의 정보 고속도로를 이용한 강도들이 아시아 주식 을 공략했기 때문에 일어난 위기라고 하는 것이 최근의 보고서에 나타난 얘기들입니다.
경제를 흔들고 있어요. 그 사이에 일본과 유럽에 밀려있던 이 미국이 컴퓨터 전자통 신 사업, 인터넷 사업으로 말미암아 지금 세계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전 세계에 반미감정이 얼마나 무섭게 고조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미 국의 몰락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지금 금을 캐는 세계에 돈을 긁어 모으는 재미에 혈안이 되어 있지만 그것은 마치 세계에 있는 돈을 만지기만 하면 미국의 돈이 됩니다. 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손으 로 만지기만 하면 금이 되는데 나중에는 자식에 딸도 사랑하는 아내도 자기가 먹어야 될 밥도 만지기만 하면 금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결국은 세계의 몰락은 미국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미국에 경고를 울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금부터 천년전 999년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예수님 혹시 오지 않나? 그런데 간밤에 제가 느낀 시대를 바라보는, TV를 바라보고 신문을 펼친 제 솔직한 느낌은 지금부터 천년전은 하늘만 쳐다보는 그 해 였다 고 하면 간밤은 우리는 땅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Y2K니 뭐니 아니면 새로운 밀레니 엄이 오면 우리가 가만히 있더래도 그냥 기업이 번창하고 부를 가져다 줄 것이고 어떻게 하면 좀 더 편리하게 잘먹고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어떻게 바르게 살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영적인 사역을 위해서 어떻게 헌신할 것인가? 이 민족을 위해서 우리 는 도대체 무엇을 기도해야 된단 말인가? 하나님은 복음을 통하여 우리 민족에게 들려 주는 거룩한 음성 살아계신 음성이 도대체 무엇이란 얘기인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기도 하는 백성은 되지 못하고 밀레니엄이 찾아오면 우리는 어떻게 더 편리하게 살 수 있을 것인가? 자동차를 어떻게 바꾸고 집을 어떻게 바꾸고 땅만 쳐다보고 있는 백성이 되지 는 않았나? 지금부터 천년전이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가 무서운 영적인 침체기에 빠졌듯 이 이천년대는 우리가 땅만 쳐다보다가 더 무서운 영적인 침체기에 빠져들 수 있겠다 하 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황폐에 처해져 가고 있습니다. 포스트 모 던이즘은 우리가 믿는 복음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무서운 위기에 직면 해 있는지 모릅니다.
<방해-비웃을 때>
우리시대는 그 옛날 그 어떤 시대보다도 영적으로 어려운 시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 다. 느헤미야가 무너진 성을 재건하려고 할 때 우리가 무너진 영역들을 세워나가려고 할 때에 방해공작 위기에 부딪힐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다가 당하는 오해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갖는 오해가 있어요. 우리가 하 나님 말씀대로 뜻대로 살기만 하면 아무런 방해도 시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믿는 것을 마치 아편 맞는 것처럼, 벙어리가 멍개먹고 멍멍한 상태로 있는 게 예수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요. 성경에 메시지는 분명한 하나님의 사람들도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하는 사람들도 위기를 맞이한다. 시험당할 수 있다. 그 러나 너희가 세상에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느니라. 할렐루야. 두 려워 하라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려고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어려 움이 있을 수 있어요. 그래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나는 반드시 승리한다. 정의 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진리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예수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십자가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겠다 결단하는 사람에 의해서만이 새역사는 창조되어 질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사역을 실패하도록 하는 것이 자기의 본분이겠지요. 하나님께서 마 지막 우리 새천년을 맞이하기 몇 년전에 우리교회를 세워주셨고 한국교회가 많이 영적인 침체를 경험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정말 제로에서부터 하나하나씩 쌓아가게 하셨 습니다. 저는 두려움으로 우리교회를 쳐다보는 거예요. 떨림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하여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두려움을 가지고 맞이하는 거예요. 왜? 하나님께 서 우리교회를 어떻게 쓰실까? 하나님 저를 어떻게 쓰실려고 이렇게 저를 높여주십니 까? 하나님 앞에 두려움을 가지고 기도하는 거예요.
얼마전에 우리가 발간했던 「꿈대로 되는 교회」 이 한 권의 책의 영향은 지금 여러분 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반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책이 나온 것이 12월 1일 발간되었으니까 2-3일전에 발간이 되어졌는데 그리고 매월 10일정도가 되면 그 한달동안 책의 판매고를 보고합니다. 그런데 그 책이 나온지 정확하게 14일만에 다 른책은 전부다 한달씩 통계를 낸 것인데 그 책이 나온지 보름만에 전국에 팔려지는 책이 2만권 정도 됩니다. 그중에서 제대로 팔리는 책은 한 천권정도 남짓됩니다. 천권안에 들어가면 그대로 잘 팔리는 책이 되요. 그런데 제 책은 나오자마자 보름만에 13위를 했 어요. 그리고 지난주간에는 베스트 7위를 했어요. 앞으로 점점더 이 순위는 당겨지리라 생각하구요 또 순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책을 읽는 제가 만났던 목회자들은 거의 읽었더라구요. 대게 목회자들이 책을 읽는데 좀 인색하지요. 이렇게 읽다가 몇장 넘기 다가 마음에 감동이 안되면 몇장 읽어보고 몇줄 읽어보다가 끝납니다. 그런데 대부분 끝까지 읽었더라구요. 그리고 젊은이들이 신학도들이 그리고 이제 막 안수받은 젊은 목 회자들이 이 책을 읽고 무섭게 결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연구모임에서는 이 책 한권을 가지고 스타디를 해 나가는 그룹을 제가 어 제 그저께 왕성교회가서 집회를 했는데 왕성 교회에 젊은 목사님들이 몰려있어요. 그들 이 누군가 했더니 그 책을 읽고 스터디하고 있는 그룹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그 책을 읽고 스터디 하는 그룹이 저를 만나고 싶어서 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한참 얘 기를 나누었습니다마는 이제 우리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시기를 원하시는가? 두려움을 가지고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배를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찬양을 통하여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 시고 여기있는 젊은이들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여러분의 자녀들을 축복하시고 이 축 복한 자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떤 역사를 이루어 가실지 경외감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기도하심으로 지켜보셔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 꿈을 가진 사람들은 바로 이런 역사를 펼쳐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가 이일들을 하려고 할 때에 비웃는다 그랬어요. 네가 무너진 성 을 세워? 웃기지 마라. 한국교회는 이미 하나님이 버렸어. 한국교회로부터 하나님이 촛대를 옮겼느니라. 사탄이 지금 비웃고 있는 거예요. 느헤미야를 지금 비웃고 있습니 다. 이렇게 철저하게 망가지고 깨진 예루살렘성을 중수 해? 어림도 없는 소리. 사탄이 지금 비웃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천년에 작은 봉사 하나 시작하려고 해도 비웃을 겁니다. 처음 교회 등록하 고 성가대에 앉으려고 해도 야 교회봉사는 아무나 하는줄 알아? 그런데 갔다 괜히 지난 번에 있던 교회에서 성가대 봉사하다 시험들었잖아. 이제는 뒤에서 조용히 신앙생활해. 교사하려고 해도 마찬가지구요. 앞장서 청소하려고 해도, 주방에 한번 들어가려고 해도, 그거 아무나 들어가는 것 아니에요.
또 어떤 사람들은 노는 사이에 기도하면서 봉사 좀 하려고 야 너 세상일 잘 돌아갈 때 는 교회봉사 안하다가 할 일 없으니까 교회에서 봉사해. 할 일 없는 사람이나 봉사하는 줄 아니. 별의별 제목으로 나를 유혹 할 것입니다. 비웃을 겁니다. 이게 사탄의 작전 이예요.
느헤미야는 사탄이 비웃을 때 어떻게 했는가? 4장 4절에 보면 "기도했다" 그랬습니 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묶어 놓자」
우리교회 십자가를 높이 달았어요. 십자가가 전부다 철골이기 때문에 굉장한 무게입 니다. 저는 그 철골이 오는데 입이 벌어지고 가슴이 두근두근 뛰어서 쳐다보지 못하고 제가 다른데 가버렸어요. 왜? 그걸 올라가는 걸 내 눈으로 쳐다볼 수가 없더라구요. 저게 올라가다가 떨어지면 어떡하나. 그래서 그걸 쳐다보고 있으면 내 심장이 약해가지 고는 쳐다볼 수 없겠어요. 가서 전화만 자꾸 해보는 겁니다. 올라갔시유~. 아직 안올 라갔시유. 언제 올라가유~. 궁금한데 볼 수가 없어요. 그런데 100톤 크레인이 와서 그 것을 밧줄로 묶어서 번쩍 올리는데 묶어만 주니까요 묶는데 하루내 걸렸어요. 그런데 하루내 묶고 나니까 딱 세워서 고정을 시키는데 정확하게 11분만에 끝났어요. 그 무게 가 얼마나고 10분만에 올렸다는게 얼마나 엄청난 일이지 모르니까 가만히 있고 넘어가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 살다가 우리가 도무지 들 수도 없고 옮길 수도 없고 세울 수도 없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 문제들을 내가 부둥켜 잡고 있으면 심장이 멈춰지고 마는 겁니다. 내가 어떻게 이 일을 감당해. 내가 안하더래도 그게 올라가는 걸 보면 심장이 멈춰질 것 같아서 보질 못했다니까요. 전화만 했다니까요? 올라갔시유~ 하고. 그런데 그게 100톤 크래인에다가 딱 묶고 놓고나니까 올리는데 10분밖에 안걸렸어요.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다가 또 세상 살다가 당하고 있는 문제들 내가 해결하려고 하면 엄두 가 나지 않아요. 힘있는 하나님의 손에 묶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옮겨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해결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 께서 역사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역사를 척척척척 이루어 가시는데 얼마나 힘 있게 성이 세워져 가는지 성문이 찰카닥 성이 찰카닥 착착착착 그러구 나니까 방해하는 이 사탄의 무리들이 분노하고 신경질을 부렸어요. 사탄이 그때부터는 분노를 일으켰다 하는 얘기가 7절의 얘기입니다. 그런데 문제있다고 그래서 내가 찡그리고 짜증부리고 낙심하고 절망하구 그러고 있으면 누가 웃어요. 사탄이 웃어요.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우리가 웃고 행복하게 신앙생활하고 서로사랑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손에 손을 붙들고 앞으로 전진전진 달려가면 우리는 웃고 사탄은 분노한다. 할렐루야.
사탄의 시험이구나 하고 온 성도가 힘을 모아 영차영차 가는데 힘빼는 무리들이 또 있 어요. 10절에 보면 꼭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데 맥을 빼는 성도들이 있어요. 패배 의식에 축 늘어져 가지고는 흙무더기가 아직 많이 남아있는데 지쳐있는 백성들의 무리들 이 나옵니다. 설상가상으로 전쟁의 위험까지 찾아오고 있습니다. 산넘어 산입니다. 이 게 우리가 살아가야 될 2000년도예요.
여러분 달력이 1999년 하다가 아예 제일앞에 있는 숫자 하나를 2자로 바꿨다고 그래서 모든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 여전히 새해에 도 펼쳐져 있을 거예요. 하나도 세상은 달라진 것 없습니다. 여러분 내일 아침의 태양 이 노랗게 뜨리라 생각하지 마세요. 똑같이 태양은 떠올라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거 꾸로 돌아가리라 생각하지 마세요. 그대로 역사는 흘러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이 그대로 펼쳐질 수 있어요. 그럴수록 우리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한번 기도하던 사람 두 번 기도하고, 찬송하번 사던 사람 두 번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5톤 받던 사람이 메가톤 급으로 받아 누리고 할렐루야 복음의 능력을 믿고 의지 하고 성령이 여러분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시고 그 능력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가 새천 년 새하늘과 새땅을 맞이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사탄이 우리를 유혹한다고 그래서 두려워하며는요 새천년이 되었는데도 왜 어 렵지? 새천년이 되면 목사님이 송구영신 예배때에 만사형통한다고 소리를 질렀는데 왜 사업이 잘 안되지? 지난달에 백만원 수입했는데 이번달에 분명히 이백만원 될줄 알았는 데 구십만원 밖에 안됐네. 여러분 두려워하고 낙심하라는 얘기가 아니예요. 여러분 어 려움 있을 때 두려워하고 낙심하면 사탄이 얼마나 신나겠어요. 그래서 사탄하고 개하고 는 비슷한 것 같아요. 여러분 동리 개 알지요? 동리 개는요 개가 왈왈 짖으면 무서워 가지고는 내 심장이 두근두근 뛰면 내 심장 박동소리를 듣고 개가 더 짖는 다는 거예요. 개가 그만큼 귀가 밝은 거예요. 내 심장이 안정되어 있으면요 벌써 개가 한풀 꺽이는 거예요. 저거 굉장한 놈이네. 내가 짖어도 소용이 없네. 유혹이 찾아왔을 때에 담대하 라 사탄을 대적하라 그리고 어깨 좍 펴고 달려가면 어 저거 보통놈이 아니네. 덤볐다가 뼈도 못추리겠네 물러가는 거예요. 슬쩍 건드려 보고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엉엉울고 불 평하고 원망하면 요거 재미있네 그래서 자꾸 뒤꼭지 툭 치고 앞꼭지 툭 치고 다리 걸어 보고 옆구리 쿡 찔러보고 그러는 거예요. 여러분 사탄이 얼마나 재미있겠어요.
유혹이 있을 때에 도망가면 여러분 시험있을 때에 그것을 피해가면 순식간에 와서 나 를 멸망시키고 묻어 뜯어 제킵니다. 이게 사탄의 속성이예요. 사탄이 개처럼 덤비려 할 때에 딱 엎드려야 돼. 어디와서 엎드려. 여기와서 엎드려요. 엎드리면 일단 풀이 죽어 요. 그러면 그냥 물러가는 것이 아니고 더 뒤에서 한번 기도하지 못하게 잡아 당기려 합니다. 그때 손에 뭐를 딱 드는 거예요. 너 한번 맞아 볼래 그러면 도망갈 줄로 믿습 니다.
천로역정에 보면 외딴길을 지나가야만이 천성을 향하여 갈 수 있는데 양쪽에 사자가 으르렁 거리고 있어요. 암사자 한 마리, 수사자 한 마리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가서 봤더니 이 사자의 뒷발이 철 고리로 묶여있는 거예요. 소리만 질러 제켰지 가운데로 정도로 가니까 사자가 물지를 못해요. 여기서 놀래서 비틀거리면 딱 무는 겁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예요. 사자가 우르렁 거리면 우르렁 거릴수록 시험이 무섭게 몰아치면 몰아칠수록 위기가 크면 클수록 흔들리지 아니하고 복음의 정도를 걸어 가면 사탄은 여러분을 결코 물지 못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비틀거리면 사탄이 우리를 물고 늘어지는 거예요. 정확하게 정도를 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18절 19절을 보면 똘똘 뭉쳐서 대적합니다. 한손에 칼을 들고 한손에 망치를 들고 위험한 일을 서로 하려고 감당하고요 그리고 옷을 벗지 않았다. 신발도 벗지 않았 어요. 언제나 누가 오든지 간에 덤빌 수 있는 대적하게. 그리고 백성들이 마지막에 서 로 어려운 자리에 가려고 합니다. 힘든 자리 제가 가겠습니다. 칼은 제가 들겠습니다. 전투에 앞장 서 내가 달려가겠습니다. 백성들이 일심단결하고 서니까 그 다음에 방해꾼 들이 일절 꼬리를 삭 내리고 도망갔어요.
제가 한번은 강남에 있는 여자 고등학교인데 거기가서 부흥회를 했어요. 그 학생들과 잠깐 어디에 가서 시설을 방문하고 거기서 설교를 하고 돌아와서 저녁에 또 여기와서 부 흥회를 하고 그렇게 했는데 그 아이들과 함께 어디를 가서 노래를 하고 돌아오는데 봉고 한 대로 가는 겁니다. 중창단이기 때문에 그때 봉고가 12인승인데 저까지 15명이 간겁 니다. 그리고 집회가 끝나고 난 다음에 봉고를 타야될 것 아니예요. 그런데 아이들이 노래할 때는 언제고 그 깨끗한 옷을 입고 노래할 때는 언제고 봉고를 서로 탈려고 달려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참 아이들 교육을 시켜도 ? 시켰다. 그러고 갔는데 제가 앞 자리에서 문을 열어 보니까 깜짝 놀랄만한 일이 뒤에 있었어요. 하루종일 그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중창연습하고 그렇게 하는데 얼마나 서로들 피곤하겠습니까? 의자 에 서로들 앉고 싶은데 할 수만 있으면 바닥에 서로 앉으려고 의자를 서로 양보하려고 깜짝 놀랬어요. 그런데 이 학교의 명성이 그냥 된 것 아니구나. 이 학교의 중창단의 명 성이 그냥 얻어진 것 아니구나. 복 받은 딸들아 그러구 제가 축복했습니다.
여러분 새해에 우리가 교회를 섬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자리에 서로 달려 가고 신문지 조각 하나 들고 달려가는 아이들이 있을 때에 신문지 조각 들고 달려가는 집사님들이 있을 때에 이 교회를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