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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7-15
인생은 팔자 소관인가? / 은혜목회정보
어느 월간지에 보니까, 정다운이라는 중이 사주팔자를 보아주고 예언을 해서 돈을 수십 억을 벌었는데 그 돈을 가지고 최신식 출판사를 세울까, 아니면 절을 지을까? 하고 물색중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우리 한국 사람들은 그 좋지도 않는 사주팔자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사주팔자를 보아서 재벌이 될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머니즘적인 풍토는 우리 기독교 안에도 있습니다.
지난 이야기입니다만 월요일 날, 기도원엘 갔더니 점심식사 때 기도원 원장님이 제게 한 아가씨를 가르키면서 "목사님, 중매하세요."합니다. 그 래서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그 원장님의 말이 "저 아가씨는 목회자의 사모가 되도록 하나님께 예언을 받았기 때문에, 혼처가 여러 군데 있었지만 마다하고 지금까지 목회자를 찾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이를 물었더니, 나이가 32살이나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기가 막히고 딱해서, "목회자가 아니라도 결혼을 하십시오. 그래서 결혼해서 사명이 생기면 목회를 하십시오." 했더니 기도원 원장님이나 그 아가씨가 정색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 큰 일이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제 주장을 펴지 않았지만, 마음에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 잘못된 신앙이 한 처녀의 일생을 버릴 수도 있겠구나"하 는....
이처럼 믿음이 없는 일반성도들만 아니라, 목회자들까지도 예언의 은사 나 하나님의 뜻을 팔자소관과 같이 이해하고 있어서 우리 기독교를 무 속 화하고 우리의 삶에 많은 시행착오를 범하고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에서 이 문제를 놓고 팔자소관과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옆나라, 아람나라의 신하 하사엘이 그 아람 왕 벤하닷을 죽이고 왕이 된 기사입니다. 그러니까, 아람나라의 반역의 역사를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하사엘 이라는 사람이 엘리사의 입을 통해 "네가 아람의 왕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그 후, 그는 그가 섬겼던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생각해보고자 한 것이 바로 이 문제에서 출발하는데, 그러면 이제 하사엘이 벳하닷왕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된 것이 하나님 께서 예정하신 길을 팔자소관대로 갔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엘리사가 예언을 했으므로, 그 자신이 왕을 죽이고 왕이 된 것이 어 쩔 수 없는 팔자소관이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
우리가 이 문제를 얼른 표면적인 것만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예언을 했 으니까, 어떻게 그렇게 왕이 됐지 안겠느냐? 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가롯 유다도 생각해 봅시다.
가롯 유다도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팔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면 가롯 유다도 예수님을 팔 팔자였기에 예수님을 팔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까?
어떤 엉터리 목사도 이런 유다를 두고 "가롯 유다야 말로 기독교의 일등 공신이다"라는 엉터리 주장을 한 것을 보았습니다.
자, 그러면 이 문제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본문을 좀더 살펴보십시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당시 아람의 영토였던 다메섹에 갔을 때,아람왕 벤하닷은 병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래서 벤하닷은 하사엘을 시켜서 이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에게 자기 의 병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물어보라고 합니다.
이전에 이들은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가 이 엘 리사에게 나음을 입을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의 분부를 받은 하사엘은 엘리사에게 극진한 대접을 하면서 묻은 것입니다."우리 왕의 병이 낫겠습니까?"
여기에 엘리사의 대답하는 말이 10절인데, 뭐라고 합니까?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가서 저에게 고하기를 왕이 정녕 나으리라 하 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저가 정녕 죽으리라고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합니다.
이 말은 벤하닷왕이 병들어서 죽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 죽는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이 예언을 들은 하사엘이, 15절에 보면, 이튿날 왕에게 찾아가 서, 병든 왕에게 이불에 물을 적셔서 덮어 눌러서 죽여버립니다.
자, 그러면 이 하사엘 왕을 죽인 것이, 하사엘이 다르게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을 듣고 그 예언을 실행하기 위하여 죽였단 말입니까?
......................................................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잘 알아야 합니다.
실은 하나님께서는 먼저, 하사엘의 마음에 있는 악한 생각, 악한 계획을 미리 아 셨다는 데, 이 문제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예언을 하셨기 때문에 왕을 죽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하사엘의 마음속에 있는 왕을 죽일 음모를 먼저 보셨기 때문에 예언을 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사엘은 하나님의 예언을 듣고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요, 팔자소관이라고 해서 그 예 언을 따르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왕을 죽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서 그렇게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미리 내다 보셨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이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예언하신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하사엘 에게 입니까?
당연히 그 예언을 듣고도 잘못된 욕망을 회개하지 않는 하사엘 에게 있 습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어떤 일을 합 니다. 자신의 욕망이나 성격을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만 그대로 살아갑니다. 그래놓고는 잘못되었을 때에 자포자기식으로 "이것은 내 운명이다. 팔자소관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자기합리 화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 인생의 무서운 함정이 있습니다. 여기에 인생은 팔자소관이라고 하는 사탄의 덫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인생을 개혁하거나 개척하지 않습니 다. 점쟁이들, 예언자들만 따라서 인생을 그들의 허탄한 말에 끌러 평 생을 변두리 인생을 살게됩니다.
하사엘 에게 보았듯이 이런 사람들에게는 윤리나 진실도 없습니다. 그 것이 운명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운명이라고 체념하거나 합리화합니다.
저는 미국도 가보고 프랑스, 독일, 영국도 가보고, 말레시아도 가보았 지만 우리나라 만큼 살기 좋은 곳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민족이 5천년의 역사를 보면 정말 못살았습니다. 눌리고 맺힌 한의 역사만 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우리 민족의 사상에 "인생은 팔자소관"이라는 이 사탄의 사상이 뿌리 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사느냐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근래에 이르러서 공산주의가 다 망한 것을 봅니다. 그들이 자원 이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정치를 잘못해서 망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인간성이 나빠서 망한 것도 아닙니다.
단 하나입니다. 이데올르기- 사상을 잘못 선택해서 망한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을 팔자소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은 결국 망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주팔자나 점성술이나 혹은 어떤 예언을 통해서 사람들이 인생 은 팔자소관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 인생을 썩게 만듭니다. 본능대로 살게 만듭니다.
그래서 출애굽기에 그런 박수나 예언자들을 죽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리다.
성경은 말합니다.
인생은 팔자소관이 아니라고. 인생은 심는대로 거둔다고.......!
우리가 이 사실- 인생은 팔자소관이 아니고 심는대로 거둔다는 사실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좀더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열왕기상19:15에 보면,
하사엘이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은 본래 엘리사가 아니라,그의 스승인 엘리야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의 생전에 하사엘이 왕이 되는 것을 못보고 죽었습 니다.
그런데 그 예언이 지금,17년이 지나서야 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하나님의 예언이 즉각 이루어지지 않고 17년이 지난 후에야 응하게 되었겠습니까?
그 까닭은 이렇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방의 나라의 반역의 역사를 왜 성경에 기록해놓았겠습니까?
그것은 이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하신 것이 아니라, 실은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 기인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범죄 하므로 이방의 악한 왕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매 때리시려고 그러신 것이었습니다.
앞에 말한 엘리야 선지자 당시 이스라엘은 아합과 이세벨의 우상숭배로 그 죄악이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이 이스라엘을 벌하시기 위해서, 안으로는 예후의 혁명이 일어나게 하셨고, 밖으로는 아람의 군대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매 때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계획이 아합왕때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를 열왕기상 21:17-26절에 기록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아합왕이 회개를 했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555페이지입니 다)
우리들 한번, 21절과 2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9절도........
여기에 보면 아합왕이 엘리야의 예언을 듣습니다. "하니님께서 너의 집을 쓸어버리리라."
그랬더니 27절에 아합이 이 말을 듣고는 굵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29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합니다.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보였으므로 내가 재앙을 그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에게 내리리라."
여러분, 이 말씀을 읽을 때 놀랍지 않습니까?
아합이 어떤 왕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이 해도 너무한 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요? 하나님이 아합을 너무 봐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합은 살인자요,간음자요, 무엇보다도 우상숭배자요, 이방의 결 혼을 해서 하나님을 대적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합도 회개한다고 용서를 해 주신다 는 것입니다.(여러분도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합이 회개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예언을 바꾸신 것입니다.
즉 재앙을 그에게 내리시지 않고 그의 아들에게 내리시겠다고 하 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뒤를 이어서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그 아들 때에도 재앙
이 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요람이 왕이 되어서야, 바로 앞에 말한 하사엘 이 아람의 왕이 되어서 그 반대세력을 이스라엘의 침략군으로 보 내서야 이스라엘에 재앙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의 둘째아들인 요람 왕에 와서야 재앙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당장 이런 질문을 가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비가 지은 재앙을 그 아들이 받는다면 그 아들 이 억울하지 않겠느냐? 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잘 보면 우리는 이 질문에 답을 어렵지 않게 풀 수가 있 습니다.
아합에게 벌을 내리려던 하나님은 아합이 회개하니까, 벌을 내리시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큰아들 아하시아 왕 때에도 벌을 내리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둘째 아들인 요람이 왕이 되어서야 내린 것입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우리가 결론적으로 먼저 알 것은 이 벌이 하나님께서 예언하셔서 이 벌 이 숙명적으로 내려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합이 회개하니까, 하나님께서 재앙을 거두신 것처럼, 그의 큰 아들 아하 시야도 회개하니까, 재앙을 거두셨습니다. 그런데 요람에 가 서는 결코 회개를 하지 아니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때야 재앙을 내리신 것입니다.
만약, 요람도 회개를 했다면 하나님께서 또 재앙을 내리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계속해서 회개하는 왕이 나왔다면 (범조하지 않는 왕이 없었으므로) 하나님의 예언은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게 되어서 실은 재앙이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뜻을, 그의 뜻을 그의 예언을 바꾸시는 하나님이 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듯을, 당신의 예언을 바꾸시는 역사가 여러군 데 나왔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히스기야 왕에게 하나님께서 "너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 가 히스기야 왕이 울면서 회개하니까, 다시 살려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나 서에서도 니느웨가 40일이면 망한다고 했다가 니느웨 백성들이 다 회개 하니까, 하나님께서 뜻을 돌리 키시고, 이런 일들이 성경에 많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바꾸시는 것은 하나님의 판단이 잘못되어서 바꾸 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실 까요?
오직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뜻을 돌이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예언하셨다고 해서 그대로 집행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 당신의 뜻을 바꾸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시지만 그 보다도 더 하나님은 긍휼 히 하나님이시며,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기에 우리의 죗값으로 우리를 십자가에 버리시지 않으시고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하나님의 말씀은 집행유예와 같은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들은 우리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말씀이 응답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사엘도 요람도 가롯 유다도, 아합이나 히스기야처럼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더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숙명이나, 어떤 존재의 운명의 줄에 끌러 살아가는 팔자소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내 삶의 응답에 따라 서 나의 운명이 나의 길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숙명이나 팔자소관이라는 것은 마귀의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갈라디아서 6:7절로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그렇습니다.심는대로 거둡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심는대로 거둡니다. 팔자가 정해진 것은 없습 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을 아름다운 것을 심으십시오. 심은 씨른처음에 는 안보입니다. 그러나 반듯이 싹이 납니다. 지금 안보인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열심히 심으십시오. 울면서도 심으십시오. 좋을 때도 심으십시요.어려울 때도 더욱 심으십시오.
그러면 진정 여러분은 기쁨으로, 단을 행복의 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팔자소관이 아닙니다.
기도:
내 길이 하나님의 손에 있지만, 나의 믿음과 결단에 따라 심은대 로 복을 주실줄 믿습니다. 환경을 원망하거나 운명을 한탄하는 사탄의 덫에 빠지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