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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 날짜 | 명소, 주제 | 코스 | 거리/소요시간 |
1 | 2/24 | 보훈둘레길 | 현중원주차자장-7색깔무지개길-주차장 | 10km/3시간 |
2 | 3/24 | 계룡산 문학기행 | 상신마을-용산구곡-큰배재-동학사주차장 | 6km/3시간 |
3 | 4/28 | 호반낭만길 | 더리스레스토랑-슬픈연가촬영지-전망좋은곳-추동생태공원 | 7km/3시간 |
4 | 5/26 | 머들령길 | 상소동산림욕장-머들령-하늘빛물빛정원-머들령-상소동산림욕장 | 8km/6시간(왕복) |
5 | 6/23 | 이사동유교민속마을누리길 | 상사버스정류장→첨사공재실→용바위→절고개→오도산→고모재→소화동천→광영지→상사버스정류장(원점회기) | 4.8km/3시간 |
6 | 7/28 | 뿌리공원 둘레길 | 뿌리공원-쟁기봉-해철이산-만성산-뿌리공원 | 9km/3시간 30분 |
7 | 8/25 | 황톳길과 계족산 | 장동산림욕장-황톳길-계족산성-황톳길-장동산림욕장 | 8km/3시간 30분 |
8 | 9/22 | 세종청사옥상정원과 세종호수둘레길 | 세종청사옥상정원-대통령기록관-호수공원둘레길 | |
9 | 10/27 | 장태산 | 장태산주차장-스카이타워-형제바위-구름다리-팔마정-주차장 | 5km/2시간 30분 |
10 | 11/24 | 도솔산 | 월평싸이클장-도솔산-서당골약수터-가수원교-갑천누리길-월평싸이클장 | 7km/3시간 |
11 | 12/22 | 수운교와 금병산 | 국민은행자운대출장소-수운교천단-장실-금병산-자운대상가 | 5km/2시간 30분 |
* 사정에 따라 변경 될 수 있습니다.
* 준비물 : 등산복장, 생수, 간단한 간식, 회비 5,000원, 점심비용은 각자
* 회비는 현장에서 받겠습니다.
* 궁금 사항은 느낌표(010-4517-8394)로 전화 주시면 됩니다.
*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점시 도시락 없이 떠나는 명소 나들이입니다.
* 느낌표와 함께하는 행복한 발걸음 같이 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6/23(토) 명소 나들이는 이사동유교민속마을누리길 입니다.
* 코스 : 상사버스정류장→첨사공재실→용바위→절고개→오도산→고모재→소화동천→광영지→상사버스정류장(원점회기)
*거리및시간: 4.8km, 약3시간
*준비물:등산복장,스틱,생수,모자,간식,썬그라스
*모임장소: 10시 이사동 상사 버스정류장
*대중교통: 8시 40분 대전역 동광장(52번)
*개인차량: 10시 이사동 상사 버스정류장
*주소: 대전광역시 동구 이사로 25(이사동)
*교통편 : 52번(8/40분 동광장 출발)
대전역동광(8/40분)-중앙시장(8/50분)-원동네거리-부사네거리-석교동주민-가오고등학교-대성동-운전면허시면허시험장입구-이사동입구-이사동상사(하차)-상소룡골
대전의 작은 마을 이사동은,.은진 송씨의 집성촌으로 알려졌지만, 또한 항일운동의 근거지 이기도 하다. 1909년 왜적의 눈을 피해오하 이규홍 의병장이 찾은 곳으로, 마을의 뒷산인 오도산은왜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격전지다. 마을에는 구한말 절개를 지킨 유학자로알려진 송병화 선생이 봉강정사를중심으로 제자들과 모여 살았다.
이들이 힘을 합쳐 이규홍이 항일투쟁을계속 할 수 있도록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마을 한 가운데에는 이규홍이 7~8년간숨어 지낸 은신처가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송병화 선생의 대표적 제자인 송창재의 선생의 생가로, 송창재를 비롯해 마을 주민들은수년 동안 일본관헌의 눈을 피해 항일운동이지속될 수 있도록 도왔다. 위급할 때 몸을 숨겼던 다락방에서는여전히 치열했든 그 시대의 분위기가느껴진다. 이규홍이 의병투쟁의 전말을 기록한오하일기에도 당시의기록이 그대로 남아있다.
500년전 조선의 유교문화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한 대전 이사동마을은 은진 송씨 4세(世) 송명의는 회덕 황씨와 결혼하면서 회덕지방에 자리를 잡아 가문이 크게 번성하자 대전의 중리동을 중심으로 남쪽 회덕 여러 곳에 모여 살았는데 이상동도 그중 하나다. 은진 송씨가 이사동에 살기 시작한 것은 1392년이후로 시조 송대원으로부터 8세손인 목사공이후 21개 파를 형성해 500여 년집성촌이 되었다.
오도산 줄기에 둘러싸여 마을 입구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좁은 이사동은 산에 모래가 많아 사산(沙山)이라 하고 산 아래 차가운 샘물인 한천이 유명해 사한으로도 불렸다. 윗사한과 아랫사한을 합한 곳이 이사동인데 우리나라 최대 문중 집장지 이상동 묘역이 있다. 오도산은 비롯 337m에 불과 하지만 조망이 좋아 주위의 명산들이 한눈에 들어 오는 산이다.
조선시대 유학자 송준길은 이곳에 아버지의 묘를 쓰고 사산아래 우락재에서 시묘살이를 했으며 송시열, 윤선거, 이유태, 유계등이 찾아와 시국과 학문을 논 했다. 조선 말기 유학자 송병화는 오도산 아래 영귀대에 봉간정사를 짓고 후학을 길러 이른바 난곡학파를 형성했다.
조선시대 저명한 유학자들이 이곳에서 배출되거나 다녀갔으며 수많은 문사들이 잠들어 있으니 가히 문향이라 부를만하다. 갑신정변을 주도한 김옥균의 생가지도 여기에 있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바탕으로 이사동에는 1,000여 기의 분묘와 월송재 등 재실 14곳, 절우당 등 사우, 당우 6곳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송요년, 송남수, 송응서 묘역은 대전시 지정 기념물로, 월송재와 추원재는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전국적으로 유례를 잧기 어려운 이사동 묘역은 석망주가 거의 없고 16~18세기기 유행한 묘 동자석도 송국보의 묘 외에는 설치되지 않았다.
다른 지역 묘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벽사, 자손의 번영과 길상등을 상징하느 귀면문, 거북문 등의 문양도 독특하며 묘역에서 지내는 제례 등의 행사를 위해 차일석을 설치한 곳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또 묘역 주변에는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받은 소나무 등 수천 그루의 나무들이 한옥마을 숲을 이루고 있다.
4.8km의 오두산 숲길은 탐방객의 안전과 편리한 이용을 위해 목계단, 야자매트, 안전펜스 등을 갖췄고 오두산 정상에는 사한정의 정자를 세웠고 쉼터 역할를 하는 벤치도 설치 하였다.
등산 코스 따라 문화유적과 자연식생을 안내하는 이정표 및 안내판을 두어 이상동 마을의 역사문화와 더불어 자연 생태계까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고려응방-
오도산은 일제강점기 시대 항일 운동의 격전지 였으며 산행 출발지인 이사동은 세계 인류무형유산인 한국전통매사냥이 등재된 고려 응방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려응방은 대전시무형문화재 제8호 매사냥 기능보유자 박용순 응사의 매 훈련 모습을 만나 볼 수도 있다. 박 응사의 매 훈련장인 고려응방이 이사동에 있기 때문이다. 응사는 사냥용 매를 기르고 사냥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고 응방은 고려,조선 시대의 매의 사냥과 사육을 위해 두었던 관청이었다. 고려응방에서는 매사냥 시연회도 연다. 참매, 황조롱이, 해래스 매 등 다양한 매를 활용한 매사냥 기법과 훈련과정 등을 일반에 소개한다.
박 응사는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뒷동산에 올라가 놀다가 어린 새 매를 주워 기르며 매와 친해진 게 계기가 돼 응사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2000년 대전시는 매사냥을 대전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했다. 매사냥은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으며 박 씨가 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전통매사냥보전회는 지난해 세계 매사냥보전협회 총회에 감가해 정식 회원단체로 가입되는 성과를 거뒀다. 고려응방은 한국 전통매사냥 보존회 사무실도 겸하고 있다.
-이사동-
오도산 산행 출발지인 이사동은 편의점도 커피집도 없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오랫동안 농사를 기본으로 살고 있으며 대대로 조상과 함께 있는 공간(묘역)이므로 그 동안 별다른 안내시스템도 필요하지 않았다. 덕분에 동네는 크게 오염되지 않았고 무분별한 개발이 심하지도 않았다. 고려 말부터 현재까지 500년이 넘는 묘역 입구마다 제사를 담당하는 건물인 재실이 한옥으로 전해지고 있다. 묘역마다 새겨있는 살았을 당시의 기록과 묘역을 만드는 과정에서 세월에 따른 약간씩 변화하는 돌로 만들어진 문양들을 모아놓는다면 그것으로도 박물관이 될 수 있다. 이사동은 처음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이 아니었다. 선조들의 묘가 조성되고 재실도 함께 들어오며 마을이 형성된 곳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묘역과 재실의 수가 늘어나며 사람들이 머물러 살기 시작한 곳이다. 때문에 모든 것이 장묘문화와 제사문화로 집중된 독특한 마을 이다. 500년 넘도록 오로지 장례와 제사를 중심으로 이어졌으니 비석 하나에도, 문양 하나에도 당시의 생활상이 그대로 압축되어 있다. 이사동 민속마을이 어느 곳에도 존재하기 힘든 유교문화, 장례와 제례문화가 포함된 관혼상제의 21세기 이정표가 되는 곳이다.
용바위
오도산
사한정
봉강정사
첫댓글 같이가유~
네 저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