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는 알아?
신재섭
아빠 밥은 맨날 똑같아
보리차도 없어
난 이모네 보리차가 좋아
마시면 구수하고
목이 뻥 뚫려
아무튼 궁금한 게 있는데
나 유치원 졸업하던 날
엄마한테 엉덩이 맞고
엉엉 울었잖아
왜 혼난 거야?
엄마가 없으니까
묻고 싶은 게 자꾸 생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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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긴 시간
김자미
형들이
아기 고양이를 괴롭히고 있다.
엄마 고양이가 멀찍이서
야옹야옹 울어댄다.
내 맘 속에서
악마와 천사가 맞붙었다.
- 모른 체 가란 말야.
- 가긴 어딜 가, 고양이가 불쌍하잖아.
나는 형들 앞을 막아섰다.
고양이를 괴롭히지 말라고 했다.
천사가 악마를 이기는데
7초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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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가 전학 간 다음 날
김개미
엄마가 깨우러 올 때까지
자는 척하고 있었다
엄마가 씻으라고 할 때까지
눈만 끔벅이고 있었다
엄마가 밥 먹으라고 할 때까지
양말을 들고 있었다
엄마가 학교 가라 할 때까지
가방을 껴안고 있었다
엄마가 나와 볼 때까지
오래오래 신발을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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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海)
박선미
잘 생기고
공부 잘하고
큰 아파트에 사는
우리반 반장 은수
쉬는 시간
화장실에서
폭력 쓰는 거
봤다.
공부 잘하면
착하다는 오해(海)
나는 그동안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바다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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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취 할머니
임수현
옛날 옛날 에취 할머니*가 살았어
어디에 사는지 아는 사람 하나도 없었지만
에취 할머니
에취 한 번이면
가로등이 모두 켜져
골목을 환하게 비췄대
에취 할머니가 낮에는 뭘 하는지 아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밤마다 몰래 가로등을 켜고
길 잃은 고양이를 안아다
어미 고양이 곁에 데려다주고
빈 상자 가득 실은 리어카를 밀어주고
무거운 가방을 멘 아이들 등을 밀어 줬어
사람들은 에취 할머니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이건 누가 한 거지? 하고 놀랐대
그러거나 말거나 에취 할머니는 에취 에취
담벼락을 넘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재채기를 했지
* 뱅크시의 그림 <에취!!> 에서 빌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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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아, 그 말 취소야
박선미
다른 집 동생은
누나 말도 고분고분 잘 듣는데
내 동생은 맨날 대들고
다른 집 동생은
입던 옷 물려받는다는데
내 동생은 맨날 새 옷만 입고
그래서
동생 없는 하정이에게
공짜로 가져가라 했는데
깜빡 잊고
숙제 공책 안 가져온 날
호랑이 선생님 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리는데
빼꼼 열린 교실 문 사이로
낯익은 주근깨 얼굴
"선생님, ……이거 우리 누나 숙제장……"
얼마나 뛰어왔는지
볼이 빨갛다.
하정아, 그 말 취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