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체육복을 읽는 아침 18. <4.12 급식 대란> 240801
자연인으로서의 나는 생선을 참 좋아한다. 날로 먹어도 구워 먹어도 졸여 먹어도 쪄 먹어도 맛있다. 소주랑 안주로 함께 먹어도 좋고 밥반찬으로 먹어도 좋다. 철마다 가장 맛있는 생선이 다르니 일부러 찾아다니며 먹는 것도 즐겁다. 하지만 학생부장으로서의 나는 생선이 싫다. 정확히는, 급식에 나오는 생선이 싫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급식에 나오는 고춧가루를 넣고 무와 함께 졸인 토막 생선조림이 싫다.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한 연수 때문에 출장을 가 있던 어느 나른한 봄날이었다. 모처럼 미세먼지도 없는 쾌청하고 따뜻한 날이라 출장이 아니라 소풍을 나간 듯했다. 연수가 곧 시작될 즈음이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시간에 맞춰 늦게 들어가려고 커피를 한 잔 손에 든 채 봄볕의 온탕에 몸을 담그던 참이었다. 잠잠하던 전화기가 갑자기 윙윙거리기 시작했다. 전화가 왔다는 진동이 아니라 메시지가 연속으로 수신되었다는 울림이었다.
당시 근무하던 학교의 급식소는 5층이었다. 지금이야 주변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가 시야를 다 가려버리고 말았지만 원래 건축가의 의도는 밥을 먹으면서 창밖으로 펼쳐진 국립공원의 풍경을 감상하라는 거였다고 한다. 대신 1년 내내 색이 바래지 않는 초록의 인조 잔디가 깔린 운동장은 얼마든지 내려다볼 수 있었다. 메시지에는 바로 그 5층에서 그 운동장을 내려다본 평소와 다름없는 구도의 사진들이 여러 장 첨부되어 있었다. 다만, 급식소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운동장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각종 배달 음식을 나눠 먹는 피사체로 찍혀 있었다는 게 달랐을 뿐.
파란 잔디밭에 적게는 두셋, 많게는 열 명 가까이 둘러앉아 짜장면, 짬뽕, 탕수육, 군만두, 로제떡볶이, 마라탕과 중국 당면, 토스트, 버블티, 과자, 핫도그, 샌드위치, 햄버거 등을 나눠 먹는 장면이 아주 장관이었다. 온 세상에 꽃을 피우는 햇살 속 에너지가 이 아이들의 젊음도 한껏 피워 내는 느낌이었다. ‘우와~ 아이들 정말 예쁘네요!’라고 답장을 입력하려던 손가락이 다음 메시지를 보곤 우뚝 멈췄다.
“학생부장님이 안 계시니까 애들 행동이 엉망이에요! 얼른 오셔서 지도 좀 해 주세요! 학교에서 밥을 공짜로 그냥 주니까 그냥 배들이 불렀다니까요.”
불쑥 성질이 났다.
“사진을 찍고 있는 당신은 거기서 뭘 하고 있는데 지금 출장 나와 있는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거요? 파파라치요? 애들 동의는 받고 사진 찍은 거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네’라고 짤막한 한 글자를 보냄으로써 당신의 밑도 끝도 없는 언행에 내가 지금 상당히 불쾌해졌다는 무언의 항의를 표하고 말았다. 다시 사진을 열어 운동장에 둘러앉은 아이들의 수효를 대강 세어보니 약 200명 남짓 되었다. 전교생 천 명 가운데 200명이 급식을 먹지 않고 자기들 용돈을 쪼개서 바깥밥을 사 먹는다는 건 무언가 문제가 있는 일이긴 하다 싶었다. 급식 어플을 열어서 메뉴를 살펴보니 과연 그럴 만했다. 밥, 김치, 국, 나물, 그리고 생선조림. 생선조림. 생선조림. 아이들의 표현을 빌자면 ‘메인 메뉴가 없었다.’ 생선조림이라는 글자가 활어처럼 팔딱팔딱 튀었다. 그 이후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급식 어플을 켜서 메뉴를 확인한다. 생선이 없으면 기분 좋게 하루가 시작되지만 생선이 나오는 날이면 마음이 무겁다.
옛날 어떤 선출직 공무원이 무상급식이라는 어젠다와 자신의 임기를 교환했던 적이 있었지만, 전면 무상급식이 시행된 지금은 그것도 참 우스운 에피소드가 되었다. 그렇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 급식비라는 걸 내지 않는다. 내가 고등학교 때 엄마에게 급식비를 현찰로 받아서 친구들이랑 노는데 홀랑 다 쓰고 난 뒤, 같은 반의 천사 같은 여학생들에게 밥을 최대한 많이 받아 밖으로 나오라고 해서 운동장 스탠드에 함께 앉아 도란도란 밥을 나눠 먹던 그 일은 이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되고 만 것이다. 엄마. 알고 계셨겠지만 늦게나마 죄송해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자신의 몫으로 만들어진 음식에 어떠한 책임감도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잔반이 많이 나와서 처리비용이 많아지면 다시 급식에 투입해야 할 예산이 줄어들고 맛있는 급식을 만드는데도 어려움이 커진다는 악순환을 설명해 줘도 쇠귀에 경읽기였다. 더구나 3월 한 달 내내 급식이 예전에 비해 맛이 없어졌다는 불만이 유령처럼 교내에 떠돌던 것이 이렇게 일거에 터져 나왔던 것이다. 이에 대해 학생들에게든, 동료 교사들에게든 학생부장으로서의 입장을 어떻게든 표명해야 했기에 나는 이날의 사건을 우선 ‘4.12. 급식대란’이라 명명하고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주말을 보내고 출근해서 일단 각각의 입장을 들어보기로 했다. 먼저 학생들은, ‘외부 음식을 들여와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는 것을 뻔히 알지만 선생님께 혼날 것을 각오하고라도 그렇게 한 것은 도저히 하루 중 가장 중요하고 성스러운 의식의 제물로서 생선조림과 나물, 김치의 조합은 너무했다는 주장을 폈다. 교사들의 입장은 두 종류로 갈렸다.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학생부장에게 사진 제보까지 했던 ‘아이들이 규칙을 지키지 않은 것은 혼이 나야 하고 급식을 잘 먹도록 더욱 강력하게 지도해야 한다.’는 입장이 첫 번째라면 ‘한 번쯤은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솔직히 성인인 나도 그날 급식은 별로였는데 아이들은 더 했을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날 좋을 때 아이들은 즐거운 추억 하나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두 번째였다.
나는 소크라테스가 아니기 때문에 ‘규칙은 규칙이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래서 규정의 내용 자체든, 규정의 효용이나 존재 목적에 대해서든 내가 납득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강제하는 말과 행동을 쉽게 하지 못한다. 주로 앞서 말한 첫 번째 부류의 동료들은 나의 이런 태도를 ‘직무 유기’라고 이름 붙이곤 했다. 혹은 ‘인기 관리’이거나, 솔직히 아이들에게 으르렁거리면서 급식소 입구에서 학급별로 출석 체크를 하고 담임 선생님들을 몰아붙이면 급식소로 대부분 끌어올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달라고 한 적도 없는 밥을 억지로 먹이는 것이니 아이들을 양육 혹은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사육하는 일이 된다. 학생이 천 명에 교직원도 백 명쯤 되니 규모로는 사육에 어울리지만.
그래서 일단 으르렁거리는 건 접어두고 학생자치회에다가 급식에 바라는 점을 취합해서 간결하게 정리해 보도록 부탁했다. 그리고 교감 선생님과 영양사님, 행정실장님을 찾아가 만남의 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교칙은 외면하고 학생들 편만 든다는 학생부장의 발칙한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셨던 당시의 교장, 교감 선생님께 다시금 감사한 마음이 인다. 논란의 결과 조치 사항을 정리해서 전교생에게 알려줄 수 있도록 학교 신문 동아리 아이들도 참석시켰다.
‘급식을 맛있게 만들자’는 지향점은 모두 같았지만 ‘단백질 공급원으로 생선 대신 육류의 비율을 늘리겠다’, ‘간을 조금 더 세게 하겠다’, ‘메인 메뉴급의 메뉴를 매 끼니에 꼭 들어가도록 하겠다’,(이것은 매끼 고기를 주겠다는 말과 동일하다.)’, ‘급식소 입구에 학생 반응 게시판을 설치하고, 자치회에서는 급식소위원회를 구성해 지속적으로 영양사 선생님과 소통한다’ 등과 같은 실제적인 방안을 도출했다. 그간 초등학교에서 주로 근무했기 때문에 고등학생들이 선호하는 급식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는 영양사님의 용기있는 고백과 개선에 대한 약속을 학교 신문 형식의 전단지에 담아 전교생에게 전했다. 그렇게 4.12. 급식대란은 일단락되었고 급식소 입구에 있는 의견 게시판에는 조금씩 긍정적인 반응들이 얼굴을 보이기 시작했다.
살아간다는 것이 언제나 마음에 들 수만은 없어서 누구나 가슴속에 불만 몇 가닥씩은 안고 살게 마련이다. 특히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그 불만을 어디에다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대부분은 모르고 또 목소리를 내어도 들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학교는 참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목이 잘릴지라도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어디에든 말하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의 마음이다. 그래서 아무리 못 들은 척, 모르는 척해도 그 이야기가 언젠가는 어떠한 형태로든 터져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사들이 학교에서 해야 하는 일은 목을 자른다고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서투른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이야기가 어디에 어떻게 가 닿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일이어야 한다. 무상급식이라 음식 아까운 줄 모르고 배가 쳐 불렀다고 혼낼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귀 기울여 듣고 서로 절충점을 찾아가는 방법을 이왕이면 민주적으로 토론과 양보, 배려를 통해 보여주어야 한다. 내가 먼저 귀 기울여 들어야만 상대도 내게 귀를 기울이려는 척이라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미 배부른 아이들이 누구의 말을 듣겠는가.
첫댓글 "나같으면 이것들이 배가불렀구나" 혼낼 생각부터 했을텐데 역시 학생부장의 열려있는 사고방식이 작은 변화를 일으켰네요. 참고로 저는 갈치조림, 고등어조림을 좋아합니다.ㅎㅎ
김 형, 더운 여름 어찌 지내십니까! 밥맛이 꿀맛일 때가 좋을 때이죠! 건강합시다! 감사합니다!
유정민 선생님
사람아 만든 규정은 사람이 운영 하니
진심어리고, 깊은 배려의 선생님 마음은 제자들이 꼭 알아 줄 것입니다.
진 회장님,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교직 34년에 더 잘할 걸, 공감하는 마음이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