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 추억 #57, 새마을운동 시찰
입대한지 1년만에 첫 휴가를 나왔다. 모든 것이 홀가분했다. 세상이 끝나간다던 말세도, 이 세상에 닥아왔다고 협박하던 불심판도 이제는 차츰 뇌리에서 멀어져 갔다. 이 양반들이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궁금하기도 해서 부산의 '초량12교회'를 찾아갔다. 김인경 입다목사를 만나니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제대하면 다시 좁은길=세칭 동방교에 나와 충성하리라 굳게 믿고 있는듯 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군 복무를 통한 여러 정보의 접촉으로 세상의 현실과 거짓 사이비 이단종교집단의 폐해에 대해 눈을 뜨고 있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라 이의 전파를 위해 각 종교단체에 새마을 운동 시찰에 참가하라는 초청장이 기독교대한 개혁장로회 초량교회 김인경목사 앞으로 와 있었는데 시력이 나쁜 김인경 입다목사가 참가 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이 가기도 마땅찮으니 나더러 대신 참석하라고 했다.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그때의 촌스런 기록이 하나 남아있다. 참가후에 바로 인연깊은 내 친구 D에게 보냈던 여행기록이었다. 그는 이 편지를 받은 후 얼마 안있어 군입대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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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氏.
아득한 옛날 화랑의 말굽소리 강변에 아로새겨지고 먼 신라 삼국통일시대부터 국력배양의 요람이 되어왔던 여기 낙동강을 건느고 있소. 20세기의 억측스런 과학문명은 이곳에도 1336m나 되는 긴 다리를 놓고 남해고속도로를 개통시키고 말았구려. 가락국 전설어린 김해평야를 가로질러놓은 고속도로를 비쳐오는 석양을 마주하고 관광버스에 몸을 실어 서부경남으로 달려가고 있소. 흘러간 옛노래를 골라 틀어주는 안내원 아가씨의 차분함도 마음에 들지만 차창가에 끝없이 밀려오는 내 조국강산의 정다운 풍경이 더욱 좋은거요.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마는 눈물로 달래보는 애닯은 가슴. . . 카 스테레오에서 ‘애수의 소야곡’이 흘러나오고 있소. 빼앗긴 강산을 못잊어 노래하던 옛 선현들의 가슴아픈 울분을 들으면서 나는 지금 내 조국의 품을 푸근한 마음으로 달리고 있는거요. 차창밖 대위위에 서서히 황혼이 덮혀오고 있는것 같소.
내 조국을 사랑하고 싶소. 흙과 나무와 천년고독을 담아 묵묵히 흐르는 저 강물과 하늘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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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에서 초청장이 초량에 날아 왔었소. 올해 새마을 운동의 성과를 마무리하고 내년 운동에의 보다 적극적인 참여와 성원을 위해 도내 문예, 종교, 언론계 저명인사 30여명을 초청, 1박2일 예정으로 새마을 시찰단을 구성한다는 내용으로 초량교회의 김인경목사님을 초청했으나 갈 수 없는 몸, 참석할 사람이 없던차에 권하는 바람에 마침 좋은 기회라 내가 대신 참석 한거요.
대신 참석이 안된다면 그만 둘 요량으로 늦으막하게 어슬렁 어슬렁 도청 정문을 통과해서 지정한 장소 제3회의실로 찾아갔더니 접대 한답시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직원들의 인사와 안내를 받으면서 점잖게 김목사님 명찰이 붙은 의자에 착석했었소. 옆자리 교계 저명인사들의 상투적인 미소로 건네오는 인사를 얼렁뚱땅 받아 넘기고. 아가씨들이 날라다주는 차를 얼른 먹어치우고는 부지사와 지사의 사무적인 악수를 받아주고.
도정소개와 필름 한 30분 보고는 대기중인 관광버스에 탑승했소. 지정된 좌석이 차창쪽이었소. 반쯤 자는 상태로 울산입구 검문소에 도착, 울산부시장의 인사와 안내로 경찰 사이카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울산 동남방 미포만에 자리잡은 동양굴지의 현대조선에 도착했소. 정문 수위의 서투른 거수경례 동작이 현역 군인인 나를 웃겼소. 본공장 70만평, 부수공장 30만평, 사택부지 30만평 도합 130만평의 대지위에 현재 4500여 종업원을 거느리고 79년에 가서는 종업원 17000명, 그에 따르는 부양가족 5-6만을 거느리게 되리라는 설명에 커긴 커구나 하고 생각했소.
회사측에서 베풀어주는 점심을 깨끗이 비워주고는 간단한 브리핑을 들은 후 현장시찰을 갔소. 구질구질한 부속자재들이 산재해 널려있는 넓은곳을 지나고 앞으로의 인력부족에 대비해서 회사 자체에서 운영하는 1년과정으로 년간 1200명의 기능공을 배출시킬수있는 기능공 훈련소를 보았고, 중량만으로 치면 서울시민을 몽땅 실어 담을수 있는 있다는 26만톤 규모의 대형유조선 건조현장에 갔소. 굉장하더라는 말로 그 현장설명을 대신할려고 하니 짐작 상상 하구려.
한척당 200억원이나 나가는 이 정도의 배를 년간 다섯척 건조능력을 갖추고 있고. 이 회사의 확장계획이 끝나는 79년엔 년간 30만톤 규모의 배 30척의 건조능력을 갖추고 1척당 소요시일이 7개월이면 된다고 하니 엄청나지요. 고도의 과학기술도입을 위해 수십명의 외국인을 고용하고 있고 현재 100명 가까운 우리 기술진들이 외국에서 교육을 받고 돌아온 이 회사는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책이라는 강력한 시책을 등에 업고 1억불이 넘는 거액을 투자하여 영국, 불란서, 스페인등 전통있는 서부유럽 해양국가들의 기술원조를 받아 세워진 국제적인 규모의 조선공장이라오.
더우기 놀랜것은 골리앗 크레인이라는 괴물체. 70m 높이의 거대한 두 기둥위에 얹혀진 길이 100m의 역시 거대한 철다리 같은것에 달린 크레인인데 3톤트럭 150대분인 450톤을 한꺼번에 들어올릴 수 있는 거대*거대한 크레인. 그래서 이름하여 다윗과 골리앗의 골리앗 크레인이라고 한다나. 현재 2개가 있고 앞으로 몇 개 더 건립한다고 하는데 세계에서 몇 개 안된다고 하며 1개 건립비가 20억이나 든대요.
여러곳 돌아보고 회사정문으로 우리일행이 탄 버스가 나가는데 아까 그 수위 아저씨 한번 더 나를 웃기는 폼 짓길래 씩 웃어주엇더니 흐뭇한 모양이요. 울산시내로 들어오는 귀로에 현역 군인들의 이동작전 훈련을 보았소. 완전무장해서 도로 양편을 따라 이동하는데 즉, 걷는 훈련이요. 발이 부르트고 육신이 지치지마는 민간인들이 보는 앞에서 결코 흐트러지거나 쓰러지지 않는 그들 의지의 행렬을 지나쳐 오면서 찡한 가슴의 울림과 함께 현역 군인의 긍지와 국토방위의 이상무를 자랑하고 싶었소.
우리 일행이 탄 버스를 향해 군경합동검문소 헌병들의 부동자세에서 우러나오는 원기있는 거수경례를 받고 지나오면서 공업단지 울산의 방위임무에 이상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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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가까이 되어 울산과 언양 중간정도의 위치에 자리잡은 경남 대표 새마을 상천부락에 도착했소. 년간수입 145만원의 80년대 표준농가를 앞당겨 건설해 놓았다는 여기 정확한 주소는 경남 울주군 삼남면 상천부락, 80년대를 앞당겨 사는 60세대 370여명 부락민들의 생활을 짧은 시간이나마 유심히 살펴보았소.
판에 찍은듯한 규격품의 말끔한 신축주택 60호와 마을 역사관, 도서관, 목욕탕, 구판장등이 들어있는 90평의 마을회관을 비롯하여 삼성NEC 부품을 생산하고 있는 새마을 공장, 창고, 공동우사, 돈사가 있고 간이 상수도, 전기, 공동전화, 어린이놀이터가 설치돼 있었소. 마을진입로를 넓히고 경지정리며 하천정리를 하고 농기구를 사들이며 유실수를 심고 초지조성을 하는등 계획과 실천이 다양했었소.
그러나 내가 알고 싶은건 메스콤이 떠들어대는 그 이면의 것, 농민들의 실질적인 생활을 알고 싶었소. 역시 그들의 실생활엔 옛 그대로 변함이 없었소. 회관을 짓는다, 무엇을 한다하면 노력봉사를 할뿐, 귀중한 마을 문고들은 이용하는 흔적이 별로 없었고 일선 행정기관의 노고와 마을의 몇 지도자와 멋모르는 청년들의 어설픈 설침이 있을뿐, 생활 사고방식 자체의 저력있는 변화는 아직 느끼지 못했소.
어느집에 불쑥 들어가 요즈음 살기가 어떻느냐고 묻는 나의 말에 어떤 노인네 왈 “이렇게 해 놓으니 좋기야 좋지” 하는 그말의 여운이 개운치 않았소. 확고한 생활 철학 내지는 정신력없이 숨가쁘게 밀어닥치는 물질적 외형의 변화에서 파생되는 비인간화 또는 인간소외를 누가 책임진단 말이요. 물질증대를 하나의 신앙처럼 믿는 그들이기에 정신적 지주는 더욱 튼튼해야 되지 않을까요.
여기에 종교계의 사명 중차대함을 느끼게 되오. 외형의 변화에 따르는 물질적 부담과 사라져가는 고유미등 제법 문젯점을 내포하고 있긴하지만 다 쓸데없는 건방진 좁은 소견이라고 생각하고 차에 올라 이제 충무까지 3시간이 넘는 고속여정에 올랐소. 안내원 아가씨가 주는 푸짐한 과자와 환타와 박카스-D를 받아들고 공짜 주는거라 아낌없이 먹어가는데 박카스-D 먹다남은 여분을 바지에 쏟아버려 나혼자 투덜거리면서 동래를 지나 만덕터널을 통과, 아까 그 구포다리를 건너 남해고속도로를 달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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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뱃고동소리 간혹 들려오는 충무시내 KOREA HOTEL 605호실이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어 준 그 유명한 한산대첩을 치루었던 바다를 앞에두고 국립공원 한려수도의 중심지인 이곳 충무는 뛰어난 자연경관과 유무형의 문화재에 전설과 낭만이 넘치는 인구 6만여밖에 안되는 소도시요.
이곳 시장과 통영군수가 베풀어주는 저녁식사를 여기 특산물과 함께 한턱 맛있게 먹었소. 약주도 일잔했고, 후 후. . . 장가간 어른들 틈에 끼어 노숙한척 할려니 내심 우스웠소. 여하튼 오늘 잘 지났고 여기서 일박한 후 내일 서부 경남 몇 마을 둘러보고 부산 갈거요. 팔자에 내정되지않은 약간은 고급스런 이 독방에서 한숨 푹 자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