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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희년 4편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가복음 4:19)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3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1)
희년 2편과 3편에서 희년에 관한 말씀. 누가복음 4장 18,19절과 레위기 25장 8~13절 말씀으로 희년에 대한 정의와 희년의 두 가지 복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희년의 두 가지 복은 그 첫 번째가 바로 우리가 아버지를 떠나 잃어버렸던 우리의 소유로 복귀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나눴고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을 소유하는 것 곧 하나님 자신이 사람의 소유되시는 것을 너무나 갈망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소유가 된다는 것은 사람의 생명의 양식이시며 거처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취함으로써 하나님과 하나 되어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소유한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늘에 속한 신령하고 풍성한 복을 누리며 기쁨과 평안과 만족 가운데 살기를 너무나 갈망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희년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알려주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이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탕자의 비유라는 것을 또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떠났을 때 사실은 아버지를 떠난 것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우리의 소유 곧 우리의 분깃, 몫, 기업을 또한 탕자가 떠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지만, 탐욕과 정욕의 마음을 품어 생명나무 열매를 취하는 대신에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취함으로써 우리의 참 기업이며 참 소유이신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더불어 우리의 기업이었던 에덴동산도 떠나게 되어서 하나님을 잃고 우리의 기업인 에덴동산도 잃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마귀의 거짓말을 더 신뢰하여 선악과를 취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잃어버렸다는 말보다는 하나님을 버렸다는 말이 보다 사실에 가까운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스스로 버렸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기업 또한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허리에서 난 모든 인류 또한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기업을 잃어버린 자들이 되어 영적으로 지극히 가난해졌고 세상과 죄와 사탄의 권세에 굴복되어 그것들의 노예가 된 채 아무런 소망도 없이 고난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 스스로는 절대 세상과 죄와 사탄의 속박에서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계시하기 위해서 구약성경 레위기에 희년 제도를 제정하셔서 오십 번째 되는 은혜의 희년에 자신의 죄와 허물로 남을 섬기는 종이 되었던 자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종의 신분에서 해방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였고 또한 가난해져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어 팔아버린 기업 또한 아무런 대가 없이 회복하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희년을 성취하기 위해서 성육신 하셔서 이 땅에 오셨고 많은 사람들을 자신들의 기업 곧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공생애 기간 동안 희년의 도래를 알리는 복음을 큰 나팔 소리로 전파하시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생명 주는 영이 되셔서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돌아온 성도들 안에 하나님께서 거주하게 됨으로써 실질적인 희년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사역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하신 희년의 메시지는 우리 모두는 우리의 참 소유이신 하나님께로 반드시 돌아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죄와 사탄에 속박된 인간은 절대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탕자의 비유처럼 잃어버린 아들, 죄인이 된 불쌍한 아들을 찾기 위해서 목자 아들을 보내셨고 또한 그 영 하나님을 보내셔서 세상과 죄와 사탄의 노예가 되어버린 우리를 찾아 그 굳어진 마음을 하나님께 돌이키게 하여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하고 자유자의 신분으로 회복시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기업을 주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늘의 풍성한 복을 누리도록 하는 희년이 우리에게 도래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죄인이 된 우리가 스스로 돌아오기를 마냥 기다리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돌아올 아무런 힘이 없는 우리를 위해서 목자 아들을 보내시고 그 영 하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참 사랑을 우리 눈으로 직접 보게 하심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우리의 눈과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사랑이요, 주님의 긍휼이요, 주님의 자비요, 주님의 관심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스스로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돌보심과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행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희년에는 두 가지 아주 중요한 복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렸는데 첫 사람 아담을 생각을 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주셨고 그 동산 가운데 생명나무를 두어 그 과일을 취할 수 있도록 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뱀으로 변신한 마귀의 속삭임과 간교한 거짓말에 속아 실족하여 타락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신 그 에덴동산과 하나님 자신을 상징하는 생명나무를 모두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된 모든 인류는 하나님께서 부여해 준 기업과 하나님을 잃어버린 채 세상과 죄와 사탄의 노예가 되어서 아무런 소망 없이 고통 속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희년의 두 가지 복 중 첫 번째 복은
기업을 잃어버렸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잃어버렸던 소유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구약 성경 레위기 25장 9절부터 13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간절한 뜻과 간절한 갈망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소유가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소유가 되고자 하신 것을 표현한 말씀이 시편 16장 5절,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사람의 소유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셨지만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 대신 마귀의 거짓말을 받아들여서 실족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범죄 하여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들 대하여 에베소서 2장 12절은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의 희년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성육신 하심으로써 하나님과 기업을 잃어버려 사탄의 노예가 된 채 어두움 가운데 거하던 자들의 마음의 눈을 뜨게 하여 빛이신 하나님께로 이끌어 기업을 얻게 하는 때라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잘 말해주는 말씀이 사도행전 26장 18절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1장 14절에서도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 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하고 있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업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간절한 갈망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심으로 희년의 복을 선포하셨는데 그 첫 번째 복은 하나님을 떠나 기업을 잃어버렸던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자신들의 기업을 회복하는 것 곧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년의 두 번째 복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우리가 아무런 대가 없이 해방되어 자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매우 궁핍해지면 생계를 위해서 어떻게 합니까?
먼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금 은 보석 등 값이 나가는 물건을 팔아 양식을 사서 육체의 생명을 유지할 것입니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기업이 되는 땅, 양식을 생산하는 그 땅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것입니다. 그 후 일정기간 동안은 땅을 판 값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지만 또 돈이 떨어지게 되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마지막 남은 자신의 몸, 자신의 생명을 팔아 남을 섬기는 종이 되어 생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팔아 남의 종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본분인 자기 자신의 신분을 잃어버리고 헛된 것을 섬기는 자가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떠난 자들 곧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된 모든 인류가 바로 이와 같이 하나님께 범죄 하여 하나님께 받은 기업을 잃어 지극히 가난해졌고 육체의 생존을 위해서 죄와 세상과 마귀에게 자기 자신을 팔아 그들의 노예가 되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속박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 레위기 25장 희년 제도를 보면,
땅은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영구히 파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기업의 땅을 판 사람은 그 땅을 무를 힘이 생겼을 때 언제든 그 땅을 무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힘이나 친족이나 형제의 도움이 없어 그 판 땅을 무를 수 없을 경우에는 제 오십 번째 해 희년이 도래했을 때 그 땅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레위기 25장 23절~28절)
또한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백성들을 하나님 자신의 종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백성 중에 누군가가 지극히 가난해져서 자기 자신의 몸을 팔아 남을 섬기는 종이 된 경우에도 종이 된 사람은 희년이 도래하기 전에 속량 받을 권리를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스스로의 힘으로나 형제나 친척의 도움으로 언제든 속량 받을 수 있었고 비록 자신을 속량해 줄 사람이 없는 사람도 제 오십 번째 해 하나님의 희년이 도래했을 때에는 모든 사람이 종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자유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레위기 25장 47절~55절)
이처럼 레위기 희년 제도를 통해서 계시하고 있는 것은
모든 인류는 하나님을 떠나 우리의 소유이신 하나님을 잃고 그분의 기업을 잃어버려 지극히 가난하게 되었고 생존을 위해서 우리 자신의 자아를 세상과 죄와 사탄에게 팔아 그것들을 섬기는 노예가 되어 그것들에 속박되어 살아가고 있는데,
기쁨의 해 희년에는 모든 사람들이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기업을 얻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백성들의 생명을 너무나 귀하게 여기시며 그들 모두가 하나님을 소유하고 그분의 기업을 얻어 하늘에 속한 풍성한 영적인 복을 누리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난해짐으로써 자신의 소유, 상속받은 그 기업을 팔게 되고 상황이 호전되지 않고 더욱더 악화되자 생존을 위해서 마지막 남은 자신의 몸을 팔아 하나님이 아닌 헛된 것을 섬기는 노예가 됨으로써 모든 것을 잃고 소망 없이 비참하게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첫 사람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된 모든 인류의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누가복음 4장 18,19절에서 모든 것을 잃고 세상과 죄와 사탄의 노예가 된자 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회복하여 준다는 희년의 기쁜 소식을 큰 나팔 소리로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가복음 4:18,19, 개역개정)
이 희년의 나팔소리는 자신의 소유를 팔고 자신의 몸까지 팔아 죄와 세상과 사탄의 노예로 전락하여 억압받고 허무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 제 오십 번째 해 희년에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어떤 대가도 없이 타인의 소유가 되었던 자신의 기업을 다시 찾게 되고 또 자신의 몸이 팔려 남을 섬기던 신분 곧 포로 되고 눈멀고 눌려 있는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되어 자유인으로서 하나님 아들의 신분을 회복한다는 너무나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실족하여 타락한 그 순간부터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된 모든 인류는 자신의 소유인 하나님을 팔아버렸고 특별히 자기 자신의 육체의 생명 곧 자기 자아를 사탄 마귀에게 팔아버림으로써 죄의 노예가 되어 죽음의 권세에 사로잡힌 채 슬픔과 아픔과 절망 속에 갇혀 허무하게 사는 모습이 바로 인류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구약 희년 제도는 1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발생되는 일들에 관한 규정으로서 누군가 가난해져 조상으로부터 상속받은 기업을 팔고 자신의 몸이 팔렸을지라도 언제든지 자신 스스로의 힘이나 형제 친척의 도움으로 그 기업을 무르고 노예 된 자신의 몸을 속량 할 수 있지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발생한 일 곧 하나님께 범죄 하여 하나님을 잃고 기업을 잃어버려 사탄과 죄의 노예로 전락된 일에 있어서는 인류 모두가 죄 아래 갇혀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이나 형제나 친척 그리고 어떤 사람의 도움으로도 잃어버린 기업을 결코 무를 수 없고 자신의 몸을 속량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첫 사람인 아담이 실족하여 타락한 이후로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된 모든 인류의 역사를 성경적인 관점에서 시대별로 구분해 보면,
인류의 타락 이후부터 인류가 자신들의 양심을 따라서 하나님을 따랐던 양심시대, 홍수 이후부터 바벨탑 사건까지의 인간 통치시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때부터 출애굽 때까지의 약속시대, 그리고 시내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받은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의 율법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긴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었지만 그리스도가 오셔서 희년을 선포하시고 성취하시기 전까지 한번 타락한 인류는 그 무엇으로도 결코 자신의 잃어버린 기업을 무를 수 없었고 자신의 몸이 속량 받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의 씨로 난 모든 사람 중 단 한 사람도 스스로의 힘으로나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참 기업이신 하나님을 다시 찾을 수 없고 사탄과 죄의 노예가 되어버린 자신의 몸을 스스로 속량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할 수 없었지만,
주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여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제 오십 번째 해 곧 은혜의 시대가 도래하게 하심으로써
타락한 모든 인류는 잃어버렸던 기업 곧 하나님을 자신의 기업으로 회복하게 되었고 사탄과 죄와 세상을 섬기던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되어 자유자의 신분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것이 신약이 전하고 있는 희년의 복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5절에서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라는 말씀처럼, 타락한 사람들은 자신의 참 기업인 하나님을 잃고 육체가 되어버려 어둠에 속에서 자신들이 죄의 노예로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큰 나팔소리로 참 복음인 희년을 선포하심으로써 모든 인류가 타락한 존재로서 육체에 갇혀 어둠 속에서 죄의 노예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특별히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서 증거 하고 있고 나머지 23권의 서신서에서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로마서 7장 14절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라고 정말 슬픔 가운데 자신에 대하여 한탄하였고 그리고 요한복음 8장 34절에서도 예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함으로 사탄과 죄와 세상에 속박된 채 죽음의 운명 아래 놓인 채 아무런 소망 없이 슬픔과 고통 속에서 노예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이 땅에 성육신 하게 하시고 천국 복음 곧 은혜의 희년을 선포하심으로써 사탄과 죄와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 곧 죽음, 늙음, 질병, 슬픔, 눈물, 고통, 어두움, 부정함 등에서 우리 인간을 해방하여 자유롭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 생명과 하늘의 신령한 복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희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1,2 개역개정)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하나님 자신을 그대로 세상에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분, 독생자 아들을 보내셔서 그 아들 안에서 인간을 구속하는 일을 행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바로 요한복음 8장 36절에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라고 자유에 관한 말씀을 하셨는데,
이 자유가 바로 희년의 도래를 통해 얻는 자유라는 것을 우리는 꼭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희년은 타락한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할 때 모든 죄에서 해방하여 참으로 자유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유와 관련된 구체적인 말씀이 또한 요한복음 8장 32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진리는 바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며 그분을 통해서 우리가 참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 때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오시는 하나님의 희년을 통하여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죄로부터, 사탄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참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로마서 6장 6절과 7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라고 선포하였고,
로마서 8장 2절 말씀에서도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말하고 있어 그리스도로 인한 해방과 자유를 증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다고 선포하였습니까?
그렇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성령의 법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 못 박히시고 죽음을 통과하신 후에 부활을 통하여 생명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고린도전서 15:45, 개역개정)
생명 주는 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영의 법인 것입니다. 이것이 참 희년인 것입니다. 참 희년 곧 생명의 영의 법이 바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불쌍한 죄인들을 모두 해방하여 자유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라고 말함으로써, 생명 주는 영이 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도래하는 하나님의 희년 곧 우리가 율법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자유자가 되었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희년은 잃었던 우리의 기업이 다시 우리의 소유로 회복되는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와 사탄과 세상의 노예였던 우리를 완전히 해방하여 자유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25장 8절부터 10절까지 희년에 관한 아주 중요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8절 말씀은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이고
9절 말씀은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이며
10절 말씀은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입니다.
그런데 왜 희년을 제 오십 번째 해로 정하셨을까요?
그것은 8절 말씀,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암시받을 수 있는데, 안식년은 매 칠 년마다 돌아오고 이 안식년이 일곱 번 계속되면 사십구 년째 해이며 그다음해 오십 번째 해가 바로 희년으로 여덟 번째 안식년이기도 합니다.
성경 창세기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육일 동안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이 완성된 제 칠일째에 안식하셨습니다. 안식 후 다음날 곧 제 팔 일째 날은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한 주 곧 칠일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창조의 날 육 일과 안식의 날 하루를 포함한 칠일의 기간은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하는 일에 있어서의 완전한 과정을 의미한다는 것을 암시받을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레위기 25장 8절의 칠 년 주기로 돌아오는 안식년은 바로 우리들의 삶의 완전한 과정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칠일 단위의 한 주를 기준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날들을 구분하고 계수하는 데 칠일 단위의 한 주의 삶이 계속되면 칠 년 주기인 안식년에 이르게 되고 또 안식년이 일곱 번이면 사십구 년이 됩니다.
이처럼 레위기 25장 8절에서 말하고 있는 칠 년 주기의 안식년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하신 기간과 마찬가지로 완전한 과정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교회 안에 있는 성도 곧 그리스도인의 신앙도 이러한 인내와 연단의 과정 가운데 온전한 믿음으로 성장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출애굽기 12장을 보면 첫째 달 열 나흗날 곧 유월절 저녁부터 이십일 일 해질 때까지 무교절이 칠일 동안 계속됩니다. 무교절은 유월절 저녁부터 시작하여 모두 완전한 칠일 동안 지켰습니다.
그래서 칠일 동안의 무교절 기간은 우리가 구원받는 때부터 우리 몸이 온전히 구속되는 날까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완전한 과정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과정이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가 세상에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가운데 주님을 영접하여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는데, 구원받은 그때(유월절)부터 완전히 구속되는 날까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의 삶의 전 과정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칠일 동안 지키는 무교절이라는 것입니다.
칠일 동안의 무교절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 곧 무교병만을 먹어야 했고 누룩이 들어간 유교병은 절대 먹어서는 안 되었으며 심지어 집에서 발견되지 않도록 해야 했고 만일 누룩이 든 것을 먹은 이스라엘 백성이나 타국인은 누구나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엄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2:15~20)
[무교병]
하나님께서는 무교절 기간에 한 점의 누룩도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셨습니다. 부정한 것이나 속된 것이나 어두운 것 등 죄를 상징하는 모든 것들 곧 우리를 부정하게 하고 변질시키는 그 어떤 누룩도 우리 삶 속에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무교절 절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해주고 있습니다.
희년이 완전한 과정을 의미하는 일곱째 해 곧 안식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곱 번째 안식년인 사십구 년째 해의 다음 해 곧 오십 번째 해에 돌아온 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일곱 번째 안식년 곧 사십구 번째 해는 완전한 과정을 의미하는 칠 년이 일곱 번 거듭된 해이고 희년은 그다음 해인 오십 번째 해에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25장 10절에서 제 오십 번째 해 희년의 제도는 일반 안식년처럼 그 해를 거룩하게 해야 했고 또한 안식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제 오십 번째 해 희년을 여덟 번째 안식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오십 번째 해 희년은 일곱 번째 안식년이 되는 사십구 번째 해의 다음 해로서 여덟 번째 안식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일곱 안식년(사십구 년)의 그다음해 오십 번째 해를 희년으로 정하셨을까요?
그것은 희년을 오십 번째 해로 정하신 것은 부활을 계시하고자 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숫자 여덟은 부활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금요일에 십자가 위에 못 박히시고 그다음날 토요일 곧 안식일에 무덤에 계시다가 제 삼일 째 되는 날 곧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는데, 일요일은 새로운 한 주의 첫날로 팔 일째 날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해서 팔 일째 날 곧 일요일을 주님의 날, 주일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여덟째 날 곧 주님의 날에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셔서 잠시 시간을 가지신 후 바로 부활하신 그날 저녁에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던 제자들에게 부활의 영의 몸으로 나타나 제자들을 만나신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은 한 주의 여섯째 날 곧 금요일 해질 무렵에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셔서 돌무덤에 장사되시고 그다음 일곱째 날 곧 토요일, 안식일에 무덤에서 안식하신 뒤 새로운 한 주의 첫 날인 여덟째 날 새벽 미명에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여덟째 날 그리고 여덟 번째 안식년인 희년은 모두 숫자 여덟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숫자 여덟은 성경에서 새로운 시작 곧 부활을 상징한다는 점으로 볼 때,
제 팔 일째 날에 부활하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도래하게 된 기쁨의 희년에는 죄와 사탄과 세상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고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소유함으로써 자유롭게 된 자들이 하나님 품으로 돌아와 기업을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기쁨과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모든 것이 새롭게 된 해, 부활의 해라는 것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팔 일째 되는 날 새벽 미명에 부활하셔서 육체에 갇혔던 주님이 해방되어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셨고 또 신성한 영의 몸 곧 생명 주는 영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제 오십 번째 되는 해, 하나님의 희년을 도래케 하셔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들에게 희년의 두 가지 중요한 복을 부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복은 바로 잃어버린 기업 곧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소유하는 것이며 또 사탄과 죄에 사로잡혀 노예로 살던 육체의 삶에서 해방하여 자유자의 신분을 회복하여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덟째 날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죽었던 우리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사는 날이며 주님 안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날 곧 부활의 날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오십 번째 해를 희년으로 정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희년을 계수하는 데 있어서 안식년이 일곱 번 되는 사십구 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오십 번째 해 희년은 완전 수 일곱을 일곱 번을 거친 다음 해로 부활로 인한 칠 배의 완전한 은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희년을 계수하는 데 있어 일곱 안식년 곧 칠 년이 일곱 번이면 사십구 년이고 그다음 해 오십 번째 해를 희년으로 정한 것처럼,
예수님 부활 후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강림하신 오순절(칠칠절) 역시 유월절(금요일) 다다음날(일요일) 곧 수확의 첫 열매의 단을 흔들어 드리는 초실절부터 일곱 안식일을 계수하여 나온 사십구 일째 날의 다음날 곧 오십일째 날로 정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주님께서는 계시된 절기에 맞게 유월절 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다다음날(일요일) 새벽 미명에 부활의 첫 열매로 부활하셨고 그때로부터 일곱 주(사십구일)가 지난 그다음날 곧 오십 번째 날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백이십 명의 성도들 위에 강림하신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일곱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난 후 그다음 해에 오는 오십 번째 해를 희년으로 정한 의미는 칠 배의 부활, 칠 배의 은혜 곧 하늘의 신령한 복을 충만하게 부어 주셔서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능력 있는 삶, 생명이 넘치는 삶을 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에서 계시된 절기의 날들에 따라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성령 강림이 이행된 것은 부활 안에 있는 칠 배의 신령한 복을 성도들에게 부여해 주시기 위하여 만세 전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경륜 안에서 계시되고 이행된 것임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한편 사십구 년은 구원받는 사람들의 완전한 삶의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난 뒤에 비로소 오십 번째 해, 희년이 도래함으로 하나님을 떠났던 자들이 돌아오고 잃었던 기업을 다시 찾는다는 것은 사람의 인생의 삶이 일곱 해를 일곱 번 거치는 사십구 년 동안 인생의 쓴 맛과 단 맛, 고난과 희락, 성공과 실패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속에서 세상을 좇는 삶의 허무함을 깨닫고 마음을 돌이켜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받고 참 희년 곧 노예 상태에서 해방과 자유를 얻고 잃었던 기업을 되찾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유년 시절이나 소년 시절 또는 청년 시절에 주님을 만나 구원받는 것은 아주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장년이나 노년의 때에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받는 사람들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을 만나 구원을 받는 데 있어서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 등 어릴 때에 주님을 만나 구원받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인생을 충분히 경험한 장년이나 노년 시절에 구원을 받는 것이 좋을까요?
우리는 삶의 과정들 속에서 구원을 받게 되지만 그것은 사람마다 개별적인 성향과 삶의 환경 등이 서로 달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유년 시절, 어떤 사람은 소년 시절, 어떤 사람은 청년 시절, 어떤 사람은 중년 시절, 어떤 사람은 장년이나 노년 시절에 희년의 나팔 소리를 듣고 주님을 영접하여 참된 희년을 체험할 수 있는데 그 양태가 제각각입니다.
나이가 어려서 주님을 영접하게 되면 삶의 과정을 충분히 경험하지 않아서 희년의 참된 가치를 잘 인식하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후 더 많은 삶의 과정들을 거치는 가운데 그 가치를 깨닫고 희년을 체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수많은 과정, 삶의 희로애락을 거친 뒤 장년이나 노년의 때에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그 희년의 가치가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를 알아 그 희년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을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장년이나 노년에 구원받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어렸을 때 주님을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자들은 교회생활과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배워 시행착오 없이 올바른 신앙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고 장년과 노년에 이르러서는 그동안 신앙생활의 인내와 연단을 통해서 더욱더 깊고 견고한 믿음으로 성장하여 주님의 희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어린 시절에 구원을 받고 신앙의 삶을 사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지만, 비록 장년과 노년의 때에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은 사람도 희년으로 인하여 큰 누림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사도 바울 선생이 로마서 5장 20절 ‘죄가 많아진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한 것처럼, 지난날 하나님을 떠나 기업을 잃고 가난해져 몸까지 팔려 노예가 되는 험난한 삶을 산 뒤에야 뒤늦게 그 마음을 돌이켜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이 탕자와 같이 부끄러운 마음으로 하나님 품에 돌아온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고 뼈저리게 느낄 것이기 때문에 그는 은혜의 희년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더욱더 꼭 붙잡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과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생명을 풍성하게 누렸던 사람이 그 모든 것들을 다 잃고 자신의 몸까지 팔려 비참한 노예 생활 속에서 비로소 그 가치와 소중함을 뼈저리게 깨닫고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며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 간절히 갈망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희년이 도래하여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기업과 자신의 영적 생명을 다시 찾았다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얼마나 그 마음과 뜻을 다해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섬길까요? 그것은 아마 우리가 상상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눈먼 자, 병든 자들이 주님께서 그들을 고쳐 주었을 때 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을 구주로 기뻐 영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이 잃어버린 사람일수록 희년의 나팔 소리를 많이 듣고 그 희년의 나팔 소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희년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희년을 소유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많이 잃어버린 자들, 자기 생명을 빼앗겨버린 자들은 희년의 나팔 소리와 함께 도래하는 희년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알아 다시는 절대 그 희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마치 천국을 얻으려고 침노하는 자와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보통 인생의 경험이 적어 잃어버린 적이 없는 어린 시절의 신앙의 삶에서는 희년의 가치와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하고 희년이 주는 참다운 기쁨과 즐거움을 잘 알지 못해서 그 누림과 즐거움에 대하여 말할 것이 별로 없지만, 쓰디쓴 인생, 희로애락의 삶을 다 경험한 뒤 인생의 느즈막한 때에 주님을 믿어 구원받은 자들은 은혜의 희년을 더욱 깊고 온전히 누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노년에 구원받은 사람이 큰 은혜를 받았을 지라도 어릴 때 구원받은 사람보다도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에 대해 아는 지식이 없어 그 희년을 온전히 자기 것이 만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가 그 희년을 순식간에 잃어버릴 위험성도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희년은 제 오십 년째 해에 옵니다. 일곱 번째 안식년(사십구 년)의 다음 해에 오는 것이 하나님 희년입니다.
오십 년의 의미를 농사의 절기의 관점에서 보면,
유월절 다다음날 초실절부터 오순절까지의 기간 오십일은 밀이 자라 온전히 무르익어 열매를 거둬들일 때까지의 기간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으로 우리 안에 뿌려진 생명의 씨가 신앙생활의 복잡하고 험난한 과정들 가운데서 싹이 나고 자라 이삭이 피고 완전히 성숙한 열매로 무르익기까지의 기간으로 볼 수 있고 이렇게 인내와 연단을 통해서 온전히 성숙된 후 제 오십 번째 해에 하나님의 희년을 기쁨으로 맞이함으로써 우리가 희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안식과 기쁨과 평안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
[밀 수확]
아브라함과 야곱이 험난한 신앙의 과정을 거치면서 노년의 때에 신앙인으로서 온전히 성숙한 믿음을 소유한 자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복잡한 인생길에서 다사다난한 일들을 겪은 뒤에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참모습이 어떠한 지를 제대로 바라보게 되며, 지난날 육체의 생명이 강건할 때 자신의 육신의 지혜와 힘을 믿고 자신의 뜻을 좇아 행했던 일들이 얼마나 그릇된 길이었는 지를 깨닫고 그로 인해 자신이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진실로 마음을 돌이켜 회개함으로써 희년이신 그리스도를 만나 죄의 노예로 산 삶에서 해방되어 참 자유를 얻는 것이 바로 인내와 연단의 험난한 신앙의 길을 겪은 장년이나 노년의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스스로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고 스스로 돌이키지 못하는 저주의 구렁텅이 속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인생의 쓰라린 경험들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 아버지 하나님께 돌아오게 함으로써 희년을 통하여 우리의 잃었던 기업을 되찾아 소유케 하시고 죄의 노예로 살던 우리를 해방시켜 참 자유를 얻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기쁨과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쓰라린 인생의 경험을 한 자들, 죄에 속박된 채 노예로서 비참한 삶을 산 경험이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희년을 통해 참 기쁨과 평안과 안식의 누림을 경험한 뒤에는 그 희년의 누림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꽉 붙잡고서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살기를 힘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쓰라린 인생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빼앗았던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모두 헛된 것들이며 오직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자신의 생명이요, 양식이요, 거처요, 의복이며 교통수단이다는 사실이 그 뼛속 깊이 각인되었기 때문입니다.
희년의 두 가지 복 중 하나는 우리가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기업으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죄의 노예였던 우리가 해방되어 자유자가 되는 복입니다.
우리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죄의 노예가 되어서 죽어야 하는 절망적인 운명의 굴레에 갇힌 채 소망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하여 자유자가 되게 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 생명을 소유하게 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신 것이 희년이 가져오는 복입니다.
이것이 신약 성경 27권을 통해 전하고 있는 복음의 가장 큰 두 가지 복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참 희년을 선포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죄에 빠져 살던 우리를 하나님께 구원하여 그분을 기업으로 소유하게 한다는 복된 소식입니다.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집을 나간 탕자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 하나님과 그 영 하나님에 의하여 그 탕자가 되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잃어버린 탕자 아들을 찾기 위하여 목자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더 나아가 영 하나님을 보내셔서 인도하심과 사랑하심과 관심과 돌보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희년이 전하는 복음은 우리를 우리의 소유이신 하나님께로 되돌리고 죄와 사탄의 노예로서 억압받던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죄의 속박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다는 것이며 또 사탄의 속박 곧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신다는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육체와 자아가 죄와 세상과 사탄 마귀에 의해서 이중 삼중으로 꽁꽁 묶여 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는 그 속박을 결코 벗어날 수 없고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죄와 사탄 마귀의 도구로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쇠사슬에 묶인 인간]
그런데 죄와 사탄과 세상으로부터 이중 삼중으로 꽁꽁 묶여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우리에게 너무나 기쁜 소식이 전해졌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희년 곧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억압하고 있던 큰 세력, 죄와 사탄과 세상으로부터 우리가 해방되어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와 사탄과 세상의 쇠사슬에 묶여 죽어야 하는 운명 속에 있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희년이 도래하게 되어 우리가 죄와 사탄과 세상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고 하나님을 우리의 소유, 우리의 기업으로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한 생명의 양식과 영원한 거처와 의로운 의복을 풍성하게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희년,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죄와 사탄과 세상의 노예였던 신분에서 해방되고 우리를 얽어맸던 율법과 종교의 굴레로부터도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것이 바로 희년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희년의 핵심적인 복은 우리가 잃어버렸던 기업, 우리의 소유인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것과 죄와 사탄과 세상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어 자유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노예 상태에서의 해방은 탕자의 비유처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났을 때에는 그의 가족들과의 만남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잃어버린 탕자였던 우리가 희년에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그리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 한 형제 자매 된 자들과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 18,19절에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하셨고
21절에서는 ‘오늘날 너희의 귀에 이 말씀이 응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심으로 죄와 사탄과 세상의 억압 속에서 살고 있던 자들에게 그들이 해방되어 자유를 얻고 잃었던 하나님을 다시 찾아 그분을 기업으로 소유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희년이 도래하였음을 선포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누가복음 4장에서 희년을 선포하신 이후 마지막 24장까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고 눈먼 자를 고쳐주며, 죄와 사탄에게 포로 되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행적들을 보이심으로써 은혜의 희년을 단순히 말씀 만이 아닌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도록 그 실제를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누가 참 희년을 선포할 자격이 있을까요?
복된 소식인 참 희년을 전파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들은 바로 주의 복음을 듣고 희년을 누린 자들이 그 희년을 선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제 희년을 누림으로써 복음을 전파하는 희년의 나팔을 큰 소리로 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희년을 실제적으로 경험했기에 당당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선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받으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는 때요, 돌아온 자들은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시고자 하는 그 기업과 분깃을 소유할 수 있는 때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탄과 세상의 노예 된 신분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때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라고 큰 나팔 소리로 선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와 사탄과 세상의 노예가 되어 그것들에 이중 삼중으로 꽁꽁 묶여 있어서 스스로는 결코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지만 하나님의 희년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강력한 권세로 말미암은 슬픔과 고통과 죽음의 굴레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여 자유를 주신다는 희년의 나팔을 불어야 하며 지금이 희년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라는 것을 선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인 희년을 선포하여 많은 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함으로써 절대 벗어날 수 없었던 저주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자유자로서 하나님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 곧 희년의 나팔 소리를 들은 자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옴으로써 죄와 사탄과 세상의 노예였던 신분과 저주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한 생명과 기쁨과 평안과 만족을 누린다는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큰 나팔 소리로 희년을 전파하기 위해서 희년의 복의 실제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참 희년을 먼저 누려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우리 모두 희년의 실제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와 사탄과 세상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와 우리 기업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소유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활 생명과 기쁨과 평안과 안식을 누리고 그 기쁜 희년을 세상에 전파하는 자들이 되시길 간구하며 오늘 말씀을 마치도록 하고 이어서 희년 5편에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