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관련, 사료수집 운동(2)
충렬공 관련, 사료수집 운동을 벌인 지 불과 7일만에 이환 종인이 25일 엄청난 성과를 올렸습니다. 이환 종인은 25일 송의 대학자인 심괄(沈括)의 문집 <보필담>에서 당시 충렬공과 동행한 주부(主簿) 박경작(朴景綽)의 연구(聯句)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하나의 작품만으로도 우리가 벌인 운동의 성과는 기대이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기왕에 추진한 운동이니만큼 여기에서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고려사>, <고려사열전>, <동문선,> <동사강목>, <해동역사>, <속파한집> 등으로 범위를 넓혀 충렬공 관련 사료를 찾아내야겠습니다. 종원 여러분의 전폭적인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흙에 묻힌 조상의 위대한 업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료수집 운동에서 꼭 잊지말아야할 사항을 첨언하고자 합니다. 우선 충렬공과 관련된 품계입니다. 지금까지 1085년 어사(御使)에서 1105년 문하시중과 상주국(上柱國)등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문과급제 후의 관직 등이 거의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또 1087년 송나라 사절의 부사로 갔을 때 직함도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때 송나라에 파견된 기록도 아예 없습니다. 당시의 사실은 심괄의 <보필담>에서 확인될 정도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두 번째로 송나라에 파견된 연도는 1090년설과 1091년설 등으로 갈리고 있습니다. 셋째는 고려사 세가의 1098년 파송 때 <태평어람> 등 서적을 구입해왔다는 사실도 윤관(尹瓘)과 중복되기도 합니다.
아울러 <동문선>에 요(遼)나라 도종(道宗)의 천안절(天安節)에 축하서신을 찬한 기록도 있습니다. 이 서신을 발견하면 공의 글을 온전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왜 무관에게 주는 「忠烈」이란 시호가 문관인 공에게 부여됐는지도 이번 기회에 한번 규명되기를 바랍니다. 기타 종원들의 궁금한 사항도 공부해보시기 바랍니다.
2015년 11월 26일 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