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만한 물가가 있는 관포교회에서 드리는 새벽이슬 같은 이야기 (주일저녁예배)
죽은 사람을 살리는 부활을 믿으십니까?
설교 : 조용안 목사
날짜 : 2020. 10. 18.
본문 : 사도행전 26:8-12
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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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조용안 드림
바울이 가이사랴 감옥에서 머문 지가 2년이 지나갑니다. 재판만 해도 4번이었지만 아직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답답하고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무모하고 모순되고 부조리한 것이 현실입니다. 재판하는 사람들은 바울이 무죄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론의 눈치를 보며 선뜻 석방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소한 자들은 밖에서 바울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아그립바 왕이 허락함으로 바울이 변호하는 장면입니다.
첫째, 부활을 증거하는 바울
본문 8절에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베스도 총독, 아그립바 왕, 여동생 버니게, 유대의 높은 사람들에게 부활을 믿어야 한다고 증언합니다. 여러분은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7-19).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믿으십니까? 건성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어떻게 죽은 사람이 살아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정리해야 합니다. 사람이 죽어도 살수 있다는 부활이 믿어지면 세상에 두려움이 없어지고 평안해집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되어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롬 14:8-9). 사람이 죽어도 살아난다면 아무것도 무섭지 않습니다. 평소에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느냐고 물으신다면 ‘예와 아멘’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믿고 잇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둘째, 어리석은 과거를 고백함
본문 9절에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과거에 초대교회 성도들을 잡아서 투옥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부활했다고 주장하는 나사렛 예수를 대적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간주했습니다. 변호의 기회를 얻은 바울은 유대인의 종교와 풍습을 잘 알고 있는 아그립바 왕, 불륜녀 버니게, 앞뒤가 꽉 막힌 율법주의자들에게 스데반을 죽일 때 같았으면 “독사의 자식들이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질지어다”라고 독설을 퍼부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감옥에서 매인 몸이지만 기쁨으로 부활을 증거합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 7:28-29). 예수님처럼 말과 행동이 일치합니다. 변화된 바울은 격분이 없고 반발이 없고 조롱하는 것도 없습니다. 존경하는 말투로 유순한 모습으로 평안한 가운데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나신 것을 믿는 자답게 살아가는 것을 아그립바 왕도 인정합니다. 세상에 어떤 미련도 없습니다. 우리도 부활을 믿는 자답게 행동하고 처신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4-5). 주님이 오실 날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바울은 부활의 능력을 믿는 자답게 감옥 안에 있었지만 근심과 걱정이 없었으며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기쁨을 계속 강조합니다.
셋째, 열정을 다해 핍박함
본문 10-11절에 “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이전에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외국 원정까지 가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대적하고 그리스도인을 체포하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행 8:1). 부활신앙을 버리도록 과격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는 스데반의 죽음을 당연히 찬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바른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아가야 합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8). 믿음생활하면 은혜가 자라야 합니다. 믿음생활하면 예수님을 닮아서 성품도 자라야 합니다. “예수 더 알기 원하네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내 평생에 소원 내 평생에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다메섹에서 변화되어 예수님을 바르게 알게 되었고 구령의 열정으로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행 26:6). 우리 조상들에게 열방이 복을 받게 하겠다는 약속이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전하는 것 때문에 심문을 받는다고 변호합니다.
'묵상(하가)'은 깊이 생각하다, 으르렁거리다는 뜻입니다. 맹수가 먹이를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듯이 말씀 앞에서의 내 모습이기 원합니다.
댓글은 사귐입니다. 댓글은 영의 생각입니다. 댓글은 믿음 생활의 동력입니다. 말씀댓글에 참여하시면 말씀의 풍성함이 더하여집니다. |
@ 아멘.
@ 주일 말씀을 듣고 큐티 나눔을 하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로다(신명기 33:29).~♡♡
@ 부활을 증거하는 바울. 사람이 죽어도 살아날 수 있음을 믿는다면 세상에 두려움은 사라진다.
한 주간도 부활신앙으로 평안을 누리기 원합니다.
@ 어리석은 과거를 고백함. 부활의 주님을 만난 바울은 감옥 안에서
죽은 사람을 살리는 부활을 증거함으로 기뻐했던 것처럼 부활을 믿는 자답게 행동하기 원하는 날.
@ 열정을 다해 핍박함.
외국 원정까지 가서 그리스도인을 체포하던 사울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은혜가 자라고 지식이 자람같이 (벧후 3:18) 부활신앙으로 자라가기 원합니다.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지식에서 자라 부활신앙을 가진 자답게 믿음 생활하기 원합니다.
@ 죽은 사람을 살리는 부활을 믿는 자는 두려움이 없다. 화냄도 없다. 나는 화냄을 참지 못합니다.
이제 부활신앙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인내하며 기쁨으로 부활을 증거하는 제2의 바울이 되겠습니다.
감사해요.
사랑해요.
@ 부활신앙을 믿는 자답게 살아도 주를 위해 살도록 더욱 큰 은혜를 구합니다.
모든 이들에게 너그럽게 반응하기 위해 힘을 내겠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은혜와 아는 자식에까지 자라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부활을 증거하는 바울. 진짜로 다시 살 줄 믿느냐는 물음에 나는 ‘진짜로’ 다시 살 줄 믿는지 자문해 보았다.
내게는 천국이 있다.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두고 하나님 품에 안겨 영영한 희락과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이 땅에서 그렇게 성취욕에 인정욕에 목말랐던가?
이제는 더 이상 일에 중독되어 밤을 새지도 완벽한 삶과 순간을 위해 이 순간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영영히 주님과 낙원에서 살아갈 것을 이 땅에서 연습하며 남은 여생을 살아가리라.
@ 오늘 말씀을 통하여 부활신앙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봅니다.
믿음의 사람답게 항상 기뻐하며 너그러운 성품으로 한 주간도 살아가겠습니다.
말씀의 댓글을 생각하며 다짐대로 살고자 기도하는 한 주간이 되게 인도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 부활을 믿는 자다운 삶으로 제대로 살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 부활이 믿어지면 두려움이 없고 싸움이 없어진다.
부활신앙을 통해 너그러움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고
늘 은혜를 사모하며 은혜와 예수님을 알아가는 지식이 자라기를 원합니다.
@ “예수 더 알기 원함은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주님! 이 찬송이 나의 찬송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고 은혜가 자라길 원합니다.
@ 아는 믿음에서 믿는 믿음을 갖게 인도하소서.
@ 은혜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길 원합니다. 일하는 것이 힘들다 하여 나에게 시간이 없다, 여유가 없다,
핑계 대며 강퍅해지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믿는 자답게 바쁨 속에서도 너그러움이 있기를….
나의 가족에게 기쁨만 주기를 원합니다.
@ 열정을 다해 핍박함. 교회를 왔다 갔다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날로 새로이 더 많이 자라가길 원합니다.
@ 부활을 믿는 자답게 살게 하소서.
좀 더 너그럽고 좀 더 온유하고 좀 더 지혜롭고 좀 더 성실하게 살
은혜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풍성하게 하소서.
걱정도 맡기고 싸우고 다툼도 그치게 될 줄 믿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 부활의 주님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