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자 칼럼 ●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님”
지난 한 주간은 교회 방학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문준경 전도님의 순교 기념관 방문으로 시작해서, 문준경 전도사님의 사역지인 여러 섬들을 돌면서, 마지막에는 문준경 전도사님의 순교지을 방문했습니다.
암울했던 조선 말, 글을 배우고 싶은 꿈을 가진 여자였지만, 바람난 남자와 결혼한 여자의 인생에는 너무도 아픈 상처로 얼룩졌고, 결국에는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런 여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누군가를 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첫발을 내딛은 교회를 통해서 상처 많은 여자의 인생은, 하나님의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꿈은 복음을 알지 못하며 우상 숭배하는 영혼들에게 자신이 만난 십자가의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 섬들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었습니다.
비록 연약한 여자의 몸이었지만, 마음에 품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섬들을 돌면서 전도했습니다. 똥물을 얻어맞으면서도 찬송하며 전도를 했습니다. 때로는 나룻배를 타고, 때로는 밀물이 들어오기 전에 위험을 무릅쓰고 노두길을 건너면서 섬들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한 알의 밀알과 같은 문준경 전도사님을 통해서 수많은 유능한 목회자들이 세워졌고, 신안군 특히 증도라는 곳은 90% 이상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준경 전도사님은 6.25 전쟁 때, 공산당에게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라는 죄명으로 비참하게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분이 걸어갔던 모습이 자꾸 자꾸 저의 마음에 그려집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걸었던 그분의 걸음걸음이, 감사의 눈물로 느껴졌을 때, 저의 마음에는 또 다른 분이 느껴졌습니다.
그분은 처음 저의 어머니에게 찾아와서 전도를 해주었던 박 집사님이라는 분이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종종, 산 중턱에 위치한 저의 집에 찾아왔던 할머니를 기억합니다.
저가 청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에게 “어떻게 처음 교회가게 되었냐?”고 물었을 때, 저의 어머니께서는 그 할머니가 산 중턱에 살았던 어머니를 전도를 해 주셨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인도했던 그 걸음들은 더 이상 상처 많고 슬픔 많은 걸음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받아 영혼을 구원하는 복된 걸음들이었습니다.
이제는 저의 걸음 또한 그런 걸음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동일하게 구원받은 성도로서, 우리의 걸음도 예수님의 복음을 품고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의 발걸음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