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과거#죄
이 글은 <월간샤밧> 이야르호에 실린 글입니다. 여러 독자분의 요청으로 블로그에 게제합니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언뜻 보기에는 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듯하지만, 그 속에 무거운 철학적 질문을 품은 걸작이다. 독일인에 의한 '홀로코스트'의 성찰과 반성에 관한 주제를 담고 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이글은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이후 현대 독일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성공한 소설이라고 평가되는 법대 교수이자 판사인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작품이다.
또한 이 소설은 2008년 영화로 만들어져 주인공 한나 역을 연기한 케이트 윈즐릿이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수상하기도 했다.
이 소설은 1950년대 독일의 어느 소도시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병에 걸려 허약해진 한 소년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구토를 한다. 그것을 본 한 여인이 소년을 도와준다. 그것은 우연으로 끝나지 않고 뜨거운 사랑으로 이어져, 운명적 사건의 시작이 된다. 소년은 다른 이성에게는 찾을 수 없는 폭풍 같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여주인공 한나는 육체관계를 지속하면서도 자기 가족이나 추억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한나라는 이름도 물어보기 전에는 말해 주지 않을 정도로 항상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책 제목처럼, 매일 만나 먼저 책을 읽고, 그리고 샤워, 사랑을 나눈 뒤 그다음 나란히 누워 있다가 헤어진다. 이 같은 의식은 한참 계속된다. 하지만 이 사랑도 오랫동안 지속되지는 못했다. 갑자기 한나가 갑자기 훌쩍 사라졌기 때문이다. 백방으로 찾아봤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한나가 왜 떠났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직장도 승진이 바로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떠나버린 미하엘의 가슴속에는 자신의 사랑이 진정이었는지, 반대로 자신에 대한 한나의 사랑 역시 진정이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이러한 불신은 한나와 미하엘의 생에 또 다른 불행을 가져온다.
그 후 법학도가 된 미하엘은 어떠한 여자들을 만나더라도, 한나와의 추억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러는 도중 세미나를 위해 참석한 법정에서 피의자 신분이 된 한나를 만나게 된다. 이때부터 한나의 과거가 벗겨지기 시작한다. 그녀는 나치 수용소의 감시원이었다. 그녀의 죄목은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 여자들을 이송 중에 한 교회에 가두어 모두 불에 타 죽도록 한 혐의였다.
과거의 기억과 법정에서의 상황을 복기해 보니, 미하엘은 그녀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게 된다. 바로 문맹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글을 읽고 쓸 수 없음에 대해서 엄청난 수치심을 가지고 있다. 한나는 법정에서 기소된 다른 여자 감시원들이 그녀가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울 때도 자신이 문맹인 것이 노출되는 것이 두려워 필적 감정을 거부하고 보고서를 자신이 작성했다고 시인하고 모든 벌을 자신이 떠맡는다. 그래서 한나는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그렇게 10여 년 수감생활을 하고 있던 한나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첫사랑이자 유일한 사랑이었던 미하엘로부터 녹음테이프를 받게 된다. 이에 그가 아직도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희망에 한나는 그와 편지로라도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에 녹음된 목소리 발음과 책의 표기를 비교하며 홀로 글자를 배우게 된다.
그렇게 어렵게 편지를 보내보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고. 시간은 흘러 1988년 66세가 된 한나는 가석방을 선고받게 되고 20여 년 만에 미하엘의 면회를 받게 된다. 이에 미하엘이 아직도 자신과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생각한 한나는 '옛날 생각 많이 했어요?'라는 미하엘의 질문에 두 사람이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일 거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하엘은 그때가 아닌 한나의 과거 나치 친위대 시절의 잘못에 대해 반성의 의미로 질문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이에 삶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미하엘마저 차가운 모습을 보이게 되면서 한나는 삶을 포기하게 된다.
결국 한나는 석방 예정일 새벽에, 교도소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그녀가 남긴 여러 가지 유품 사이에서 자신이 고등학교 졸업식장에서 학교장으로부터 상장 받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는 것을 본 미하엘은 눈물을 삼킨다. 한나는 첫 만남 후로 한 번도 그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서 내쫓지도 손에서 놓지도 않았다.
남녀 간의 사랑과 나치의 시대사,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밑바닥에 자리 잡은 인간의 약점과 자존심의 문제가 이 소설의 내적인 근간을 이룬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소년과 성숙한 여인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의 알레고리적 요소를 담고 있다.
사랑과 죄의식, 이해와 유죄, 그리움과 수치와 분노라는 상반되는 감정이 마음을 끝까지 괴롭히는 모티브로 남아 있다. 전쟁 세대와 전후 세대 사이에서의 갈등과 두 세대가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비유라 할 수 있다.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 작품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대목은 한나의 문맹에 대한 부분이다. 글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은 무지를 의미한다. 단순히 '무지했을 뿐'이지만 그녀가 감당해야 하는 죄의 무게는 가혹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무지했던 것으로 용서받기에 그녀의 행동이 가져오는 결과는 너무 참혹하다. 작품은 이렇게 보는 이들로 하여금 큰 고민과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무지에 의한 악행이 죄가 될 수 있나'하는 문제들, '한나'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독일 사람'들의 방관자적 태도는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가, 참된 용서와 화해는 어떠한 모습인가 하는 그런 것들….
서구 문명의 주목할 만한 특징 중 하나는 부분적으로 바울 주의 기독교와 철학자 칸트의 영향으로 인해 도덕과 영성에 대해 거의 전적으로 마음과 그 동기의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칸트는 오직 의지만이 선하거나 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칸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문화가 홀로코스트를 일으킨 문화이기도 한 것은 전적으로 우연일까? 많은 선량하고 품위 있는 사람들이 인간에 대한 인간의 가장 큰 범죄가 벌어지는 동안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분명히 그것이 자신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유대인에게 특별한 악의가 없었다면 왜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 그러나 그들의 행동 또는 행동하지 않음의 결과는 현실 세계에서 실제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우리의 행동은 세상에 흔적을 남긴다. 의도하지 않은 죄에 속죄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나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행동과 자신을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잘못은 저질러졌고 그것은 우리가 저질렀기 때문이다
속죄제물이라는 유대의 전통이 있다. 이는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저지른 잘못이나 방관한 일에도 속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의도가 아닌 행동, 즉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를 통해 일어나는 일에 대해 말하는 도덕은 의도만을 말하는 도덕보다 더 설득력 있고 인간 상황에 더 충실한 것이다.
글: <월간샤밧>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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