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사상》 특집 | 시와 전쟁
시가 할 일이 많다
이영숙 (시인ㆍ문학평론가)
‘국군장병 아저씨께’로 시작하는 위문편지를 열 살 무렵부터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 썼던 것 같다. 머나먼 ‘월남 장병 아저씨께’는 더욱 정성을 들였다. 그러나 외삼촌이 군 복무 중 비둘기부대원으로 파월되고부터는 온 신경이 혈육에게만 쏠렸다. 첫 전투에서 옆에 있던 소대원이 허벅지 관통상을 입어 한국으로 이송됐다는 편지를 받은 후부터였다. 그 총알이 외삼촌 허벅지에 맞았다면…, 자칫 상체 어디엔가 맞았다면…. 입대 얼마 전에 우리 마당에서 전통 혼례를 올리고 근처 단칸방에 둥지를 튼 그는 약간이나마 목돈을 챙기기 위해 파월을 단행한, 1970년대를 전후한 당시 찢어지게 가난한 젊은이 중 하나였다. 목숨을 담보로 떠나야 하는 새신랑과 보내야 하는 새신부는 그야말로 애간장이 녹는 이별을 했었다. 무모한 시절이었다. 다행히 무사한 몸으로 귀국한 그는 그러나 궁금증이 많았던 나를 비롯해 그 누구에게도 월남에 대해 일절 함구하였다.
그 얼마 후 미국의 패퇴, 남ㆍ북 베트남의 통일과 종전 소식을 듣고 그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부모님으로부터 6ㆍ25와 피난민에 얽힌 실화를 전래동화처럼 듣고 자랐으며 의무교육 기간 외에도 의무적으로 위문편지를 쓰던 나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상시 환기해 주는 반공국가에 살면서도 전쟁에 대해 다시 무감각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월남전을 다시 현실로 소환한 것은 박영한의 소설 『머나먼 쏭바강』(1977년)이었다. 외삼촌의 심중에 봉인된 말들이 쿵쾅쿵쾅 들려오는 듯했다. 이미 20대에 접어든 내 일상을 세계의 피비린내가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규모 전면전과 국지전, 내전으로 얼룩진 20세기를 우리는 지나왔다. 그러나 새천년이 시작되고도 상황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전쟁의 참상은 우리의 식탁과 침상까지 실시간으로 배달된다. 2020년대 중반에 접어든 현재에만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하마스, 미국ㆍ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복합분쟁은 멈출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무가치하고 무고한 죽음이 난무하고, 문화공동체와 고유한 삶의 양식이 속절없이 파괴되고 있다. 전쟁 당사자들을 중재하고 잘잘못을 가려 전쟁 종식을 추동할 주체가 없는 강자 독식의 세계에서 그나마 연대하여 목소리를 내야 할 각국은 정치적 힘의 논리와 자국의 실리 사이에서 자유롭지 않다. 고통과 절망과 분노와 무감각이 공존하는 이 거대한 현실 공간에서 문학은 무엇을 할 것이며, 시는 또한 무엇이 될 것인가.
파병의 체험을 내면에 아로새긴 채 말하지 않음으로 말을 한 외삼촌과는 달리 백마부대에서 귀환한 박영한은 다른 길을 갔다. 그는 참전 문학의 물꼬를 트면서 자신의 분신인 황일천 병장을 통해 월남전의 비극적 상황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냉전의 논리와 한미 관계, 국가의 명분 등을 날줄로 하고, 월남의 풍물과 내전 상황, 사랑과 개인적 양심 등을 씨줄로 하면서 그 뜨거운 교차점에 무고한 이들을 쏜 죄책감을 배치한 것이다. 역시 백마부대로 파병되었던 김태수는 그로부터 10여 년 후에 시집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1987년)를 출간하였다. “내 스무 살의 시작은 ‘자유의 십자군’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출정한 베트남전쟁, 너무나도 참혹하고 황폐했던 기억에서 출발되었다”라고 자서(自序)에서 밝힌 그는 또한 “은유와 직유로 망가진 세상과/ 고국 월간 문학지들 속, 비유법으로 풀풀 날리는/ 메스꺼운 시편들을 생각하다가/ 빌어먹을 비유가 뭐냐/ 나는 그런 것 안 쓴다”(『편지』)라고 선언했다. 전쟁이라는 압도적인 날줄 앞에서 시적 기교는 오히려 진실을 가리는 기만이라고 본 것이다. 씨줄(실존적 체험)이 날줄(구조적 모순)을 직접 타격하는 방식으로 그는 시적 리얼리티를 채택하였다. 소설이 전쟁의 구조적 모순을 독자에게 알리고자 했다면, 그는 전쟁의 참혹을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감염시키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특히 참전 문학에서 날줄을 가시화하고 수많은 씨줄을 촘촘히 엮어 ‘전쟁터라는 하나의 세계’를 ‘재현(Representation)’하는 것이 소설이라면, 날줄을 뚫고 나오는 ‘송곳’ 같은, 훼손된 육체와 처참한 현장으로서의 씨줄을 그대로 독자의 눈앞에 ‘제시(Presentation)’하는 것은 시이다. 그러므로 소설은 설명과 인과로 빚은 서사적 언어이고, 시는 증언과 비명으로 빚은 육체적 언어에 가깝다. 전장을 이해하는 것과 전장을 느끼는 것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2015)를 읽을 때 이 ‘목소리 소설’로 일컬어지는 새로운 장르의 다큐멘터리 산문이 시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작가의 인터뷰는 전쟁 서사의 흐름을 끊어내고 오직 ‘한 여인이 겪은 단 하나의 순간’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수백 명 인터뷰이(interviewee)의 짧은 증언들에는 침묵이나 흐느낌, 머뭇거림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가 포함되어 행간에 여백을 부여했고, 또한 구어체가 감각과 구체와 운율을 통해 고통의 실체를 형상화하고 있었다. 이는 박노해 시인이 2003년 이라크 전쟁 발발 당시 바그다드로 날아간 이후 팔레스타인,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의 분쟁 지역을 돌며 발로 쓴 시 모음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2010)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지만 멈추지 않았다. 전쟁 반대와 인간 방패 역할, 구호 활동을 계속하면서 전장의 화약 냄새와 무너진 건물, 모래바람 속 피난민을 비롯한 민중의 일상과 아이들의 해맑은 눈동자를 수백 편의 짧은 증언처럼 그려냈다. 그들은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로 증언했고, 가려진 범죄와 그 고통을 우리가 외면하지 못하도록 공론화했으며, 고통에 공감하는 세계인들과 연대했다. 이들의 시는 사진과 음악처럼 우리의 가슴을 열고 직접 전해졌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허버트 후버는 “늙은이들이 전쟁을 선포한다. 그러나 싸워야 하고 죽어야 하는 것은 젊은이들이다.”라고 일갈했다. 베트남전쟁에서도 그랬듯 병사들은 신념이 아니라 명령을 받았으니까 총을 쏘고 총을 안 쏘면 내가 죽으니까 총을 쏜다. 지금 이 시각에도 앳된 젊음이 무위하게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전쟁은 죽음으로 가시화되지만, 한두 명 죽은 건 기삿거리도 되지 못하다 나중에 통계에 인용될 뿐이다. 100명 이상의 어린이와 여자가 한몫에 죽어야 언론이 몰려든다. 성토와 아우성에는 치유도, 애도도 없다. 전쟁의 부조리를 성찰하는 눈, 전쟁이 고갈시킨 연민을 회복하고 죽음을 응시하는 눈이 필요하다.
시집 『듣지 않는 자들의 공화국』(2025)을 쓴 일리야 카민스키(Ilya Kaminsky)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미국인이고, 아직 국내 번역이 되지는 않았지만 『Things You May Find Hidden in My Ear(가자에서 태어난 것)』을 쓴 모사브 아부 토하(Mosaab Abu Toha)는 가자지구 출신의 팔레스타인 시인이며, 세르히 자단(Serhiy Zhadan)은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현지를 지키고 있는 ‘국민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그들은 시의 힘으로 국경을 넘어 국제적인 연대를 이끌어내고 있다. 시 쓰는 이들이 모두 전장으로 달려 나가야만 할까. 그러나 멀리 갈 것도 없이 화약고 같은 나라를 조국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역시 그들과 형제처럼 닮았다.
잠시 멈춰 생각해 보면 현실 세계도 사실은 전장이다. 말 없는 성실함으로 80세가 될 때까지 개인택시를 몬 외삼촌은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을 꽤 모아두었고 이제 복지관에 나가 운동이나 하면서 평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아스팔트 우파까지는 아니더라도 박정희 덕에 이만큼이나마 살고 있다고 여전히 믿는다. 베트남에 가자마자 부상당해 귀국한 그의 동료 대원을 나만 기억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와 그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그게 내내 염려스럽고 궁금했다. 이 대들보 같은 아이러니를 끊을 방법이 없어 우리나라 역시 내전 상황이다.
이래저래 시가 할 일이 많다.
―《푸른사상》 2026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