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3월 17일 사순절 다섯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17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입니다.
성경 계11:14-18절(신410)입니다.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일곱째 나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읽고 있습니다. 요즈음,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간증이 유행한다고 합니다. 아마 시대가 불안하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주관적인 간증을 통해서 천국과 지옥의 존재에 대하여 지식을 가질 수 있으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이것들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11:14-18)을 통해서 우리 자신과 인류의 최종적인 미래(종말의 완성)에 대하여 살펴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바른 자세를 갖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삽입(10장과 11:1-13)의 결론과 마지막 화인 일곱 나팔(15-18)을 소개합니다(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여기서 ‘둘째 화’는 여섯째 나팔을, ‘셋째 화’는 일곱째 나팔(15-18)을 가리킵니다.
‘둘째 화가 지나갔다’는 것은 여섯째 나팔을 포함해서 10장과 11:1-13절의 삽입의 내용까지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실제 역사에는 아직 둘째 화가 지나갔지 않았지만, 요한의 환상에서 둘째 화가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입니다. 이것은 이제는 오직 남아있는 셋째 화(일곱 나팔)만이 빠르게 오고 있다는 선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예언의 말씀대로 종말의 마지막이 빠르게 오고 있는데,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요?
먼저, 종말의 마지막에 하늘의 승리 선포입니다(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여기서 ‘세상의 나라(정관사+단수 명사)’는 세상의 모든 나라를 대표합니다. 그리고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에서 ‘그’가 단수 명사이며 ‘왕 노릇 하시리로다’가 단수 동사이기에 ‘우리 주(하나님)와 그의 그리스도’가 소유하신 주권(통치권)의 단일성을 시사합니다. 즉 ‘우리 주의 나라’는 곧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세상의 나라’는 원래 하나님의 소유였는데, 반역한 사람들이 주인인 악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심판으로 저주와 사망의 나라이며, 강자가 약자들을 착취하는 불의한 나라입니다. 반면에 ‘우리 주(하나님)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는 그들이 소유하신 영원한 나라로서 죄가 없는 완전한 의, 부패와 죽음이 없는 영생, 불안이 없는 평강, 미움과 불행이 없는 완전한 사랑과 기쁨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큐리오스)’라는 칭호(15)가 중요합니다(17). 이것은 통치자, 주인, 수호자, 지배자, 소유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주’이면, 우리는 그의 소유(종)입니다(18, 롬1:6).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나라’입니다(1:5, 9).
또한, ‘우리 주(하나님)의 나라’는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이기에,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가 소유하며 왕 노릇 하는 나라입니다.
여기서 ‘되어’는 부정과거로서 이미 불었다.’, ‘이미 나왔다.’, ‘이미 되었다’라는 의미이며, ‘왕 노릇 하시로다’는 미래시제로서 ‘통치하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고, ‘세상의 모든 나라가 우리 주 하나님과 그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가 되었다’라는 이미 성취된 사실을 보았던 하늘의 큰 음성들이 단지 선언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15)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10:7)라는 말씀대로 하나님 복음(비밀)이 완성되었다는 하늘의 선포입니다. 막1:14-15절입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이처럼 하나님의 그리스도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오심으로 이미 이 세상에 임한 종말의 하나님 나라가 일곱째 나팔의 불림, 즉 그의 재림으로 완전하게 완성되었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천국)’는 어디에서 이루어질까요? 하늘에서요? 아니요. 하늘에서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9-10)라는 주의 기도를 가르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 영원한 나라를 상징하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새롭게 될 땅으로 내려올 것입니다(21:10). 이것은 에덴동산(창2장)이 땅끝까지 확장된 것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죽어서 하늘에 있는 영혼(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이 땅으로 내려올 것입니다(골3:3-4, 살전4:14).
그러나 살전4:17절입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여기서 우리 살아남은 자들을 공중에서 재림하시는 주를 영접(환영)하게 하신다는 것인데,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을 장소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이것(15)은 우리의 주 기도에 대한 응답이며, 모든 성도의 기도(8:3-4, 6:9-10)에 대한 응답이며, 성경에서 모든 언약과 약속, 즉 복음에 대한 완전한 성취입니다. 천지가 흔들려도 반드시 새 언약(복음)대로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에서 ‘복음’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진정으로 회개하고 믿을 수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세상의 나라는 자기가 주인(왕)인 나라인데,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주인(왕)이신 나라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은 피조물인 우리 자신이 스스로 주인(하나님) 노릇을 하는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과 그의 그리스도가 피조물인 우리와 만물의 주인이시라는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음’은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만물)의 주인이 되신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믿는 우리에게 가장 먼저 자기를 부인하게 합니다. 마16:24절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성도 여러분, 주 예수의 복음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하늘의 이십사 장로의 경배와 찬양입니다(16-18).
첫째는 이십사 장로의 경배입니다(16).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여기 ‘이십사 장로’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대표합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다’라는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의 왕권에 참여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1:5-6, 9, 2:26-28, 3:21, 5:5-10).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영원히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그들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오직 하나님만이 그들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절대복종과 그의 권세와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들의 찬송입니다(17-18).
그들의 찬송은 감사함으로 시작합니다(17a).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이것을 직역하면, “우리가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주, 전능하신 하나님,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던 당신이시여, 왜냐하면, 당신께서 큰 권능을 취해오셨고, 통치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당신께 감사하옵나니’는 현재형으로 ‘당신께 감사하다, 감사하면서 찬미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천국에서 우리의 유일한 태도입니다.
그들의 감사의 대상은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 지금도 계시고 전부터 계셔오신 이’입니다. 여기서 ‘주 하나님’ 칭호(15)는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우주 만물과 모든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의미이며, ‘전능하신 주 하나님’ 칭호는 우주 만물과 모든 역사를 완전한 권위와 능력으로 통치하시는 주 하나님이시라는 의미이며, ‘지금도 계시고 전부터 계셔오신 이(주 하나님)’ 칭호는 우주 만물과 모든 역사를 한순간도 빠짐없이 항상 주관하시는 주 하나님이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1:4, 8)라는 주 하나님의 삼중적 칭호와 달리 ‘장차 오실 이’라는 말이 의도적으로 생략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는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고 그가 이미 오셔서 그의 영원한 통치를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17b).
그래서 ‘장차 오실 이’ 칭호를 “(왜냐하면)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17b)라고 대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십사 장로의 감사 찬송의 이유이며,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15)라는 하늘의 큰 음성들에 대한 그들의 전적인 동의입니다.
여기서 ‘잡으시고’는 완료로서 ‘큰 권능을 잡아 오셨고’라는 의미이며, ‘왕 노릇하시도다’도 부정과거로서 ‘왕 노릇하셨기 때문입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도 일곱째 나팔이 불렸고 최후의 심판과 구원을 보았던 하늘의 이십사 장로의 관점에서 감사 찬송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하늘에 큰 음성들(15)과 그들의 감사 이유(17b)를 좀 더 구체적으로 찬송(설명)합니다(18). 여기서도 하나님의 최종 심판과 구원을 경험한 그들의 시점에서 그 사건들의 과거 특정한 때를 나타내는 부정과거가 사용됩니다.
첫째, ‘이방들이 분노하매(하였다)’(18a). 이것이 18절의 전체 내용의 근거를 제시합니다. 누구에게 그리고 왜 분노하였으며, 무슨 의미일까요? 시2:1-3절입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이것은 그들에 대한 여호와와 그의 그리스도의 맨 것, 즉 주(왕) 되심을 거절하고자 하기에, 이방들이 여호와와 그의 그리스도에게 분노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누가 이방들에 대한 주(왕)인가’가 중요한 이슈입니다. 이방들에 대한 여호와와 그의 그리스도의 소유권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즉 이것을 계시하며 회복하는 그의 복음을 거부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복음을 깊이 생각하시고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롬14:7-10).
둘째, ‘그리고 주의 진노가 내렸다’(18b). 이것은 주와 그의 그리스도에게 분노하는 이방들, 즉 복음을 거절하는 그들에게 주의 진노가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 ‘주의 진노’는 역사상에서 첫째 나팔로부터 여섯째 나팔까지의 주의 심판을 의미할 수 있으나 최후 심판을 의미합니다. 이는 최후 심판의 문맥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방들에게 주의 진노가 내렸던 종말의 최후의 때(카이로스)입니다(18c). “죽은 자(들)를 심판하시며, (주의) 종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첫째로 그때는 ‘죽은 자들이 최후 심판을 받을 때’입니다. 여기서 ‘죽은 자들’은 복음을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계20:12-13절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이처럼 요한계시록은 복음을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을 단순히 ‘죽은 자들’, 믿고 죽은 자들을 ‘죽은 자들의 영혼’(6:9, 20:4-6)이라고 표현합니다.
둘째로 그때는 ‘주의 종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을 주실 때’입니다. 여기서 ‘상’은 주의 심판과 대조되는 영광의 구원(영생과 부활과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미할 것입니다.
여기서 ‘상(구원)을 받을 자들’은 ‘주(당신)의 종들’입니다. ‘주의 종들’은 주 예수 의 복음에 의하여 주의 소유가 된 자들, 즉 주를 위해 존재하는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주 하나님’(17)의 명칭에 대응되는 명칭입니다. 그래서 그의 복음을 믿는 신자는 다 ‘주의 종’이라는 이름을 갖습니다(2:20, 7:3, 19:2, 5, 22:3).
‘주의 종들’은 주(하나님)와 그의 복음을 예언(증거)하는 자들이기에 ‘그의 선지자(예언자)들’(11:7)이며, 세상과 구별되어 주(하나님)와 그리스도에게 속(소유되어)하기에 ‘성도들’이며,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큰 자’보다 먼저 ‘작은 자’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중요하지 않은 작은 자라고 절대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그때는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는 때’입니다.
여기서 ‘망하게 하는(현재분사)’와 ‘멸망시키는(부정과거)’ 동사는 같은 단어(디아프데이로)입니다. 이 동사는 문자적으로 ‘파괴하다, 멸망시키다’라는 의미이며, 비유적으로 ‘부패시키다, 타락시키다’라는 의미입니다. 특히 합성된 전치사 ‘디아’는 동작의 완료나 완전함을 나타내므로 ‘철저하게 멸망시키다’라는 의미입니다.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은 여호와와 그의 그리스도에게 분노한 이방들을 가리킵니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함을 받은 인간이 창조 언약에 따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를 통치(대표)하는 왕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조상, 아담이 범죄로 인하여 땅을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하였을 뿐(창3:17)만 아니라 그들도 죄악으로 땅을 더럽게 하고 있습니다. 계19:2절입니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이 종말의 마지막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롬8:19-21절입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피조물보다 무지하며 어리석은 자일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일곱째 나팔이 울렸고, 종말의 최후 심판과 구원으로 세상의 모든 나라가 우리 주과 그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가 되었다는 하늘의 선언과 우리를 대표하는 이십사 장로의 감사 찬송을 통하여 우리가 최종적으로 돌아갈 영원한 본향(고향)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이 복음(새 언약)의 약속입니다. 천지가 흔들려도 우리 자신과 모든 우주에 우리 복음(새 언약)대로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 종말의 관점에서 우리 자신과 이 세상과 역사를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소명이 천국을 위하여 ‘사람을 낚은 어부’(마4:19)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천하를 얻는 것보다 한 영혼을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에서 구원하는 것이 더욱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요? 고후5:18절입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나라를 주목하시며 그 나라를 먼저 구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찬송 235장을 부르신 후에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