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 간다. 세월의 흐름이 백구과극이라는 말이 유독 실감나는 요즘이다. 어느덧 나이는 쌓이고 몸의 노화는 빨라지며 남은 날들은 아쉬움을 남긴 채 줄어든다.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의 절실함이 마음 깊이 와닿는다. 우리 6반 반창회의 목적은 거창하지 않다.. 함께 걷고, 대활르 나누며, 맛있는 음식을 즐김으로써 노화를 잊고 삶의 활력을 얻는데 있다. 이번 모임의 목적지는 조선 5대 궁궐 중 하나인 경희궁이다. 여행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는 해방감도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기쁨이다.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 오전 10시 30분에 만남의 약속을 정했다. 강원도 속초에서 불원천리 달려온 조진우 교우를 포함해 7명의 교우가 모였다. 먼길을 마다치 않고 달려온 교우의 성의에 고마움이 앞선다. 서로 반갑게 안부를 나누며 도보로 약 7분 거리에 있는 경희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한 것은 흥화문(䕟化門)이다. 흥화문은 경복궁 중건 당시에는 보존되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32년 이토히로부미를 추모하는 사찰인 박문사의 정문으로 쓰이는 수나을 겪었다. 광복 후 영빈관과 신라호텔의 정문으로 사용되다가 1988년에야 비로소 경희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원래 위치는 이미 민간 소유지가 되어버린 탓에 서쪽으로 220m 떨어진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다. 궁궐 정문을 지나 만나는 금천교가 서울역사관 진입로에 위치해 있는 것만 보아도 예전 경희궁의 규모가 얼마나 웅장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광해군 때 지어진 경희궁(당시 경덕궁)은 7만여 평에 120여 채의 전각들이 들어섰던 거대한 궁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겨우 5섯 채만 남아있어 쓸쓸함을 더한다. 홍화문을 지나자 수많은 인재를 길러낸 서울중고등학교 터라는 표석이 눈에 들어온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1910년 일제가 경성중학교를 세운 뒤 해방 후 서울중고등학교로 이어지며 1980년까지 경희궁 터는 학교로 쓰였다. 송관순 교우는 64년 전 서울중학교 재학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어들었다. 나무 숲길을 따라 오르자 인왕산의 선명한 산세와 함께 넓은 잔디마당, 그리고 계단 위의 숭정문(崇政門)이 모습을 드러낸다. 원래 전각들이 빼곡했을 마당은 헐려나가고 경희궁 공원으로 쓰이고 있다. 이 숭정문은 조선 22대 왕 정조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유명한 즉위 일성을 남긴 곳이자, 경종과 헌종이 즉위했던 역사적인 장소다.
숭정문을 지나 정전인 숭정전(崇政殿)으로 들어섰다. 1926년 일제에 의해 남산의 일본 사찰 조계사(현재 종로의 조계사와는 다른 곳) 법당으로 팔려 나갔던 숭정전은, 훗날 동국대학교 내 법당인 정각원으로 쓰였다. 1980년대 후반 복원 고정에서 건물이 너무 노후화되어 원래 건물은 남겨두고 1990년에 원형을 본따 새로 지은 것이 지금의 숭정전이다. 문무백관의 조회와 중국 사신 접견 등 국가 행사가 열리던 위엄 있는 장소가 한때는 교실로 쓰였다니 기가막힐 노릇이다. 숭정전 뒤편으로는 임금의 집무실인 편전 자정전(資政殿)이 나온다.
숙종과 영조 때 편전으로 쓰이다 후대에는 빈전으로 활용되었으나, 고종 초 경복궁 복원을 위해 헐렸다가 2001년에야 복원되었다. 자정전 뒤로는 숙종이 상스러운 바위라 이름 붙인 서암(瑞巖)이 위용을 자랑하고, 영조의 어진을 모셨던 태령전(泰寧殿)이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다. 숭정전 동편에는 생뚱맞게도 거대한 방공호가 남아있다. 왕과 왕비의 침전이었던 융복전과 회상전이 있던 자리다. 숙조 임금이 태어나고 세상을 하직한 뜻깊은 장소에 일제 패망 직전인 1944년 대형 방공호가 들어선 것이다. 식민지 잔재의 아픈 역사를 증언하는 쓸쓸한 교훈으로 남아있다.
다행히 경희궁 일대를 서울광장 10배 규모의 역사문화공원으로 새롭게 조성할 계획이라고 하니, 언젠가 시민들의 한층 더 쾌적한 휴식처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이어 경희궁 어도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조선시대 한양 도읍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도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한양의 중심 행정관서들이 줄지어 있던 '육조거리' 전시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정도전이 "마치 별들이 북두칠성을 둘러싸고 있는 것 같다(열서성공, 列署星控)고 묘사했던 육조거리의 풍경에서 한양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박물관을 둘러보며, 빠르게 변해가는 서울의 미래도 함께 그려보았다. 관람을 마친 뒤 오찬장소인 광화문 고봉삼계탕으로 이동했다. 따끈한 한방삼계탕을 앞에 두고 반가운 술잔이 오가고 살가운 정을 나누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게 웃음꽃이 피어났다. 모두가 그릇을 말끔히 비우며 든든한 온기를 채웠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각자의 일상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지난 모임들은 돌아보면 교우들과 함께한 시간은 마음의 평안과 즐거움 그 자체였다. 건강의 뿌리는 바로 이 마음의 평안과 즐거움에서 시작되는 것이리라.
몸은 세월을 따라 늙어가지만, 정겨운 교우들을 만날 때만큼은 마음만은 다시 청춘으로 돌가는 듯하다. 노년의 가장 큰 복은 무엇보다 건강이다. 자주 만나 수다도 떨고 웃음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건강을 지키는 가장 좋은 약이다. 2026년 새해에도 우리 모든 교우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를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