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시절 월궁(月宮)에 가 계수나무 밑에서 약 방아 찧다가 유궁후예(有窮后羿) 부인1)이 불로초를 얻으러 왔기에 내가 주었으며, 삼천갑자 방삭(東方朔)은 나에게는 시생(侍生)이요, 팔백 년을 살았다는 팽조(彭祖)도 내게 비하면 구상유취(口尙乳臭)라. 이러한즉 내가 그대에게는 몇십 갑절 존장(尊長)이 아닌가. ’ 고 토끼가 먼저 자신의 나이가 위임을 내세웁니다. 이에 자라는 한술 더 떠 ‘..요임금의 격양가(擊壤歌)나 순임금의 남풍가(南風歌)는 어제 들은 듯 즐겁고, 우임금의 구년홍수(九年洪水) 다스릴 때 그 공덕 내가 찬양하고, 탕임금 상림(桑林)에 들어 비 빌던 일 다 눈에 역력하다. 굴원(屈原)이 멱라수(汨羅水)에 빠졌을 때 구해주지 못한 게 지금도 후회된다’ 고 받아칩니다.
다음은 아무래도 고향 자랑이 아닐까요. 별주부전을 통틀어 문학적으로 빼어난 데가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토끼가 사는 뭍(靑山)과 자라가 사는 물(水宮)에 대한 장광설은 가히 고전 시가(詩歌)의 진수를 총망라했다고나 할까요. 토끼가 먼저 그가 사는 산천경개를 읊조리는데,
“삼산(三山) 풍경 좋은 곳에 산봉우리는 칼날같이 꽂혔는데, 배산임수(背山臨水)하여 앞에는 춘수만사택(春水滿四澤)이요, 뒤에는 하운다기봉(夏雲多奇峯)2)이라. 명당에 터를 닦고 초당(草堂)을 한 간 지어 내니, 반 간은 청풍(淸風)이요, 반 간은 명월(明月)이라3). 뒷 뫼에 약을 캐고 앞 내에 고기 낚아 입에 맞고 배부르니 이 아니 즐거운가. 한가한 구름은 그림자를 희롱하니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4)이라. 몸이 구름과 같이 세상 시비 없고 보니 내 종적을 그 뉘 알랴. 추위 지나고 더위가 오니 사시를 짐작하고, 날이 가고 달이 오니 광음(光陰)은 내 몰라라. 녹수청산(綠水靑山) 깊은 곳에 만화방초(萬花芳草) 우거지고, 봉황과 공작 서로 부르는 소리 이 봉 저 봉 풍악(風樂)이요. 앵무새 두견새 꾀꼬리 소리 이 골 저 골 노래로다.
註1) 전설 속의 궁신(弓神)인 예(羿)를 유궁후예(有窮后羿)라 부르며, 그 아내가 항아(姮娥, 또는 嫦娥)로 달의 여신. 옥황상제가 자기 아들 9을 활로 쏴 죽인 예(羿)와 그 부인을 인간으로 강등시켜 지상으로 내려 보내자, 항아는 서왕모(西王母)에게 불로초를 구하여 혼자 먹었다나..
註2) 한시의 비조 도연명(陶淵明)의 사시(四時, 동시대 동진(東晉)의 화가 고개지(顧愷之)의 작품이라는 설도 있음),
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峯 봄 물 사방 못에 가득하고, 여름 구름 기이한 봉우리를 많이 만드네.
秋月揚明輝 冬嶺秀孤松 가을 달 휘영청 밝게 빛나고, 겨울 산마루 빼어난 자태의 외로운 소나무
註3) 가사문학의 태두 송순(宋純)의 시조,
십년을 경영하여 초가 한 간 지어내니,
반 간은 청풍(淸風)이요, 반 간은 명월(明月)이라.
청산(靑山)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註4) 시선(詩仙) 이백(李白)의 시 산중문답(山中問答)
問余何事棲碧山 왜 산에 사느냐 묻기에,
笑而不答心自閑 대답 없이 그냥 웃으니 마음 절로 한가롭다.
桃花流水杳然去 복사꽃 물에 흘러 아득히 떠내려가니,
別有天地非人間 인간 세상이 아닌 별천지로다.
적벽강(赤壁江) 무한한 경개를 풍월(風月)5)로 수작(酬酌)하고, 아미산(峨眉山) 반달6) 을 취중에 희롱하며, 삼신산(三神山)의 불로초도 뜯어먹고 동정호(洞庭湖)에서 목욕한다. 산속으로 들어 드니 층암(層巖)은 집이 되고 낙화(洛花)를 자리 삼아 한가히 누었으니, 수풀 사이 밝은 달은 은근한 친구 같고 솔바람 소리 은은한 거문고라.. 돌베개에 높이 누어 취흥에 잠이 드니 어디서 학의 소리 잠든 나를 깨울세라. 흰구름은 천리 만리에 덮혀 있고, 밝은 달은 앞 시내 뒷 시내에 비쳤더라. 산이 첩첩하니 삼산(三山)은 청천(靑天) 밖에 떨어져 있고 물이 잔잔하니 이수(二水)는 백로주(白鷺洲)에 갈라져 있도다7). 도도한 이 내 몸이 산수간(山水間)에 누었으니 무한한 경개 정승 주어 아니 바꾸겠노라.. 이화도화(李花桃花) 만발하고 푸른 버들 휘어진데, 동서남북 미색(美色)들은 시냇가에 늘어앉아 섬섬옥수(纖纖玉手) 넌짓들어 한가로이 빨래할 제, 물 한 줌 듬뻑 지어다가 연적(硯滴)같은 젖통을 슬쩍슬쩍 씻는 양은 요지연(瑤池淵)8)과 방불하고, 녹의홍상(綠衣紅裳) 미인들이 짝지어 추천(鞦韆)하는 모양 광한루(廣寒樓) 경개가 완연하다..
註5)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 도입부
擧酒屬客 誦明月之詩 歌窈窕之章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
술들어 손님에게 권하며 明月을 읊조리고 그윽하고 조용한 가사로 노래한다.
좀 지나 달이 동산 위에 떠 올라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로 지나 가는데...
註6) 이백(李白)의 시 아미산월가(峨眉山月歌)
峨眉山月半輪秋 아미산에 뜬 가을 반달,
影入平姜江水流 달 그림자 강물에 흘러 내려간다.
夜發淸溪向三峽 청계를 떠나 삼협으로 가는 밤길
思君不見下逾州 그대 그리며 유주로 내려가노라
註7) 이백의 금릉 봉황대에 올라(登金陵鳳凰臺) 후반부
三山半落靑天外 삼산은 반쯤 푸른 하늘 밖에 걸쳐있고
二水分中白鷺洲 두 물줄기 갈라져 백로주를 이루는 도다
總爲浮雲能敝日 온통 뜬 구름이 해를 가려
長安不見使人愁 장안이 보이지 않으니 나를 시름 짓게 하네
註8) 곤륜산(崑崙山)에 있다는 전설 속의 연못으로, 周나라 목왕이 서왕모(西王母)와 밀회한 곳
급할 것도 없으니 자라의 수궁(水宮) 찬가는 다음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