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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폭포..2020.10.20.화
지난 10월 19일부터 23일까지 4박5일간 전남 구례 피아골계곡과 연곡사
경남 하동 칠불사, 쌍계사 불일폭포, 쌍계사, 화개장터를 돌아보고
이어서 남원 지리산 칠선계곡, 백무동계곡, 달궁계곡을 거쳐 구례 운조루에
들려 고택탐방을 마치고 노고단에 올랐다.
집으로 올라오는 편에 고군산군도의 선유도와 장자도, 대장도를 돌아보고
무사히 돌아왔다.
남도천리2 - 칠불사와 불일폭포(20.10.20)
智異山七佛寺 一柱門(지리산칠불사 일주문)
不忘七佛庵(불망칠불암 - 칠불암을 잊지말자)
駕洛紀元一九四九年三月十四日(가락기원 1949년 -서기 1991년- 3월14일)
駕洛全南靈巖郡宗親會(가락전남영암군종친회)
會長金正泰外六百一名謹竪(회장 김정태외 601명 삼가 세우다)
영지(影池)
1세기경(가락국은 후한 광무제 建武 18년, 임인년, 서기 42년에 건립)
가락국의 시조 金首露王과 許黃玉 부부가 출가 수도중인 일곱왕자의 成佛을
기원하고, 그 모습을 그림자로나마 보기위해 만들었다는 그림자 연못
김수로왕과 허황옥왕비가 영지에 비친 일곱왕자를 보기위해 올라섰다는 바위돌
天飛淵路(천비연로 - 하늘을 날으는 연못 길)
禪敎兼修 理事圓通 霽月堂 通光大禪師 碑銘(선교겸수 이사원통 제월당 통광대선사 비명)
선종과 교종을 겸하여 수행하고 닦았으며 사물을 처리하는데 원통하셨던 제월당
통광대선사 비명
1948년 여순사건 때 亞字房을 비롯한 대가람이 모두 불탔다. 그 후 30년 폐허로
버려져 있다가 제월당 통광대선사가 1978년부터 20여년간 佛事를 일으켜 세웠다.
霽月堂 通光大禪師 僧塔(제월당 통광대선사 승탑)
통광대선사(1940~2013)의 임종게(臨終偈), 역서 <초의다선집>, <진감선사대공탑비문>
(경남 하동 화개면에서 태어나 칠불사 아자방에서 입적)
生本無生何好生(생본무생하호생) - 살아도 본래 삶이 없는데
滅本無滅何惡滅(멸본무멸하오멸) - 죽어도 본래 죽음이 없는데 어찌 죽음을 싫어 할 것인가
生滅好惡寂滅處(생멸호오적멸처) - 나고 죽음과 싫고 좋음이 적멸한 곳에
法身光名遍法界(법신광명편법계) - 법신광명이 법계에 두루하네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 편액이 걸려 있는 보설루(普說樓)
대웅전(大雄殿)
대웅전(大雄殿)의 주련(柱聯)
彿身充滿於法界(불신충만어법계) - 부처님 몸 법게에 충만하사
普顯一切衆生前(보현일체중생전) - 모든 중생 앞에 나타나시니
隨緣赴感靡不同(수연부감미부동) - 인연 따라 감응함이 두루하시어
而恒處此菩提座(이항처차보리좌) - 이 보리좌에 항상 계시네.
수미단(須彌壇)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좌에 문수보살, 우에 보현보살
영상회상도는 목각탱으로 새겼다.
칠불목각탱(七佛木刻幀)
가락국 수로왕과 허황후사이에는 아들이 10명 있었는데, 한 사람은 태자가 되고
두 왕자는 어머니인 허황후의 성씨를 잇고 허씨가 되었으며 일곱 왕자는 부처가
되었다. 여기 칠불 목각탱에 조각되어 있다.
아자방(亞字房)의 주련(柱聯)
千峯盤窟色如籃(천봉반굴색여람) - 천 봉우리 깊은 골짜기 쪽빛 같이 푸르른데
誰謂曼殊是對談(수위만수시대담) - 그 누가 말하리 문수만나 이야기 했다고
堪笑淸凉多少衆(감소청양다소중) - 우습다 청량산 대중이 몇이냐고 하니
前三三與後三三(전삼삼여후삼삼) - 전 삼삼 후 삼삼이라 함이여
曇空手藝遠聞唐(담공수예원문당) - 담공선사 빼어난 솜씨 멀리 당나라까지 알려졌고
來自金官築亞房(내자금관축아방) - 금관가야에서 오시어 아자방을 축조하셨네
巧制奇功窺不得(교제기공규부득) - 정교한 공법 기이한 공적 엿볼 수 없으나
令人千萬費商量(영인천만비상량) - 사람들로 하여금 천번 만번 생각케 하네
松風秋月斑圓石(송풍추월반원석) - 솔 바람 가을 달은 바위에 비춰 어리고
枯木花開劫外香(고목화개겁외향) - 고목에 꽃이 피니 영겁 밖의 향기로다
他年與我來相見(타년여아내상견) - 훗날 나와 더불어 만나게 되면
臨濟狂風現一場(임제광풍현일장) - 임제의 선풍이 한 바탕 나타나리
칠불사 아자방지(七佛寺 亞字房址, Ajabang Room Site of Chilbulsa Temple)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4호, 하동군 화개면 범왕길 528
칠불사는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외삼춘 장유보옥(長有寶玉)화상을 따라
이곳에 와서 수도한 지 2년 만에 모두 성불(成佛)한 것을 기념하여 수로왕이 창건했다는
전설이 깃든 절이다. 이름도 일곱 왕자가 성불한 곳이라는 의미이다.
칠불사는 신라 효공왕(897~911)때 담공(曇空)선사가 선방인 벽안당(碧眼堂)에 만든
아자방(亞字房)으로도 유명하다. 아(亞)자 모양으로 놓은 구들은 불을 한 번 때면
온기가 100일간 지속된 불가사이한 방으로, 중국 당나라까지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아자방은 길이 약8m의 이중 온돌방 구조로, 방 안 네 모퉁이와 앞뒤 가장자리
높은 곳에서는 좌선(坐禪)을 하고 십자형으로 된 낮은 곳에서는 좌선하다
다리를 풀었다고 한다.
방 구조의 탁월한 과학성을 인정받아 1979년 세계건축협회에서 펴낸 세계건축사전에
수록됐다. 1948년 불에 타 사라졌으나 1983년 현재와 같이 복원했다.
한국 다도(茶道)의 중흥조 초의(草衣)선사가 1828년 아자방에서 정진하는 여가에
다신전(茶神傳)을 초록(抄錄)하여 <동다송(東茶頌)>의 기초를 정립했다.
근세에는 용성(龍城), 석우(石牛), 효봉(曉峰), 금오(金烏), 서암(西庵)선사 등이
가람이 불타기 전 이곳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했다.
지금도 수행에 전념하려는 많은 스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원음각(圓音閣)의 주련(柱聯)
願此鐘聲遍法界(원차종성편법계) - 원컨대 이 종소리 법계에 두루 퍼져
鐵圍幽暗悉皆明(철위유암실개명) - 캄캄한 무간지옥 모두 다 밝아지고
三途離苦破刀山(삼도이고파도산) - 삼도 고통 여의고 도산지옥 부서져서
一切衆生成正覺(일체중생성정각) - 모든 중생 다 함께 성불하여지이다
칠불사 일주문을 나오며..쌍계사에서 오르는 불일폭포로 향한다.
삼신산 쌍계사(三神山 雙磎寺)
쌍계사는 삼신산의 하나로 방장산(方丈山)이라 불리는 지리산(智異山)의 남록(南麓)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다.
쌍계사는 서기 723년(신라 성덕왕22년)에 삼법(三法), 대비(大悲) 두 스님이 당나라
6조 혜능(慧能)대사의 정상(頂相)을 모시고 와서 꿈의 계시(啓示)대로 눈 속에
칡꽃이 핀 곳(雪裏葛花處)을 찾아 정상을 봉안하고 절을 지은 것이 처음이다.
서기830년 진감혜소(眞鑑慧昭,774~850)국사께서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삼법,대비스님의 옛 절터에다 육조 영당을 짓고 절을 크게 확장하여 옥천사라 하시고
이곳에서 선(禪)과 불교 음악인 범패(梵唄)를 가르치다 77세로 입적(入寂)하셨다.
그 후 정강왕(定康王)은 이웃 고을에 옥천사가 있고 산문밖에는 두 시내가 만나다 하여
쌍계사라는 사명(寺名)을 내리셨다. 서산대사의 중창기를 보면 중섬(中暹), 혜수(惠修)
스님의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다.
임진왜란 후 벽암(碧巖), 소요(逍遙), 인계(印戒), 백암(栢庵), 법훈(法訓), 용담(龍潭),
스님등이 중창을 하였고 1975년부터 고산(杲山)스님에 의해 복원(復元), 중수 중창
(重修 重創)을 거쳐 현재와 같은 대가람의 사격을 갖추고 있다.
산내 암자로는 국사암(國師庵)과 불일암(佛日庵)이 있고 문화재로는 국보 1점,
보물 6종(20점), 지방문화재 12점, 문화재 자료 5점, 천연기념물 2곳 등을 보유하고있다.
*삼신산(三神山 - 蓬萊山, 方丈山, 瀛洲山)
쌍계사는 하산 후 둘러보기로 하고 불일폭포 안내판 방향으로 오른다.
삼나무
삼나무
영문명이 japanese cedar로 일본의 향나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나무로 일제강점기시대 우리나라 사찰을 일본화 시키기 위해
사찰주변에 많이 심었던 나무이다.
불일폭포를 향해서 2.4km 쌍계사 사찰을 가로질러 오른다.
우리의 목표지점인 불일폭포는 이곳에서 2.3km 산길로 오름이다.
화창한 가을날씨 불일폭포로 오르는 새까만 두 그림자가 정겹다.
최치원 선생의 혼이 깃들어 있는 불일폭포 자연관찰로
불일폭포(佛日瀑布)
지리산 10경의 하나인 불일폭포는 높이 60m에 달하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폭포이다.
한여름에 비가 많이 내리면 마치 하늘에서 쏟아지듯 하얀 물기둥이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이 폭포 밑에 학연(鶴淵)이라는 깊은 물웅덩이에서 청학(靑鶴)이 노닐어,
신라 말기의 학자 최치원 선생이 청학을 타고 다녔다는 설화가 있다. 불일폭포를
바라보는 곳에 완폭대(翫爆臺)라는 석각을 최치원 선생이 썼다는 옛기록이 많은데,
최근 이 석각을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발견하였다.
최치원 선생의 설화가 역사적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
고운 최치원은 당나라와 신라에서 관료를 지내며 학자와 문장가로 명성이 높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당시의 신라는 이미 멸망을 앞둔 어수선한 격변기로서 최치원
자신의 포부를 펼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그는 함양군수를 비롯한 지방관료를
지내다, 40세쯤에 벼슬을 버리고 떠돌면서 지냈다.
최치원이 즐겨 찾은 지리산에는 쌍계석문(雙溪石門)석각,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眞鑑禪師大空塔碑), 삼신동(三神洞)과 세이암(洗耳嵒) 석각 등의 유적이 곳곳에 있다.
또한, 고운동(孤雲洞)과 문창대(文昌臺)와 같이 그와 연관된 지명이 있으며,
많은 지리산 유람록에 최치원의 삶과 유적이 언급되고 있다.
불일폭포로 향하는 본격적인 산행이다.
환학대(喚鶴臺)
신라 최고의 천재 최치원이 지리산에서 머무르면서 학을 불러 탔던, 그 자리에
학을 부른다는 뜻의 환학대이다. 최치원은 강원도 소금강이나 금강산에도
이런 청학동(이상향)을 찾아다닌 흔적이 있는데, 그의 신선사상은 오늘날
청학동의 삼황오제를 받드는 도인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리산은 민족의 영산이요 도가신선의 발원지인 것이다.
쌍계사는 통일신라시대 당나라의 범패(불교음악의 일종)를 신라로 도입하여
대중화 시킨 승려 진감선사를 기리는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가 있는데,
선생이 이곳 환학대에서 그 비문을 지었다고 한다.
신라시대 말기의 학자인 최치원선생은 속세를 떠나 이상향인 청학동을 찾아
다녔답니다. 이곳 환학대는 선생이 청학동을 찾아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바위입니다.
최치원(857~?): 신라시대의 학자. 자는 고운(孤雲). 경주최씨의 시조. 868년 당나라에 유학.
874년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황소의 난 때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서 문장가로
명성을 얻었다. 885년에 귀국, 태안군, 함양군 군수를 역임하였다.
이후 난세(亂世)를 한탄하여 지리산을 비롯한 각처를 유랑하다가 가야산에서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청학: 붉은 머리, 검은 날개, 자줏빛 다리를 가졌고
햇빛 아래서 보면 깃이 모두 푸르다고 전해지는 상상 속의 새
*'토황소격문' 다음카페 '화계사불교대학' 인경스님 게시물에서 옮김
말 그대로 '황소의 난'을 일으킨 주동자인 '황소'를 토벌하는 격문이라는 뜻으로
그를 엄중히 경고함과 동시에 회유하는 글이다.
그 문장이 수려하고 기품이 넘쳐나 아직까지도 널리 읽혀지고 있다.
해석문은 직역이라기 보다는 의역에 가깝지만,
의미와 문체를 잘 살렸기에 여기 실어본다.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
광명 2년 7월 8일에,
제도도통검교태위(諸道都統檢校太尉)인 아무는 황소(黃巢)에게 고하노라.
무릇 바른 것을 지키고 떳떳한 것을 행하는 것을 도(道)라 하는 것이요,
위험한 때를 당하여 변통할 줄을 아는 것을 권(權)이라 한다.
지혜 있는 이는 알맞은 때를 따름으로써 성공하게 되고,
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스름으로써 패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일생은 하늘에 명이 달려 있어
죽고 사는 것은 기약할 수가 없는 것이나,
만사는 마음먹기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옳고 그른 것은 가히 분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 나는 임금의 군대로 못된 짓 하는 자를 정벌하러 온 것이지
싸움하러 온 것이 아니요,
임금의 정치는 은혜로운 덕을 앞세우고 베어 죽이는 것을 뒤로 한다.
앞으로 상경을 회복하고 큰 신의를 펴고 공경스런 마음으로
임금의 명을 받들어서 간사한 꾀를 부수려 한다.
또 네가 본시 먼 시골의 백성으로 갑자기 억센 도적이 되어,
우연히 시세를 타고 감히 인륜을 어지럽게 하였다.
드디어 불칙한 마음을 품고 임금 자리를 엿보며 도성을 침노하고
궁궐을 더럽혔으니, 이미 죄는하늘에 닿을 만큼 극도에 달하였고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하다.
아, 요순 때로부터 내려오면서 묘(苗)나 호(扈) 따위가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양심 없는 무뢰한 무리와 의롭지 않고 충성하지 않는
너 같은 무리가 어느 시대고 없었겠느냐?
먼 옛적에 유요(劉曜)와 왕돈(王敦)이 진나라를 엿보았고,
가까운 시대에는 안록산과 주자가 온 나라를 개가 짖듯 시끄럽게 하였다.
호령만 떨어지면 우레와 번개가 달리듯 하고,
시끄럽게 떠들면 안개나 연기처럼 깜깜하게 막히게 된다.
그러나 잠깐동안 못된 짓을 하다가 결국에는 더러운 무리들은 섬멸되었다.
햇빛이 활짝 비치니 어찌 요망한 기운을 그대로 두겠으며,
하늘의 그물이 높이 베풀어져 있으니
반드시 흉한 족속들은 제거되고 마는 것이다.
하물며 너는 평민의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밭두둑 사이에서 일어났다.
불지르고 겁탈하는 것을 좋은 꾀라 하며,
살상하는 것을 급한 임무로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헤아릴 수 없는 큰 죄를 지었고,
죄를 용서해 주려해도 착한 일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천하사람이 모두 너를 죽이려고 생각 할 뿐만 아니라,
땅 속에 있는 귀신까지도 남몰래 베어 죽이려고 의논하리라.
무릇 잠깐동안 숨이 붙어 있다고 해도 벌써 정신이 죽었고 넋이 빠졌으리라.
사람의 일이란 제가 저를 아는 것이 제일이다.
내가 헛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니, 너는 모름지기 새겨들으라.
요즈음 나라에서 많은 덕을 베풀어 더러운 것도 받아들이고,
두터운 은혜를 베풀어 잘못을 따지지 않고 모르는 체 하고 지나갔다.
그래서 너를 장령으로 임명하고 너에게 지방병권을 주었다.
그런데 너는 오히려 짐새와 같은 독심만을 품고 올빼미의 소리를 내면서,
걸핏하면 사람을 물어뜯고 툭하면 주인을 보고 짖어댄다.
그래서 결국 자신은 임금의 덕화를 등지고 군사는 궁궐에까지 몰려들어
공후들은 위태로운 길로 달아나고 임금의 행차는 먼 지방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래도 너는 일찍이 옳은 길로 돌아올 줄을 모르고, 모질고 흉악한 짓만 더 한다.
그런데도 임금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네 죄를 용서하였는데, 너는 나라의 은혜를 저버렸다.
반드시 죽을 날이 멀지 않았으니, 어찌 하늘을 무서워하지 않느냐?
하물며 주나라 솥은 물어 볼 것이 아니며,
한나라 궁궐은 어찌 너 같은 자가 넘볼 것이겠느냐?
너는 도대체 어떻게 할 작정이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노자가 <도덕경>에 이르기를, "
회오리바람은 하루 아침을 가지 못하는 것이요,
소낙비는 하루 동안을 내리지 않는다." 하였으니,
하늘의 일도 오래 가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의 일이랴?
또 듣지 못하였느냐? <춘추전>에 이르기를,
"하늘이 잠깐 나쁜 자를 도와주는 것은 복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흉악함을 쌓게 하여 벌을 내리려는 것이다." 하였다.
이제 너는 간사한 것을 감추고 사나운 것을 숨겨서 악이 쌓이고
재앙이 가득한데도,
위험한 것을 스스로 편하게 여기고 미혹하여 뉘우칠 줄 모른다.
옛말에 '제비가 장막 위에다 집을 지어놓고 마음놓고 날아들고,
물고기가 솥 속에서 노니면 곧 삶아지게 될 것' 이라 하였다.
내가 웅장한 전략을 가지고 군대를 모았더니,
날랜 장수가 구름같이 날아들고 용맹스런 군사들은 비 쏟아지듯 모여들었다.
그래서 높고 큰 깃발은 초 나라 요새의 바람을 에워싸고
군함은 오 나라 강의 물결을 막아 끊었다.
이곳에는 진나라 도태위 같은 장수가 있어 적을 부수는데 날래고,
수나라 양소와 같은 병법가도 있는데 법을 엄숙하게 시행하여 신이라 일컫는다.
이들은 널리 팔방을 돌아보고 거침없이 만 리를 오간다.
그러니 너희들을 무찌르는 것은 맹렬할 불이 기러기 털을 태우는 것과 같고,
태산을 높이 들어 참새알을 눌러 깨는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뿐만 아니라 서풍이 불어 초목을 모두 말려 죽여 위엄을 도와주고,
새벽 이슬은 답답한 기운을 상쾌하게 하여 준다.
파도도 일지 않고 도로도 통하였으니,
석두성에서 뱃줄을 풀매 손권이 뒤에서 호위하고, 현산에 돛을 내리니 두예가 앞장선다.
열흘이나 한달이면 반드시 경도를 수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살리기를 좋아하고 죽임을 싫어하는 것은 상제의 깊으신 인자함이요,
법을 굽혀서 라도 은혜를 펴려고 하는 것은 큰 조정의 어진 제도이다.
나라의 도적을 정복하는 이는 사사로운 분함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요,
어둔 길에 헤매는 자를 일깨우는 데는 진실로 바른 말을 해주어야 한다.
나의 한 장 편지로 너의 거꾸로 매달린 듯한 다급한 것을 풀어 주려는 것이니,
고집하지 말고 일의 기회를 잘 알아서 스스로 계책을 잘하여 잘못된 일을 고치라
만일 땅을 나누어 봉하여 나라를 세우고 집을 계승하여,
몸과 머리가 동강나는 것을 면하고,
우뚝한 공명을 얻으려 한다면,
마주보고 있는 번에게 신임을 받지 말아야 영화로움을 후손에까지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아녀자의 알 바가 아니라, 실로 대장부의 일인 것이다.
일찍이 의심하지 말고 회답할지어다.
나의 명령은 천자를 머리에 이고 있고,
믿음은 강물에 맹세하여 반드시 말이 떨어지면 그대로 하는 것이요,
원망만 깊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미쳐 날뛰는 도당에 이끌리어 취한 잠에서 깨지 못하고,
사마귀가 수레바퀴에 항거하듯 융통성 없게 행동하다면,
그때는 곰을 잡고 표범을 잡는 군사로 한 벌 휘둘러 없애 버릴 것이니,
까마귀처럼 모여 소리개같이 덤비던 군중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갈 것이다.
몸은 날카로운 도끼에 기를 바르게 될 것이요,
뼈는 가루가 되어 전차 밑에 깔리게 되며,
처자도 잡혀 죽으려니와 종족들로 베임을 당할 것이다.
동탁의 배를 불로 태울 때 가서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너는 모름지기
나아갈 것인가 물러날 것인가를 잘 헤아리고, 잘된 일인가 못 된 일인가 분별하라.
배반하여 멸망을 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귀순하여 영화롭게 되는 것이 낫다.
그러면 바라는 것은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친한 장사를 찾아 갑자기 변할 것을 기약할 것이요,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으로 여우처럼 의심만 하지 말라.
환학대(喚鶴臺)
이 환학대는 쌍계사에서 불일폭포에 오르는 중간에 있는데
경주최씨의 시조이며 신라말기의 대학자요 유불도(儒佛道) 삼교(三敎)에
정통(精通)한 고운(孤雲)해운(海雲)최치원(崔致遠)선생이 지리산 은거시(隱居時)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바위이다.
오름으로 힘들었던 몸을 환학대에서 쉬어가며 포즈도 취해본다.
원숭이 바위
원숭이바위
조선시대에는 이 골짜기에 오암(犭吾巖 혹은 猿巖, 원숭이바위)이 있었으나
확인되지 않고,지금은 이 바위가 원숭이 두개골을 닳았다고 하여 '원숭이바위'라 부른다.
1558년 4월 19일, 청학동 불일폭포로 오르던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은
이 바위에 새겨진 '이언경.홍연'이라는 이름을 보고서, 실질을 무시한 채 헛된
이름을 후세에 전하려는 속인들에게 아래와 같이 준엄한 일침을 내렸다.
남명의 이 한 마디는 지리산을 찾는 후인에게 유람 지침이 되었다.
환학대에서 불일폭포 방면에 있는 바위로, 말이 지나간 발자국이 있다고 하여
마족대(마족대), 마적대(마적대) 또는 마적암이라고도 불렀다.
용마의 발자국이 남은 흔적이라고도 하고, 청학동에 살던 고운 최치원이 말을 타고
가다 머물렀던 자취라고도 전한다.
1744년 8월 지리산 청학동을 찾은 이계 황도익은 냉연대라고도 불렀다.
이후 임진왜란때 조선을 돕기 위해 출병했던 병나라 장수 이여송이 말을 타고
지리산을 오를때 생긴 말발굽 자국이 바위에 새겨졌다는 일화가 더해지기도 했다.
불일평전
불일평전은 1970년대 말까지 농사를 지었던 곳으로 불일폭포, 불일암 등의
명칭을 본다 불일평전이라 불렀다고 한다.
1980년대 들어 야영객이 급증하자 국립공원에서 이곳을 야영장으로 조성하여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흙은 모든 생명들이 시작하고 끝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땅 위만큼 다양하고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요.
쌍계사 동쪽으로
가파른 바위와
위태로운 길을 오르면
꽤 널찍하고 평평하여
농사짓기에 알맞은
곳이 있다
여기가 세상에서 말하는
청학동이다
불일폭포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단풍에 취하다.
불일폭포
불일암
불일암(佛日庵)의 주련(柱聯)
飛瀑頂上佛日庵(비폭정상불일암) - 폭포가 날리는 정상에 있는 불일암
羅代眞鑑刱始居(나대진감창시거) - 신라의 진감선사가 창설하고 처음 거주하셨네
焉時普照暫休息(언시보조잠휴식) - 어느 때 보조선사가 잠시 쉬고 계셨던가
人天共讚得寺名(인천공찬득사명) - 사람과 하늘이 공히 사찰명을 얻어 기렸다.
쌍계사에서 2.6km를 걸어오신 불자나 등산객에게 불임암에 도착하시어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땀도 닦으시고 쉬워가시라는 의자입니다.
대웅전
불일암 대웅전(大雄殿)의 주련(柱聯)
彿身充滿於法界(불신충만어법계) - 부처님 몸 법계에 충만하사
普顯一切衆生前(보현일체중생전) - 모든 중생 앞에 나타나시니
隨緣赴感靡不同(수연부감미부동) - 인연 따라 감응함이 두루하시어
而恒處此菩提座(이항처차보리좌) - 이 보리좌에 항상 계시네.
불일암에서 바라 본 풍경
하산길에 소나무를 만났다.
성삼문이 단종을 향한 자신의 변함없는 절개를
소나무에 비유하여 노래한 詩
이 몸이 죽어서 무엇이 될 것인가 하니,
봉래산 가장 높은 봉우리에 우둑 솟은 소나무가 되었다가,
흰 눈이 온 누리에 가득 찼을 때 홀로 푸르리라.
이것으로 남도천리(2) - 하동 지리산 칠불사와 불일폭포를 마치며
3편으로 하동 쌍계사, 화개장터로 이어지겠습니다.
찬란한 빛/김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