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을 이기신 예수님을 기다린 것은 귀신 들린 광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서 귀신이 나오게 하여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1-5절 유대 지역에서 활동하시던 예수님은 그 경계를 넘어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서 소외된 것으로 여기던 이방 거리 거라사로 가십니다. 그곳에는 이방인 사이에서도 소외된 한 광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광풍을 물리치고 바다를 건너신 이유는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사탄의 악한 능력에 사로잡혀 아무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힘에 세지만, 그 힘을 타인과 자신을 망가뜨리는 데만 사용했고 죽은 이들의 거처인 무덤에 머물며 죽은 것과 다름 없이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의 실존입니다. 힘을 우상처럼 숭배하지만, 그 힘의 노예가 되어 파괴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영적인 무덤에 머물고 있습니다. 말씀에 매이고 성령에 충만하여 살지 않으면 누구든 가련한 욕망의 노예로 살게 됩니다.
6-13절 귀신 축출이 사탄의 본거지를 공격하는 일임을 밝히셨던 예수님은 (3:27) 사탄의 군대를 홀로 대적하십니다. 군대 (헬, 레기온, 보병 6천명 규모의 군대 단위)의 규모와 힘을 지닌 귀신은 예수님의 권세에 굴복하여 사람에게서 나와야 하고, 그분의 허락을 받아야 갈 곳을 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아무리 악의 세력이 여러 모양으로 우리 신앙을 뒤흔들더라도, 우리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새롭게 창조해가시는 예수님의 역사를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13-17절 돼지 떼가 몰살되는 모습은 한 사람 안에 거하고 있던 귀신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위력적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돼지 떼로 인한 경제적 손실만을 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얻은 이웃의 새 삶보다 예수님으로 인해 입을 또 다른 피해에만 주목하며, 귀신을 떠나가게 한 예수님을 떠나가게 합니다. 내게서도 돈이 구원을 향한 감사와 감격을 떠나가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18-20절 제자는 공간적으로 함께 있는 자만이 아니라, 가라는 대로 가고 시키는 대로 말하는 자입니다. 내 뜻보다 주인의 뜻을 먼저 듣고 순종합니까? (매일성경, 2024.01/02, p.156-157, 광인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5:1-20에서 인용).
① 광풍을 이기신 예수님을 기다린 것은 귀신 들린 광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서 귀신이 나오게 하여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유대 지역에서 활동하시던 예수님은 그 경계를 넘어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서 소외된 것으로 여기던 이방 거리 거라사로 가십니다. 그곳에는 이방인 사이에서도 소외된 한 광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광풍을 물리치고 바다를 건너신 이유는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사탄의 악한 능력에 사로잡혀 아무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힘에 세지만, 그 힘을 타인과 자신을 망가뜨리는 데만 사용했고 죽은 이들의 거처인 무덤에 머물며 죽은 것과 다름 없이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의 실존입니다. 힘을 우상처럼 숭배하지만, 그 힘의 노예가 되어 파괴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영적인 무덤에 머물고 있습니다. 말씀에 매이고 성령에 충만하여 살지 않으면 누구든 가련한 욕망의 노예로 살게 됩니다.
② 귀신 축출이 사탄의 본거지를 공격하는 일임을 밝히셨던 예수님은 (3:27) 사탄의 군대를 홀로 대적하십니다. 군대 (헬, 레기온, 보병 6천명 규모의 군대 단위)의 규모와 힘을 지닌 귀신은 예수님의 권세에 굴복하여 사람에게서 나와야 하고, 그분의 허락을 받아야 갈 곳을 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아무리 악의 세력이 여러 모양으로 우리 신앙을 뒤흔들더라도, 우리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새롭게 창조해가시는 예수님의 역사를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③ 돼지 떼가 몰살되는 모습은 한 사람 안에 거하고 있던 귀신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위력적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돼지 떼로 인한 경제적 손실만을 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얻은 이웃의 새 삶보다 예수님으로 인해 입을 또 다른 피해에만 주목하며, 귀신을 떠나가게 한 예수님을 떠나가게 합니다. 내게서도 돈이 구원을 향한 감사와 감격을 떠나가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④ 제자는 공간적으로 함께 있는 자만이 아니라, 가라는 대로 가고 시키는 대로 말하는 자입니다. 내 뜻보다 주인의 뜻을 먼저 듣고 순종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