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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 이목연 - <악어새의 외출>|글향기창작이론
sadpoet | 조회 96 |추천 0 |2001.10.19. 03:36 http://cafe.daum.net/gulsarang/9QX/83
계간(한국소설) 신인상 공모 수상작(한국소설가협회 주최)
악어새의 외출
- 이 목 연 -
이렇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이젠 감히 외박까지 해, 썩을 년!
계단 난간 옆, 작은 화분 몇 개랑, 된장 항아리, 고추장 항아리, 또 고무 호스가 똬리를 틀고 있는 발코니 밑이었어요. 벽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 콘크리트의 딱딱함과 차가움이 전이된 듯 내 몸도 조잡한 콘크리트 조각 같은 모습으로 그 모서리에 기대어 있었어요. 당겨 세운 무릎 위에 어깨를 얹고 두 팔은 다리를 감싸 쥔 채. 흐릿한 시야에 들어온 것은 깔고 앉은 라면 박스 위에 그려진 로고. 빨간 동그라미 속에 물방울이 똑 떨어지는 듯한 그림. 그 밑에 -가장 믿을 수 있는 식품- 이라는 빨간 글씨가 씌어 있더군요. 전원이 차단된 로봇처럼 온 몸이 뻣뻣해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깍지 낀 손가락끼리 엉켜 빠지지 않는 두 팔. 새벽의 선뜩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소름 돋은 팔을 문지러 줄 여분의 손이 없더라구요. 마치 자욱한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으로 고개를 박은 채, 믿을 수 있는 식품, 믿을 수 있다? 믿음! 믿음, 믿음이라…. 이렇게 순간적인 상념을 전개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썩을 년! 이라는 단어에 힘을 준, 그 소리를 들은 겁니다.
문 열리는 소리에 소슬잠에서 깬 건지, 아니면 잠에서 깨어난 후 문이 열리는 소릴 들은 건지는 분명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 시간이라야 얼마나 됐겠습니까. 기껏해야 1분? 중문을 열고 우리 어머니가 신발을 꿰어 신고 나오는 시간이니까 한 30초? 아니 10초밖에 안 걸렸을 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내겐 아득한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그렇게 어머니가 야멸차게 내뱉는 소릴 들으며 꿈인가 싶기도 했어요. 다섯 계단을 쿵쿵 내려 오셔서 곁눈 한 번 주지 않고 마당을 지나가셨지요. 대문이 열리고 또 쾅 닫히는 시간까지가 아주 먼 곳에서 오래 전에 일어난 것처럼 그렇게 아득하게 느껴졌더랬어요.
미처 부를 사이도 없이 사라져 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천천히 손깍지를 풀었습니다. 세운 무릎 사이의 정강이께를 감싸고 있던 두 손이 서로를 얼마나 옥죄고 있었던지 손가락 사이마다 움푹 파인 골에 빨간 자국들이 선명했어요. 고개는 그 때까지도 자유롭지가 않았습니다. 여기가 어디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억지로 고개를 든 순간 카메라의 셔터처럼 시커먼 현기증이 내리꽂혔다 사라졌어요.
그 때 생각났지요. 아, 내가 계단 밑에 숨었었지. 술을 마셨구! 집에 온 시각이 새벽 두 시가 넘었었어….
그래요. 열쇠를 밀어 넣어 대문을 열었을 때는 분명 방마다, 고1인 아들의 방마저 불이 꺼져 있었어요. 집안은 아주 깜깜했거든요. 다행이다 싶었지요. 에미가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불을 끄고 잔단 말이지, 이 집안엔 날 걱정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하는 서운함 같은 건 느낄 새도 없었어요.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계단을 올라갔지요. 술을 마시기는 했어도 그렇게 숨어들 것까지는 없었는데…. 하지만 난 왜 항상 당당하지 못한지 모르겠어요. 늘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요. 더구나 그날 저녁엔 큰 죄를 지은 것 같기도 했구요.
현관문을 막 열려고 할 때였어요. 무슨 기척에 잠에서 깨셨는지 우리 어머니 방에 불이 깜박이더니 그만 사방이 대낮처럼 환해지는 거예요. 아무튼 제겐 그랬어요.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았다니까요. 너무 놀라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차분하게 계단을 되짚어 내려올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감마신경 때문일 거예요. 감마신경이 뭐냐구요? 왜 은행원들이 돈을 세기 위해 한 뭉치 턱 잡아 세어보면 100만원 딱 떨어지는 경우 있잖아요. 거의 100만원씩 집힌다더군요. 우리도 가끔 경험하지 않나요. 10만원쯤 셀 때. 그런 땐 괜히 기분 좋은 것 있죠. 일식집에서 오래 근무한 주방장이 초밥을 만들기 위해 밥을 한 움큼 잡으면 거의 12g 정도래요. 실제로 한 주먹에 꼭 쥐었다 놓은 밥이 정확히 12g인 경우가 90%이상이었어요. TV에서 실험하는 걸 봤거든요. 그렇게 한가지 동작을 계속해서 반복하다보면 감마신경이라는 것이 생긴다더군요. 머리끝까지 전달되지 않고 손끝에서 처리하는 신경이 있다는 사실, 참 흥미로웠어요. 다시 한 번 우리 몸의 조화에 놀랐었지요.
불이 환하게 켜지는 그 순간에, 뛰어라 하는 대뇌의 명령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신발을 벗어들고 계단 밑으로 뛰었다는 건 어쩌면 감마신경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늘상 오르내리던 계단을 인지하고 있던 발끝의 감각이 감마신경이었든 아니면 무의식적인 행동이었건 간에 어쨌든 난 넘어지지 않았고 또 들키지 않고 계단 밑에 무사히 숨을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엔 무사히 숨을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대견했지요. 마흔이 다 된 여자가 시어머니가 무서워서 숨어야 한다는 게 그리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그 순간엔 그랬다니까요. 벌렁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조금씩 조금씩 숨을 끊어 쉬었어요. 혹시나 들킬까봐. 기껏 한밤중에 내 몸을 내려놓을 장소가 이 구석진 장소라는 게 서글프기도 했지만 그건 나중 생각이었어요.
사람이 힘으로만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어리석을 정도의 나약함을 가진 사람도 있거든요. 우리 어머니 무시하려 들려고야 한다면 그까짓 것 못하겠어요. 일흔도 넘은 노인네인데다가 의지할 곳도 없는 분인걸요. 하지만 난 어머니 앞에만 서면 주눅이 들어요. 어릴 때부터 배워 온 관습 때문일까요. 오래 같이 살아서 그럴까요?
어쨌든 당장의 문제는 어머님이 저렇게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계시는 집안엘 어떻게 들어가느냐 하는 거였지요. 우선 구석에 쌓아둔 폐품더미에서 라면 박스 하나를 꺼내 깔고 앉았어요. 술에 취한 몸은 긴장 상태에서도 눕고 싶어했거든요. 사실, 난 그 때 충격적인 소릴 들은 직후라 더욱 기운이 없었는지도 몰라요. 방금 전에 청혼을 받았거든요.
아마 어머니 앞에 당당하게 나타날 수 없었던 것도 양심에 꺼림찍한 게 있어서 였는지도 몰라요. 어머니한테 붙들려서 밤늦게까지 싸돌아다닌다는 싫은 소리를 듣는 것보다 훨씬 심란한 문제였어요. 그 사람한테서 그런 제의를 받으리라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거든요.
짐작하셨겠지만, 그래요. 난 혼자 사는 여자예요.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 어폐가 있지요? 엄연히 시어머니와 곧 대학에 갈 아들 하나, 그리고 딸 하나. 이렇게 네 식구가 사는 데도 사람들은 혼자 사는 여자라고 하더군요. 혼자 지내기 외롭지 않아? 이렇게 묻곤 해요.
벌써 3년 전이네요.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참 많이 울었어요. 누가 옆에서 입만 벙긋해도 눈물이 쏟아지대요. 그냥 우리 부부를 알고 있는 사람과 눈만 마주쳐도 눈물이 핑 돌곤 했으니까요. 그 땐 사람들의 얼굴 표정 하나, 말 한 마디가 모두 남편을 생각나게 했거든요.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부부 관계란 철저한 공생 관계라구요. 처음엔 물론 사랑으로 시작하겠지요. 하지만 살다보면 그런 것 잊고 살잖아요. 한데, 유난히 너 없인 못산다고 하는 잉꼬 부부들이 주변에 있을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짝을 잃으면 주위 사람들을 실망시키면서도 서둘러 새 짝을 찾는 경우가 많다는 군요. 그럴 것 같아요. 결국, 금슬 좋은 부부란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해서 상대방이 불편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철저히 공생관계가 이루어지는 팀이라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승현 아빠, 승현이는 우리 아들 이름이예요. 승현 아빠는 상당히 괜찮은 남편이었어요. 지금 이 세상에 없으니까, 추억 속의 사람이라 그렇게 느끼는 걸거라구요? 글쎄요. 그런 면도 없진 않겠지만 하여튼 살아갈수록 비어 있는 그의 자리가 더 커지거든요.
맞아요. 우린 금슬 좋은 부부였어요. 나는 그의 요구를 어지간하면 들어주었구요. 그 역시 내게 불편한 것 없이 주곤 했지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잉꼬부부였거든요.
남편은 얼마나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었다구요. 새벽 운동을 거의 거른 적이 없어요. 운동이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했지만 그 중 테니스를 무척 좋아했지요. 시간당 운동량이 높다나요. 공을 따라 뛸 때보면 먹이를 쫓는 맹수 같았어요. 절대로 먹이를 놓치는 법이 없는 맹수. 회사에서도 그랬을 거예요. 그러니까 서른 후반의 나이에 벌써 이사 물망에 오를 수 있었겠지요. 술도 적당히 마실 줄 알았고, 부하 직원들하고 분위기 맞춰 잘 놀기도 했어요. 어디가나 인기가 있었죠.
술을 마시면 절대 운전대를 잡지 않을 만큼 식구들을 배려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지요. 당연한 얘기라구요? 난 그런 면에선 솔직히 말해 좀 질려요. 어디 흐트러진 구석이 있어야 숨을 쉬겠는데, 나 같으면 술 좀 마셨다구 차 놔두고 오진 않을 것 같아요. 내 성격을 아는 그인 말하곤 했지요. 나처럼 철없는 여자는 자기의 보호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다른 사람 앞에선 절대 술을 마시지 말아라. 대신 남편 앞에서는 얼마든지 좋다. 뭐 이런 식으로 자신의 손아귀에 나를 장악하고 있었어요. 난 그게 사랑의 표현으로 느끼면서 얌전한 아내, 다소곳한 여인으로 살았거든요. 아주 괜찮은 남편으로 믿었지요.
사고 당시, 우리는 지방에 살았어요. 연구소가 지방에 있었거든요. 어머니도 같이 내려가시자고 했지만 이 집을 어떻게 장만한 건데 남의 손에만 맡기겠느냐고 펄펄 뛰시는 거예요. 그 바람에 홀로 계셨죠. 나야 드러내놓고 내색을 할 수는 없었지만 속으로는 좋더라구요. 그 때 아들이 6학년이었고, 딸은 4학년이었으니 엄마의 시중은 쉬워질 때잖아요. 이제부턴 해방된 민족이다. 자유다! 만세를 불렀어요. 네, 그 때까지 줄곧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거든요. 어머님 시집살이가 고돼서 만은 아니었어요. 한 번 내 마음대로 살아보고 싶었어요.
나도 설거지 할 그릇 잔뜩 쌓아놓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침잠 한 번 늘어지게 자보고 싶었어요. 아무리 좋은 시어머니라고 해도 그런 꼴을 보아 줄 분은 안 계실 것 아니예요.
불편한 게, 원래 그렇거든요. 큰 일보다는 아주 사소한 일로 마음이 상하게 되고, 지나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그 당시엔 도저히 참을 수 없이 불쾌하고. 같이 살다보면 그런 일이 종종 있어요.
유독 일하기 싫은 날이 있지요. 산더미처럼 일이 쌓였는데도 손에 잡히지가 않아 공연히 시장이다 어디다 쏘다니고 싶은 날 말이예요. 그러다가 어느 날은 이불이랑 커튼 따위가 너무너무 더러워 보여서 하루 종일 세탁기를 돌리고 욕조에 들어가 밟고 하잖아요. 식탁 위로 바퀴벌레가 기어간 자국이라도 보이는 듯 닦고 또 닦고…. 전엔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청결을 강조하며 온 집안에 락스 냄새를 풍기면서요. 여자들 대부분 그렇지 않나요? 문제는, 그 주기가 서로 다르다는 데에 있지요. 서로 다른 감정의 곡선이 극과 극에서 만날 때 문제가 발생하더라구요.
모처럼 친구들이 놀러 온 날, 다른 때는 가만히 계시던 어머니가 붙박이장 구석구석에서 프라스틱 그릇이랑 안 쓰는 믹서 등을 비눗물에 풀어 담그며 늘어놓는 잔소리를 듣는 건 참기 어렵거든요. 또 날씨가 구질구질해서 한잠 자고 싶은데 냉장고를 뒤적거리며 음식이 썩어나간다고 잔소리를 하실 때도 그랬구요. 어른들은 원래 잔소리가 심하거든요. 뭐, 그런 사소한 마찰 정도, 그런 불편 정도는 감수하고 그 때까지는 별로 찌그럭거리지 않고 살았어요. 하긴 어머니한테 대꾸를 하거나 남편을 들볶아서 나가 살 형편도 못됐지요. 내 입장에서는 어느 모로 보나.
대학 2학년 때부터 어머니 집에 들어와서 살았거든요. 젊어서 홀로 되셔서 아들 하나 대학에 보내는 재미로 사시던 어머니였어요. 철부지였던 나는 복학생이던 남편이 마냥 좋아서 오빠, 오빠하며 눈치 없이 자주 들락거렸지요. 그러다 그냥 내처 살아버린 거예요. 양쪽 집안이 모두 반대를 했지만 우리 엄마가 콧대를 꺾고 저자세로 돌아선 사건이 생겼던 거예요.
오빠랑 공부하다가 어머니 오시면 가겠다고 한 날이었어요. 그런데 하필 지방으로 물건을 하러 가신 어머니가 갑자기 올라오지 못하게 됐어요.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린다는 핑계로 우린 마냥 붙어있었지요. 밤새도록 불장난을 한 거예요. 그 긴 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라요. 새벽 동이 틀 때쯤에서야 밤을 지샜다는 걸 알았지요. 큰일 났다 싶대요. 온 몸이 얼얼했어요. 발딱 일어나 거울을 보았지요. 온통 얼굴 전체가 울긋불긋했어요. 우린 처음이었거든요. 기분에 따라 욕심껏 물고 빨고 한 거예요.
시간이 지나자 입술이랑 목에 군데군데 멍이 나타나기 시작하더군요. 시커멓게. 잠들기 전에 그냥 옆에만 있겠다고 분명히 약속했었는데…. 난감했지만 나름대로 수습을 했지요. 화장을 좀 짙게 하고, 어머니의 진한 립스틱을 바르고 목엔 스카프를 둘렀어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집에 들어가서 적당히 둘러대고는 잠들었어요. 하지만 웬걸요. 우리 엄마가 네 입술이 왜 그러냐고 해서 보았더니, 두툼해진 입술 위로 시커먼 멍이 드러나 있는 거예요. 한나절을 늘어지게 자고 나서 무심히 세수를 하고 맨 얼굴로 엄마 앞에 나타났던 거지요. 그랬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 때만큼 행복했고 짜릿했던 시절은 없었던 것 같아요.
졸업도 못하고 그 해에 결혼을 해버렸어요. 그 때는 마포에 있는 언덕배기 집이었어요. 지금은 헐려버리고 최신형 아파트가 들어선 자리예요. 그 집 헐릴 때 받은 보상금으로 이 집을 장만한 거랍니다. 조금 낡긴 했지만 잠실에 있는 단독 2층집. 운이 좋았기 때문에 우리 차지가 된 것이지 만일 조금만 판단 착오를 했더라면 어림도 없었을 거예요.
사실, 그 때 까딱 잘못했더라면 우리는 어쩌면 지금까지도 내 집 마련하느라 허덕이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아직 마포 재개발이 시작되기 전이었거든요. 내내 매기가 없던 그 움막 같은 집을 누가 느닷없이 사겠단다고 복덕방에서 연락이 왔어요. 시세보다 조금 더 준다는 말에 솔깃해진 어머니는 얼른 계약을 했지요. 그런데 그날 밤 어머니 꿈에 그 집 지붕이 무너지면서 누런 흙덩이가 막 쏟아지더래요. 꿈이 이상하니까 절의 스님한테 물어보셨다는군요. 꿈 얘기를 들으신 스님이 당장 해약을 하라고 하시더래요. 위약금을 주더라도 해약을 했으면 좋겠다고, 좋은 꿈이라고.
어머니는 없는 돈에 웃돈까지 얹어서 주며 해약을 했지요. 조금 있으니까 재개발 붐이 인 거예요. 보상금에 딱지값까지 합치니까 지금 이 집을 장만할 수 있을 만큼 거금이 되더라구요. 물론 아래층은 전세끼고 샀어요.
저는 어머니의 또 다른 혹에 불과했지요. 내가 돈을 벌 수 있었겠어요. 살림을 잘했겠어요. 겨우 밥이나 끓여 놓는 정도였거든요. 어머니는 외제품을 파셨어요. 한창일 때는 돈도 잘 버셨대요. 하지만 수입자유화가 되고부터는 시들해져서, 그냥 먹고 살 정도밖엔 안 됐어요. 전 아직도 생각나요. 아직 학교에 다닐 땐데요. 까만 입술 사건은 지나고 나서였지요. 우리 그이랑 같이 막 잠들려고 할 때였어요. 그날도 마침 어머님이 여수로 물건을 하러 내려가신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한밤중에 밀수단속반이 들이닥친 거예요. 어머니는 미리 낌새를 알고 피하신 것 같았어요. 그 바닥 정보는 빤하니까 누군가가 귀뜸을 했나 보더라구요. 영등포에 사시는 6촌 언니네 숨어 계셨대요. 밀수 조직의 말단이었으니까 잡혔대야 벌금 정도였겠지만 어쨌거나 어머니는 잡히지 않으셨어요.
사실, 그 때까지도 난 어머니가 그런 밀수품 장사를 하는 건지는 모르고 있었거든요. 근 보름 여만에 들어오셔서 자초지종을 털어놓으시는데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못 듣겠더라구요. 너희 둘 결혼식 올리고 나면 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살란다. 돈 버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머리를 흔드시는 어머니가 참 안돼 보였어요. 그 때도 어머니는 허물어져 가는 담 밑에서 숨겨놓은 밀수품을 주섬주섬 꺼내 어디론가 넘기러 가시더라구요. 정말 그만 두실 줄 알았지요. 웬걸요. 요즘도 가끔 물건을 들고 나갔다 오곤 하세요. 몸에 밴 습관이라 어쩔 수 없나 봐요.
10년 이상을 살다보니 알게 모르게 미운 정 고운 정 흠뻑 들었더라고요. 내가 어머니를 몰라라 할 사람은 아니예요. 하지만 따로 살게 된다니까 바람 부는 날의 호수면처럼 마음이 살랑거렸어요. 어머니 몰래 백화점에 나다니면서 예쁜 그릇들을 사다 날랐지요. 이제 나도 내 집을 한 번 꾸며 보아야지! 사실 같이 사는 사람들은 주도권을 쥔 사람에게 모든 걸 맡기는 게 낫거든요. 난 우리 어머니가 하시는 대로 모든 걸 맡기고 살았어요. 실내 장식부터 음식까지. 사는 게 활기는 없지만 집안이 편안했거든요. 몇 번 도전해 보았었지요. 장식장 안에 있는 그릇들을 쓰기 편하게 옮겨 놓았더니 다음날로 어머니가 제자리로 옮겨 놓으시더라구요. 새 잔을 꺼내서 커피를 타드렸더니, 새 것을 보는 대로 꺼내 쓴다고 꾸지람을 하시기도 하구요. 그래서 포기했어요.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하기루.
그렇게 살다가 분가란 말을 들으니 얼마나 흥분이 되던지…. 하지만 새로운 밀월을 꿈꾸며 나가산 지 미처 1년도 못 돼서 남편이 그렇게 된 거예요.
아무튼 우리 어머니와 저는 남편이 아니더라도 참 끈끈하게 엉켜 있어서 남일 수가 없거든요. 둘 만 내버려두면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은 사인데….
아들을 잃은 심정과 남편을 잃은 심정을 비교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저는 자꾸 눈물이 나오는데 우리 어머니는 울지를 않으셨어요. 완전히 넋을 잃으신 거지요. 혼이 빠진 사람처럼 보였어요. 80킬로그램의 몸무게가 며칠 사이에 근 20킬로그램이 줄더라구요. 허깨비 같았어요. 너는 네 남편을 땅에다 묻었지만, 나는 내 가슴에 묻었다, 하시더군요.
공휴일이었어요. 조금 늦게 일어나도 좋으련만 출근하지 않는 날까지도 꼭두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나가는 남편이 이쁘지 않더라구요. 테니스에 푹 빠져 있었거든요. 잠든 척 하고 있었지요. 남편은 후후 웃으면서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입을 맞추더군요. 남편의 목을 꼭 안으면 속삭였어요. 가지 말아요…. 뭐라며 나간 줄 아세요, 글쎄! 당신 요즘 너무 밝히는 것 같더라. 어제 밤에도 무척 좋아하던데! 그러는 거예요. 얄밉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얼른 안았던 팔을 풀며 남편 팔뚝을 꼬집어 주었지요. 유난히 엄살을 떨며 나갔어요. 그리곤 다신 집에 돌아오지 않은 거예요.
이젠 울지 않을 것 같았는데, 아직도 눈물이 남았나 봐요. 그렇게 밝히는 여자를 놔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나 몰라요. 연락을 받고 갔을 땐 응급실이었어요. 벌써 하얀 시트가 덮여 있더군요.
맞은 편에서 서브를 한 공이 그대로 테니스코트 밖으로 튀어나갔대요. 테니스장이 큰길가에 있었어요. 그냥 두지, 그 공을 주우러 나갈 건 뭐예요. 새벽이었으니 차는 또 얼마나 씽씽 달렸겠어요. 유조차였대요.
난 혼자가 됐지요. 둘이 아닌 혼자라는 게, 얼마나 서러운 지 아세요? 불러도 다신 오지 못하는 사람이잖아요. 만질 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 수도 없고…. 돌아누워도 손끝에 만져지는 게 없어요. 잠결에 다리를 들어 올려놓을 곳도 없고요. 허전해요. 속이 텅 비어 있는 가죽만 남은 공갈빵 같아요.
보상금이요? 많이 받았죠. 장래가 유망한 사람이라고, 엄청난 액수더군요. 남편은 내가 모르는 보험도 들어 놓았더라구요.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대요. 그렇게 좋던 돈도 남편하고 바꾼 것이라 생각하니 달갑지 않았어요. 막상 돈 찾으러 오라는 통보를 받고 보니 기분이 묘해지더군요. 그런데 우리 나라 법이 어른들 서운하게 만들어 져 있더라구요. 수령인이 지정된 보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동으로 배우자에게 상속권이 있는 거예요. 배우자가 살아 있는 한은 일단 배우자에게 권리가 있더라구요. 그 다음 순위가 자식이고, 그 다음이 직계 존속이더라니까요.
서울에 계시던 어머니께 연락을 드려서 함께 가시자고 했어요. 전 아직 지방에 있을 때니까요. 친정 엄마가 와 계셨기에 같이 나갔죠. 가서 보니까, 친정 외삼촌이 나와 계신 거예요. 우리 엄마가 불렀대요. 시어머니가 이모들 데리고 나올까봐 그랬다나요?
그런 상황에서 당사자들보다 앞서서 생각하는 사람들을 이성적이라고 해야 하나요, 합리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한 다리가 천리라는 말이 실감 나더군요. 우린 그 때 더 가까워졌어야 했는데, 우리 어머니하고 저말이예요. 서로 공유하던 걸 잃었으니 논리적으로는 서로를 이해하는 게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잘 안되더군요.
당신 딸만 불쌍히 여기는 우리 엄마랑, 자기 언니만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시이모님들. 큰 소리가 나기 직전에, 말 힘이 센 우리 외삼촌이, 변호사였거든요. 잠깐 보관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맡아 들고 갔어요. 그 사건이 두고두고 화제가 됐지요. 그 자식을 어떻게 길렀는데, 누구 때문에 평생 그 고생을 했는데, 그 돈을 몽땅 친정으로 빼돌렸다고. 미처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소문이 먼저 담을 넘어와 앉아 있더라구요.
생각을 해보니 이게 말이 아니예요. 당장 이삿짐을 꾸려 서울 어머니 집으로 옮겼지요. 아이들 전학까지 사흘도 걸리지 않았어요. 물론 친정 엄마는 반대를 했지만, 우선 급한 것은 어머니와 틈을 없애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공정한 방법이라고 궁리를 한 것이 남편 친구들이었어요. 외삼촌이 보관하던 돈을 찾아와 남편 친구와 상의해 투자신탁에 맡겼지요. 그리고 어머니와 화해를 하고 의좋게 살자고 말씀드렸지요. 하지만 피가 섞이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어느 순간 우린 둘로 갈라져 있더라구요. 둘이 될 때마다 전화가 오지요. 이모한테서, 또 친정엄마한테서.
너희 어머니가 그 앨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잘해야 한다. 노인이 살면 얼마나 살겠냐. 절대로 그 노인네 그렇게 서운케 하면 못쓴다.
이모의 전화가 끝나기 무섭게 엄마가 또 한 말씀하시는 거예요.
얘, 이 철 없는 것아. 아직도 네 앞날이 구 만린데, 그렇게 철퍼덕 엎어져버리면 어쩔려고 그래.
두 진영의 소리가 다 듣기 싫었어요. 일껏 백화점에서 원피스랑 샌들 한 켤레 사 드리고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 크린싱 크림으로 화장을 지울 때면 어머니는 또 못마땅해하세요. 서방도 없는 것이 얼굴에는 왜 그렇게 신경을 쓰느냐고 묻고 싶겠지요. 수영장을 가는 것도, 취미 생활을 하려는 것도 모두 싫어 하셨어요. 내 앞에서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며칠 안에 이모들한테서 전화가 오는 거예요. 요즘 네 어머니 어떠시니, 홀어머니 모시느라 수고가 많구나. 너 수영한다며?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하겠지만 남편도 없는 애가 벌거벗고….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나도 세상을 살아야 하는데, 칠 십이 넘은 어머니처럼 모든 걸 포기하고 살기는 좀 억울한 것 같구.
뭔가는 해야겠는데, 섣불리 일을 벌렸다가는 다 날릴 것 같아 망설이는 중에도 투자신탁에 맡겨두었던 돈은 점점 줄어들었어요. 여기저기서 돈 빌려달라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요. 큰 이모네 딸이 사업을 하는데, 자금이 부족하단다. 이자는 높게 쳐 주겠다는데 좀 돌려주자. 어머니와의 불화가 무서워서 그렇게 했지요. 이것아 그렇게 곶감 빼먹듯 하면 결국에는 쪽박차고 말아. 그러지 말고 나누어서 투자를 해라. 땅에다 조금, 증권에 조금, 나머지는 현찰로, 투자는 이렇게 해야 하는 거야. 설마 친정엄마가 나 망치려고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싶어 권하는 대로 했어요. 그런다고 어머니는 또 토라지시고, 또 돈은 돈대로 부스러지고. 이젠 아이들 몫으로 떼어놓은 것밖에 없어요.
내 딴에는 물어물어 잘한다고 한 수입목욕용품점이 때마침 불어온 IMF 한파에 본전도 찾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지요. 세상에 쉬운 것은 없더라구요. 그렇게 매출이 많았다는데, 별안간 사람들이 애국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고, 물건을 대주는 대리점에서 되레 나를 위로해 주더군요. 어떻게든 꾸려나가려고 했어요. 점포 앞에다 눈길을 끌기 위해서 포스터도 붙이고, 예쁜 글씨로 파격세일, 기념품 증정, 이라는 글귀도 써 붙여 보았구요. 하지만 적자를 줄이는 길은 문을 닫는 것이었지요.
이젠 사는 게 걱정이 돼요. 어떻게 사나 싶어 한숨이 나온답니다. 그렇게 크게 욕심낸 것도 없이 산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어려운지요.
옆집 부인이 권하는 대로 보험회사의 생활설계사도 해 보았어요.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이 있나요, 재주가 있나요. 소식을 들은 남편 친구들이 하나씩 들어주더군요.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많이 외로워하며 살더라구요. 나를 보면 어느 순간엔가 외로움을 호소하려고 해요. 농담하듯 건네는 말속에서 쓸쓸함이 풍겼어요.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갖추고 남부럽지 않게 살면서도 속 깊은 곳의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가보죠. 혼자 살면서 외롭지 않느냐고 은근히 묻기도 하고요. 처음엔 그게 다 순수한 의미로 받아 들여졌어요. 그래서 그들이 내미는 손을 잡아주며 위로해 주었지요. 부부가 함께 살면서도 외로워하는 사람들을 볼 땐 위안이 되었거든요. 오히려 난 힘을 얻곤 했지요.
하지만 그들이 잡는 손아귀의 힘이 예사롭지 않을 때가 더러 있었어요. 남편이 있을 때는 살짝 손끝만 잡아 주던 사람들이, 서슴없이 힘 주어 잡을 때, 그것도 두 손을 감싸안듯이 잡을 땐, 모른 척하기도 그렇고, 호들갑스럽게 빼기도 그렇고…. 친구의 남편이나, 남편의 친구들이나 똑같더라구요. 조금씩 겁이 나요. 어떤 게 진심인지도 잘 모르겠구,
남편이 가고 난 후에도 테니스회원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어요. 가끔 나를 초대하기도 했고, 일부러 찾아와 주기도 하고. 그 회원들 중에 우리 앞에서 고개를 못 드는 사람이 있었어요. 누군지 아시겠지요? 네, 맞아요. 우리 남편한테 서브를 한 사람이예요. 그러지 말라고 해도 그 사람으로서는 또 그럴 수밖에 없을 거예요. 난 임의롭게 대했는데, 우리 어머닌 그 사람이 오는 걸 무척 싫어하셨어요.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 사람에게 이젠 됐다고, 그만 돌아가라고 하시는 어머니의 태도가 너무 쌀쌀맞아 보였어요. 난 본의 아니게 죄인이 된 그 사람이 되레 더 불쌍하더라구요. 승현 아빠 운명이 그런 걸 어쩌겠느냐고 오히려 위로해 주었지요.
알고 보니까, 그 사람은 우리보다 2년이나 먼저 부인과 사별을 했더군요. 누구보다 혼자 사는 사람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겠지요. 그래서 우리가 더 안 돼 보였을 거구. 동병상련이라잖아요. 그 사실을 알고 나서는 나도 그 사람이 더 안 돼 보였어요. 혼자서 너무나 큰 멍에를 짊어진다 싶은게, 누구에게 따뜻한 위로나 받아 보았겠나 싶대요.
우리 집 앞에까지 여러 번 왔었다고 하더군요. 어머니께 용서를 받고 싶었대요. 진심으로 사죄하고 싶다구요. 그렇게 하라고 했지요. 진심이야 통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남편을 잃은 사람과 자식을 잃은 사람과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사람이 가고 난 후 어머니는 나까지 불결한 눈으로 바라보시는 거예요. 그 사람이 우리 식구들을 책임지겠다고 했다나 봐요. 죄의식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일텐데, 그렇게 과민 반응을 보이실 줄이야. 어머닌 당연히 그 회원들까지도 달가워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니 나 또한 드러내놓고 그 사람들 만나기가 껄끄러웠지요.
아, 제가 지금도 계단 옆에 앉아 있느냐구요. 아니예요. 그날 어머니가 나가시는 걸보고 한참을 앉아 있긴 했어요. 바람이 공기의 움직임이듯 생각은 움직이는 마음이라지요? 마음이 자꾸 허공을 헤매다니니까 생각도 그 쪽으로 쏠리는 건지 몰라요. 난 다시 악어새가 되고 싶은 거에요. 물떼새라고도 하지요. 그냥 악어의 입 속에서 썩어 가는 음식물 찌꺼기일망정 맛있다고 먹으면서 내 식구들하고 알콩달콩 사는 게 행복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페미니스트들이 아닐지라도 요즘 여자들 대부분이, 여성들의 독립을 주장하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까 두렵기만 한 걸요.
마당 안에 피어 있던 목련이 흰 잎을 툭 떨어뜨렸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담 너머로 보이는 구름에 붉은 빛이 섞이고 있더군요. 집안으로 들어와 아침을 준비했지요. 아이들 도시락은 챙겨야 하니까요. 아들이 눈을 비비며 나오더군요? 엄마 언제 왔어요? 난 시치미를 떼고 물었지요. 넌 엄마가 안 들어와도 잠이 오니? 할머니가 불 그라고 어찌나 야단을 하시는지, 잠깐 끄고 있으려던게 그만 자버렸나 봐요. 엄마, 어제 아빠 테니스 회원들 만나셨어요? 그 상철이 아저씨도요? 그래. 아빠 3주기 돌아온다고 어찌나 나오라고 하던지 나갔었다. 왜, 할머니가 뭐라 하시던? 할머니가 계속 화를 내고 계셨어요. 엄마가 늦어지니까, 빨리 불 끄고 자라고 얼마나 야단을 하셨다구요.
미안하다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아들에게 미안하대요. 애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자버렸어요. 계단 밑에서 쭈그리고 밤을 샜으니 몸이 온전할 리가 없었죠.
우선 전화기코드부터 뺐어요. 보나마나 벨이 울릴 게 뻔했거든요. 또 이모님 집으로 쪼르르 가셔서 입에 침을 튀기셨을테니까요. 이 썩을 년이 이제는 시어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데도 외박을 하고 다닌다구요. 죽은 내 아들만 불쌍하다면서…. 그 말이 충격이었어요. 외박이라니요. 그런 생각 한 번도 하지 않았었는데. 물론 외롭고 허전할 때가 많았지요. 승현 아빠가 나를 그렇게 내버려두던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어지간한 자리면 항상 데리고 다녔고, 또 가끔은 조명을 핑크빛으로 바꾸며 분위기도 낼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절대 자기만 믿으면 된다고, 세상의 일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아도 된다고, 큰소릴 치던 사람이었어요. 자신 있었나 보죠. 항상 옆에서 보호해 줄 자신이. 그랬던 사람이 갑자기 없어졌으니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먹이를 대주던 악어가 사라져버렸으니….
자다가도 혹시 남편이 들여다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눈을 번쩍 떠보곤 했어요. 가끔 그랬거든요. 잠결에도 무언가 들여다보는 느낌이 있어 눈을 번쩍 떠보면 남편은 내가 자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거예요. 놀랐다고 앙탈을 부릴라치면 와락 덤벼들곤 했지요.
아침마다 운동 나가면서 깨워주던 사람이 없어졌으니 맨날 허둥대는 나날이었어요. 시계의 자명종 소린 싫어요. 딩동 초인종 소리도 싫고, 전화벨 소리도 싫어요. 그런 기계음이 남편 사고 이후에 더욱 싫어졌어요. 더 이상 좋은 소식을 전할 것 같지 않거든요.
딸애가 수학 여행을 간다기에 장롱 위에 올려 둔 가방을 꺼낼 때도 남편 생각이 났죠. 높은 곳에서 물건을 내리거나,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것은 남편 몫이었거든요. 의자 위에 올라섰는데도 손이 조금 모자라더군요. 돌아보며 무심코 남편을 불렀어요. 승현 아빠! 문득 부르고 나니 대답이 없는 것에 화가 나잖아요. 악을 쓰며 더 큰 소리로 불렀지요. 승현 아빠, 승현 아빠.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고서야 멈추었어요. 혀를 끌끌 차며 돌아서는 어머니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있었어요.
난 벌레를 끔직히 싫어하거든요. 더구나 꿈틀거리는 것들은. 혹시 방에 벌레가 들어오면 남편이 올 때까지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다가 잡아내 줘야 들어가곤 했는데, 어떻게 들어왔는지 나뭇가지 같은 자벌레가 기어다니는 거예요. 꿈틀꿈틀! 소리소리 지르다가 결국엔 눈물, 콧물을 흐리면서 튀김용 집게로 집어냈어요. 그날 저 세상에 있는 남편의 귀가 근질근질 했을 겁니다. 얼마나 욕을 퍼부어 주었다구요.
우린 둘 다 냉면을 무척 좋아했어요. 곱배기에다 사리 하나 추가! 우리가 주문하는 방법이거든요. 이렇게 주문하고는 계면쩍어서 마주보고 웃곤 했는데…. 사고 이후에 냉면을 한 번도 먹지 못했어요. 쇼핑을 갔다가도 남편이 좋아하던 스타일의 남방이랑 넥타이를 보면 나도 모르게 사들고 와요. 벌써 몇 벌짼지 몰라요.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날 보고 외박을 했다고요? 친구의 남편이 평소와는 다르게 손을 꼭 잡아 주던 날. 그 손을 들여다보며 이게 다 승현 아빠가 없어서 생긴 일이지 싶으면 또 가슴속으로 휭 하니 지나는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그 때마다 얼마나 남편이 그리웠는데, 날보고 달라졌다고, 하는 짓이 달라졌다고요? 그것도 꼭 이모들을 통해서 듣게 하는 우리 어머니가 야속하고 지긋지긋하기도 해요.
분명 그 날도 전화통에서 불이 날 게 뻔했어요. 얘, 어머니 여기 와 계신다. 어서 잘못했다고 빌고 모셔가거라. 조금 후엔 작은 이모가 그러시겠지요. 젊어서 혼자 됐으니 왜 쓸쓸하지 않겠니. 하지만 애들 생각해서라도 참아야지.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니? 너 몇 푼 있는 것 알고 털어먹으려는 남자들 조심해야 된다. 조심해라. 말 많은 세상. 종아리 보면 속곳 봤다는 소문난단다. 조신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소문 무덤에 묻혀버릴지도 몰라.
난 그런 소리 듣기 싫어요. 친정으로 돈을 빼돌렸다는 둥, 곧 바람이 나서 재혼 할거라는 둥, 그런 소리가 어떻게 내 귀에까지 들려오는지 참 신기해요. 하지만 모두 날 위한다는 미명 아래, 안 들어도 좋은 소리들을 슬쩍 던져놓고는 내 가슴에 이는 파장을 엿보곤 한답니다. 악취미들이예요.
다른 때 같으면 어머니 모셔왔을 거예요. 가서 사실은요, 하면서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며 애교를 떨어 어머니 모셔 왔겠지요. 다음에 똑같은 일이 일어날 때까지는 폭풍의 전야처럼 불안정한 평화를 유지하면서 또 그렇게 일상으로 덮어두었을 거예요. 그냥 두었으면 다음 날 모시러 가려 했지요. 하지만 화가 난 이모들이 먼저 쳐들어오신 거예요. 너 그럴 수가 있니? 외박을 하고도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들어 와서, 뭘 잘했다고 전화도 안 받고, 시어머니가 집을 나왔으면 모셔 갈 생각도 안하고,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냐고. 우리 큰 이모님은 성질이 대단하시거든요. 당장 와서 모셔가라고 하시대요.
싫다고 했어요. 놀라셨을 거예요. 한 번도 그런 적 없었거든요.
하지만 더 두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았어요. 이젠 내가 이 집의 가장인걸요. 어머니를 누가 모실 건가요? 우리 어머니 가실 곳도 없어요. 그런데 이모들은 당신들이 무슨 큰 힘이나 있는 것처럼 번번이 오셔서 큰소릴 치고 휘젓고 하시는 거예요. 분명하게 말했지요. 싫다고. 어머님 스스로 들어오시기 전엔 안 모실거라구요. 그렇게 귀하신 언니면 이모들이 모시라고 했지요.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말을 못하시데요. 한참 후에 전화가 왔어요. 작은 이모한테서. 얘, 너희 어머니 지금 절에 가 계신다. 네가 그러면 안 되지. 어서 가서 모셔가거라.
며칠 있으면 초파일이네요. 남편의 기일이기도 해요. 매년 이맘때면 절에 가셔서 등을 만들어 주시거든요. 영가등이라고. 그이 가고 난 후론 흰 등만 만드세요. 하얀 주름종이의 끝을 살짝 풀칠한 손으로 또르륵 말아서 비비지요. 그러면 새의 깃털처럼 꽃잎이 만들어지지요. 그 종이꽃잎이 모여 있는 걸 보면 마치 구름이 내려와 앉은 것처럼 환상적이예요. 나도 어머니 따라서 만들어 보았는데,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우리 어머니 연등 만드는 솜씨는 수준급이거든요.
색색의 꽃잎을 붙여 연등을 만드는 일은 초파일을 앞 둔 절 집에서는 큰 일이지요. 한지를 붙인 팔각기둥의 틀에 꽃잎을 붙이는 건데요. 우선 초를 꼽을 수 있도록 위, 아래 구별을 잘 한 다음에 윗부분부터 꽃잎을 차례차례 붙여나가지요. 그 다음 줄은 위에 붙인 꽃잎이 반쯤 덮일 만큼 윗줄과 어긋나게 붙이고요. 실제로 꽃잎을 보면 그렇게 어긋나게 붙어서 씨방을 보호하고 있잖아요. 밑부분까지 차곡차곡 붙여서 한 송이의 하얀 꽃을 피워내는 기분. 아마 꽃 한 송이를 피워내는 진흙 속의 연꽃에 비하면 과장일까요.
연등을 만드는 이유는 부처님이 꽃을 좋아하신대요. 부처님이 인도 사람이잖아요. 인도는 따뜻한 고장이라 사철 꽃이 흔하다는군요. 그래서 꽃 공양을 많이 한다고 해요. 또 다른 의미는 초를 밝힘으로서 세상 구석구석의 어둠을 몰아내고 지혜를 얻고자 하는 마음도 담겨 있다는군요. 등을 만들다보면 잡다한 생각은 잊게 되지요. 그 순간은 마음이 편안해져요.
어머니가 애를 쓰면서 그 등을 만드는 것도 다 그런 이유가 있을 거예요. 며칠씩 묵으며 몇 백개씩 만들어 주시곤 해요. 요리조리 등을 돌려가면서 열중하시는 걸 보면 어린 아들의 옷매무새를 만져주는 엄마 같다니까요. 그러다가도 손을 덜덜 떨면서 꽃잎을 삐뚤삐뚤 붙이실 때가 있어요. 아무래도 당신을 두고 훌쩍 떠나버린 아들에 대한 회한(悔恨)이 사무쳐 그러실 거라고 짐작만 해요. 잠시 눈을 감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소리나게 중얼거리시다가 다시 편안한 손길로 등을 만들곤 하시지요. 올해는 한숨 쉬는 횟수가 잦아지셨겠지요. 이 며느리를 이젠, 만만히 볼 게 아니구나, 다시는 집을 나오지 말아야지, 생각도 하셨을 거예요.
어쩌면 나의 갈등을 나보다 먼저 알고 계실지도 몰라요. 당신이 먼저 겪으신 일일테니까요. 그래서 더욱 며느리를 단속하는 마음으로 챙기시는 건지도….
지금쯤은 절을 방문하는 신도들에게 열심히 눈길을 주면서 나를 찾고 계실 거예요. 가서 모셔 와야겠지요. 우리 어머니 마음 내가 다 알거든요. 하지만 마음속에 바람이 자질 않아요. 끊임없이 생각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날 밤의 사건이 내겐 확실히 충격이었나 봐요. 내겐 분명 물고 싶은 낚시밥이예요. 새로운 악어가 필요하긴 하거든요. 아니면 내 스스로 공생의 틀을 깨고 밖으로 먹이를 구하러 나가야 하는데, 그러자니 너무 힘들고 두렵고.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았거든요.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얘기해야겠지요? 다른 사람의 사생활이 걸린 문제라서 망설여지긴 해요. 그날 내가 만난 사람 말예요. 남편 3주기가 곧 돌아온다고 테니스회원들이 마련한 자리였어요. 어머니가 달가워하지 않으시니까 잠깐 다녀올 요량으로 나갔던 거구요. 부인들도 함께 나왔더라구요. 성의 표시라면서 봉투를 내밀더군요.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것만도 고마워서 사양하지 않았어요. 대신 2차는 제가 사기로 했죠. 노래방에서 맥주 마셨어요. 그이가 없다고 너무 궁상스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았거든요.
모두 짝이 있으니까, 자연 나랑 이상철씨하고 파트너가 되었어요. 굳이 파트너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게 됐더라구요. 남들은 노래도 부르고 노는데, 난 그렇게까진 되지 않았어요. 이상철씨도 마찬가진지 우리 둘은 술만 주거니받거니 했지요. 꽤 많이 마셨어요. 쓸데없이 자꾸 웃음이 새 나오더라구요. 제 습관이거든요. 술 취하면 웃거나 울거나 하는 거요. 분위기 망치지 않으려고 그냥 웃었어요. 손뼉도 치면서.
그런데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부터 몹시 울적해지더군요. 계산은 늘상 총무였던 남편 몫이었거든요. 친구들 모두 떠날 때까지 배웅을 하고는 마지막으로 내 등을 감싸안으며 차 문을 열어주면서 사모님 타시죠. 하던 사람이었는데…. 인사로 같이 가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난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끝까지 손을 흔들며 그들을 보냈지요.
어떻게 집에 가지? 이 늦은 시간에. 주차장에서 빨간 미등을 밝히며 사라지는 차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도 그 걱정이 되더라고요. 나중엔 왜, 나만 혼자 가야 하지? 하면서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어졌어요. 이게 뭐야.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살고 있는데, 왜 나만 혼자 두고 사라진 거야? 잊지도 못하게 하면서. 따지고 싶었어요.
혼자 남게 되자 막막하더군요. 하지만 가야 했지요. 갈 길이 너무 멀었어요. 싱싱 달리는 밤거리의 차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목적지가 분명하니까 그렇게 달리겠지 싶은게요. 난 가야 할 곳조차 없는 것처럼 허전했거든요. 처음엔 피식 웃었지요. 그런데 그게 언제 울음으로 바뀌었는지 몰라요. 줄줄 흐르는 눈물이 서러워서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흐느끼고 있는데, 누군가의 손이 어깨에 얹혀지더라구요.
따뜻했어요. 아는 얼굴이라는 걸 확인한 순간 엉엉 울어버렸지요. 한참만에 눈물 콧물을 힝힝 풀고 나니까 속이 시원하더군요.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또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했어요. 씩 웃고 말았지요. 이상철씨가 택시를 잡았어요. 술이 취해 차를 두고 간다면서 데려다 주겠다고…. 좀 떨떠름하긴 했지만 고마웠지요. 혼자 가기는 정말 싫었거든요.
집 앞 골목에서 내렸을 때 그 사람이 쭈뼛거리며 또 따라와요. 고마웠다고 했지요. 돌아가야 할 지점이었거든요. 하지만 그 사람 발끝만 내려다보며 천천히 앞서서 걷는 거예요. 그러면서 중얼거려요. 우리 합치면 안될까요. 난 무슨 소린가 했어요. 뭐라고 하셨어요? 그가 고개를 번쩍 들더니 또박또박 말하는 거예요. 우리 결혼합시다.
그 순간에 내가 왜 시계를 보았는지 몰라요. 새벽 두 시 오 분이더라구요. 별안간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어요. 퉁탕퉁탕 가슴이 뛰기 시작했지요. 입술은 바짝 타 들어가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어요.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몰라요. 사실, 대문에 어떻게 열쇠를 꽂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사람이 어디까지 따라왔는지도 기억에 없고.
다만 그 사람이 한 말과 어머니의 노기 띤 말씀이 엇갈리고 있었어요.
-사랑한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승현 엄마에겐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어머님과 당신에게, 김문수로 살겠습니다.
-저 놈이 내 아들 잡아먹더니, 이젠 집안까지 송두리째 삼켜 버릴 놈이다. 너, 저 놈 조심해라.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일이 의지만으로 되는 건 아닌가 봐요. 며칠 전부터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어떻게 할건지 결정을 하려고 했거든요. 악어의 입 속을 다시 찾아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먹이를 찾아 나서서 자립을 해야 하나. 우선 그것만이라도 정하려고 했는데. 그 결정에 따라 이 집안을 끌고 가리라 마음먹었는데…. 언제나 돼야 나는 내 마음의 주인으로 살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지는 해를 바라보며 목을 길게 빼고 계실 어머니가 자꾸 눈에 밟혀요. 흰 등 하나 챙겨 들고 일주문 앞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훑어보고 계실 것만 같아요.
그냥 잠시 덮어두어야 할 것 같아요. 세상일이 종이에 자로 줄을 긋듯이 그렇게 선명하게 드러나진 않겠죠? 그건 나중에 더 고민할래요. 내가 원래 이래요. 독한 척 해봐도 별 수 없다니까요.
내 머리가 너무 산발이죠? 드라이하고 갈까요, 그냥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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