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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 2013년 4월21일[일]
산행경로 : 구이(상학)/모악산관리사무소-대원사-수왕암-무제봉-모악산-헬기장-모악정길-금산사계곡-금산사-주차장
산행거리 : 도상거리상 10km 정도
산행시간 : 대략 5시간 소요 / 여유산행
기상조건 : 구름조금, 최저:5.2℃, 최고:15.7℃, 강수량:0.0, 적설량:0.0
산악소개 : 천년 고도인 전주시 남쪽에 솟은 모악산(793.5m)은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일원에 위치하여
김제시 금산면과 경계를 이루는 명산이다.
금산사, 귀신사, 수왕사, 대원사 등을 품은 모악산은 높이 793.5m로 김제평야의 동쪽에 우뚝 솟아있어
호남평야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197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호남 4경의 하나로 경관이 빼어나고 국보와 보물등 문화재가 많다.
특히 이곳에 는 백제 법왕 원년(599년)에 세워지고 10여 점의 각종 주요문화재를 갖고 있는 금산사가 자리하고 있어,
찬란한 불교예술을 살펴 볼 수 있다.
모악산을 넘으면 동남쪽 중턱에 대원사, 수왕사 등 사찰이 있고 서쪽으로 귀신사가 있으며,
금산사 입구 금평저수지는 낚시터로도 적당하다.
특히 모악산은 예로부터 미륵신앙의 본거지로 여겨져 증산교의 본부와 더불어 30-40년대 각종 신흥종교 집단지로도
관심을 끌어 기록에 의하면 모악산 기슭에는 대원사, 귀신사, 수왕사등 사찰을 비롯 무려 80여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금산사와 벚꽃은 변산반도의 녹음, 내장사와 단풍, 백양사의 설경과 더불어 호남의 4경이라고 한다.
코스안내 :
○ 구이(상학) - 수왕사 - 정상 - 서북능 - 연불암 - 중인동 (8.5km/4시간)
○ 주차장 - 금산사 - 모악정 - 정상 - 동능 - 송학사 - 구이(7.7km/3시간30분)
○ 구이 - 남능 - 정상 - 장근재 - 배재 - 화율봉 - 금산사주차장 (10km/6시간)
○ 중인리 - 금곡사 - 정상 - 동능 - 송학사 - 구이 상학 (7.5km/3시간20분)
○ 운암 초당골 - 분기점 - 엄재 - 국사봉 - 밤재 - 화율봉 - 배재 - 장근재 - 정상 - 무제봉 - 비단길 - 중인동 (21.1km/11시간)
산행트랙 :
산행사진 :
모악산도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잠시 올라가면 바위에 음각으로 새겨진 "모악산"안내석을 만나게 된다.
선녀폭포라기에는 너무 볼품이 없어 보인다.
모악산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자연석 계단을 올라감에 나뭇잎들도 초록으로 물들어 생동감을 자아낸다.
계곡물이 그리 많이 흐르지 않아 봄산행 정취를 느끼기엔 아쉬움을 먼저 접하고...
대원사는 670년 신라 문무왕때 창건한 사찰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말기에는 증산(증山)강일순이 이곳 대원사에서 도(道)를 깨우치기도 했다고 한다.
오층석탑(조선후기에 건립)을 기준으로 정면으로는 대웅전이 있고 바로 옆뒤로는 적묵당과 범종각이 자리한다.
수왕사로 오르기전에 쉬어가도록 정자를 만들어 두었다.
좌로는 수왕사가 지척에 있고 정상은 정자 우측으로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한다.
작으나마 오랜역사의 암자라 쉬어가며 물 한모금 마신다.
대원사를 출발한지 20분 정도 등산로를 따라 오르니 수왕사다.사찰이라기 보다는 작은 암자다.
예전에는 수왕사를 물왕이정 또는 무량이절이라고 했다.
신라 문무왕 20년(660년)에 보덕화상이 수도장으로 쓰기위해 창건한 것을 1125년에 숙종대왕의 두번째 왕자인 원명국사께서 중창 했다.그후 1597년 정유재란때 소실된것을 1604년 진묵대사께서 중건을 하였으며 1951년 6.25당시 공비토벌 작전으로 소실된 것을
1953년 천석진사가 재중창 하였다.
힘들게 오르는 정상아래 길가에는 아이스크림과 막걸리를 판다.
무제봉 아래쪽 탁트인 조망에 바람이 머무는 자리에 오까리나를 참으로 이쁘게 부는 노년의 부부가 아름답다.
구이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모악송신소는 TV 및 라디오 전북과 충청일부 지역의 난시청을 해소하기 위해서 설치된 방송통신 철탑이다.
모악송신소 옥상이 전망대다.
모악산은 북으로는 만경강과 남으로는 동진강이 흘러 호남일대에 물줄기를 대어 주며 호남의 어머니 역할을 한다.
동남쪽에 자리한 구이저수지다.금산면에는 금평저수지가 있다.
북봉의 헬기장 안부에 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점심을 먹는 모습이 보인다.
모악산 정상 송신소에서 마지막으로 바라본 곳은 남쪽 임실과 정읍 국사봉과 내장산 쪽이다.
황사와 꽃가루때문에 조망이 흐려서 볼 수가 없어 아쉽다.
다양한 종교의 발상지이면서 각 종교간의 성지로 추앙받고 있는 김제 모악산의 특징을 살린 종교 순례음악제도 열린다.
모악정길의 계곡숲이 아름답고 계단데크도 잘 정비되어 있다.
진달래가 만개하여 반긴다.
새소리와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정겹다.
울창하고 시원한 편백숲도 하산길을 즐겁게 한다.
벚꽃이 만개하여 김제의 모악산에는 벚꽃축제 중이다.
금산사로 가는길에 한적한 곳에 자리한 부도탑들...
봄기운이 피어나는 나무들이 활기차다.
금산사(金山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이다.전라북도 금산면 모악산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 성종23년(1492년)에 작성된 "금산사 5층석탑 중창기"에 의하면,금산사는 이미 석가모니 이전의 가섭불 때에 있었던 옛
절터를 다시 중창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이는 금산사의 터전이 오래 전부터 부처님과 인연이 깊었던 것임을 알수 있게 하는데,
남아있는 "금산사사적"의 기록에 의하면 백제 법왕 원년(599년)에 나라의 평안과 백성의 복을 기원하기 위한 원찰로 조그만한
산문이 열렸고,신라 혜공왕2년(766년)에 진표율사께서 크게 중창하여 33척의 철미륵불상을 모신 후 미륵신앙의 근본도량
그리고 법상종 종찰로 크게 변모하였다.
금산사에는 승제법사의 가르침을 받아 수행하던 진표율사는 27세때에 변산 부사의암에서 철저한 수행에 전ㄴ념하는 등 17년간을 몸을 돌보지 않는 망신창의 고행을 통하여 마침내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부터 간자와 계본을 전해 받게된다.이후 진표율사는
금산사로 다시 돌아와 중창불사를 발원하고,경덕왕과 왕실의 후원을 받아 6년에 걸쳐 가람을 대규모로 일으켜 세웠는데 이 때가
경덕왕21년(762년)부터 혜공왕2년(766년)에 이르는 기간이었다.
후백제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하여 유폐되었다고 전해오고 있는 금산사는 고려 문종33년(1079년) 주지로 부임한 혜덕왕사가 창건이념과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사찰전체를 관장하는 대사구와 판각,경전강의 수련법회를 하는 광교원구와 사리탑과 비석을
안치하고,원로대덕들께서 주석하시는 봉천원구로 삼분하여 경전연구,실천수행,중생교화,사찰경영 등 합리적인 체계를 확립하여 전대미문의 전성기를 이룩하였다.
조선 선조25년(1592년) 임진왜란때 위기에 처한 나라와 백성들을 지키려는 뇌묵처영 스님을 중심으로한 1500여 승병들의 훈련장으로서 승병들의 헌신적인 활동에 의하여 재난을 겪지 않았다.그후,정유재란때 왜군들의 보복으로 인하여 장엄했던 80여동의
건물과 40여 암자가 한줌의 재가 되고 말았다.선조31년(1725년) 수문대사께서 열다섯분의 대덕스님과 함께 복원불사를 시작하여 장장 35년만에 인조13년(1635년)에 오여래,육보살을 모신 대적광전과 39척의 미륵불을 모신 미륵전 등 대사구지역만 낙성을
보았다.영조1년(1725년)에 지안스님께서 1400여 학인을 모아 화엄경을 강설하였고,고종 광무초에 주지로 부임한 용명화상은
사리탑지를 훼손하려는 광부들을 저지하려다 폭행을 당하여 순교 하였다.
금산사의 역사를 함께 해 온 고목은 올 봄에도 연한 새잎들을 피워낸다.
금산사 보제루(普濟樓)는 천왕문 지나 가람의 중심에 이르면 누각 건물이 보제루이다.
정면 7칸,3칸의 2층 누각식 건물로서 아래층은 절 앞마당으로 오르는 계단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사찰에서 누각건물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와서 부터이다.
작은 외침에 따라 승병이 조직되고 금산사가 승병의 집결장소가 되면서 군사적 필요에 의해 누각이 번성하였다고 한다.
이후 승병이 사라지면서 누각건물은 법회와 강설,그리고 대중집회 장소로 사용되었고,오늘날에는 이런 실용적 기능보다는
가람의 한 구성요소로 자리를 잡고 있다.보제루는 조선 중기에 만세루라는 12칸짜리 누각을 계승한 건물로 보인다.
1975년에 신축하여 1997년에 증축하였다.
고목에 꽃이 핀다는걸 실감하고...
금산사의 범종각...
금산사의 대적광전(大寂光殿)은 화재이전 보물 제476호다.
정면 처마아래에 걸린 편액은 석전 황욱(1898~1993)이 1991년 쓴 글씨다.
대적광전에는 일반적으로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한 삼심(법신,보신,화신)불을 봉안하여 연화장 세계를 상징하게 된다.
그런데 금산사 대적광전에는 특이하게 5여래,6보살이 모셔진 곳이다.이는 한국불교의 특징인 통(通)불교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불타의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서 어느 하나의 사상이나 종파에 치우침이 없고,선과 교가 둘이 아님을 일찍부터 체득했던 때문이다.내부 왼쪽 벽에는 1991년 당시 주지 월주스님과 증면 월산스님이 조성한 신중탱화를 봉안하였다.
금산사 미륵전(彌勒殿)은 국보 제62호(1962년12월20일 지정)이다.
미륵전은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이 그분의 불국토인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라는 것을 상징화한 법당이다.
즉,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을 사찰속에 응축시킨 것이 미륵전이요,먼 미래의 새로운 부처님 세계에서 함께 성불하자는 것을
다짐하는 참회와 발원의 장소이다.신라 경덕왕21년(762년)부터 혜공왕2년(766년) 사이에 진표율사가 가람을 중창하면서
미륵보살에게 계를 받았던 체험 그대로를 가람에 적용하여 세웠다.내부에는 미륵장륙상을 본존으로 모셨으며,남쪽 벽에는
미륵과 지장보살에게서 계를 받는 광경을 벽화로 조성하였다.
금산사 대장정(大藏殿)은 보물 제827호(1985년1월8일 지정)이다.
미륵전의 정면 서쪽에 위치한 대장전은 진표율사가 절을 중창하면서 세운 목조탑으로 본래 불경을 보관하던 곳이었다.
미륵전을 짓고 미륵전 뜰 가운데 세운 목조탑으로 당시의 양식은 탑과 같이 산개형의 층옥으로서 맨 꼭대기 옥개에는 솥뚜껑 모양의 철개를 덮고,다시 그 위에 불꽃 모양의 석조 보조를 올렸다.그 뒤 조선 인조13년(1635년)에 지붕위에 복발,보주 등의 목조탑 흔적이 남아 있어 지금도 신라시대 목탑 양식을 엿 볼수 있다.
금산사의 봄은 시공을 초월하여 공유하는 듯하다.
감로수로 마음과 몸을 정화하고...
금산사의 범종각...
금산사 금강문(金剛門)는 금강역사로 불교의 수호신이다.
대체로 불탑 또는 사찰의 문 양쪽을 지키는 수문신장의 역할을 담당하며,인왕역사라고도 한다.
이 신은 여래의 온갖 비밀스런 사적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5백의 야차신을 거느리고 현겁 천불의 법을 수호한다고 한다
금산사 천왕문(天王門)은 금괴문과 일직선상에 있다.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인 사천왕을 모신 전각이다.외호신이란 불국정토의 외고가을 맡아 지키는 신이라는 뜻이며,동,서,남,북
네 곳을 지키게 된다.이 곳 천왕문은 1994년에 가람을 중수하면서 새롭게 조성했다.
안에는 사방에서 불법을 외호하는 지극천왕,증장천왕,광목천왕,다문천왕을 봉안 하였다.
마음을 비우고 나서야 하는 일주문...
금산사에 오르는 산길에서 처음 만나는 건물이 "모악산금산사"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一柱門)이다.
밍부문은 기둥이 일직선상의 한불로 늘어서 있어 일주문이라 부른다.이 일주문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며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로부터 부산히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로 향하게 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1975년네 세운 목조의 맞배지붕 양식이며,현판은 일중 김충현의 글씨이다.
새로운 성문인가? 못 보던 성문이 축조되어 있다.
인공분수도 만드는 중이고...
인공폭포도 조성되어 더위를 식히며 볼거리를 제공한다.강천산의 인공폭포가 생각난다.
검은곰팡이라는 별칭을 가진 목이버섯이란다.심혈관 질환을 막아주며,빈형과 폐 청결에 탁월한 효능이 있단다.
김태곤의 송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