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차례며 성묘를 마치고 고향마을로 가는 길,
햇살이 봄볕처럼 화사했다.
양지바른 언덕에는 광대나물꽃이며 봄까치꽃이
피기 시작했고 비닐하우스 안에는 봄배추모종이
갓 깨어난 병아리들처럼 종종거리며 볕을 즐긴다.
군에 입대하던 즈음 부모님이 고향을 떠나셨고
이제는 피붙이 하나 남아있지 않지만 내 지난 삶을
돌아다보듯 고향마을에 다녀오곤 했다.
지켜야 할 명령처럼 대부분 노부모들만 거처할
고향집도 오지 말라니 마을은 더 쓸쓸한 듯 했다
그 시절 4월 무논에 개구리들처럼 아이들도 많았던 시절
차례를 마치면 이웃집으로 세배를 다니곤 했는데,
이제 시골마을에선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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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사람에게서 생겨나는 것처럼
길에서 만나는 이들이 드물어지면서
고향의 추억들이 희미하게 바래져만 간다.
산과 들이 놀이터였으니 가재를 잡던 개울도 내려가 보고
깨금열매를 따고 칡을 캐던 산등성이도 올라가보고 산을 내려온다.
하나 둘 세월에 낡아가면서 사람들도 떠나고 집도 허물어지고
외지 사람들이 들어와 번듯한 집을 세우니 더 낯설어진다.
노인 한 분이 밭가에서 대파를 다듬고 있다.
기억이 가물거리니 아이의 이름을 여쭈어 확인한다.
이가 다 빠져 말씀하시는 것이 불편해 보인다.
그는 젊은 시절 소달구지를 끌던, 동네에 몇 안 되는 분이었다.
광천장날이면 마을 사람들에게 삯을 받고
곡식 등을 싣고 장에 갔고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달구지 위에 짐을 가득 싣고 소고삐를 말아 쥐고 언덕을 치고
오르는 그의 모습은 활력이 넘쳐보이곤 했었다.
'아저씨 그 때는 정말 멋있었는데'
투박한 그의 손을 잡으며 헌사처럼 전해드렸을 때
입을 벌리지 않으셨지만 그는 환하게 웃으셨다.
내가 알던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대처로도 떠나면서 고향이 나를 멀리하는 것처럼 점점 낯설어진다.
어린 시절 나를 키워준 고향의 햇빛과 바람처럼
알게 모르게 나를 키워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도,
나도 점점 낡아져가는 존재라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내가 돌아 갈 고향이 크게 변하지 않고
존재한다는 것은 참 고마운 것이리라.
나를 멀리하는 것처럼 갈 적마다 낯설어지는 고향마을을
돌아 나오면서 이제 고향에 갈 때는 묵은지처럼 좀 더 오래된
이야기를 기억해내어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몇 안 되는 고향에 계신 이들이 어디로든 떠나기 전에
들려주었으면 싶은, 그 시절 멋지고 대단했던 이야기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