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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02. 수호천사 기념일. 묵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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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나의 천사가 앞장설 것이다.>(탈출23,20-2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0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21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그의 말을 들어라. 그가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리니, 그를 거역하지 마라.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있다. 22 너희가 그의 말을 잘 들어 내가 일러 준 것을 모두 실행하면, 나는 너희 원수들을 나의 원수로 삼고, 너희의 적들을 나의 적으로 삼겠다. 23 나의 천사가 앞장서서 너희를 아모리족, 히타이트족, 프리즈족, 가나안족, 히위족, 여부스족이 사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나는 그들을 멸종시키겠다.” 복음<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18,1-5.10)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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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02. 수호천사 기념일.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님. http://www.ofmkorea.org/ofmhomily/585865 2026.10.01 21:14 2026년 10월 2일 금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
마태 18,1-5.10
오늘 교회는 그 말씀의 마지막 구절(10절)에 머뭅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마라. 그들의 천사들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뵙고 있다.”
이 한 문장에 두 가지 선물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마라’는 것입니다. 힘없고 눈에 띄지 않는 이 ―어린이, 약한 이, 밀려난 이― 가 하느님께는 더없이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 까닭입니다. 그들 저마다에게 ‘천사’가 있어, 하느님의 얼굴 앞에 서서 그들을 지켜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호천사’입니다. 교회는 성경에 기대어 가르칩니다(시편 91,11; 탈출 23,20 참조).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천사 한 분을 정해 주시어, 선으로 이끌고 악에서 지키며,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 전하고, 우리를 대신해 그분 얼굴을 뵙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까맣게 잊고 지낼 때에도, 나의 천사는 그분 얼굴을 바라보며 나를 위해 기도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노래한 하느님의 ‘섭리’란, 이렇게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손길로 우리를 감싸는 사랑입니다. 때로 하느님께서는 ‘한 사람(좋은 벗·조언자)’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천사를 보내십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우리를 더 넓은 자리로 이끕니다. ‘업신여기지 말아야 할 작은 이들’에는,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이, 나와 맞선 이까지 포함됩니다. 그들에게도 그들을 지키는 천사가 있습니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사람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까닭은, ‘그 뒤에 하느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수호천사는 곧, 모든 사람의 존엄이 하느님께 뿌리내림을 보여 줍니다.
영성 주간의 눈으로 보면 수호천사는 영성의 다정한 진실을 일깨웁니다. 영성이란, 내가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고요 속에서 우리는 곁의 ‘보이지 않는 동행’을 느낍니다. 어린이가 지켜보는 이가 있어 두려움 없이 살 듯, 우리도 천사의 동행을 믿으며 어린이처럼 신뢰할 수 있습니다. ‘나는 지켜지고 있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혼자’라는 생각에 갇혀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곁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동행’을 신뢰하는가? 나는 ‘작은 이(약한 이·맞선 이)’를 업신여기지 않는가? 나는 누군가에게 ‘천사(선으로 이끄는 손길)’가 되어 주는가?
주님, 제가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하소서. 곁을 지키는 천사의 동행을 어린이처럼 신뢰하게 하시고, 작은 이를 소중히 여기며 제가 누군가의 천사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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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02. 수호천사 기념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https://cafe.naver.com/f-e/cafes/30893450/articles/3264?boardtype=L&referrerAllArticles=true 2026.10.01. 16:46
대중을 위한 성인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호명환 번역)
작은 길(The Little Way)은 우리의 삶과 세상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리지외의 데레사: 사랑의 길 대중을 위한 성인 2026년 10월 1일 목요일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 축일 가톨릭 워커(Catholic Worker)의 공동 창립자인 도로시 데이는 리지외의 데레사 성녀의 하느님께 나아가는 "작은 길(The Little Way)"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길은 가난 속에 살아가는 이들을 포함하여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었습니다. 데이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데레사의 이 매력에 대해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녀의 명성을 처음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한 이는 바로 '노동자', 즉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녀로서 그녀를 가장 먼저 선포한 것도 대중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백성'이었습니다. 대중을 생각할 때 우리는 바다의 물결, 숲, 밀밭과 같은 것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런 것들은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불어오시는 성령에 의해 움직이는 모습을 드러내 줍니다. '백성'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학교에 있는 아이, 일하는 어머니, 여행하는 남자, 이주 노동자, 군인, 부유한 이, 중산층, 빈민가에 사는 가난한 이들, 거리의 궁핍한 사람들 등을 떠올립니다. 성녀는 이 모든 이들에게 크게 호소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렇게 많은 이들의 마음을 끌게 했을까요? 아마도 그녀가 우리와 너무도 닮은, 평범한 일상의 사람으로 살아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녀의 생애에는 기적이라 불릴 만한 특별한 사건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저 선하고, 하느님 안에서 단순히 사랑으로 살았을 뿐입니다. 그녀를 성인으로 선포한 것은 세상 자체였고, 그녀를 마음 깊이 받아들인 것은 바로 평범한 백성이었습니다. 데이는 데레사의 "작은 길"이 오늘날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데레사는 하느님의 현존을 깊이 의식하며, 우리의 일상과 이웃과의 만남을 이루는 모든 작은 일들을 하느님의 영광과 찬미를 위해 행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작은 길"이라 부른 그 길을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이를 위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했고,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하느님과 백성이 공동으로 이룬 것입니다. 그녀의 삶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물론 그녀의 성덕이며, 또한 그녀의 가족 전체가 함께 지닌 성덕입니다. 이는 전쟁 이후의 물질주의와 도덕적 혼란이 만연한 오늘날에는 결코 흔한 일이 아닙니다…. 정부가 점점 더 강력하고 중앙집권적으로 되어 가는 시대에,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이 무력하다고 느낍니다. 온 세상이 전쟁 준비와 힘의 과시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일 때, 데레사 성녀의 메시지는 그와는 전혀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그녀는 우리의 처지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원자(atom)가 작은 것입니까?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큰 파괴를 일으켰는지 우리는 압니다. 그렇다면 그녀의 "작은 길"은 영성의 삶에 있어 작은 기여에 불과한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길은 그리스도교의 영성이 지닌 모든 힘을 뒤에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과 세상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폭발적인 힘이며, 그것을 실제로 살아낼 때 그 힘이 드러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오늘날 이 성녀는 세상에다 이러한 힘, 즉 영적 힘을 방출하 그 두려움과 재앙을 거슬러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은총의 작은 추진력이 코발트 폭탄보다도 무한히 더 큰 힘을 지니고 있음을 압니다. 그리고 데레사는 "모든 것은 은총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나는 천국에서도 땅 위의 사람들을 위해 선을 행하며 살겠습니다." "나는 수많은 작은 성인들을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나의 사명은 하느님이 사랑받으시게 하고, 사랑 자체가 사랑받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제가 성녀 데레사, 곧 "작은 꽃(Little Flower)"을 발견했을 때, 저는 위대한 일을 하기에는 너무 작은 존재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은 일을 큰 사랑으로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매일 저는 작은 일을 큰 사랑으로 할 기회를 갖습니다. 무례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고, 저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할 수 있으며, 저 자신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Catherine F. Reference Dorothy Day, Therese (Fides Publishers, 1960), 173–175.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Richard Bell, untitled (detail), 2022,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이 작은 꽃들은 우리에게 작은 사랑의 행위가 지닌 아름다움을 일깨워 줍니다. 그것은 곧 성녀 데레사가 가르쳐 준 ‘작은 길’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라는 초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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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02. 수호천사 기념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2026.10.02 05:42
- 나만을 사랑해주는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다 돌볼 수 없어서 사람마다 어머니를 주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우리는 이 뜻을 즉시 압니다. 이 말은 하느님께서 정말로 능력이 없다는 뜻이 아니요, 우리처럼 모든 사람을 돌보시기에 힘에 부치신다는 뜻이 아니지요.
실로 우리는 한 사람 돌보는 데도 힘이 달립니다. 여러 아이 잘 키우는 것이 힘들어서 많이 낫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이 말은 하느님께서 각 사람을 참으로 인격적으로, 영어로 말하면 Personal하게 돌보신다는 뜻이지요.
전에 체력 운동관 홍보물에 PT 강습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때 저는 그 말의 뜻이 뭔지 몰랐다가 나중에야 Personal Training 곧 개인 지도의 준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처럼 수호천사는 하느님의 일대일 사랑의 준말인 셈입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떼로 돌보실 뿐 아니라 한 마리, 한 마리에게 이름 붙여주시고 한 마리, 한 마리를 따로 불러내시어 목장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불과 나흘 전 대천사 축일을 지내고 오늘 수호천사 축일을 따로 또 지내는 이유도 이것일 겁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심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태양 빛은 부족해서 못 비추는 곳이 없으며 다 비추고도 남습니다.
그런데도 빛을 못 받는 나무가 있고, 한 나무에서도 못 받는 가지와 이파리가 있지요.
서로가 햇빛을 가리기 때문일 수도 있고 처지는 가지나 이파리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요. 그렇다고 태양 빛이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따로 엄마가 필요한 것은 하느님 때문이 아니라 우리 때문이고 우리가 각기 다른 사랑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모두를 함께 사랑해주시는 사랑도 필요하지만 나만 사랑해주시길 바라는 것도 있고, 나만의 사정이 있기에 나만의 맞춤 사랑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하늘 한가운데 떠 있는 달도 아름답지만 내 창으로 들어오는 달이 더 나의 달인 듯 정겹기도 하잖아요?
중천에 떠 있기에 그 달을 같이 보고 손가락 걸며 약속도 하고, 멀리서도 그 달을 보며 그리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내 창으로 들어오는 나만의 달이 고맙고 사랑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지요.
수호천사 축일을 지내며 나만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이 사랑을 우린 느껴야 하고 그렇게 느낄 때 우리에게 나의 수호천사는 있는 겁니다.
그럴 때 수호천사는 진짜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영적인 존재일 수도 있고, 나만을 사랑해주시는 엄마일 수도 있고, 잔소리하는 아내나 남편일 수도 있으며, 나도 모르는 그 어떤 이웃일 수도 있는데 오늘은 그 수호천사가 누구일까 돌아보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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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02. 수호천사 기념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숨영성 묵상글 https://cafe.naver.com/f-e/cafes/30893450/articles/3266?boardtype=L&referrerAllArticles=true 2026.10.02. 05:29
"아버지 하느님, 제가 당신께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사랑받는 존재라는 엄청난 사실을 매 순간 깨닫게 하소서."
하느님께서는 천사들을 보내시어 우리의 모든 길에서 우리를 지키도록 해 주십니다(시편 91,11 참조).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우리에게 보내시는 이유는 우리를 온갖 위험으로부터, 특히 악마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왜 그리도 힘이 강한 악마들이 우리와 같은 작은 인간을 파괴하려 할까? 제가 배운 바로는 악마는 생명과 관련한 일 이외에는 하느님과 거의 같은 능력을 갖고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고 하는데, 왜 우리 인간을 고발하고 제거하려 드는 걸까?"...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으로, 하느님과 비슷하게 창조되었기(창세기 1,27) 때문이고, 우리가 그 사랑의 하느님으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우리가 수호천사 기념일을 지내는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하기 그지 없고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지닌 어쩔 수 없는 하느님의 피조물이기도 하지만, 본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비뚤어지고 왜곡된 우리의 모습은 하느님께서 태초에 우리를 창조하셨을 때의 모습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을 만큼 하느님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모욕을 받고 박해를 받아도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박해하고 모욕하는 이들, 소위 원수들마저 사랑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그리 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고, 당신 때문에 모욕이나 박해를 받아들이는 것이 참으로 복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그러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밟고 일어서려 하고 서로를 죽이면서까지 에고를 건설하려 하는 것은 사탄, 즉 악마의 계략에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절대 사탄의 하수인으로 창조된 존재가 아닙니다. 사실 사탄은 자기가 하느님을 직접 공격하고 파괴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느님을 미워하고 모독하기 위해 우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호천사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함께다는 사실은 단순히 우리가 약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의식하게 해 주는 진리이기도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악마가 우리를 공격하는 이유는 하느님이 완전한 사랑이시고 또 우리가 그렇게 하느님 사랑의 또 다른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악마가 우리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이유는 악마가 하느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미워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느님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우리를 지켜 주는 수호천사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느님처럼 그분의 힘을 받아 악마의 일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랑의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끔 기억하고 마음에 깊이 새기기 위해서입니다. 성령 강림 이후 성경은 천사들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언급합니다. 이미 하느님께 사랑받고 힘을 부여받은 우리 인간은 이제 성령, 곧 "위로부터 오는 힘"(루카 24,49; 사도행전 1,8)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부각시켜 주는 언급들 입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하느님의 힘으로 옷 입은 존재가 되었기에 사탄과 그의 어둠의 왕국에 훨씬 더 큰 위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왜곡된 자기 방어를 위해 우리를 더욱 공격할 이유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사탄은 우리의 적대자로서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니는 것입니다."(1베드로 5,8). 그러니 수호천사의 실재는 하느님의 위대함뿐 아니라 인간의 영광과 힘을 드러내는 것이겠지요?! 말하자면 수호천사의 실재는 인간이 그 사랑의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되고, 사랑받으며, 힘을 부여받고, 구원되고 완성된 존재, 즉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변모된 존재라는 진리를 상기하고 의식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우리를) 기억해 주시고,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실까요!"(시편 8,5). 어찌하여 우리에게 수호천사를 보내시어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돌보아 주실 만큼 놀라운 삶을 주셨을까요?!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자신처럼 사랑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예언자와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며 이를 우리 살아생전에 절대 잊지 말고 기억하고 또 의식하며 살아가라고 수호천사를 우리에게 매 순간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공동번역 이사 43,4). "오냐! 에브라임은(요셉의 아들 - 이를 '너는'으로 바꾸어 읽어 봅시다.) 내 아들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염둥이다. 책망을 하면서도 나는 한 번도 잊은 일이 없었다. 가엾은 생각에 내 마음은 아프기만 하였다. 내가 진정으로 하는 말이다!"(공동번역 예레 31,20). 오늘 우리는 저와 함께 이 기도를 바칩시다! "아버지 하느님, 제가 당신께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사랑받는 존재라는 엄청난 사실을 매 순간 깨닫게 하소서." 그리고 이 앞서 언급해 드린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의 하느님 말씀과 더불어 오늘 저와 함께 이 시편을 노래하도록 합시다! "정녕 당신께서는 제 속을 만드시고 제 어머니 배속에서 저를 엮으셨습니다. 제가 (이토록) 오묘하게 지어졌으니 당신을 찬송합니다. 당신의 조물들은 경이로울 뿐, 제 영혼이 이를 잘 압니다. … 이미 정해진 날 가운데 아직 하나도 시작하지 않았을 때 당신 책에 그 모든 것이 쓰였습니다." (시편 1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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