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 산창 4
칠월 넷째 토요일은 경주 산내 걸음을 했다. 사십 년 가까이 이어오는 대학 동기들 모임이다. 점심나절 창원에 사는 동기 내외와 함께 길을 나섰다. 내가 윤번제로 살림을 맡는 때다. 경주 산내는 울산 친구가 별장처럼 지내는 산방이 있다. 친구는 주말이나 방학이면 그곳으로 들어가 약초나 산나물을 가꾸며 여가를 보낸다. 겨울은 너무 추워 비워둔다만 여름은 시원해 지내기가 좋다.
여름과 겨울이면 1박을 하면서 지낸다. 지난번 겨울 통영 모임에서 여름엔 친구 산방에서 모이기로 했다. 대구와 함양과 거창에 한 명씩 산다. 창원에 둘이고 울산에 셋이 산다. 산방 주인장이기도 한 친구는 이른 아침 울산 농수산물도매시장으로 나가 장을 봤다. 구이용 장어와 참가자미 생선회를 뜨고 문어와 볼락도 샀다는 연락을 받았다. 친구는 손이 커 음식 장만이 푸짐하다.
창원 동기가 운전한 차로 넷은 밀양을 거쳐 가지산 터널을 지났다. 석남사 인근에서 경주 산내로 넘는 대현고개를 넘어 산내 면소재지를 지나 친구 산방에 닿았다. 산방 주인장 내외는 아침나절부터 그곳에 들어 친구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커다란 솥에 약재를 달이고 있었다. 당귀와 오가피와 엄나무 등은 산방 농장에서 가꾼 재료들이다. 백봉오골계 백숙을 끓이기 전 과정이다.
동기 모임이 산방에서 가지게 되어 친구 내외는 이부자리를 세탁하고 베개도 새로 사 놓기도 했단다. 제법 너른 마당의 잔디는 깔끔하게 깎아 놓고 있었다. 여장을 풀자마자 창원에서 간 동기는 아궁이를 지키고 나는 산방 진입로 주변 무성한 풀을 잘랐다. 이후 울산에서 시장 봐 온 생선회롤 들면서 그간 밀린 안부를 나누었다. 함양과 대구를 비롯한 여덟 가족이 속속 모여 들었다.
나는 산방 주인장과 같이 농장에 심겨진 삼채이랑 잡초를 뽑고 난 뒤 만찬 준비를 했다. 그새 네댓 시간 약재를 달인 오골계백숙이 익어갔다. 백숙 이전 문어를 삶고 볼락을 숯불에 구워 잔을 채워 들었다. 술은 건강을 생각해 일적 불음 친구도 있고 각자 취향 따라 들었다. 캔 맥주 뚜껑을 따는 친구도 있고 맑을 술을 비우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숙성이 잘 된 건천 곡차를 들었다.
동기들과 동행한 아내들도 야외 테이블에서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며 준비된 음식을 함께 들었다. 볼락에 이어 참숯불에는 장어를 올려 노릇하게 익혀 먹었다. 양념과 야채도 곁들여졌다. 싱그러운 잔디밭에서 흥이 나자 즉석에서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르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취기에서 깨고자 내실로 들어 샤워로 땀을 씻기도 했으나 끝내 거실 모퉁이 몸을 뉘고 잠에 먼저 들었다.
깊은 잠으로 빠져드는데 한 친구가 거실로 들어와 나를 깨워도 그냥 계속 잤다. 새벽녘 잠을 깨니 대구와 울산 한 동기 내외는 댁으로 복귀하고 여섯 가족이 남아 있었다. 부녀들은 안방에서 자고 동기들은 거실에서 잤더랬다. 나는 다른 동기들이 잠을 더 자도록 살그머니 밖으로 나와 야외 테이블에 널브러진 잔해들을 정리했다. 장어구이에 이어 오골계백숙을 든 흔적이 고스란했다.
설거지를 하다 보니 지하수 수돗가에는 누군가 개울로 내려가 잡아둔 다슬기와 물고기들이 보였다. 요리를 잘하는 한 친구가 다슬기로 삶아 속살을 볼가 맛난 국과 매운탕이 마련되었다. 백숙 국물도 해장과 아침으로 아주 훌륭했다. 나는 운전에 자유로운지라 어제 비운 곡차를 계속 들 수 있었다. 통영 친구는 계곡을 따라 올라 맑은 물이 흐르는 웅덩이에서 알탕을 하고 오기도 했다.
다슬기국과 백숙 국물로 아침을 들고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산방 주인장은 생수 병에 오래도록 약재를 고아 달인 백숙 국물을 담아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마당과 거실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산방을 나와 당고개 너머 건천읍으로 갔다. 산방 주인장이 눈여겨 봐둔 근동에서 알려진 매운탕 집으로 들어 점심상을 받았다. 제피가루와 방아풀잎이 풍미를 더해준 맛깔스런 매운탕이었다. 19.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