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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조선,부여,발해 등 고대사토론방 발해 수령의 성격과 말갈 3 - 고당 전쟁과 호족 성립의 상관관계
한단인 추천 0 조회 610 09.01.16 16:21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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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1.17 08:55

    첫댓글 아주 재미있게 감상하고 있습니다..얼마든지 계속...다음 내용이 기대 됩니다.....^^*

  • 09.01.17 09:50

    고구려 멸망을 영가의 난과 맞먹는 수준으로 끌어올리셨군요. 한단인님 글을 읽고 보니 중세사 분기점에 대해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래 주제가 발해임을 감안하면 옆으로 좀 많이 샌 감도(^^;;)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발해 정권의 성립을 위해서는 고구려 멸망시의 상황 설명이 분명 필요하겠지요. 부족 체제를 해체하고 중앙집권을 완료했던 고구려의 멸망이 군벌들의 등장을 부추겼다... 다음 글이 기대됩니다.

  • 작성자 09.01.19 14:37

    일단 배경 설명을 하자니 삼천포로 빠지는게 수순이더군요. ;;;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발해사를 중세사 분기점으로 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단지 그것이 '한국사' 란 영역에서의 중세사로 봐야할 것이냐고 한다면 그건 좀 아닌 거 같고.. 국가사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지역사로 발해사를 중세의 한 부분으로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단 신라는 아직 중세로 접어들지 않았으니까요. 국가사의 시대 구분으로 바라보기에는 공간적 영역이 광대하고 또한 시간차도 꽤 많이 나서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지역사적 시대구분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 09.01.17 12:57

    지도를 넣어주시니 딱딱한 부분이 많이 감소되고 잼있네요

  • 09.01.18 03:08

    2차 여당전쟁에서 평양일대를 강타당한 고구려의 피해가 막심했을거라는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실이라 생각됩니다. '이겼지만 이긴 게 아닌 전쟁'이었지요. 그런데 그것을 지방호족의 대두와 어떻게 연결시키실지 궁금하고 또 기대되네요.

  • 09.01.19 02:14

    로마제국이 속주방위를 포기하자 각속주들은 야만족들에게 투항하여 그들과 협력하게 되죠. 그리고 야만족들간 영토분쟁이 끝나자 의외로 평화가 확립니다.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요. 고구려도 비슷했을거라고 봅니다. 중앙정부의 붕괴는 결국 각지역의 운명은 각지역에게 넘어가게 되고, 남아있던 귀족과 경제인들과 군인들이 각지역에서 할거했다고 생각됩니다. 발해가 세워지기전까지 옛고구려영토에서 각종위협에서 지역민들을 보호하고 세금을 받았겠죠. 그리고 대조영의 고구려부활 기치에 들어오거나, 싸우거나 해서 발해가 건국되고, 그기치에 저항없이 들어간 세력은 건국후에도 고려의 호족들처럼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었겠죠.

  • 09.01.19 02:16

    매우 신선한 의견이라고 생각됩니다. 새로운 시각에서 고구려멸망을 보니 이런결론도 가능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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