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최두석
달 없는 어둠 속을 검게 숨죽여 흐르는 강물, 별들은 모두 선잠 깬 듯 깜박거린다. 한사코 그늘에서 그늘로만 옮겨디디며 살아온 자의 생애가 오늘밤 급한 여울을 이루며 흘러내린다.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물살이 한 줄기 도도한 강물로 흐른다. 문득 물결을 타고 어룽더울 두꺼비 한 마리 헤엄쳐 오른다. 무겁게 알 밴 몸이 물살을 따라 흐르다가 다시 자맥질 하며 거슬러오른다. 마침내 기슭으로 기어올라 엉거주춤 뒷발에 한껏 힘을 주고 두리번거린다. 가슴을 벌럭이며 결연히, 어찌할 수 없는 천적 독사를 찾아나선다. 그리하여 드디어 온몸으로 잡아먹힌다. ……이제 며칠 후면 독사의 뱃가죽을 뚫고 수백 마리 새끼 두꺼비가 기어나오리라. 독사의 살을 먹으며 굼실굼실 자라리라.
― 최두석 시집, 『성에꽃』 (문학과지성사 / 1990)
최두석
전남 담양 출생. 서울대 국어교육과와 동대학원 국문과 졸업. 1980년 《심상》에 「김통정」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대꽃』 『임진강』 『성에꽃』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꽃에게 길을 묻는다』 『투구꽃』 『숨살이꽃』. 평론집으로 『리얼리즘의 시정신』 『시와 리얼리즘』 등. 오장환문학상, 불교문예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