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909)... 나는 청춘(Youth)인가?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1000만 파워 실버 시대
많은 현자(賢者)들이 청춘(靑春)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청춘을 노래하고 청춘에 관한 글을 썼다. 그중에서도 필자는 사무엘 울만(Samuel Ulman, 1840-1924)이 78세에 쓴 명시 <청춘(Youth)>을 좋아한다. 힘들 때 이 시를 읊거나 떠올리면 마음이 맑아지고 기운이 샘솟는다. 울만은 1940년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해 교육, 정치, 종교 등 다양한 방면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이 명시(名詩)가 빛을 보게 된 것은 태평양전쟁이 끝나갈 무렵, 종군기자 프레더릭 팔머가 필리핀 마닐라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 극동군 총사령관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연히 맥아더 장군 책상위의 액자에 들어 있던 <Youth>라는 시를 보고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맥아더 장군은 이 시를 매일 암송할 만큼 좋아했다. 팔머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1945년 12월 호에 ‘어떻게 젊게 살 것인가(How to stay young)’라는 제목의 기사에 <Youth>를 소개했다. 이 시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 it is not a matter of rosy cheeks, red lips and supple knees; it is a matter of the will, a quality of the imagination, a vigor of the emotions; it is the freshness of the deep springs of life.”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그리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그리고 울만의 시 <Youth>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다. “When the aerials are down, and your spirit is covered with snows of cynicism and the ice of pessimism, then you are gown old, even at twenty. But as long as your aerials are up to catch the waves of optimism, there is hope you may die young at eighty.”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雪)에 덮이고 그리고 비탄의 얼음(氷)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스무 살 노인(老人)과 일흔 살 청춘(靑春)’ 명문대학 졸업장이 인생의 최정점인 ‘20, 30대 노인’이 있는가 하면, 넓은 세상을 교과서 삼아 평생 도전하고 열정이 식지 않는 ‘80, 90대 청년’도 있다. 이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필자는 올해 12월이면 84세이지만 열정을 가지고 전공분야인 보건영양(Public Health Nutrition, 보건의료 및 식품영양) 관련 칼럼을 매주 집필하여 Facebook에 올려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추이는 2023년 950먄명, 2024년 1000만 8000명, 2025년 1059만, 2030년 1306만, 2040년 1725만, 2050년에는 19001900만 명에 이른다. 총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율인 고령화율(高齡化率)은 2022년 말 17.5%로, 일본(29.9%)보다는 낮다. 하지만 22년 후 2045년이 되면 한국의 고령화율이 37%로 높아져서 일본(36.7%)을 추월해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된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貧困率)이 4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는 부동산 같은 자산을 빼고 소득만 갖고 계산한 통계의 착시(錯視)라고 한다. 학자들은 통계의 함정(陷穽)을 지적하고 있다.
OECD가 정의하는 빈곤율은 ‘절대 빈곤’이 아닌 ‘상대 빈곤율’로 중위소득 50% 미만인 노인이 얼마나 많은지를 통계로 낸다. 이때 소득은 가처분 소득으로 매월 들어오는 소득에서 세금 등 필수적 지출을 뺀 나머지 소득이 전체 중위(中位) 값보다 적으면 빈곤한 상태로 분류된다. 즉, 소득만 따질 뿐 고령층이 보유한 부동산 같은 자산은 포함하지 않는다.
이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KIHASA)이 지난 2017년 부동산 자산 상태 등을 포함해 ‘노인 빈곤율’을 계산한 결과는 21%로 뚝 떨어졌다. 즉 소득뿐만 아니라 자산, 건강 만족도 등 까지 고려한 다차원 분석을 하면 소득도 자산도 없는 실질적 빈곤 노인은 10명 중 2명 수준이다.
부동산까지 합칠 경우 우리나라 60세 이상 실버 세대는 국내 순 자산의 46%를 보유하므로 한국 경제 지형을 바꿀 수 있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오래 살 걱정 때문에 지갑을 닫으면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腱, Achilles tendon)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우리 사회의 숙제는 실버 세대의 자산을 젊은 층으로 이전해 소비를 늘려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연령대별 소득 불평등도를 조사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70세 이상의 지니계수(Gini’s coefficient, 소득분배의 불균형 수치)가 20-40대보다 최대 1.7배 큰 것으로 나타났다. 즉, 노인 세대의 빈부(貧富) 격차가 젊은 세대보다 훨씬 심하다.
전문가들은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노인 간의 빈부 격차뿐만 아니라 세대 간 빈부격차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고령층은 상대적으로 소비 성향이 낮은데, 이들이 점점 더 오래 살다 보니 나라의 막대한 부가 그저 잠겨 있는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
세계 최고령 국가인 일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600만 치매 노인이 가진 자산이 2020년 기준 250조엔(약 2280조 원)에 달해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또한 80세가 넘어서야 상속이 이뤄지는 경우가 전체 상속의 70%에 달한다.
이에 일본은 실버 세대의 부를 회춘(回春)시켜 경제에 활력을 주기 위해 생전 증여 제도 확대에 관한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종전에는 부모 사망 3년 전에 증여한 재산만 비과세(非課稅) 대상이었는데, 이 기간을 7년으로 늘려주기로 했다. 즉, 자식이 돈이 필요할 때 미리미리 증여하라는 취지다.
국내 금융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 고령화를 겪고 있으므로 앞으로 금융회사들의 가장 큰 승부처는 고령층 자산관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가계자산의 약 70%를 차지하는 부동산까지 합친 세대별 자산을 따져보면, 60세 이상이 가진 순자산이 전체의 46%에 달한다.
서울특별시 서울연구원(Seoul Institute)이 2021년에 세대별로 보유한 금융자산(은행 예·적금과 전·월세 보증금)에 부동산과 자동차 등 실물자산까지 조사했다. 1940-54년에 태어난 산업화 세대는 가구당 평균 3억 3936만 원의 순자산을 가졌고, 1955-64년에 태어난 1차 베이비붐 세대의 순자산은 전체 세대 중 가장 많은 평균 4억 966만 원이었다. 이들을 합친 노인 세대가 전 세대 자산의 절반 가까이 가진 셈이다.
우리나라 노인들이 다른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부를 축적한 것은, 우리나라가 압축 성장하던 때 경제활동 최전선에 있었던 덕분이다. 우리나라 주거용 부동산 가격이 1975년에서 2022년 사이 2318% 올랐다. 같은 기간 일본은 107% 상승했다.
많은 부를 가진 실버 세대의 등장에 기업들은 경영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KB국민카드는 고액 자산가 고객 중 의료검진서비스 등을 받으러 병원을 오갈 때 도움받길 원하는 수요가 있다고 보고 최근 연회비 100100만 원짜리 프리미엄 카드를 출시하면서 의료기관 동행서비스를 혜택 중 하나로 집어넣었다.
우리나라는 고령자의 학력, 건강, 경제 수준이 크게 높아지면서 이들이 우리 사회의 소외 계층이 아니라 핵심 소비 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앞으로 이들을 겨냥해 최적의 상품을 내놓기 위한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65세 이상 고령자가 인구 전체의 30%에 달하는 일본에서는 ‘데이 서비스(day service)’란 돌봄 시설이 있다. 데이 서비스는 노심(老心)을 잡기 위해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요리를 테마로 해서 만든 돌봄 시설인 ‘쿠킹 스튜디오’가 있다. 요리를 하려면 머리와 손을 써야 하고, 몸도 움직여야 해서 뇌를 활성화는 효과가 있다.
기존 돌봄 서비스는 여성이 9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으며, 남성은 동요 부르기나 종이접기 같은 프로그램이 시시하다며 싫어했다. 이에 남성 노인을 위하여 게임을 테마로 돌봄 시설을 만들어 슬롯머신, 블랙잭, 마작(麻雀) 테이블까지 갖춘 시설(데이 서비스 라스베이거스)을) 개원했으며, 남성 비율이 90%를 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르신 주야간보호센터가 있으며, 경증 치매나 노인성 질환이 있는 고령자들을 돌봐주는 시설이다. 그림 그리고, 노래 부르고, 낮잠도 자고, 급식까지 주는 일과가 유치원(幼稚園)과 닮았다고 해서 ‘노치원(老稚園, 노인들이 다니는 유치원)’이라고 불린다. 서울 강동구 소재 빌딩 5층에 위치한 90평짜리 어르신 주야간보호센터는 민간시설로 노치원 원생이 30명이다. 이곳 노치원 원생들의 평균 연령은 85세이며, 왕언니는 95세이고, 막내는 75세다.
노치원에서는 요양보호사들이 선생님이다. 1교시는 아침 체조 시간이다. 요양보호사는 어르신을 문 바로 앞에 있는 화장실까지 안전히 모시고 가는 것도 중요한 업무이다. 점심시간엔 선생님이 음식을 담은 식판을 나눠줬으며, 식후에는 치약을 묻힌 칫솔과 양치컵도 준비해 줬다. 오후 1시 30분 실내 체육시간에는 원생들이 팀 대항 공놀이를 했다. 공놀이가 끝나자 미술 시간이 시작됐다.
노치원은 지난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시행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모든 국민은 매달 건강보험료에 추가로 장기요양보험료(건보료의 12.8%)를 내고 있은데, 이를 재원으로 건강보험공단이 노인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고령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용료는 이용 시간, 노인 장기요양 등급, 비급여로 시설에서 책정하는 식비와 간식비 등에 따라 달라진다.
보통 하루 8시간 이용 기준으로 하루 식비와 간식비 5000원을 포함한 한 달 이용료는 120만 원대다. 하지만 이용자는 하루 11만 원 내의 본인 부담금만 내면 된다. 장기요양보험에서 최대 85%까지 지원한다. 시설마다 프로그램은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체조와 율동 같은 신체 활동과 음악과 미술 같은 인지 활동이 많은 편이다.
주야간보호센터는 어르신들이 집 밖으로 나와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해 주기에 과중한 가족 부양 부담을 줄여준다. 다만 국가가 운영하는 비율은 1% 미만이고 대부분 민간이 운영하고 있다. 이에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철저히 감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년이면 노인 인구 1천만명 시대가 열린다. 우리 사회가 이를 맞을 준비가 돼 있는지 진지하게 고찰해야 한다.
<사진> (1) 한국 노치원(老稚園), (2) 일본 노치원(day service).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The AsiaNㆍ시사주간 논설위원, The Jesus Times 논설고문) <청송건강칼럼(909) 2023.7.8.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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