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칸이나 되는 큰 집이라도 밤에 누우면-
어느 날 부인은 토방 마루 밑을 팠더니 커다란 항아리가 묻혀 있었다. 괴이하게 여긴 부인은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은전(銀錢)이 가득 차 있었다. 부인은 아무런 기척이나 기색(氣色)을 나타내지 않고 그 항아리를 다시 덮었다. 그리고 그 집을 팔고 멀리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였다.
세월이 흘러 아들들이 장성하여 나라의 동량(棟樑)이 되었을 때 부인은 두 아들을 불러놓고 옛날의 사연(事緣)을 들려주었다.
「어려운 살림이라 그렇게 많은 은화(銀貨)를 본 순간 마음이 흔들렸으나, 뜻밖의 횡재는 사념(邪念)을 일으키는 나쁜 요물인지라, 너희들의 장래를 생각할 때 어찌 받아드릴 수 있겠느냐? 그래서 덮어두었느니라.」
위는 모재(慕齋)김안국(金安國)과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의 모친인 양천 허(許)씨 얘기이다. 모재(慕齋)는 24세였던 연산군 7년(1501년 辛酉) 진사(進士)와 생원(生員) 양시(兩試)에 1위로 뽑혔으나 시관(試官)이 양시 장원(壯元)을 모두 한 사람에게 줄 수 없다 하여 진사에만 장원을 하였다. 후에 문형(文衡:大提學)에 오르고 문경(文敬)의 시호(諡號)를 받고 인종(仁宗)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 여주의 기천서원(沂川書院), 이천의 설봉서원, 의성의 빙계서원 등에 제향(祭享)하고 있다.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은 별시문과에 급제, 승지(承旨) ·황해도관찰사 ·전라감사·병조참의 ·공조참의 ·형조참판을 지내고 좌찬성(左替成)이 추증(追贈)되었고 시호(諡號) 문목(文穆)이다.
천 칸이나 되는 큰 집이라도 밤에 누우면 팔 척(尺) 뿐이요, 좋은 밭이 수백만 이랑이라도 하루 먹는 것은 두 되일 뿐이니라.
[대하천간大廈千間이라도 야외팔척 夜臥八尺이요, 량전만경良田萬頃이라도 일식이승日食二升이니라.]
- 명심보감 (明心寶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