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144) - 윤동주 시인 80주기에 즈음하여
두 달 넘게 이어지는 불안정 시국 탓인가, 겨우내 얼었던 강물이 풀린다는 우수가 지나서도 매서운 추위가 가실 줄 모른다. 강추위를 가시게 하는 반가운 손님, 연차와 방학으로 시간을 낸 아들과 손주들로 활력이 솟는다. 자유자재로 유튜브를 활용하고 스스로 탐색한 도쿄의 맛집을 찾았다는 열 살 손자가 대견하구나. 손자와의 다짐, 그 실력 뽐내러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여행 한 번 하자.
추운날 찾아온 손주들과 함께
며칠 전 윤동주 시인의 80주기(2월 16일)에 즈음하여 그의 모교인 연세대학교와 일본의 도시샤대학에서 뜻깊은 행사를 가졌다. 간추린 내용,
1. 시인 떠난 지 80년… "우리도 부끄럼 없기를 다짐합니다"
- 연세대서 윤동주 80주기 추모식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시인 윤동주(1917~1945)의 ‘별 헤는 밤’(1941)의 한 구절이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 루스채플에서 울려 퍼졌다. 시인의 80주기를 이틀 앞둔 이날, 연세대는 윤동주와 그의 고종사촌 송몽규(1917~1945) 선생 80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윤동주는 1938년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다. 2차 세계대전을 앞둔 일제가 한국을 전시 총동원 체제로 몰아간 때였다.
1942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던 윤동주는 1943년 7월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송몽규와 더불어 유학생을 모아놓고 조선의 독립과 민족 문화 수호를 선동했다는 죄목이었다. 윤동주는 광복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형무소에서, 같은 형무소에 갇혔던 송몽규도 한 달 뒤 순국했다.(조선일보 2025. 2. 15)
연세대에서 열린 윤동주 80주기 추모식 장면, 사진 제공 = 연세대
2. 윤동주 떠난 지 80년 만에…日 모교서 명예박사 학위 받아
서시, 자화상, 별 헤는 밤 등의 작품을 남긴 윤동주(1917∼1945) 시인에게 일본의 모교인 도시샤(同志社)대가 16일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1875년 설립된 이 대학이 사망한 사람을 상대로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하는 것은 처음이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를 졸업한 뒤 도쿄에 있는 릿쿄대에 진학했다가 1942년 10월 도시샤대 문학부 영어영문학 전공으로 편입해 다니던 도중 1943년 조선 독립을 논의하는 유학생 단체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됐던 그는 광복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28세의 나이로 옥사했다. 일본에서는 일본 문학 작가인 이바라키 노리코(1926∼2006년)가 윤동주의 시를 인용하며 쓴 수필이 교과서에 실리면서 인지도가 높아졌다.(서울경제 2025. 2. 17)
도시샤대가 16일 연 명예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윤동주 시인의 조카 윤인석 성균관대 명예교수(왼쪽)와 고하라 가쓰히로 총장이 악수하는 모습. 사진 제공=주오사카총영사관
한일수교 60주년에 즈음하여 양국에서 동시에 펼친 추모식과 명예박사수여식의 힘의가 크다. 님은 가셨지만 하늘을 향하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다짐한 그 뜻 올곧게 퍼지라.
* 8년 전(2017년) 3∙1절 무렵 윤동주 시인 탄생100주년에 즈음하여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내용의 일부,
‘3∙1절에 만난 윤동주
금년으로 독립운동의 상징인 3∙1절 98주년을 맞는다. 3∙1절 아침 일찍 태극기를 게양하고 기념식 실황중계(KBS)를 지켜보니 이어서 기념특집으로 ‘시인과 독립운동’이 예고된다. 때마침 주민센터에서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빌려와 읽던 중이어서 혹시 윤동주를 다룬 내용인가 하였더니 예상대로다. 인터넷을 살피니 3∙1운동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917년에 12월 30일에 태어나 광복되기 6개월 전인 1945년 2월 16일에 떠난 짧은 생애의 흔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금년은 그의 탄생 100주기다.
빌려온 윤동주 시집은 1955년 그의 10주기를 맞이하여 정음사가 편찬한 초판본을 2016년에 원형 그대로 다시 펴낸 것인데 책에는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서시(序詩)를 비롯하여 별 헤는 밤, 자화상, 병원, 십자가 등 주옥같은 시들 외에 유명, 무명의 그의 유고들을 한데 모아 1부에서 5부로 나뉘어 실었다. 1부는 그가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할 무렵에 77부 한정판으로 출판하려던 자선(自選)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그대로 실었고 2부는 그 후 도쿄 유학시절 6개월의 시, 3부는 습작기 작품들, 4부는 동요, 5부는 산문, 책 말미에 그의 삶을 회고한 친우 정병욱과 동생 윤일주가 쓴 후기가 들어 있다.
3∙1절 기념특집 ‘시인과 독립운동’에서 전한 윤동주의 삶이 뜻깊다. 독립기념관 전시실에는 나라 사랑 저항시인으로 5명을 소개하고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님의 침묵’의 한용운, ‘그날이 오면’의 심훈, ‘광야’의 이육사, ‘서시’의 윤동주 시인이다. 시를 통해 조선 민족과 문화의 부활을 꿈꾸며 쓴 그의 저항 시는 조선에는 희망이요 일본에는 위협이었다. 일본 도쿄와 교토에 ‘서시’를 새긴 윤동주의 시비가 세워져 있고 일본 고등학교 현대문 교과서에 ‘서시’가 수록되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일본어판 시집이 나오고 도시샤대학에 세워진 시비를 찾는 일본인들이 연간 만 명에 이른다. 교통과 통신이 열악한 시절에 3∙1 운동 참여자는 전국적으로 수백만 명, 그 희생자도 수천 명에 이른다. 혹자는 총칼로, 혹자는 군자금으로, 더러는 맨몸으로 국내외 각지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선열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특집방송의 마지막 멘트가 마음에 와 닿는다. ‘온몸으로 역사의 과제를 받아들인 시인은 오늘 우리 곁에 살아 있다.’
그 두 달 후인 2017년 5월 1일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 행사로 교토에 들렀을 때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도시샤대학을 찾아 윤동주 시비 앞에 섰다. 그 때의 기록,
‘5월 1일(월), 걷기를 멈추고 문화 탐방하는 날이다. 오전 8시 반에 일행 모두 숙소를 나서 교토문화탐방에 나섰다.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처음 찾은 곳은 재일동포 정조문 선생이 창립한 고려미술관 방문이다. 한 시간 여 미술관 탐사를 마치고 이곳에서 4km쯤 떨어진 도시샤(同志社)대학에 있는 윤동주 시비를 찾아 걸어갔다. 1940년대 초반 이 대학에 다니다가 경찰에 잡힌 윤동주 시인은 1944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한 저항시인으로 이곳에 세운 시비에 그의 대표작, 서시가 새겨져 있다. 그 옆에는 이 대학 출신으로 가곡 향수의 가사를 쓴 정지용 시인의 시비도 세워져 있다. 두 시인의 시비에 꽃다발을 바치고 묵념을 한 후 서시를 낭송하고 금년으로 탄생 100년을 맞은 윤동주 시인의 족적을 일행들에게 설명하여 주었다.’
도시샤대학의 윤동주시비를 찾았을 때를 취재한 아사히신문의 보도 내용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