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천금 (一字千金)
[요약] (一: 한 일. 字: 글자 자. 千: 일천 천. 金: 쇠 금)
한 글자에 천금의 가치(價値)가 있다라는 뜻으로,
아주 뛰어난 글자나 시문(詩文)을 비유한 말.
[출전]《사기(史記)》 권85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
[내용] 전국시대 말엽. 진(秦)의 소왕(昭王)은 56년에 작고하고 태자 안국군이 임금이 되었다. 화양부인을 왕후로 하고, 자초(子楚)를 태자로 하였다. 조나라는 자초의 부인과 아들 정(政)을 정중히 진나라로 보냈다. 진왕은 즉위한 뒤 일년 만에 작고하고, 익호는 효문왕이라 했으며, 태자 자초가 임금이 되었다. 장양왕이다. 장양왕은 양모 화양후를 화양태신후라 이름하고, 여불위를 승상으로 삼고 하남 낙양의 십만호를 식읍으로 주었다.
秦昭王五十六年,薨,太子安國君立爲王,華陽夫人爲王后,子楚爲太子. 趙亦奉子楚夫人及子政 歸秦. 秦王立一年,薨,謚爲孝文王. 太子子楚代立, 是爲莊襄王. 莊襄王所母 華陽后爲華陽太后 , 眞母夏姬尊以爲夏太后. 莊襄王元年,以呂不韋爲丞相, 封爲文信侯,食河南락陽十萬戶.
**락: 수리부엉이 락. 땅 이름=洛陽
**장양왕(莊襄王) 자초(子楚)가 태자가 되기 전 인질로 조(趙)나라에 불우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여불위는 그를 '기화가거(奇貨可居)'라며 천금을 들여가며 화양부인을 통하여 태자가 되도록 하였으며, 자신의 애첩(조희=趙姬)를 자초에게 시집보내 정(政=후일 진시황)을 낳게 했다. 이제 여불위 시대가 열린 것이다.
당시에, 위(魏)나라 신릉군(信陵君), 초(楚)나라 춘신군(春申君),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 등 전국시대 사군자는 나라의 선비를 대우하고 서로 빈객을 대접하는 기쁨을 경쟁하며 천명이 넘는 식객들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當是時,魏有信陵君,楚有春申君,趙有平原君,齊有孟嘗君,皆下士喜賓客以相傾.
여불위는 진(秦)나라가 강대국이면서도, 이들 나라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여 선비를 불러 후히 대우하니, 식객이 삼천 명이나 되었다. 이 때 여러나라에는 변사가 많고, 순경(筍卿=순자(荀子)과 그 문하 사람은 책을 저술하여 천하에 널리 펼쳤다. 여불위도 식객에게 각각 재능을 펼쳐 보이도록 명하고, 그들이 쓴 것을 집대성하여, 팔람(八覽), 육론(六論), 십이기(十二紀) 등 모두 26권에 20여만 자로 이루어진 책을 만들었다. 여불위는 이 책이 천지만물과 고금의 일들을 모두 망라했다고 생각하여, 그 이름을 《여씨춘추(呂氏春秋)》라고 하였다.
呂不韋以秦之彊,羞不如,亦招致士,厚遇之,至食客三千人.是時諸侯多辯士,如荀卿之徒, 著書布天下. 呂不韋乃使其客人人著所聞,集論以爲八覽、六論、十二紀,二十餘萬言.
以爲備天地萬物古今之事,號曰 呂氏春秋.
그는 이 책을 도읍인 함양 성문에 진열하고, 그 옆에는 천금의 현상금까지 놓아둔 채, 제후국의 세객(說客)들과 빈객들로 하여금 참관하도록 하며,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이 책에서 잘못을 찾아내어, 한 자라도 빼거나 더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상금으로 천금을 주겠다." 布咸陽市門,懸千金其上,延諸侯游士賓客有能增損一字者 予千金.
하지만 여불위의 권세가 두려워 감히 고치려고 나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출처] 일자천금 (一字千金)
[출처] 일자천금 (一字千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