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탕폭포
이제 올여름 장마가 끝이 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칠월 하순 넷째 월요일 산행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동행은 엊그제 경주 모임을 같이 다녀온 대학 동기였다. 한낮은 무더운지라 이른 아침 합포구 마산의료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집 앞에서 101번을 타고 동기는 그의 집 근처에서 103번을 탔다. 이들 버스는 대방동을 출발해 월영동으로 오가는 노선이었다.
내가 먼저 마산의료원으로 나갔더니 흐린 하늘에 성근 빗방울이 들었다. 동기가 뒤이어 와 밤밭고개를 넘어가는 농어촌버스로 갈아탔다. 진동을 거쳐 구산 명주로 가는 버스로 소답 온천에서 출발해 마산을 관통해 왔다. 댓거리를 지나 밤밭고개에서 내려 만날재로 가는 길로 들었다. 대기 습도가 높아 아침인데도 날씨가 후끈했다. 둘레길로 들지 않고 산등선을 넘어 만날재로 갔다.
땀이 흐르긴 해도 우거진 숲길을 걸으니 산행을 잘 나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마루 쉼터엔 중년 부부가 앉아 있었다. 편백나무 삼림욕장이 가까워지자 또 다른 가족 산행 팀을 만났다. 노부부와 딸이 나선 가족 산행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스친 일행 중 젊은이가 딸임이 확신하는 외모에서였다. 우리는 밤밭고개는 가끔 넘나들어도 만날재는 생활권과 달라 잘 들리지 않는 곳이었다.
만날재는 경남대학 뒤에서 무학산을 오르려면 대곡산을 거치기 전 만난다. 마산포 사는 형편이 몹시 어려운 이 씨네 편모슬하 딸과 감천골 사는 윤 진사 장애가 있는 아들 사이 안타까운 전설이 서린 고개다. 이 전설을 소재로 스토리텔링 공원으로 꾸며놓은 곳이다. 해마다 추석이 지난 주말이면 지역 사회단체에서 만날재 축제를 연다. 마산 출신 천상병 시인 시비 ‘새’도 세워져 있다.
우리는 만날재에서 무학산을 등정하지 않고 쌀재로 향했다. 쌀재는 남쪽 예곡과 북쪽 감천을 동서로 가로막은 고개다. 근래 진동에서 내서로 관통하는 터널이 뚫려 시내 교통량이 분산되고 이동 거리가 단축되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속 쌀재 정자에 이르러 동기가 배낭에 넣어온 곡차를 꺼내 비웠다. 마침 감천 산다는 중년 사내가 나타나 곡차를 한 잔 권하며 얘기를 나누웠다.
곡차를 비우고 감천으로 내려서지 않고 바람재를 거처 광천사로 가는 임도를 따라 걸었다. 바람재에 이르자 비는 그쳤으나 운무는 그대로였다. 바람재 정자에 올라서니 예곡 일대 산과 마을은 운무에 가려 조망이 쉽지 않았다. 대산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었으나 여름이라 땀을 많이 흘릴 듯 해 임도를 따라 계속 걸었다. 무학산은 쌀재를 거쳐 대산과 광려산으로 이어진 낙남정맥이다.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가자 물소리가 들려왔다. 장마 뒤끝이라 층층바위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폭포수가 쏟아졌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물줄기였다. 인적이 없고 상수도 보호구역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국립공원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 정도면 알탕(?)의 필요충분조건은 갖추었다. 우리는 폭포수로 다가가 잠시 자연인이 되어 땀은 물론 마음의 때까지 씻어 내리고 남은 곡차를 마저 비웠다.
옷을 챙겨 입고 배낭을 둘러메고 다시 임도를 계속 걸었다. 산모롱이를 돌아기니 인부들이 길섶의 무성한 나뭇가지들을 정리하다가 땀을 식히며 쉬고 있었다. 광천사를 향해 나아가니 한 아낙이 폰에 찍힌 산행지도로 등산로를 물어와 살폈더니 대산과 광려산을 거쳐 상투봉을 두르는 코스였다. 우리는 날씨가 무더우니 산행을 무리하지 말고 바람재를 돌아 감천으로 내려서라고 권했다.
광산사에 이르니 점심나절이었다. 국수 가게가 보였으나 동기는 감계까지 나가보자고 했다. 아파트단지와 학교가 있는 감계 신도시까지는 한참 걸어야 했다. 감천 냇가는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차들이 빽빽했다. 아파트상가에 이르러 돼지국밥집을 찾아 들었다. 국밥과 맑은 술을 시켜 소진된 열량을 보충시켰다. 하산주를 들고 바깥으로 나오니 한낮의 볕살이 뜨거웠다. 19.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