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일교회
원주시 일산동에 있다. 원주기독병원 바로 곁이다. 건물 규모가 웅장하여 놀랍다. 유럽의 어느 유명한 종교 명소보다 훨씬 가치가 서린 대한민국의 종교 유적이다. 개신교의 강원도 선교는 원산으로 파송 받은 미국 남감리회 소속의 하디 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하디는 동해안을 따라 선교 사업을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1900년 강원도에서는 처음으로 김화 지경터 교회를 설립하였다. 이후 김화를 중심으로 양양, 강릉, 평해, 울진 등으로 교회설립이 확산되었다. 영서지방에는 무스와 콜리어 선교사가 개척을 시작하여 춘천과 홍천에 교회가 세워졌다. 1905년 상동리 풀밭에서 5~6명의 남자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원주제일교회(당시 원주읍교회)의 시작이다. 초기에는 교인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다가집 한 채를 구입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다. 원주제일교회는 1910년 노블 선교사가 원주 지역의 순행선교사, 권신일이 원주제일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안정되었다.
1914년에는 중등과정의 교육기관인 남녀공학 의정학교를 설립하였다. 의정학교는 1917년 원주공립보통학교에 병합되었다. 1916년에는 정신유치원을 설립하였는데, 이것이 원주유치원의 모체이다. 1916년에는 2층 붉은 벽돌 예배당을 신축하였으며, 1924년에는 한국에서 세 번째로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했다. 일제 말기에는 교회종이 전쟁물자로 징발되고, 한국전쟁 발발 직후 예배당이 전소되는 시련을 겪었다. 전시 중에도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며, 원주로 몰려드는 피난민들을 위해 1952년 말 학성동에 예배처를 마련하고 이를 원주제이교회로 명명하였다. 원주읍교회는 이때부터 원주제일교회로 불리게 되었다.
천막 시대를 끝내고 1955년 석조 건축물의 몸체에 한옥 기와집 양식의 종각을 얹은 단층 예배당을 준공하였다. 1965년에는 교육관 2층을 건축하고 교회창립 60주년 기념예배를 드렸다. 1975년 창립 70주년에는 구예배당 석조 건축물 일부를 남기고 예배당을 개축하여 봉헌하였다. 원주제일교회는 교회 성장에 맞추어 다시 교회창립 90주년 기념 성전으로 지하 1층, 지상 3층 높이의 건축물을 지어 1995년 창립 기념 주일에 봉헌하였다. 선교 초기 강원도 영서지역 복음전도의 중심축이 되었던 원주제일감리교회는 만종교회를 시작으로 문막제일교회 설립에 이르기까지 국내에 모두 20개의 교회를 개척하였다. 해외선교에도 힘을 쏟아 1996년 필리핀 페냐플랑카 교회, 1997년 인도네시아의 와링하르조 교회를 시작으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 모두 20개의 교회를 설립하였다. 역대 담임 목회자 중에 신홍식 목사는 3·1운동 민족대표의 한 사람이었고, 송득후 목사 역시 평양의 3·1운동과 관련하여 옥고를 치룬 민족주의자였다. 교회 1층 복도에 교회 역사 사진을 설명과 함께 전시하여서 잘 보았다. 옛 사진 자료를 잘 보존하여서 생생하게 전달 되었다. 참으로 대단하였다. 나오려는데 직원이 제일교회의 안내책자를 준다. 고맙게 받아왔다. 잘 볼 것이다. 뜻깊은 탐방에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