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예술의 전당에서 반고흐 작품전(作品展)을 마누라와 함께 감상했다 후기인
상파(後期印象派) 고흐전에 많은 사람들이 천천히 흐르는 물결처럼 느리게
감상한다 눈빛이 이글거리는 다양한 자화상(自畵像)이 눈을 사로잡는다.
37세,
권총으로 자살하기까지 가난하게 살았던 고흐의 작품이 사후에 크게 빛났다.
전시회에서 고흐 정신세계 (精神世界)의 열정을 자세히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감동을 준 작품 가운데 “탕귀영감” 초상에 발길이 머문다.
일본이,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일으키면서 조선의 도공들을 무수히 잡아갔다. 일본이
조선으로 부터 도자기(陶瓷器)기술을 얻고 나서부터 유럽에 도자기(陶瓷器)
를 수출 하는데 도자기 (陶瓷器) 는 서로 부딪치면 깨지니까 종이로 도자기를
포장을 했다.
그때,
포장했던 종이가 일본의 다색판화(多色版畵)를 찍어낸 종이였다. 색체가 곱
고 아름다운 우키요에 그림을 보고 서양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유럽에서 우
키요에 그림이 도자기 (陶瓷器)보다 비싸게 팔리기도 했다.
상술에,
도가 트인 일본사람이 나중에 도자기(陶瓷器) 값 외에 포장지 값을 별도로
챙겼다원색을 과감하게 사용한 우키요에를 보고 고흐를 비롯해서 마네 모네
같은 인상파 (印象派)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고흐는,
많은 우키요에를 수집하고 우키요에 대해 애정이 있었다. 무채색(無彩色)의
어두운 그림을 그리던 그가 화려한 색감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탕귀
영감의 초상의 뒤 배경에는 총 7점의 우키요에가 등장하고 있다.
~단 결~!
첫댓글
귀를 그리다 그리다 맘에 들지 않자 자기
귀를 잘라 붙였다고 하잖아요 누가 고흐
가요~~~ 푸하하하 격정을 간직한 고흐
열정熱情이라 해야 할지 과격 (過激) 함
때문인지.
재작년에 스페인의 유명한 화가 달리
박물관(dali museum)을 관람(觀覽)해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투자한 돈과 시간
으로 타격이 좀 있었거든요
푸하하하
~단 결~!
저는 이롷게 생각합니다 조선조의 화가
최북만 한 기인은 없을 성싶다고.
서양의 화가 반 고흐는 정신착란증으로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지만 최북은 멀쩡한 정신으로 자신의 눈알을 빼 버린 사람이니 말이지요ㅋㅋ
그를 사랑한 모든 예술인들은 고흐의 불같은
정열의 감성 자연을 무척
사랑했다 하지요~~^^*
건 행 하십시오~^^*
@희은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상파 화가들은
잔인성을 보여주는 매력도 남다르는
것을 느껴봅니다 ㅎㅎ
가슴에 척 안기는 깔쌈한 댓글 굿 입니다
예술의 전당에서 그림전시회하는데
입장료가 무척 비싸더군요.
그래도 길게 줄을 섰어요.
부인과 함께 문화생활 하시는 모습이 멋집니다. 고흐의 탕귀영감
공짜로 감상
잘 했어요.
자화상으로
인상이 별로군요.ㅋ
잡혀간 우리나라 도공들이 도자기를 만들고
포장지가 다색판화로
화려하면 금상첨화...
그래서 일본인들이 부국이 되고요.
역사도 배웁니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의 원흉 도요토미히데요시는
조선사발을 너무나 탐내 조선을 침략했다는 일설이
있지요 임진왜란(壬辰倭亂)을 도자기 전쟁이라
부르기도 하며ㅊ근세에 들어와서 당시 조선사발을
도자기(陶瓷器) 중에서ㅊ가장 먼저 국보로 지정해
놓고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요
다이토쿠지(大德寺)에는 센노리큐에 의해 수집된
조선에서ㅊ건너간 막사발 이도다완(井戶茶碗)이
소장되어 있는데 일본 국보26호다.문화재를 대여
하여 전시할 때는 보험에 가입을 한 후 전시회를
갖는데 현재 이 사발에는 100억 엔 이라는 보험에
가입해야만 전시회(展示會)를 가질 수가 있지요.
우리나라 금동반가사유상 전시회 보험금이 400억
원인데 이보다도 비싸지요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끌려간 심수관 정유재란
(丁酉再亂) 때 끌려간 이삼평 그 후예들이 큐슈
아리타에서 지금도 일본 최고의 도자기(陶瓷器)
대가로 대접받고 있다. 여기서 생산 되는 도자기
(陶瓷器)가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값에 팔리는 것을 보면 큰 집의 입장에서 볼때
온 열분이 토하는 것은 우리모두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지요
부티나는 댓글 감사드립니다
~단결~!
글쎄요 저는 학식과 지식이 짧은탓 인지
고흐나 피카소 그림은 별로라 생각 하며
차라리 극장 간판에 그린 그림이나 연필
세밀화를 더 선호 한답니다..
제가 연필 스케치는조금 하거던요 ㅎㅎ
근데 쪽바리 새끼들이 우리의 도공 기술자
들을 잡아 갔다니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뻬끼기에 능통해서 저들것 인양 하는 심뽀
를 확 띁어 고쳐야 한다고 봅니다..
마초님 께선 누구를 만나도 행복하고
무엇을 해도 즐거운 행복한 루일 하루가
되셧으면 합니다. ~단결 ~ ㅎㅎ
겸손(謙遜)이 지나치시는군요
예술이란 분명 기교 이전에...
자신의 심연에서 길어 올리는 짙은
감동의 샘이라고.
지금 님이 가져오신 글재에서 그
감동을 길어 올렸습니다
감사드리며 오늘도 굿럭으로요
ㅎㅎ
귀짤린 이유는 편지를 주고 받은 동생 테오 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네요
고흐의 귀 짤린 이유 마초님의 기발한 생각 그럴듯 해요
짤린 귀를 동네 '레이첼' 이라는 매춘부 에게 주었다는 얘기 있지요
아항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ㅎㅎ
마초의 기발한 생각이 아니고 미천한
소인배(小人輩)의 헛소리라 생각 하십시오 ㅎㅎ
그래서 오늘도 선배님 덕택으로
격조(格調) 높은 고견(高見)을 얻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요
~단결~!
가슴을 울리는 화가 반 고흐 스토리
예술을 사랑하는 분들의 작품을 보면서 영감을
얻어서 글을 필독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타협 못한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저는 고흐가 이렇게 기초 데생을 열심히 하고
기초가 튼튼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반 고흐의 비극적안 죽음은 어쩌면 반대로
예술은 고독하다는 점을 입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멋진 예술작품 즐감하고 갑니다
마초님 항상 건 행하십시오~^^
그래요 다 아시는 이야기지만 아쉽지만 반 고흐는
생전에 84달러어치밖에자신의 그림을 팔지 못했다니,
그 궁핍함은 뻔한 사실.고흐의 열정이 새삼스레
생각나지요 고흐의 불같은 정열의 감성 자연을 무척
사랑했으며 그 열정은 참으로 대단하지요 그런 고집이 없었다면
오늘날까지 예술인들의 그를 사랑하지 않았겠지요
실감이 나는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