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에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 '로제타'(1999) 주인공을 맡아 알코올 중독 어머니와 함께 캠핑 카에서 살아가는 10대 소녀 연기를 해 1999년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벨기에 배우 에밀리 드켄이 세상을 등졌다. 마흔셋 한창 나이다.
지난 2023년 10월부터 희귀암인 부신암으로 투병해 오던 그녀가 16일(현지시간) 저녁 프랑스 파리 외곽의 한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고 미국 연예매체 데드라인이 에이전트 대니얼 게인의 성명을 인용해 보도했다. 1981년 8월 29일 태어난 고인은 유년 시절 벨기에 부두에 위치한 뮤직 앤드 스포큰 워드 아카데미를 졸업, 열두 살 때 라렐레브 극단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무대에 섰다.
다르덴 형제는 '로제타'로 칸 황금종려상을 받았는데 국내에는 20년이 지난 2009년에야 수입돼 개봉했다. 청년 실업에 허덕이는 청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이었다. 벨기에 정부는 2000년 로제타 플랜이란 것을 발표했는데 25명 이상 고용한 기업은 반드시 청년을 한 명 이상 채용하도록 의무화한 것으로 영화가 사회와 제도의 변경을 초래한 예로 지금도 얘기되고 있다.
그 뒤 그녀는 크리스토프 강스의 역사 스릴러 '늑대의 후예들'(The Brotherhood of the Wolf, 2001), 클로드 베리의 '하우스키퍼'(The Housekeeper, 2002), 메리 맥거키언이 개브리얼 번, 로버트 드 니로, 캐시 베이츠를 기용해 연출한 코스튬 드라마 '브릿지 오브 샌 루이스 레이'와 '더 라이트'(이상 2004), 카트린느 드뇌브와 호흡을 맞춘 영화 '더 걸 온 더 트레인'(2009)과 다섯 자녀를 살해한 어머니 얘기를 그린 조아킴 라포스의 가족 심리 드라마 '우리의 아이들'(Our Children, 2012), '낫 마이 타입'(2014)과 루카스 벨보 감독이 극우의 발호를 고발한 '디스 이즈 아워 랜드'(2017) 등 모두 61편에 출연하면서 연기 경력을 이어갔다. 국내에도 수입된 오스카 후보 지명작인 루카스 돈트 감독의 '클로즈'(2022)에 주인공 레오의 친구 레미의 엄마 소피로 얼굴을 내밀었다. 2021년 엠마누엘 무레 감독의 '러브 어페어: 우리가 말하는 것, 우리가 하는 것'으로 세자르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다르덴 형제와 나란히 수상 25주년을 맞아 칸 국제영화제 시상식 무대로 돌아왔다. 같은 해 영어로 제작한 영화 '서바이브'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도중에 건강이 나빠져 출연 분량이 줄어들었다는 후문이다. 이 작품은 유작이 됐다. 이 영화는 지난 1월 국내에 개봉, 104명의 관객만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