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권위와 탐욕을 버린 하나님의 자녀들 원문보기 글쓴이: Daniel
합의체(合議體)인 기관(機關)에 있는 국가(國家)
민주공화국의 뜻은 아래와 같습니다.
*한자사전; 民主共和國 (민주공화국)
(쑨원)
신해혁명을 대표하는 쑨원은 1905년 중국혁명 동맹회를 결성하고
삼민주주의를 제창하였습니다.
삼민주주의란, 민족, 민권, 민생주의를 말하는 것으로
반청운동을 벌이면서 무장투쟁에 돌입했습니다.
발단은 1911년 청나라는 철도 국유령을 내려 민영이었던
쓰촨성 철도를 담보로 열강의 나라들로부터 차관을 얻어
재정난을 극복하려고 했습니다.
쓰촨성에서 외국의 소유가 아닌,
중국 소유의 철도를 건설하기 위하여 상인들로부터 건설 기금을 모아서
개설한 철도로 조정이 외국에다 담보로 잡히고,
차관을 끌어쓰겠다는 것이니 봉기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1911년 9월 쓰촨성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이를 계기로
1911년 10월10일 혁명파의 공작으로 우창에서 봉기를 일으킴으로써
'신해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후 14성에서 호응하여 궐기했고,
12월 말에는 17성으로 확대되어 청으로부터 독립을하였습니다.
이로써 1912년 1월 난징에서 쑨원을 임시대총통으로 '중화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위 지도를 보면 파랑색 지역은 청나라 황제파 지역입니다.)
중국 역사에서 시작된 신해혁명은 황제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향해 나아간 혁명으로 동아시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한국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때마침 중국의 신해혁명 소식을 들은 한국의 독립지사들은
국가 건설의 희망을 찾으려 했으며,
대한제국이 멸망한 바로 그 시점에서 일어난 신해혁명은
한국 독립가들에게 비상한 관심을 갖게 하였습니다.
중국의 신해혁명은
조선의 독립운동에 윤활제 역할을 하였습니다.
중국의 신해혁명에 직접가담한 '김규흥'같은 인물도 있었고,
후속작업에 뛰어든 '신규식'같은 인물도 있었습니다.
한국은 일본 식민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력이
중국과 미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중국은 전통적인 친연성도 있었지만,
청일전쟁에서 패한 중국의 반일 감정이 한국 독립에 우호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만주에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독립운동가들의 큰 흐름이었습니다.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망명객이 되어 모인 곳은 주로
만주, 베이징, 상하이, 난징, 광저우가 대표적이었는데,
이곳들을 연결하여 인력과 재력이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
조선 독립 운동가들은 '광복회' 를 창설하였습니다.
총사령관 박상진이 국내에서 자금을 모으고 여러군데 거점을 삼아
사람과 자금을 만주로 보냈습니다.
신해혁명 당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 중 여럿이 혁명에 참가했는데,
그 중에 베이징에 망명한 신규식은 한국 독립 운동의 교두보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신규식)
신규식도 1911년 11월에 중국으로 망명하였던 것입니다.
대한제국 무관학교 동기생인 조성환과 1911년 상하이로 가서
1912년에는 난징에 도착했습니다.
이 때는 중국의 우창봉기가 끝나고 난징에서 중화민국과 세워져 대총통으로
쑨원이 추대된 직후였으니 신해혁명의 열기가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습니다.
신규식과 조성환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중국의 신해혁명의 인사들에게
조선에서 가져간 돈 수 백원을 군사비용으로 기부했고,
이렇게 해서 이들은 1912년 4월에 상하이에서 쑨원을 만났습니다.
이를 기회로 마침내 상하이에서 조선독립운동의 첫 걸음이 시작되었고,
상해ㆍ남경 등지에 왕래, 거류하면서 차츰 모여드는 망명 동지들과 함께
1912년 7월에 ‘동제사’를 조직하였는데,
본국을 탈출하여 나오는 애국지사들이 많아짐에 따라 동제사의 조직도 점점
기반이 튼튼해지고 운동이 활발하게 되었습니다.
동제사라는 단체는 상하이와 난징 지역에서 체류하던
한인 청년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박은식과 신채호도 동제사의 주요 지도자들이였습니다.
이 조직이 출발할 무렵 난징에 머물던 한인들이 10명을 전후한 적은 수였지만,
전성기에는 300명이나 될 만큼 세가 커졌고 주요 구성원의 인물만 40명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동제사는 바로 항일 투쟁에 나선조직이 아니라,
항일투쟁의 역량을 기르는 첫걸음이었다.
이후 1918년 말 '신한청년당'이 등장하는 기초가 되었으며,
이듬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세우는 토대가 되었다.
신규식은 중국 혁명인사와 연대 결속하는 일이야 말로
대단히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남의 국가에서 펼치는 독립운동이라면 두 가지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중국 인물의 도움과
신해혁명으로 나타난 새로운 정치문화 수용이었습니다.
신규식과 박은식 등의 조선 독립 운동가들이 신해혁명 인사들과 연대를 형성한
이유도 그것입니다.
신규식은 또 ‘신아동아제’를 창립했는데,
동제사와 중국 주요 혁명인사들의 결합체였습니다.
중국의 정세 변화는 한국독립운동에 고스란히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본은 조선을 강점한 뒤 군사력을 배경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각 분야에서 폭력적인 억압과 수탈을 자행하는
무단통치(武斷統治)를 실시했고,
헌병경찰제도를 실시해 수많은 항일운동가들을 학살·투옥하고
모든 형태의 반일 활동을 탄압했습니다.
그리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와
자유도 누리지 못하게 했으며,
가벼운 죄에도 가혹한 신체적 처벌을 가하여 인권을 유린했고,
또한 토지조사사업과 회사령 등으로 민족 산업의 발전을 억압하고
경제적 수탈을 자행하였으며,
1910년대에 지속적으로 나타난 이러한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약탈로
농민을 비롯한 민중의 생활은 크게 악화되었으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지가 높아졌습니다.
1914년에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일본이 산둥반도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하고 군대를 파견하였습니다.
이때를 좋은 기회로 삼고, 동제사의 중심인물인
신규식과 박은식, 조성환 등이 앞장서서 ‘신한 혁명당’을 결성했습니다.
이 단체는 베이징에 본부를 두고 중국과 한국에 11개의 지부를 두었습니다.
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승리로 끝날 것이고,
종전 뒤 일본과 원한이 깊은 중국은 독일과 함께 일본을 공격할 것이라고
향후의 세계정세를 전망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시기를 조선이 독립할 기회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위안스카이가 일본의 21개조 요구를 모두 수락함으로써
그들의 예측과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다.
(청나라 황제의 대권을 부여받은 위안스카이와 쑨원의 타협에 대하여는
다음 글에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17년에는 신규식 등의 14명의 동제사의 주역들이 ‘대동단결 선언'을 했습니다.
이 선언의 요지는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정부수립을 위한
민족 대동의 회의를 열자는 것인데,
조선 국내참상, 해외동지의 역할, 국제환경, 대동단결 등의
7개 항의 제의 형식 강령이었습니다.
이 선언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국가요, 의회중심의 공화정부라는 것을 내세웠습니다.
결코 일본의 조선총독부가 한국 역사의 전통성을 가질 수 없고
민족의 양심을 지켜 독립을 추구하는 세력에게 정통성이 있음을
명확하게 밝힌 것입니다.
이를 위해 1918년 신규식과 그의 지도를 받은 여운형이 앞장섰습니다.
여운형은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고 국내외로 대표를 보내 민족궐기를 요구했습니다.
김규식은 신한청년당 대표로 파리로 가기위해
1919년 2월1일에 상하이에서 출발하였고,
2월8일에는 독립선언이 발표되었습니다.
한국이 일제에 합병된 지 9년 만에 독립운동의 최고조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세계각지에서 대한 독립 선언이 터져 나왔고,
한반도 전역에서 독립운동이 확산되었습니다.
3월1일에 서울과 평양에서 시작된 독립선언은
5월까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독립만세의 함성이 나라 밖으로 퍼져나간 것입니다.
만주 지린,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미국의 필라델피아 등
한국인이 거주하는 모든 곳에서 한일합방은 무효이며,
일제를 응징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고 독립전쟁을 벌여 나라를 되찾을 것임을
국제사회에 선언한 것입니다.
이후 나라 안팎에서 세 개의 정부조직 결성되었는데,
국내의 한성정부,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한민국의회,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입니다.
1919년 9월 이 세 조직은 상하이를 중심으로 하나로 통합되었습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이 1919년에 건국된 것입니다.
그러나 파리강화회의에 보내진 독립청원서는 별 소득을 얻지 못했고,
독립운동가들은 일본군에 붙잡히고 학살되었습니다.
또 서대문을 비롯한 형무소에서는 갖가지 끔찍한 고문으로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곤충을 대하듯이
마귀적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일본인들의 행태는 사탄적 만행이었습니다.
그럼 조선은 왜 일본에게 패망하였을까요?
구약성경을 통틀어 보시면 그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구약 전체를 읽기가 버거우시면 사사기서를 보면
그 원인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것도 못하시겠다면 이글의 시리즈 1번 글
'뽑지 않은 가시'를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조선의 고종이 가장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은 궁 안에
귀신들린 무당을 허락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철종 때까지 안동김씨의 60년 간의 세도정치로
조선이 쑥대밭이 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왕과 왕비가 귀신의 영에 사로잡히면 옳바른 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되면, 악한 영에게 휘둘리게 됩니다.
귀신들린 무당이 궁에 들어가서 비선실세로 장악할 수 있었던 경위는
이랬습니다.
1882년 권력의 중심에 섰던 명성왕후는 '임오군란'으로 위기를 맞으며
군사들을 피해 궁에서 도망나와 시골에서 피신하던 중 귀신들린 무당을 만났는데,
귀신의 힘으로 무당은 명성왕후가 궁궐로 돌아갈 날짜를 알아맞췄습니다.
명성왕후 민비는 이 무당을 기히하게 여겨 궁궐로 불러들여
왕의 종친들의 제사를 섬기는 진령군에 봉하고 나라의 제사를 담당하게 했습니다.
이 무당은 민비의 아들인 허약한 순종을 위해서 거대한 굿판을 궁 안에서 벌이고
금강산 1만2천 봉에 쌀 한 섬과 돈 천냥, 무명 한 필씩 바치게 하였고
그렇게 바친 수많은 재물은 무당, 진령군 손아귀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순종(재위 1907 ~ 1910. 8)이 잘 되겠습니까?
무당, 진령군은 신령한 척 하면서
고종(재위 1863∼1907)과 민비의 정신세계를 조종하였고,
조선의 최악의 비선 실세로 대단한 활약을 했습니다.
이렇게 무당에게 놀아나면서 민비는 국고를 탕진하는 동안에
배고픈 조선의 농민들은 동학에 가세하여 조선에서 '동학농민운동'이
1894년에 전국에서 일어났고,
민비는 1895년에 일본자 객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그리고 1910년 대한제국 최후의 황제,
민비의 아들, 순종 때 한일신협약을 체결되었고,
이에 따라 일본인의 관리(官吏) 임용을 허용하여
사실상 국내정치는 일본인의 손으로 넘어갔고,
일본의 압력으로 한국군을 해산하였으며,
경제권·경찰권·군사권 등을 상실하게 되었고,
결국 1910년 8월 29일 조선왕조의 종말을 맞았습니다.
무당 진령군에 대한 스토리는 아래 유투브에 잘 만들어 둔 내용으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fQHXRLbP6EY
국가가 망조가 들때는
이런식으로 국가의 왕과 왕비가 귀신의 미혹에 빠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던 솔로몬 왕이 이방 국가들과 결혼 동맹을 맺으면서 그랬었고,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도 그랬었고,
각 나라의 왕들과 대통령들이
신령한 사람에게 의지해서 국가를 이끌 해답을 찾으려다가
악한 영에 붙들여, 본인 인생도 인생이려니와
한 나라를 망치는 사례가 많았었습니다.
시편146;3
방백들(권력자)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라
한 국가의 지도자의 영적인 영향력은 국가 전체에 미칩니다.
지도자의 영혼이 잘못되면, 잘못된 정책을 세우고 그 정책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의 영적 영향력은
온 가족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어머니의 영적 역할도 자식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하겠습니까?
역대하 6;36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범죄하므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게 붙이시매
적국이 저희를 사로잡아
땅의 원근을 물론하고 끌어간 후에
저희가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며 패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 열조에게 주신 땅과
주의 빼신 성과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보옵시며
주께 득죄한 주의 백성을 용서하옵소서
이어서 계속....
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fQHXRLbP6EY
이런 무당을 조심해야 합니다.
명성왕후의 비선실세, 무당 진령군이 나라를 말아먹다!
PLAY
대한민국의 젊은이들 타락
적날하게 까발린 강남 클럽 실태 좀 보시죠.
https://m.bboom.naver.com/best/1-ysutt
서울 한복판에 '관음빠' 기승
스와핑에 개판!
주택가까지 퍼졌답니다.
이대로 둔다면...
https://youtu.be/yVODJXHshkc
PLAY
예수님을 잊은 유럽의 교회들
https://youtu.be/vKSkDXSZb20
PLAY
대하 7;12~14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
내 이름으로 일컽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대하7;19~22
그러나 너희가 만일 돌이켜 내가 너희 앞에 둔 율례와 명령을
버리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숭배하면
내가 저희에게 준 땅에서 그 뿌리를 뽑아내고
내 이름을 위하여 거룩하게 한 이 (성)전을 내 앞에서 버려
모든 민족중에 속담 거리와 이야기 거리가 되게 하리니
이 전이 비록 높을찌라도 무릇 그리로 지나가는 자가 놀라 가로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부종하여
그를 숭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저희에게 내리셨다 하리라 하셨더라
(그러므로 교회라고 무조건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죄악으로 ..
@곧 대환란 대하12;1~12
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하매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지도자의 영향력은 이렇게 백성들을 본받게 합니다.)
저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르호보암 왕 5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니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붙였노라
@곧 대환란 6절
이에 이스라엘 방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가로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하매
여호와께서 저희의 스스로 겸비함을 보신지라
여호와의 말씀이 스마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저희가 스스로 겸비하였으니
내가 멸하지 아니하고 대강구원하여
나의 노를 시삭의 손으로 예루살렘에 쏟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저희가 시삭의 종이 되어
나를 섬기는 것과
열국을 섬기는 것이 어떠한지
알게 되리라 하셨더라
(이때 솔로몬이 바친 성전의 금보물들을 애굽 시삭에게 다 빼앗김)
@곧 대환란
대하14;2~
(유다에) 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이하고 주상을 훼파하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을 명하여 그 열조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하며
그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이하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얻으니라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니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곧 대환란
대하 15;16
아사 왕의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들었으므로
아사가 그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니
....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온전하였더라
저가 또 부친의 구별한 물건과 곧 은과 금과 기명들을 하나님의 전에 드렸더니
이때부터 아사 왕 삼십오 년까지 다시는 전쟁이 없으니라
@곧 대환란
그러나 그러나....
아사왕이 북이스라엘의 바아사가 남유다를 침공했을 때,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이방 국가인 아람 왕을 의지하여 도움을 청했다.
그 댓가로 감히 감히.. 자기가 드렸다고 여호와의 성전의 은금을 취하여
아람왕 벤하닷에게 보내는 등
큰 죄악을 범했다.
그토록 충성스러웠던 아사왕이 말이다.
사람은 한 순간의 두려움과 조급함으로 사람에게 의지하려고 할 때가 있다.
이러한 큰 죄악에 대한 징계로 하나님께서 전쟁을 보내셨다.
전쟁은 하나님의 징계방법이다.
@곧 대환란 선견자 하나니가 아사왕에게..
대하16; 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 즉
이후부터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그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때에 아사가 또 몇 백성을 학대하였더라
@곧 대환란
진짜 선지자는 악한 왕이 대접하려고 할 때 받지 않는다.
북이스라엘의 악한 왕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예물을 줄테니 같이 들어가자고 할 때,
왕상13;8~9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할찌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이에 다른 길로 가고...
@곧 대환란
그러나 북이스라엘의 벧엘에 거짓 선지자가 살았다.
참 선지자가 이 거짓 선지자의 속임수에 넘어갔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곧 대환란
왕상 13;18~24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먹이고 물을 마시우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이에 그 사람이 저와 함께 돌아가서 그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
저희가 상 앞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거짓)선지자에게 임하니
저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가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한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열조
@곧 대환란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자기가 데리고 온 선지자가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그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라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獅子)가 길에서 저를 만나 죽이매
그 시체가 길에 버린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섰고 사자도 그 곁에 섰더라
@곧 대환란 하나님의 사람, 참 선지자가 짐승 사자에게 물려죽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사건일까?
하나님께 자신이 받은 명령이 있다면,
같은 교회 같은 예수님을 믿는 형제라고 할찌라도
혹은 가족이라고 할찌라도
인정에 이끌려서 그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일을 행하고 전진해 나갈 때
옆에서 조언이랍시고
사람의 심령대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어떠한 마음을 자신에게 주셨다는 허탄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마주치는 경우가 종종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야지 사람의 말에 귀를 귀울여서는 안 될 것이다.
가족이라고 할찌라도...
사람의 말을 듣는다면 패망이다
@곧 대환란
아사 왕과 참선지자가 얼마나 대쪽같은 성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러나 무너질 때는 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만하지 말고 늘 겸비합시다.
저도 늘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곧 대환란
그러니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자부하는 분들은
특히 위 하나님의 선지자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남들보다 특별한 것을 받으면 그만한 큰 책임이 따릅니다.
지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높은 직위는 스스로 탐낼 것이 못되는 것같습니다.
@곧 대환란
평범함에 감사하고 삽시다.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지고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지리라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곧 대환란
갈5;22~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문둥병 환자들을 돌보는 사역을 하시는 목사님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자기들을 잘 섬겨주지 않는다고
문둥병에 걸릴 것이라는 협박을 하는 삯군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사역에 돈으로 생활비를 보태주지 않는다고
문둥병도 모자라 나발처럼 죽을 것이라는
협박을 하는 파렴치한 작태까지 부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문둥병 환자들에게 귀한 목사들을 보내시는
그 심정을 알기나 하고 벌어진 입이라고 떠들어댑니까?
문둥병 환자들 사진은 보고 그런 말들을 합니까?
그러니 당신들에게
예수님의 목숨과 바꾼 양들을
하나님께서 맡길 수 가 있으시겠습니까??
정신들 차리고 입을 벌리시기 바랍니다.
그런 삯군들은 가라지들과 딱 어울리면 됩니다.
다 끼리끼리 노는 거죠.
@곧 대환란
오히려 이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엘리사 시대에 아람, 이방국가의 군장 나아만의 어린여자 종이
나아만의 문둥병을 이스라엘 선지자에게 가서 고침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일렀는데.
여차여차 해서 나아만이
엘리사의 명대로 해서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그래서 나아만은 많은 예물을 들고 엘리사에게 인사하러 갔는데 엘리사는 이 예물을 받지 않고 거절했습니다.
왤까요?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돈을 받았다면 나아만은 치료비를 준 셈이고 그 은혜를 잊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수종자 게하시가
그 예물이 탐이나서 엘리사 몰래 뒤쫒아 가서 얼마를 받아 숨겼습니다.
@곧 대환란
마음을 감찰하시고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게하시가 엘리사에게 도착하기 전에 그의 악행을 엘리사에게 가르쳐 주셨고 그에게 징벌을 내릴 것을 예언해 주셨죠.
그리고 들어오는 게하시에게
엘리사가 바로 저주하였습니다.
나아만의 문둥병이 게하시 집으로 옮겨가서 게하시와 그 집 안에 대대로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게하시는 바로 그 자리에서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자 보십시요.
누가 저주를 받았습니까?
예물을 가로챈 선지자 쪽 수하였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삯군을 감싸고 문둥병으로 성도들을 겁박을 합니까?
성도 여러분 이 댓글 잘 기억하시고
삯군들의 공갈에 두려워 마시기 바랍니다.
-왕하 5장-
@곧 대환란
하나님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라고 명령하십니다.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심판의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곧 대환란
가짜들은 자신을 높입니다.
아름다운 말
아름다운 체험
기적
은사를
말하고 나서
끝에는 자기를 섬겨 주는 것이 하나님을 대신해 섬기는 것인냥
가르칩니다.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의심하고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