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실 때 주시는 대로 심어야 거두리라.(눅18:9-14)
이재흔 목사 저. 24/04/28.
믿음은 가진 지식과 거의 정비례하게 성장한다.
종교적 지식을 신뢰하는 만큼 상상과 수요는 커지고 그에 맞춰 믿음이 자란다.
대신 신앙은 하나님이 주인이기에 허락되는 만큼만 믿음이 자란다.
하나님이 나타내게 하시는 만큼의 영광을 위해 믿음과 능력을 허락하신다.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고 베푸시는 만큼 기쁨으로 순종하기에 신앙이라 한다.
그렇기에 종교적 개념은 능력과 관계없이 무한대로 자란다.
거짓이 거짓인 줄 알면서도 필요에 따라 자기가 요구하는 정당성을 부여하여 주는 이유가 성립한다.
1)현대 신율법주의자가 자기 율법에 갇힌 종교인이다.
율법을 사람에게 누가 언제 왜 주었나? 하는 것은 어려운 난제가 아니다.
다들 광야에서 여호와께서 돌판에 기록하여 모세의 손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것으로 알고 있다. 구약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었으니 다들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창세 이전에 선포된 복음이 사람의 뜻에 갇혀서 율법이 된 것이다.
복음과 율법의 내용은 같은데 그 주인이 다르다.
복음은 그 말씀에 순종하면 지으신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니
순종하게 하는 능력은 언약으로 그 언약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그에 순종하는 공의를 신앙이라 한다.
율법은 하나님의 언약을 소홀히 하다 잊어버린 사람이 그 주인이다.
이미 제 안에 있으니 그 본질의 뜻은 이미 중요하지 않게 여기기에 그 뜻과 능력과 언약을 잊어버렸다.
언약은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였으나 본질을 잃어버린 사람은 뭔가 해야 한다는 것만 기억하니,
그렇게 교만한 사람에게 마귀가 외적 형식뿐인 종교심을 선물하였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허울뿐인 종교에 갇히고 말았다.
2)구주 예수가 판단하지 말고 분별하라고 하셨다.
예수가 증거 하며 가르치신 말씀을 묵상하자.
온전한 순종을 찾으시는 하나님 언약의 뜻과
육신의 욕구를 부추기는 원수 마귀의 미혹을 분별하라 하셨다.
사람이 제 욕심에 갇히면 제 뜻과 생각을 높이고
모든 공의에 저 자신이 주인이 되어 성경까지도 임의로 조정한다.
모르는 것을 가르치는 가라사대와 알지만 잊고 있던 것을 일깨우는 이르시되의 차이와
말끝마다 믿음 믿음 하며 믿음을 강조하면서 행위를 강조하는 침례를 택하며
예수의 기념하란 말씀에 순종하는 세례의 단어 하나도 폐하기 위해 광분하는 무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제 종을 부리듯 하며
하나님께 복을 어디서 빌려오라고 축복하라고 기도한다고 외치나?
그러나 하나님을 자기 주인으로 인정하면
하나님 뜻을 구하기 위해 기도하고 말씀하기까지 겸손함으로 기다린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온유요 절제며 겸손이다.
욕심 때문에 복음을 율법이 되게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은 자유 하라고 복음을 주셨으니
율법을 만들어 거기에 갇혀 억지소리를 발하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다.
오늘의 말씀 : 주실 때 주시는 대로 심어야 거두리라.
온유와 절제와 겸손하지 못하면
그 무엇도 누구도 사랑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다.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께 배우고 있지 않나?
믿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니 그 뜻에 귀 기울이고 가르침에 순종하자.
오직 기쁨과 감사로 여호와를 찬양하자.
할렐루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