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의 업적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잘 아실테고,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는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구한
수상입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itrain64&logNo=100187296633 이 네이버
블로그에 그에 대한 포스팅이 잘 나타나 있는데, 비록 예전에 조사한 내용이긴 하다만 2000년에 영국에서
조사한 역대 총리 중 가장 위대한 총리에서 3위에 뽑혔고(1위는 당연히 처칠, 2위는 애틀리) 2004년 조사에선
1위인 처칠 다음으로 당당히 2위의 인기를 누린 결과가 나왔다고 하는군요?
윈스턴처칠과 데이비드로이드조지는 둘다 거대한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라는 점에서
참 비슷한데 과연 둘중 어떤 수상이 더 영웅이라고 할만 할까요?
타이틀은 당연히 처칠이 압도적이다만 영국 내의 인기도평가에선 로이드조지의 인기또한 만만치 않고
또한 1차 세계대전 역시 2차 세계대전 못지 않게 영국에서 힘든 시기(해상 쪽에선 오히려 1차 때가 2차 때보다
더 많은 애를 먹었죠)였다는 점을 미루어볼때 로이드조지의 능력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인것 같습니다만?..
1) 로이드조지랑 처칠 중 누가 더 군사적재능이 뛰어났을까요? 1차대전 때의 로이드조지의 군사적안목,
2차대전 때의 처칠의 군사적안목만 놓고 보면 어느 쪽이 더 나았을까요?
2) 그리고 이건 영웅성과는 거리가 멀다면 누가 더 극심한 제국주의자였을까요? 1차대전은 흔히
'그놈이 그놈'인 전쟁으로 평가받는데 그 이론대로라면 로이드조지도 결국 그놈(제국주의자)이라는
타이틀은 벗긴 힘든 마당이고, 처칠의 인종차별과 소수민족 무시도 아주 유명한데 둘 중 누가 더
심각한 수준이라 보십니까?
3) 그리고 종합적으로..
누가 더 훌륭한 영국 수상이라 보시는지요?
첫댓글 당연히 처칠이 아닐지... 로이드 조지 이 양반은 말년이 깨끗하지가 않았죠. 그리고 처칠은 나치즘이라는 거대한 악에 혼자 맞서서 대영제국의 모든것을 하얗게 태워버리는 만화같은 설정을 연출하였지만 1차대전은 사실 선악이 그렇게 흑백으로 나뉘지도 않고, 그만큼 절망적이지도 않은지라...
제국주의자 >> 인종 대량살육 이지 않을가 싶네요.
민간인에게 독가스 살포하고도 저런 평가를 받다니 역시 전쟁은 이겨놓고 볼일입니다.
저 부등호의 뜻은... 제국주의자가 더 낫다는거겠죠?
처칠이 갈리폴리서 날려먹은 병력은 그렇다 치고,쿠르드족 학살때문에 크게 점수주기 힘듬
처칠은 스스로 히틀러아니었음 별거 아니었을거라고 스스로 말한적이 있다.고도 할정도;;
+ 벵골 아사자 사건..
프랑스가 순식간에 털리고 유럽에 더이상 독일에 대항할 만한 나라도 남지 않은 상황에 소련은 불가침 조약 맺고 있고 미국도 유럽 일에는 안끼어들겁니다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영국을 끝까지 버티게 하고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끈 처칠이 적어도 업적으로는 더 대단하지 않은가 싶네요. 1차 대전때 연합군의 주역은 프랑스였죠.
둘 다 거지같아서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없나요
시대상 한계라는게 있는데 제국주의자라는 점으로 욕하긴 거시기하죠.
둘다 제국주의자라서 뭐같긴 한데, U보트에 의해서 말려죽을 뻔하고, 치열한 본토항공전을 치르면서 지구 곳곳에서 추축군과 피말리는 싸움을 한 시대를 이끌어나간 처칠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처칠이라는 내부의 적(전함 두대 욕심에 눈이 멀어 총동원병력 300백만의 오스만 제국을 적으로 만드시고 서부전선만으로도 똥줄 빠지는 상황에서 중동전선과 갈리폴리라는 병력 잡아 먹는 블랙홀을 하나 더 창조해내시는 창조적 대업을 이루신 그 분!)을 안고도 전쟁을 이긴 로이드 조지 쪽에 한표 주고 싶네요.
오, 님 말씀 설득력 있는 듯 ㄲㄲ~~ 근데 오스만의 총동원병력이 3억은 아닌거 같긴 합니다요~
오스만 제국은 근데 당시 유럽 정치 역학관계에서 동맹국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굉장히 높기는 해서, 사실 배 이야기는 하나의 에피소드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처칠 거품은 까야 제맛!! ㄲㄲ
@첝 1차 대전때 병X짓 한건 한거고 2차 대전때의 처칠의 공로는 거품이라 보기 어렵다고 봅니다만.
@deathscythe 글쎄요 그 때 우직한 정치인이긴 했지만 스탈린, 루즈벨트와 같은 반열에 놓이는 건 거품 아닌지.
@첝 스탈린이면 모를까(솔까말 소련의 공로 자체가 냉전으로 인해 많이 폄하된 게 있죠.) 루즈벨트 정도라면 같은 반열에 놓일만 하다고 봅니다만.
@deathscythe 루즈벨트라는 정치인이 20세기에 가지는 위상을 생각하면 처칠 따위와 비교될 수는 없는데요
@deathscythe 처칠의 공로는 미국이 유럽에 다시 들어갈 발판을 유지한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처칠의 공로를 높게 평가하고 싶지는 않긴 합니다. 다만 영국이 탈락했다면 미국이 유럽에 개입할 명분 자체가 크게 줄어들었을 거란 부분이 있기에, 독일에 대해 결사항전을 주장한 처칠의 공로가 낮다고도 할 수 없긴 하지만, 그것은 그의 통찰력이나 판단, 정치력의 결과라기에는 그의 일관된 우악스러운 정치행태가 소 뒷걸음질에 쥐 잡은 격에 가깝지 않은가 싶어서, 역시 높게 평가하긴 힘들다고 봐요.
분명한건 능력있는 정치가는 절대 아니라는 것. 차라리 문필가로서 더 나을지도...-- 루스벨트와의 비교요? 루스벨트에 대한 모욕이라 봐요
@앙겔루스 노부스 물론 정치가로서의 전체적인 부분을 따지면 대공황을 극복하고 미국을 최강대국으로 이끈 루스벨트가 뛰어나죠. 그러나 본문은 지금 1, 2차 대전 중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거고 적어도 2차 대전 전쟁에 한정지어서 본다면 처칠의 역할이 루즈벨트와 비교했을 때 떨어진다고 보지 않습니다. 동맹국 하나 없는 상황에서 끝까지 독일의 침공을 버티어 냈고 그로 인해 연합군이 유럽 서부에서 반격하는 발판을 만들어 내었죠. 루즈벨트는 오히려 대전 이전의 대공황 극복과 미국을 다시 초강대국의 반열로 되돌려놓은 것이라면 엄청난 위상이겠지만 2차 대전 자체에 대한 위상은 처칠에 비해 딱히 높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deathscythe 루스벨트의 역할이 높게 평가되어야 할 부분은 미국국내의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가능한한 최대한 유럽의 전쟁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했던 부분이라고 봐야겠죠. 물론 개입이 결정적으로 가능해진건 일본의 선빵에 독일이 덩달아서 바보짓한 때문이기에 여기에 루스벨트의 역할이 있었다고 보긴 어렵겠지만, 개전이전에도 루스벨트는 가능한한 개입을 위해 노력한 부분은 평가받을 수 있다고 봐요.
전쟁에 한정한다면 처칠의 공로 자체는 비교할 수는 있겠지 싶긴 하네요. 다만, 위에도 말씀드렸듯이 그건 처칠의 어떠한 능력때문은 아닌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에...
@deathscythe 처칠이 없었다면 과연 영국은 그냥 독일에게 매가리없이 화평을 맺었을 것인가, 라는 부분. 그리고 사실 처칠이 아니더라도 독일의 공격을 영국은 버텨낼 수 있었다는 부분은 결과론이지만 지금으로서야 다들 인정하는 부분인데, 처칠이 그러한 부분을 판단하고 행동한거라기보다는 "그냥 평소 하던대로 한 것 뿐" 이라는 점에서 그의 의의를 높게 평가하긴 좀 주저하게 되네요. 거기에 북아프리카라던가 동남아시아에서의 판단도 좋았다고는 못하고... 그냥 근성으로 버텨낸 것도 업적은 업적입니다만, 처칠 자신의 언플이라던가 쇼맨쉽때문에 과대평가된 면이 많다고 봅니다.
@앙겔루스 노부스 300만 쓰려다가 요상하게 오타가 났네요 ㅎㅎㅎ;;;;
@첝 당시 오스만은 러시아의 남진 저지나 영-프의 경제원조(국가재정엔 원조, 민간경제는 수탈) 때문에라도 독일쪽으로 아주 기울어지지 못하고 있었는데
7월 말 전함 압류 -> 반영여론 악화 -> 8월 10일 궤벤 입항&판매 제안 -> 친독여론 강화 -> 14일 청년 투르크당의 엔베르 파샤의 독단적 대독 군사동맹 비밀조약 체결(아타튀르크의 회고록에 나옴) -> 16일 괴벤 판매 -> 친독여론 강화 -> 독일의 지원과 친독여론을 등에 업은 청년투르크당이 중립을 고수하던 늙은 대신들 밟아버리고 대독 군사동맹 공식화 -> Profit!
흘러가는걸 보면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불안정하던 오스만의 외교 테이블에 날린 밥상 뒤집기 였...
@Irea 러시아와 영국은 이미 얘기가 끝난 상황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중앙아시아, 극동, 이란을 차례대로 점령하고 러시아와 영국의 제국주의 경쟁은 일단은 영국 우위로 끝난 상태였고... 당시 영국의 문제는 뷜로와 티르피츠가 주축으로 세계패권 도전, 그리고 그 일환으로 함대 건설을 추진하는 독일이었으며 기존에 러시아를 막는 방파제로써 오스만의 가치는 사실상 끝난 상태에서 영국이 굳이 오스만을 살려줄 필요가 없던 상황... 결국 영국 입장에서는 오스만을 선택하느냐 러시아를 선택하느냐의 문제였는데, 여기서 뭘 선택할지는..
@Irea 오스만이 독일 쪽으로 기울든 영국 쪽으로 기울든 사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오스만은 철저히 종속변수.
설령 오스만-영국 관계가 정말 좋다고 치더라도 그 위의 러시아를 생각하면 오스만이 독일이 아닌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첝 250만 씩이나 되는 귀중한 병력을 별로 싸울 이유도 없던 제 2전선에 쏟아붇게 만드느냐 마느냐가 달린 선택지가 총력전 상황 아래의 영국에게 별 의미가 없다고 말씀하시면...
죄송합니다 전 그냥 나가보겠습니다.
@Irea 제가 뭐 무례한 행동이라도 했나요? 불쾌하군요.
도널드 쿼터트의 오스만 제국사나 여타 1차대전 관련 논문이나 보시죠. 19세기 이래로 오스만은 철저히 종속변수였어요.
"영국 입장에서는 러시아를 동맹으로 끌어들이는 게 이익이고, 러시아 입장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을 받아야만 했다."라는 것이 대명제고, 이 구조 안에서 오스만은 뭘 해도 동맹군에 붙을 수밖에 없다는 게 제 주장의 핵심입니다. 전함은 그냥 에피소드일 뿐이에요. 이 뜬금없는 반응에 정말 어이가 없군요.
@Irea 그리고 제1차세계대전의 본질이 총력전 체제라는 것이 드러나는 것도 사실상 마른 강의 기적 이후에 지리한 참호전의 지옥으로 들어간 이후에요. 영국이 전함을 뺏은 1914년 7-8월까지만 해도 이게 총력전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왠만한 사람들은 다들 생각도 못했고, 보불전쟁식 단기결전이나 생각하고 있었어요. 애초에 당사국들 전부가 전쟁 그렇게 오래 할 생각조차 없었고요.
오스만의 참전이라는 게 총력전 하에서 의미가 없진 않았죠. 하지만 그 사람들은 총력전이라는 것 자체를 아직 인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Irea 그런데 총력전 상황이라는 것도 당시 몰랐던 영국인들에게 "아 이 전쟁은 총력전이 될 거니 오스만을 잡아 놔야겠어!"하는 시대를 뛰어넘는 식견을 기대한단 말입니까? 영국이 전함을 뺏은 건 외교적 신뢰 차원에서 규탄 받아야할 일이지만 당시 7-8월에서 오스만이 붙냐 마냐는 "그 사람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어요. 님의 말은 철저한 결과론입니다.
첫째로 전쟁이 장기화될 거라는 생각도 못했고, 둘째로 러시아의 요구를 만족시켜줘야 하는 상황에서 오스만을 끌어들인다고 러시아를 버린다고요?
@Irea 그리고 러시아군이 아무리 개삽질만 하는 쓰레기 군대였다고 치더라도, 러시아군이 갈아마셔준 오스트리아군과 동부전선에서 허우적대게 만든 독일군을 생각하면, 갈리폴리와 중동에서의 병력 투입은 싸게 먹힌 편이에요. 영문판 위키백과만 봐도 당시 동부전선에서의 독일군이 손실만 80만이고 오스트리아군은 100만이 넘네요. 사상자는 합쳐서 730만명. 단위부대 당 전투력이 독일군이 영국군보다 더 위였다는 걸 생각할 때, 영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오스만 따위보다 러시아를 선택하는 게 더 맞는 선택이었습니다.
@Irea 1914년 두 거대한 동맹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은 오스만 제국을 파멸로 몰고갔다. 오스만 엘리트의 대다수는 영국과의 동맹을 원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가능한 선택이 아니었다."
도널드 쿼터트의 오스만 제국사 106쪽입니다.
@첝 저와는 저 상황을 보는 눈이 많이 다르신데, 제가 이 주제에 대해서 깊이있게 왈가왈부 할 만큼 관심 있는게 아니라 (가십거리 정도의 관심 밖에 없어서), 보는 관점이 님과 제가 많이 다르다는 점만 밝히고, 그런 연고로 저만큼 한거에서 이야기를 끊겠다고 단 댓글이었는데 어째 그 댓글이 불쾌하셨다니 사과드립니다.
둘 다보다 애틀리가 더 나은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