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공동체정신이 절실하다
사울왕의 극심한 박해를 받던 다윗이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무엘선지자가 세운 라마나욧(Ramah Naioth)이란 영적 공동체에서 사무엘 선지자와 함께 지내며 건강한 공동체 정신을 익히고 이를 실천하는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사무엘상 19장 18절).
사무엘 선지자가 비범하였던 것은 은퇴 후 그의 처신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그는 노령에 백발이 성성한 몸으로 은퇴한 후에 고향 라마로 낙향하였다.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 다른 노인들 같으면 낚시질이나 하고 장기나 두며 손자들 재롱이나 즐길 나이에 그는 달랐다. 오히려 더 뜻 깊은 삶을 사는 데에 자신을 헌신하였다. 고향에 젊은이들을 모아 공동체를 이루고는 낮에는 함께 노동하고 밤에는 기도하고 조국의 나갈 길을 함께 토론하곤 하는 그런 공동체를 세워 젊은이들과 함께 살았다. 히브리어로 공동체란 말이 나욧(Naioth)이다. 사무엘이 고향인 라마에 세운 공동체이기에 ‘라마 나욧( Ramah Naioth)’이라 불렀다.(김진홍 목사).
그런데 이곳 라마 나욧에 다윗이 찾아왔다. 사울 왕에게 쫓기다 못한 다윗이 사무엘을 찾아 온 것이다. 다윗으로부터 사울 왕에게 핍박을 받은 사정을 자세히 들은 사무엘은 다윗을 라마 나욧 공동체에 받아들였다. 그날로부터 다윗은 사무엘의 문하에서 영적, 인격적인 지도를 받게 되었다. 훗날 다윗이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서의 수련 덕이다. 사무엘 문하에서 다윗의 민족을 향한 비전과 목민(牧民)에의 역량(力量)을 기를 수 있었던 것이다. 다윗이 라마 나욧 공동체에 머물렀던 것은 사무엘이 죽을 때 까지였다. 다윗을 제거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 하던 사울 왕이었지만 다윗이 사무엘의 공동체에 머무는 동안에는 해칠 수 없었다. 사무엘에 대한 국민적 신망이 워낙 두터웠던지라 사무엘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다윗에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다만 군대를 파견하여 라마 나욧을 감시하며 다윗이 사무엘 휘하에서 벗어날 때만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 때에 사무엘이 숨을 거두었다. 다윗은 이 사실이 밖에 알려지기 전에 틈을 타서 라마 나욧을 벗어나 피신하였다. 그 후 다윗은 아둘람 굴을 찾아들어 거기에 몸을 숨기고 때를 기다렸다. 그런데 다윗이 아둘람 굴에 몸을 숨기고 있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져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다윗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결의를 가진 동지들이 모인 것이다.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사무엘상 22장 1, 2절).
재능은 있고 뜻은 있으나 자신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 환난 당한 사람들, 빚진 사람들, 한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숫자가 무려 사백 명에 이르렀다. 당연히 다윗이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동지적 결속을 하게 되었다. 그때 모인 사람들이 훗날 다윗 왕국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일꾼들이 되었다. 아둘람 굴에서 다윗이 사백 명의 무리를 공동체 정신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사무엘이 라마 나욧에서 체득한 공동체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숨어 있는 다윗을 찾아 아둘람 굴에 모여든 400명의 사람들은 기존체제, 기존질서에서 밀려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좌절을 당한 사람들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많았던 사람들이었다. 자신에게 상처가 많기에 공동체를 이루어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기에는 어떤 면에서는 부적합한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내면에 깃든 상처로 인하여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부딪치고 반목하기 쉬운 사람들이었다. 더욱이나 아둘람 굴에는 먹을 양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마실 물조차 부족한 처지였다. 그들은 아둘람 굴이란 동굴 속에 웅크리고 살면서 사울 왕의 정탐꾼들의 눈을 피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뜻을 세우고 비전을 세워 위대한 다윗 왕국을 건설하는 동지들이 되었다. 그들은 다윗의 지도력 아래 한마음으로 뭉쳐 역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였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다윗이 사무엘이 세운 공동체 ‘라마 나욧’에서 체득(體得)한 정신과 비전으로 뭉쳤기 때문이었다.
지금 대한한국에는 라마나욧 같은 그런 건강한 공동체와 건전한 정신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나라가 심각한 부정선거와 반국가적 범죄 등으로 매우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국민들에게 그런 공동체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 주는 사명을 감당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정선거로 나라가 공산화되어 가고 있는 데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하고 있으니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다.
3일전 유세 중 총탄으로 피격을 당한 미국 전 대통령 트럼프의 의연한 모습이 새삼 부럽다. 그는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목숨을 건진 후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위축되지 않고 악과의 전쟁에 더욱 의연하게 대처해 나갈 것을 다짐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악과 싸우는 이런 정의롭고 당당한 지도자가 왜 나오지 않는 것일까?
생각간대 이는 건전한 국민정신이 죽어 있기 때문이며 이것이 망국으로 가는 근본 원인이요 지름길이다. 우리에게는 건강한 자유민주주의 공동체 정신이 절실하다. 국민정신개혁운동만이 참으로 살 길이다. 자유민주주의 건국정신, 근검·정직·성실의 청교도 정신, 박애·충효·인경(仁敬)·과학의 세종대왕 정신으로 전 국민이 새롭게 무장하고 개인이기·탐욕주의의 구습(舊習)을 떨쳐내어 새 길을 열어가자!
2024. 7.16.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