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띠수업 - 부처님도 하나님도 당신을 구원할 수 없는 이유
'나는 자연인이다.'
중년 남성들이 이 프로그램을 참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현상에 대해 누군가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분들은 현실이 불만족스러워서 자연으로 도망치고 싶은 사람들 아닌가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생 2막을 꿈꿉니다. 자잘한 변화가 아니라 막의 오르내림 후의 완전히 다른 버전의 삶을 꿈꾸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 심리에는 현재에 대한 불만족이 자리할 것입니다. 변화에 대한 욕구도 있겠죠? 하지만 삶은 희망으로 변화하지 않습니다. 올바른 방법을 알고 실행해야 합니다. 인간은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요?
"너는 네 자신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하면서, 장소를 바꾼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네가 어디를 가든 너는 너 자신을 짊어지고 간다." -세네카
서울에 가고 싶다면? 한 걸음이 필요합니다. 이 작은 걸음이 모여 우리를 목적지로 이끕니다. 결국 해야 할 일은 올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을 걷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죠. 이런 방식으로 운명을 잘게 쪼개면 무엇이 나올까요? 경험이라는 한 걸음입니다. 만약 경험 한 조각을 뜻대로 바꿀 수 있다면, 자연히 경험의 합인 인생과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바꿔야 하는 것은 삶의 무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경험입니다. 경험을 바꾸는 법을 배운다면 인생 2막을 무력하게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경험을 바꾸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2막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이 되니까요.
마음의 조립 공정: 오변행심소와 작의의 칼날
작년 이맘때 제주도에서 10km 자체 마라톤을 했습니다. 바닷가 옆을 달리니 시원한 바람과 함께 펼쳐지는 풍광이 참 좋더군요. 이 경험을 예로 들어 분석해 볼까요?
달리기를 하는 동안 눈은 풍경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이 '촉'입니다. 그런데 만난 모든 풍경이 경험되는 것이 아닙니다. 눈과 풍경 그리고 주의력이 더해질 때 경험이 일어납니다. 바다의 다양한 풍경 중 풍차만 기억에 남은 이유가 이 주의력 즉, '작의' 때문입니다.
주의력을 만난 대상만이 마음에 들어오는데 이를 '수'라고 하고, 이 수용한 정보를 과거의 지식을 통해 분석하여 내린 결론을 '상'이라고 하며, 이 경험에 대한 의도가 생기는 것을 '사'라고 합니다. '촉·작의·수·상·사' 다섯 가지 변행심소는 모든 경험에 반드시 함께하는 마음의 작용입니다.
"나의 경험이란 내가 주의를 기울이기로 동의한 바로 그것이다. 오직 내가 주목하는 대상만이 나의 마음을 구성한다." -윌리엄 제임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작의, 즉 사띠입니다. 우리는 사띠를 둔 대상을 경험합니다. 바다 위 풍차처럼. 반대로 사띠를 두지 않은 대상은 경험 자체를 못 합니다. 바다 위 바위들처럼. 나아가 두고 있던 사띠를 떼면 경험은 끝납니다. 기억에도 남지 못한 어제의 경험들처럼. 사띠를 두고 떼는 것이 곧 경험의 시작과 끝을 결정한다는 것을 이해할 때 운명은 변화합니다.
술과 TV를 끄고 사띠를 호흡으로 되돌려라
걱정 때문에 잠이 안 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TV를 보거나, 술을 마실 필요가 없습니다. 본질을 보세요. 그 행위는 그저 걱정에서 사띠를 떼려는 시도일 뿐입니다. 사띠를 다룰 줄 아는 수행자는 걱정에 시달릴 때 이 원리를 기억하고 활용합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 우리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우리의 성장과 행복은 바로 그 선택에 달려 있다." -빅터 프랭클
걱정에서 사띠를 떼서 호흡에 둡니다. 걱정의 그물에 걸려 있으니 단박에 벗어날 수 없겠지만, 10분 정도 걱정과 호흡을 왕복하면 대부분 불안에서 벗어나 안심하고 잠에 듭니다. 이것이 삶을 바꾸는 첫 연습 과제입니다.
지금의 삶이 불만족스러운 이유는 결국 잠 못 들게 만드는 '걱정거리' 때문이지 않습니까? 사띠의 원리를 아는 사람들은 걱정거리를 줄여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없어지면 좋겠다고 희망을 키우지 않습니다. 걱정들을 쫓아다니며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그냥 거기서 사띠를 뗍니다. 호흡에 둡니다. 안심합니다. 이것이 하나의 경험을 바꾸는 본질입니다. 이 한 걸음을 자력으로 올바로 걸어낼 때 비로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무작정 기다리는 것과 헤매는 삶을 끝낼 수 있는 것이죠.
사띠가 곧 당신의 격(格)이자 유일한 자유의지다
"지옥의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다." - C.S. 루이스, <고통의 문제> 중
지장보살은 슬픕니다. 지옥문 앞에 서서 계속 울고 계신다고 합니다. 세계를 가득 채울 수 있는 공덕을 간직한 '지장'이라는 명칭을 얻었습니다. 이 공덕으로 지옥 중생을 돕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길게 줄 서서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중생에게 애써 소리칩니다.
"'지장보살' 네 마디만 하면 지옥에서 구해줄게요!"
아무리 소리쳐도 지옥 중생은 관심이 없습니다. 대부분 두려움 때문에 얼빠져서 사띠를 주지 않아 아예 인식조차 못 합니다. 사띠를 두지 못하니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서 지옥을 벗어날 기회를 놓칩니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죠.
"신이 인간에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너에게 일정한 자리도, 특정한 모습도, 어떤 특별한 기능도 주지 않았다. 너는 오직 너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네가 원하는 자리와 모습, 기능을 스스로 선택하고 획득할 것이다.'" - 피코 델라 미란돌라
모든 사람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지옥에 빠지는 중생은 하나님도 부처님도 지장보살도 구할 수 없습니다. 자유의지 때문입니다. 자유의지를 추상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유의지는 곧 사띠입니다. 지옥에 사띠를 두고 빼앗긴 중생을 하나님도 구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사띠의 원리 때문입니다.
지장보살이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자유의지 즉, 사띠를 둔 채 '지장보살'이라고 외치는 것이 곧 동의입니다. 이 사띠 없이는 그 어떤 외부적 존재도 중생의 삶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사띠라는 자유의지로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바깥의 무대를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신들과 부처님도 사띠의 동의 없이 운명을 바꿀 수 없습니다. 오직 사띠의 질을 높이는 훈련만이 운명을 바꿉니다.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을 바꾸는 열쇠는 사띠입니다. 경험이 모인 습관과 일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열쇠도 사띠입니다. 경험과 일상을 넘어선 인생과 운명의 탈바꿈을 이끌어내는 마스터키는 오직 사띠 뿐입니다. 무용한 것들을 쫓아다님을 그만두고 사띠의 질을 높이는 훈련을 시작하는 게 어떨까요?
사띠가 곧 당신의 격입니다.
사띠명상 배우기 https://litt.ly/buddhaschool1/sati
첫댓글 경험을 바꾸고 결정하는 본질이 사띠에 있음을 알고, 사띠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_
오직 사띠의 질을 높이는 훈련만이 운명을 바꿉니다. 감사합니다_()_
'자유의지는 곧 사띠입니다' 두고, 떼고, 쓰고, 자유롭게 살겠습니다.감사합니다_()_
사띠가 바로 나다!! 사띠의 질을 높이는 수가 최고 의 방법이군요.
사띠가 곧 당신의 격이다!
넵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