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유혹의 손길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나에게는 뭇여성들을 뇌쇄시키는 마법의 힘이 있었다. 그것을 입증하듯 나의 시선이 머무는 여자들마다 마치 발정기의 수캐처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였다.
사람을 상품으로 표현할 수 없지만 결혼시장에서의 나의 인기는 상한가였으며, 자타(自他)가 공히 최상의 품질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막강했던 힘은 회장비서 앞에서 무참히 무너지며 나의 자존심은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말았다.
나는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휴가를 내자 담당과장은 월말 자금결제를 우려하여 펄쩍 뛰었지만, 그것은 나의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 받고 싶었다. 그리고 밤새도록 얘기하고 싶었다. 전화번호가 가득 적힌 수첩을 뒤졌지만 자신이 없었다. 지금 내가 방황하는 원인은 업무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회사내의 동기들도 생각해 보았지만, 너저분한 인간성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기분전환을 하고 싶었다.
시원한 바람, 새소리, 물냄새, 깎아지른 절경.
자연을 연상하게 하는 단어들이 정시에 종착역으로 들어오는 열차처럼 나의 머리 속으로 들어왔다.
'낙향'
아름다운 고향산천이 떠오르자, 나는 더 이상 생각할 여지도 없이 영동선 밤열차에 몸을 실었다.
***
나는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백수들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았다.
도서관은 적막강산으로 잠자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분위기였다. 그래서인지 많은 학생들은 머리를 파묻고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도서관 규모와 향학열이 반비례하는 묘한 현장이었다.
'아직도 취직 공부를 하고 있을 녀석들이 있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나는 얼굴 없는 상대에게 바람맞은 심정으로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꺼내었다. 담 넘어 여자 중학교에는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말타기하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펼쳐졌다.
'그래 우리는 강인한 기마민족이었지.
만주벌판을 누비며 수렵하는 우리에게
용맹은 절대 사명이었어.
풍파치는 어둠을 헤치며 고기 잡는 실향민의 의지처럼
굳센 금순이들의 말타기 연습.'
휴식시간이 끝나자 맹렬여성들이 사라지고, 나는 야외휴게실로 갔다. 등나무 밑에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여성이 있었다. 평상시라면 유혹의 눈길이라도 보낼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는 낙지처럼 흐느적거리며 등나무 밑에 누웠다. 푸르디 푸른 하늘에 비서의 해맑은 얼굴이 떠오르는 것도 잠시 또 악몽이 떠올랐다.
'가장 자신 있는 분야가 연애이건만, 왜 나는 그녀 앞에서 약해지는 것일까?'
"정봉추!"
등나무 밑에 있던 여성은 큰 소리로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 음성은 익숙하면서도 오랫동안 잊었었던 목소리였다.
"어."
"오랜만이야!"
성실이 불쑥 악수를 청하자 나도 얼떨결에 손을 내밀었다.
"결혼해서 안양에 산다고 들었는데……"
"이혼했어."
"이혼했다고?"
"더 이상 묻지마."
나의 반문에 성실은 단호히 말했고, 나는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여긴 웬일이야?"
"......"
그녀의 역공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휴가와 도서관은 어울리지 않는 장소이고,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곤란하면 말 안해도 돼."
내가 머뭇거리자 그녀는 또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설마 바람맞은 건 아니겠지?"
"......"
그녀의 성격은 학창시절과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예리한 통찰력은 성장의 원동력이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파탄의 원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때 그녀가 나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배우자로서 곤란한 상대였으며,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옳은 판단이었다.
성실은 아득히 나의 기억 저편에 묻혀 있었던 복룡의 안부를 전했다. 우리는 학창시절 열렬한 종교환자처럼 몰려 다녔지만, 복룡의 소리소문 없는 잠적과 성실의 투옥으로 공중분해되었다.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진 복룡과의 재회는 예수의 부활이상으로 우리에게 큰 의미였다.
나는 전설같았던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방황하는 양심이었고,
고뇌하는 젊음이였으며,
은둔하는 천재였다.
'복룡과 졸업정원제’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우리들은 학업을 뒤로 하고 많이 놀았다.
우리들은 '행복은 주량과 비례하고, 자유는 학점과 반비례한다'는 철학으로, 밤새도록 술을 마시면서도 '실천하는 양심'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다행히 졸업정원제에 걸린 친구들은 없었지만, 학점은 늘 바닥에서 맴돌았다.
***
우리는 아침 일찍 강릉으로 향했다. 복룡이 있는 곳은 '암반덕'으로 오지중의 오지였다.
아직도 기계영농이 불가능하여 소를 부려 고랭지 채소를 경작하는 곳.
해발 천 미터가 넘는 태백준령의 마을로, 행정구역은 강원도 강릉이지만 거리상 횡계쪽에 가까운 고산지대의 화전촌이었다.
시월 중순이라서 그런지 강원도의 날씨는 투박했다. 새벽공기도 제법 쌀쌀했고 바람은 매섭게 불었다.
첫차는 텅텅 비었고 낡은 차의 냉방시설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우리는 성산을 지나 임계방향의 길에서 내렸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인가(人家)도 없는 황량한 곳이었다. 많은 시간을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고, 우리는 황톳길을 걸었다. 아직 걷히지 않은 안개가 산 중턱에서 서서히 내려와 우리의 품에 안기듯 반갑게 달려왔다.
결혼의 사슬에서 벗어난 성실과 실연의 상처에서 벗어난 나. 육체적으로 다소 피곤한 감은 있었지만 기분은 상쾌하였다.
가을 단풍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를 감동시켰고, 회장비서의 얼굴은 골짜기마다 묻혀가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힘찬 농민차 소리가 들렸다. 성실은 신 새벽을 가르며 일터를 향하는 차를 세웠다. 암반덕으로 가고싶다고 하자 운전사는 우리를 당근밭에다 내려주었다. 빨간 밭은 양탄자보다 더 아름다웠고, 일하는 아낙네의 모습은 밀레의 '만종' 속에 나오는 여인보다 경건하게 보였다.
"봉추야, 저 사람들에게 물어봐."
"뭘?"
"암반덕에 관해서."
"차에서 들었잖아, 여기 다니는 차는 모두 암반덕행이라고."
"그게 아니라, 삶의 환경말이야."
"......"
성실은 산으로 들어갈수록 은근히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멀리서 다가오는 8톤 짐차를 다시 세웠다. 목적지를 말하지 않아도 짐차는 우리의 행선지를 알았다. 짐차는 감자를 농협창고로 실어 나르기 위해 감자밭으로 가는 중이었다.
길은 험했다. 울퉁불퉁한 자갈이 길 곳곳에 버티고 있었고 차는 제멋대로 흔들렸다. 차는 우리들의 엉덩이가 좌석에 앉아 있을 틈을 주지 않고 비탈길을 올라갔다.
터미널에서 암반덕으로 가는 방법을 물었을 때 고개를 흔들었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감자 집산지에 도착하자, 질퍽질퍽한 진흙길을 20여분 걸어갔다. 쓰러져 갈 듯한 집 앞마당에는 감자들이 포장에 덮여있었고, 사람들은 상차기에 감자푸대를 올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 곰같이 보이는 녀석은 영락없는 복룡이었다. 엉성하면서도 당찬 모습은 우리의 시야로 한순간에 들어왔다.
우리가 합창하듯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마치 날개를 단 듯 달려왔다.
"이게 누구야, 백 미터아냐?"
복룡이 성실의 별명을 부르자 그녀는 화를 내었다.
"너어, 혼 날려고."
"하하하. 그럼 십 미터로 줄여줄께. 솔직히 일 미터 앞에서 봐도 미인같애."
"......"
"산 속에서 분 냄새를 맡는 기분은 그 뭐라고 할까?"
"어휴. 저 능청."
회포를 풀 겨를도 없이 복룡은 나를 일터로 끌어 들였다. 그는 40킬로나 되는 감자짝을 잘 들었지만, 나는 힘이 부쳤다. 두차정도 실었을 때는 머리가 어지러워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주저앉기에는 남자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물을 마시며 버티었지만, 다섯 차를 실었을 때는 모든 근육이 완강히 저항하는 것 같았다. 힘을 쓸 수 없는 육체는 완전히 나의 통제 밖에 있었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노가다의 기본원칙은 변함이 없었다. 패잔병처럼 앉아 있어도 맛있는 새참은 나에게도 할당되었다. 새참으로 먹는 라면 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맛이 있었다. 서울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산골에서는 별미 그 자체였다.
복룡이 일을 마칠 때까지 우리는 산책을 하였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첩첩산과 황토가 날리는 화전밭이었다.
한때, '깡패들이 토지를 불하받아 농사도 하였다'는 전설의 땅을 우리는 밟고 있었다.
태양은 피곤한지 서산으로 안식을 취하러 들어갔고, 복룡도 일을 마친 뒤 덜덜거리는 차를 몰고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비포장도로를 십여분 들어갔다.
도로주변에는 하얀 닭똥들이 줄 맞추어 환상의 선을 연출하였지만, 나뭇가지가 차창 밖에서 위협적으로 지나갈 때는 비탈길의 진수를 유감 없이 보여주었다.
복룡은 기분 좋게 노래를 불렀다.
서산에 붉은 해 걸리고
강변에 앉아서 쉬노라면
낯익은 얼굴이 하나 ~ 둘
집으로 돌아온다.
늘어진 어깨마다
퀭한 두 눈마다
빨간 노을이 물들면
왠지 마음이 설레인다.
복룡의 거처는 쓰러질 듯한 오두막이었다. 누우면 허리가 휘어질 것 같은 작은 집이었지만, 나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그의 방은 쓰레기장같았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는 온갖 물건들이 오합지졸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헝클어진 이불과 옷가지, 고약한 냄새, 무당집을 연상케하는 전시물들. 거렁뱅이의 참 모습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방은 발디딜 틈이 없었고, 누런 벽마다 어지러운 낙서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완강히 막는 것 같았다.
에디트 피아프 ─ 매춘굴에서 탄생한 프랑스의 꾀꼬리
지금은 촛불을 끌 때는 아닙니다.
석방하라 김남주 시인 - 자유실천문인협의회
5.18.은 깨어나라
유신체제의 극렬한 억압과.....
찬바람을 감수해 가며 방문을 열어도 홀아비 냄새는 전혀 떠날 기색이 없었고, 우리는 인간의 감각 중 가장 둔한 후각의 적응을 기다렸다.
그는 분주히 음식을 만들며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역겨운 냄새에도 불구하고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밥상의 형상은 입맛이 왔다가 버선발로 도망갈 형편이었다.
"이게 뭐야."
찢어지는 듯한 성실의 목소리에 복룡은 덤덤하기만 했다.
"너무 그러지마. 산에서 이 정도면 훌륭한 거야."
반찬은 감자졸임, 감자채 등 온통 감자일색으로 포기해야 하는 한계상황이었다. 그러나 복룡은 세상 모든 행복을 그의 튼튼한 팔뚝에다 붙잡아 매어 놓은 듯 하였다.
싸각싸각한 밥풀이 흙에서 뒹굴다 들어온 것처럼, 돌씹는 느낌도 들었지만, 그것은 단지 환상일 뿐 돌은 없었다. 복룡은 복스럽게 밥을 먹었지만 우리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복룡은 밥상을 물리고 술상을 내어왔다. 단아한 무쇠주전자에서 한약냄새가 가득하였다. 밥상과는 달리 술상은 근사하기 그지없었다.
이성이 지배하는 현실을 벗어나 감성이 존재하는 세계를 들어갈 수 있는 망우물.
그 신성한 존재 앞에 우리는 그 의미를 더욱 부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약초로 담갔다는 술맛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하늘의 맛' 이었다.
'약초술이 양주보다 뛰어남은 어떤 비법이 있는 것일까?' 굳이 내가 묻지 않아도 복룡은 장황하게 설명해 주었다.
"단 맛은 당귀와 감초의 조화된 맛이며, 향은 더덕에서 나오지."
복룡은 약초에 대하여 도사가 된 것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반드시 이곳에 오리라 믿으며 우리들을 기다렸다'는 그는 세상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꽃향기에 나비가 모여들 듯, 술이 익으면 우리가 모일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평범한 나로서는 황홀한 술맛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복룡은 잔을 들어 객(客)에게 권했다.
화려한 술빛은 우리들의 입술에 수없이 머물렀다. 방은 은근히 따뜻해지며 세상의 모든 행복은 우리의 품속에 있는 것 같았다. 우리의 지난날들은 군불 속에서 환상적으로 익었다가 완벽하게 분해되는 것 같았다.
방황.
체류탄 터지는 가투(街鬪)의 현장.
실직한 근로자의 처절한 절규.
지금 생각하면 현실과 커다란 괴리도 있었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삶의 흔적이었다.
그동안 쌓여있던 권태감이 강력한 표백제에 탈색된 듯 깨끗한 순백색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시간에 비례하여 깊어만 가던 밤도 그 기운을 잃어가며, 하룻밤은 우리들의 술잔 속에 순식간에 녹아들었다.
서서히 동쪽에서 해가 뜨고 있었다. 우리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술을 마시고 단칸방에서 성(性)의 개념도 없이 드러누웠다. 술기운이 온몸으로 몰려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아늑한 정서를 전하였다. 신체에 주는 저항감은 없었고 술은 나이고, 나는 곧 안락과 평화였다.
얼마를 잤는지 모른다. 잠결에 방문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의 의식은 아득한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문고리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만, 누군가 다급하게 복룡을 부르는 것 같았다.
"독일 병정님!"
"......"
순간 내 머리 속에는 강원도 감자밭과 독일병정과의 관계가 난해한 함수처럼 느껴졌다. 그 후에도 나는 방문이 덜컹거리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은 것 같았다.
희미한 의식 속에 내가 놀란 것은 직장에서 얼마나 일에 찌들었으면, 학창시절 말술과 벗하며 밤하늘의 모든 별들을 잠재웠던 나의 체력이 무참히 잠식당했다는 사실이었다.
잠시 후, 몽롱한 의식을 뚫고 무참히 쏟아지는 우뢰와 같은 여성의 음성이 들렸다.
"독일병정님! 도와 주세요."
"......"
"소가 죽어가요."
"......"
나는 소가 죽어간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순식간에 의식을 회복했다.
나와 복룡은 황급히 농민차에 올라 그 여자를 따라갔다. 덜컹거리는 비탈길이 나의 마음까지 덜컹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소가 죽는데 '왜 그녀가 복룡을 찾을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복룡도 운전을 잘했지만 그 여성도 운전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강원도 토종감자가 키우는 굳센 강원여성의 표본.
우리가 도착한 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황급히 외양간으로 들어갔다. 황소가 낑낑거리고 있었고, 온 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는 팔뚝을 걷어 부친 뒤 소의 입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소 혓바닥을 타고 매끄럽게 몇 번이나 그의 손이 들어갔지만, 목에 걸린 감자를 꺼내지는 못했다. 그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조금 더 있으면 소가 죽는 다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남자의 굵은 팔뚝도 들어가는 목구멍에 도대체 어떤 감자가 황소의 목에 걸린 것이며, 깔깔한 지푸라기도 씹어 먹는 황소가 부드러운 감자를 왜 씹어 먹지 못할까'하는 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일이 안 풀리는지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도를 했다. 아무래도 깊은 곳에 걸린 모양이었다. 그는 장대 끝에 부드러운 헝겊을 단단히 붙잡아 매었다. 그리고 그 여성에게 주었다.
그 여성은 장대를 몇 번이나 소의 목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지만, 감자는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소에게 주는 고통이 부담스러웠는지 소극적이었다.
'때로는 사사로운 정이 일을 그르친다고 했던가'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그는 나에게 봉을 건네주었다. 순간 나는 두려웠다. 그렇지만 상황은 급박하였고, 나는 편안하게 생각을 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모르겠다. 소 죽으면 한우 고기 실컷 먹을 텐데, 오늘 땡 잡았다.'
나는 소의 목구멍 속으로 장대를 힘껏 밀어 넣었다. 회장비서로부터 받은 모멸감을 떠올리며, 장비가 사모창을 휘두르듯 나는 장대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는 동시에 소의 목에 소주를 들이부었다.
나에게 어떤 힘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나의 행동에 찬사를 보내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순간 소의 배속에 가득 찼던 시큼한 공기가 사방에 진동하였다. 코를 막는 나의 행동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공기가 빠져야 소가 산다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방에서 부들부들 떨며 소의 고통을 지켜보시던 할머니는 안도의 숨을 쉬었고, 아무런 말도 없이 소를 잡고 있었던 주인아저씨의 입에서 한마디가 튀어 나왔다.
"씨팔, 이제 살은 거나?"
순간 나는 황당했다. 그녀는 소가 살았다고 팔짝 팔짝 뛰며 좋아하는데, 정작 주인이 욕을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화전민의 후예는 좋은 일에 욕을 하는 것일까?'
우리는 홍길동처럼 그 현장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선행을 하면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는 도회지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덤덤히 고맙다'라는 표시와 한 동네에 일어나는 일은 전부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는 비탈의 문화.
덜컹거리는 차의 흔들림은 한 생명이 다시 살아났다는 기쁨을 전하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누가 그렇게 찾아왔어?"
나의 물음에 그는 무심히 말했다.
"일 좀 도와 달라고. 내일 비가 온데."
"그런데, 왜 네가 독일병정이야?"
"독일군을 쉬지 않고 일한데. 노가다판에는 이름이 없거든."
그는 제갈공명 같았다. 비록 유비일행은 아니지만 농민들이 몇 번씩 찾아오는 현대판 삼고초려의 현장을 나는 목격한 것이었다. 유쾌한 경험이었다.
우리의 거처로 돌아 왔을 때 오두막은 고려폭에 아늑한 둥지를 틀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는 복룡이 왜 산골에 들어와 있는지, 그리고 쓰러져가는 오두막집에 왜 '자유부인 연구소’란 현판을 걸었는지 궁금하였다. 그 현판은 세상의 반이 여자이고 그 반의 의미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을 하였다. 그리고 '그가 여기 들어온 이유는 삶의 반을 다 깨닫고 훗날 완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들어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을씨년스러운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갔을 때 성실은 아직도 누워 있었다. 예민하게 살아서 그런지 그녀의 자는 모습은 처량해 보였다. 그녀 자신은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힘겨운 삶을 벼랑꼭대기에서 꾸려가고 있는 것 같았다.
여전히 군불은 고고한 오동나무처럼 지조를 지키며 타오르고 있었고, 우리는 다시 잠을 청하였다. 창호지를 타고 오는 바람의 위력은 대단했지만, 고려폭은 치마폭에 감싸인 것처럼 어느 누구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고 고요하기만 하였다.
고려폭에서의 두 번째 날이 저물어 갔다.
해가 떨어진 후, 또 술잔을 권하며 온갖 양념을 넣어 만두를 빚듯 우리는 화려한 밤을 빚어갔다. 잠시 방뇨를 위해 방문을 열었을 때, 천상의 선물처럼 소복소복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눈.
시기적으로 이른 눈이 심도 있는 모습으로 강원도 산골에 쌓이고 있었다.
새벽이 찾아왔을 때에는 사람 키를 훌쩍 넘을 만큼 눈이 쌓여 있었고, 온 세상은 하얀 눈에 묻혀버렸다. 며칠이 지나도 눈은 녹지 않았고, 전화도 없는 오지에서 나는 '무단결근'이라는 운명의 사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제길, 이제 나는 짤린 것인가.'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녀로부터 받은 실연의 상처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겨울나라 초대장'이 되어버렸다. (9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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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