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사진은 "맨 끝줄 소년" 이미지에서 퍼옴
장마철에 난리굿 이었던 냉장고 덕분에 몸과 마음이 심란했다.
하여 냉장고가 온전하게 돌아오길 기다리는 동안 OTT를 탐색하며 무엇을 볼까 고민하다 요즘 소문이 자자한
"맨 끝줄 소년'을 보기로 했다....물론 이미 들여다 보던 다른 프로그램도 많았지만 시류에 편승하며 나름 의미부여를 한다.
하지만 지루한 아니 퍼붓는 빗소리를 들으며 온전하게, 완전히 집중하여 "맨 끝줄 소년"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는 것은
정말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고 보는 내내 최민식과 최현욱의 심리를 이해하거나 파악해야 하는 고달픔도 있었다.
그러니까 날씨가 주는 변동사항도 많은 부분을 참견하므로 쨍한 날씨였다면 어떘을까? 싶은 개인적 심리 부담도 있었다.
사실 영화를 좋아하는 성향상 널려진 OTT를 거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자주 찾지못할 영화관 대신
더러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에서 맛보는 선택적 희열감이나 결론적으로는 의도한 바를 이해하고
영화나 드라마가 펼쳐보이고 싶은 요소들을 확인하여 나만의 감성으로 찾아내는 것을 좋아하기는 한다.
아마도 그런 현상은 "맨 끝줄 소년"의 주연들 속내와 같지 않을까 싶은 그런 의미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한.
하여 다른 사람들의 이해도나 관점이 다르더라도 충분히 이슈가 되겠거나 되어버린 프로그램을 들여다 보는 것을 사양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관심을 갖고 시청을 해본 "맨 끝줄 소년"은 호락호락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실제적으로는 많은 피로도를 느끼며 보아야 했으므로 두배 이상의 감정과 감성, 이성의 소모가 있었다.
여하튼 "후안 마요르가"의 대표적 희곡인 "맨 끝줄 소년"은 실패한? 후속작이 없는? 작가이자 국문학과 교수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학생과의 위험하고도 감정적이면서도 작가적 성향이 가미된
압박적인 교감을 다룬 강렬한 작품으로서 해외에서는 영화 "인 더 하우스"로도 각색돼
사랑을 받았던 작품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그런고로 넷플릭스의 "맨 끝줄 소년"은 공간의 상징성과 인물간의 심리적 역학관계에 대한 분석을 기본으로 깔고 있으며
글쓰기의 예술적 재능을 가진 소년과 이를 질투하면서도 대리만족을 느끼는 중년 작가이자 교수의 잠재적이고 파괴적인 심리를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보여지는,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는, 출세에 대한 집착이 소년에게 전이되어 비극으로 치닫는 그런 관계를 복잡하게 풀어냈다는 말이다.
어쨋든 몰락은 아니어도 교수에서 헌책방 서점주인으로 전락한 후 후속타 없는 작가라는 트라우마를 건너가기 위해
남의 작품을 내 것으로 가져오려는 태도는 첫 작품 이외에 볼 것 없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질 수밖에 없는,
기회를 갖고자 하는 열망이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상황에서,
마지막에는 결국 밑바닥을 건너온 작가로서 두번째 작품에 몰두해보려는 의도로는 특별함을 가진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스토리 작가로 변모할 기회를 가져보려는 서사까지도 이해가 되기도 했다.
글을 쓰고 있는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작가 산실의 고통스런 무게가 너무나 느껴지더라는.
무튼 들여다 본 "맨 끝줄 소년"에서 최민식의 후속작 없는 작가로서 "허문오" 교수 역할이나
"이 강"이라는 최현욱의 재능이 뛰어난 학생으로서의 존재감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대학시절 이미 유명작가가 되어버린 "김수훈"에게 당한 모멸감을 평생 안고 이고 지고 걸어가며
스스로 존재감을 입증못한 자괴감에 시달린 나머지 어느 날 불쑥 나타난 천재라 여겨지던 학생에게 시선을 돌린 결핍의 끝판왕과 그를 농락하는 학생.
스토리 대미는 결국 6회를 끝난 지금도 인간 본성과 과욕, 복수심은 어디까지가 한계인가를 처절하게 보여준다.
암튼 "맨 끝줄"이라는 공간은 그 자리에 앉아 본 사람은 알 수 있겠지만 단순한 자리를 넘어
관찰자와 아웃사이더의 이중적 위치를 상징한다고 보자면 전지적 관찰자의 시선을 즐길 수 있는 맨 끝줄은
교실 안의 모든 사람과 상황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자리다.
최현욱은 이 자리에서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그들의 비밀과 결핍을 포착하여 자신의 글로 재창조하면서
소외된 자와 경계인의 간극을 적당히 버무리면서 자신의 삶을 이어간다.
그 결과는 결국 파국을 불러 일으키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소년은 현실에 깊이 발을 담그기 보다 한 발짝 물러서서 타인의 삶을 흔드는 경계인의 정체성을 가진 후
현실에서는 힘이 없는 약자이지만 맨 끝줄에서 훔쳐본 타인의 삶을 조종하고 재단함으로써
정신적 우위를 점하는 권력의 공간을 즐긴다....우연을 가장한 친구의 가정 침입 또한 그러하다.
한때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았거나 혹은 작가적 성취를 갈망하지만 현재는 슬럼프와 번아웃에 빠진 교수이자
기성 작가로서 "허문오" 교수의 열등감은 맨 끝줄 소년 "이 강"을 향해 구체적이고 입체적이며 찌질하면서도 파괴적인 방식으로 표출되지만
그 스스로는 윤리의식을 버린 채 정당하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심리적 밀당을 통해 또 교수를 좌지우지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가진 교수는 일단 훈계를 가장하여 소년을 깎아내리면서
첫 눈에 알아본 소년의 천재성에 브레이크, 딴지를 걸며 멘토라는 이름하에 소년의 글을 혹평하거나
서사적 결함을 과도하게 지적하며 지배력을 행사하면서 일종의 대리만족과 집착이
도를 넘고 선을 넘어 자신의 욕망을 소년에게 투사하며 소년을 자신의 창작 대행자로 삼는 것이다.
결국 당당하지 못한 작가적 신념 따위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글도둑에 대한 죄의식 따원 없다는 듯이
자신의 작품으로 둔갑시키고자는 열망과 열패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기도 하는.
와중에 소년은 철두철미하게 계산된 방법으로 어른들의 내면에 깔린 열등감과 작가적 허영심을 귀신같이 포착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복수심을 기반으로한 창작 놀이터이자 방패로 이용한다.
이를테면 교수가 자신의 글을 읽으며 대리 배설적 쾌감을 느낀다는 것을 잘 아는 관계로 교수가 원하는
자극적이고 금기시 되는 소재들을 의도적으로 글에 흘리며 자신을 절대 밀어내지 못하도록 절묘하게 중독시킨다.
더불어 소년은 타인의 삶을 망가뜨릴 수도 있는 위험한 관찰과 창작을 이어가면서 한편으로는
"교수님이 피드백을 주셨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쓴 것" 이라는 명분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장착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도덕적 책임감과 윤리적 부담을 교수에게 전가하고 그를 공범으로 만드는 묘수를 사용한다.
겉으로는 가르침이 필요하다면서 순종적인 모습을 취하지만 실제로는 교수가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 하도록 안달나게 만드는 수법.
결국 주객이 전도되어 소년이 교수를 통제하며 관계 역전을 시켜버리는 고단수의 방법이 소년의 힘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저절로 창작에 굶주린 노련한 열등감의 교수가 젊고 날 것의 소년이 가진 재능을 통제하려다
오히려 재능이 파놓은 "이야기, 교수가 늘 말하던 스토리의 덫"에 걸려 파멸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서늘하고도 치졸하며 잔인한 심리 스릴러 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모든 것으로 부터 배제된채 이혼을 당하고 소년의 농간에 절대적으로 함몰당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작품이라는 미명하에 탐심을 지닌채 탄생하길 고대하는
작가적 인간의 본성은 정말이지 처절하기 까지 하다.
그리고 끝까지 소년에게 농락당하는 삶을 거머쥔 채로 초라한 서점의 주인으로 생존을 영위하나 하였더니
그것도 참, 다시 찾아든 소년의 발길은 또다른 요구를 갈망한다....글을 쓰고 싶은 소재가 생겼다는데?
어떤 소재인지는 안봐도 뻔한, 참으로 잔인한 소년의 심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렇다.
예로부터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했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혹은 받아들인 자의 의미 부여된 말에 상채기를 입히면
그 또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을 보여준 "맨 끝줄 소년"
한편으로는 어쩌면 세상사에서 맞물리는 모든 상황은 각자의 입장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이해 못할 일은 없겠다 싶기도 하다.
허나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후의 선이라는 것, 그래도 사람이니까로 이해될, 이해받을 경계를 구분지을
현타는 어디까지이냐의 문제이기도 하겠고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은 그야말로 그 말을 듣게 된 상대에게
인간적인 모멸감과 적개심만 불태울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던 "맨 끝줄 소년"
아마도 무엇이던지 간에 사람이라면 "욕망과 열등감"......누구나 가슴 속에 지니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인간에 대한 기대치 하락을 접하는 순간 온 몸으로 느껴야 했을 상상이하의 절망감은 또다른 적개심을 불러 일으킬 뿐.
그로 인한 질투심과 좌절할 분노의 끝간데 모를 폭주와 초조함이 엉켜버린 추악한 인간 군단들.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존재할 그런 인간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만서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던 "맨 끝줄 소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내심을 발휘하여 드디어 마무리를 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굴레, 인간이란 도대체 어디까지 이해되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많았던....
첫댓글 인간을 어디까지 이해 할 수 있을까? 스스로도 감당 안되는 순간이 있는 존재들이~!
진짜
가장 못 믿을 인간이라는 생각이
무척 많이 들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