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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나의 변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왜냐면, 처음부터 끝까지 너는 나의 사랑이니까.
너는 나의 사랑이다 (친구의 고백 번외)
*
훌쩍 떠난지 벌써 7년이다.
그 동안, 나에게 많은 일이 있었다. 3년의 고등학교 유학, 4년동안의 지긋지긋한 생활고와 함께 한 타지에서의 대학 생활, 그리고 그 산전수전 끝에 얻게 된 작은 회사의 직장. 이 타지에서, 법을 배운 덕에 이리저리 내가 쓸모가 많았는지, 법률 자문이라던가.. 통역과 번역에 관한 일은 모두 내가 맡고 있다. 처음인데도 이렇게 잘 대해주는데, 내가 마다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지..
그 7년동안, 난 유약한 모습이라곤 겉모습 빼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질색하던 담배를 한두 개피씩 피우기 시작했고, 더 강해졌고, 더 우악스러워졌달까. 사회생활이랍시고 술도 엄청나게 마셨고, 미친듯이 공부도 했고, 이 넓은 땅에서 조금이라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또 발버둥쳤다.
그렇게, 7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늦가을이 초겨울로 바뀔때 쯤, 난 첫 월급을 탔다. 첫 월급에 신이 나서 할머니 선물을 고르고, 가족들 선물을 고르고... 그러다보니, 네가 생각이 났다.
7년 전에, 굳은 얼굴로 나를 보내주던,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애써 웃으려고 노력하며 손을 흔들며 잘 다녀오라고,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보고싶을 거라고, 그렇게 말하던 네가 생각이 났다. 민도현, 넌 얼마나 변했을까. 키는 나랑 비슷했는데, 넌 잘 생겼으니까 더 멋있어 졌겠지. 그 땐, 헤어질 때의 우린 중학교를 갓 졸업한 젖비린내가 아직도 나는 어린아이들이었으니까. 7년이 지난 지금, 스물 넷이 되어버린 지금, 볼품없이 말라버리고 힘든 삶에 찌들어버린 나와는 달리, 너는 더 멋있어져 있겠지. 키도 더 크고, 대학도 졸업했을 거고. 아, 아니. 군대를 갔다 왔다면 복학을 했을 수도 있나. 아직 대학생일 수도 있겠구나.
그러고 보니, 네가 보고싶다. 한참 생각을 하면서, 난 너를 위해 다이어리와 네가 쓰던 향수를 골랐다.
*
참 오랜만에 오는 한국땅이다. 이 곳에는 우리 가족이 있고, 그리고 네가 있다. 언제나 항상, 나를 기다려줄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던 네가, 여기에 있다. 늦가을이어서인가, 쌀쌀한 바람이 내 몸을 휘감았다. 추운건 딱 질색이었던 내가, 이게 시원하다고 느끼는 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변했나보다. 공중 전화로 먼저 아빠께 전화를 드렸다. 돌아왔다고- 아빠가 그렇게 사랑하는 딸이 돌아왔다고. 7년 동안 전화로밖에 연락 안하던 딸이 갑자기 돌아온 게 놀라셨는지, 아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고생했다, 한 마디가 내 가슴을 찡하게 했다. 그동안, 내 대학 4년간 학비도, 무엇도 도움을 주지 못했던 게 걸리시는지, 얼른 집에 와, 라는 말 한마디만 하시곤, 끊으셨다.
그럼 이제, 네게 전화를 해볼까. 7년이 지났지만, 7년 동안 여지껏 한 번도 눌러보지 않았지만, 기억을 더듬어 하나 하나 꾹꾹 너의 번호를 눌렀다. 하, 7년이 지나도 네 번호는 그대로다. 컬러링도, 아무것도 없는 네 신호음이 나를 기다리게 만들었고, 몇 번 울려도 들리지 않는 네 목소리에 난 전화를 끊으려고 수화기를 귀에서 떼었다. 그러는 찰나,
- 여보세요.
기적적으로, 너의 목소리가 들렸다. 굵직해진, 하지만 어딘가 아직 어렸을 때의 목소리가 남아있는, 그런 너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눈물이 나오려 했다.
".... 야."
- ...... 누구세요.
"민도현 핸드폰 아니에요?"
떨리는 마음과, 떨리는 손을 참으며, 너의 이름을 말했다. 민도현.
- ...... 맞는데. 누구세요.
그래, 너였다. 아직도 번호를 바꾸지 않고, 나를 기다릴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던, 너였다. 민도현.
"....흠... 누군지 맞춰봐요."
뜬금없이 꺼낸 나의 한마디에 너도 적잖게 당황을 했는지, 멈칫 하며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전화가 끊어져 버렸나, 하고 공중전화를 보자, 아직 신호가 끊겨져있지 않은 걸 보니 한참이나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너는, 내 목소리까지 잊어버린 거니. 서운해질 찰나, 멍- 한 듯한 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 다현..."
"...... 맞췄네. 나, 돌아왔어."
그렇게, 너에게 말했다. 내가, 너를 보고싶어했넌 내가 돌아왔다고. 네가 보고 싶어서, 네가 있는 이 한국 땅에 돌아왔다고.
*
집에 잠깐 들러 짐을 놓고 나왔다. 내가 자주 가던 카페로 한달음에 향했다. 성큼성큼,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 이렇게도 즐거웠던 적이 있었을까. 9년 전, 그러니까 내가 열 다섯 살 때의 겨울에, 중학교 1학년을 갓 마치고 긴긴 겨울방학동안 너와 함께 홍대의 그 카페에 자주 갔었던 기억이 난다. 무슨 카페냐며, 돈만 많이 나가지. 툴툴 대던 너는, 이제는 대학을 졸업한 아저씨가 되었겠네.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아, 군대를 갔다가 복학을 했을 수도 있지. 자꾸 잊어버리네. 네 생각을 할 때만큼은 언제나 내 얼굴은 맑음이다.
딸랑. 역시나 변하지 않은 그 종소리가 날 반겼다. 제법 추워진 밖의 날씨와는 달리 언제나 따뜻함을 머금고 있는 이 단골인 카페가 너무 좋다. 자리를 잡으려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곧이어 딸랑, 하고 종소리가 다시 울렸다. 뒤를 돌아봤다. 그 곳엔, 이미 나보다도 훌쩍 더 커버린 네가, 민도현이, 서 있었다.
"민도현..?"
"......"
줄곧 나를 등지고 두리번거리던 네가, 행동을 멈추었다. 서서히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는 너에게, 난 한껏 미소를 지었다. 나의 친구, 그리고, 그리고... 나의 사랑. 네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 크지도 않은 눈이 동그래진다. 내가 많이 변한 건지, 아니면 네가 나를 찾아서인지.
"다현아."
목소리, 너의 낮은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른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네가, 손을 뻗어 나를 안아왔다. 사람이 많다며, 뭐냐며 너를 한 대 때려버렸다. 하하, 실없이 웃어버리는 너 때문에, 주변사람들의 시선이건 술렁이는 목소리들이건 모두 생각할 겨를따위 없었다. 더욱 꽉 안아오는 너 때문에, 나도 모르게 너의 등에 팔을 둘렀다.
"반가워- 정말, 오랜만이야."
7년만이었다. 너에게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너의 품에서 느껴져오는 따뜻함과, 살며시 느껴져오는 네가 쓰던 향수 냄새. 너에게는 항상 이 향기가 났었지. 네가, 너무나도 보고싶었다.
*
선물을 주자, 뭘 이런 걸 아직도 생각하고 있냐는 너의 표정이 보기 좋았다.
그래, 알고 있었다. 그 향수, 사실은 내가 좋아하는 향이라는 걸.
그렇게 보면, 어떻게 보면, 너와의 추억들도 참 많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무언가 맘이 맞았었는지 항상 뭐든지 같이 하곤 했다. 언제나 내가 가는 곳엔 네가 왔고, 네가 가는 곳엔 내가 있었다. 멋모르고 다니던 사춘기 때도, 너와 함께 학교가 끝난 후부터 밤 늦게까지 학원을 제끼고 홍대며 이대며 할 것 없이 교복을 입고 돌아다녔었고, 카페에 앉아서 달다 못해 쓰기까지 한 카페모카를 마셨고, 공부도 같이, 노는 것도 같이. 언제나 너와 나는 둘이었다. 국어책에 단골로 등장하는 철수와 영희처럼, 그렇게.
하지만, 맞추는 쪽은 언제나 너였다. 지금 네가 마시는 커피도 내 입맛에 맞춘 거고, 네가 계속 쓰는 향수도 내가 좋아한다는 한 마디에 쓰기 시작한 거였고, 내가 본 영화, 내가 본 소설, 모두 나에게 맞추기 위해 네가 노력한 것이라는 걸, 난 알고있다. 어쩌면, 네가 날 언제나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내가 너무 안심했을지도. 내가 너무, 널 믿어버렸는지도.
아니면, 내가 너무 소심한건지도. 그것도 아니면, 내가 나쁜 사람일지도.
여자친구는, 이라는 나의 물음에, 너는 무슨 여자친구냐, 복학생이. 내 공부 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란다. 군대는 갔다 온 모양이지? 라고 다시 묻자, 이 나이에 군대 안가면 욕먹어. 라는 짧은 대답이 또다시 온다. 주거니 받거니. 나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너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주고 받기를 계속했다. 뭔가, 지루해졌다. 하품을 하면서, 너에게 시끌벅적한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넌 아무 말없이 내 손을 잡고, 카페를 나왔다.
그리고, 네가 날 데리고 온 곳은, 클럽 문 앞이었다. 언젠가, 밤늦게 돌아다니다 쿵쿵거리는 음악소리에 나도 모르게 리듬을 맞추어 흥얼흥얼거렸던, 그 곳이었다. 넌, 언제 이런 것까지 다 기억을 한 걸까. 나도 모르게 혼자서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가 여자를 이런 곳으로 데리고 올 줄이야. 난 좀 더 조용한 바 같은 곳을 갈 줄 알았는데. 하여간, 민도현, 너는. 날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하- 너 여기 아직도 기억해?"
"너 지나갈 때마다 항상 이 곳 음악 좋아했으니까. 들어가자."
넌 나의 손목을 잡고 안으로 끌듯이 들어갔다. 뭔가, 느낌이 달랐다. 다른 곳에서 갔던 클럽과는 또 다른 느낌이랄까. 그래도 역시나, 시끌벅적하고, 사람 많고, 가만히 있어도 느껴지는 열기는 여느 클럽과 다를 바가 없었다. 느낌 좋다. 자리를 잡고 앉아 리듬을 타는 사람들, 춤을 추는 사람들을 모두 구경하고 있는데, 네 시선이 느껴진다. 은근히 너를 놀리고 싶어져 나갔다 올게, 라고 한 마디 던져놓고는 유유히 스테이지로 나왔다. 혼자서 음악 타고, 리듬 타고. 이게 얼마만에 느껴보는 여유인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홀로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있을 찰나, 남자들이 다가온다. 그리고, 너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아, 좋다, 이런 기분. 왠지, 애인한테 감시당하고 있는 느낌이잖아. 너에게 여유로운 미소를 보냈다.
"같이 놀죠."
"......"
"혼자 왔죠?"
내 귓가로 속삭이듯이 말하는 끈적이는 재수없는 목소리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난 그 남자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혼자 왔으면요?"
"......"
"남자친구랑 같이 왔어요."
너, 뭐야- 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그 남자들. 내가 보기엔 너네가 날 더 당황스럽게 해.
"그리고."
"..."
"... 설령 나 혼자 왔어도,"
"..."
"너 같은 놈이랑은, 죽어도 같이 못 있겠어. 너무 재수없거든."
유유히, 그 녀석들의 바리케이트를 빠져나오는 나를 보며, 너의 표정은 굳어있다. 민도현, 표정 풀어. 그러자 네가 나에게 타박 한 마디를 툭, 하고 내던진다. 너의 그 말과, 주위에서 흘러오는 담배향이 날 아찔하게 했다. 아, 참. 넌 아직 내가 담배를 싫어하는 줄 알지. 난 잠시 나갔다 오겠다며 너에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주머니 속에 뒤적뒤적. 다행히 바지 속에 넣어둔 담배가 있었다. 난 익숙하게, 담배 끝자락에 불을 붙였다. 후- 하고 하얗게 내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입김인지, 담배 연기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하늘을 보니, 참 까맣다. 몇 시지, 하고 시계를 보니 벌써 세 시가 다 되어간다. 그 때였다.
"이다현."
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내 외투와 가방을 든 채, 네가 서 있었다. 대체, 뭐하는 거야- 라는 듯한 눈초리로, 너는 나를 그렇게 바라보았다. 왜 나왔어, 황급히 담배불을 비벼 끄며 일어서는 나의 말에, 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어디론가로 끌고 갔다. 차가운 나무 벤치에 몸을 싣게 만든 너는, 나에게 묻는다. 왜냐고. 왜, 그 백해무익한 것을 시작하게 된 거냐고. 언제부터냐고, 그리고, 힘들었냐고.
난, 그 날 처음 너에게 기대어 눈물을 보였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의지하고 싶었는지도, 어쩌면, 어쩌면... 너에게 내 강한 모습만이 아닌, 약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나의 고도의 수였는지도. 아니면, 어쩌면. 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어서 그랬는지도.
그래, 이게 맞다.
너에게, 나의 변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왜냐면, 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사랑이니까.
*
한 달. 이제 돌아가야 할 때가 왔다.
사실은 2주 전부터 왜 돌아오지 않냐는, 회사의 전화가 쇄도했다. 나는 일이 있다며 차일 피일 미뤘다. 사실은, 너를 보기 위해서였다. 민도현, 너 하나를 보기 위해서. 나는 네가 갑자기 너무 보고싶어졌다. 너를 조금만 더 지나면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다음주 수요일. 이제 일 주일 남짓 남은 시간, 너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이것밖에 없다.
"민도현."
- 어, 왜.
여느 때나 다름없이 내 전화를 받아들이는 네가, 오늘따라 너무나도 그립다.
"나와, 술 마시자."
무슨일이냐고 되묻는 네가, 밉다. 그냥 군말없이 나와주면 될 것을- 이라고 타박하고 싶었지만, 얼굴을 보고 얘기해야겠다며 널 불러내었다. 그렇게 네 집앞에서 기다리기를 10분, 네가 한달음에 달려내려왔다. 단번에 널 안고 울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우리는 '친구' 니까.
호프집으로 들어가 안주도 없이 맥주만 엄청나게 시키고는, 난 꼴깍꼴깍, 잘도 술을 마셔댔다. 맥주가 이렇게 약한 술이었나. 아무리 마셔도 취하질 않는 내가, 정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멀쩡한 내가 싫어졌다. 조금이라도 취하지. 조금이라도 흐트러져야지. 아무리 하려고 해도 아무것도 되지 않는, 오늘은 정말 무언가 마가 낀 날이다. 눈시울이 붉어지려는지, 눈이 자꾸 아파온다. 내 앞에 보이는 네가 흐릿해지지 않게 난 너에게 말을 걸었다. 나, 다음주 수요일에 떠난다고.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고. 7년 전에 떠났던 그때보다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다고.
한숨을 쉰다. 네가, 네 목을 타고 네 입에서 한숨이 터져나온다. 그만큼, 내 맘도 아파온다.
그리고, 네가 말한다. 딱 한 번만 더 보자고. 그게, 이번주 토요일이라고. 난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운했다. 그렇게 말하는 너에게. 하지만 날 바라보는 네 눈빛이 너무나도 슬퍼보였기에, 무언가 말하지 못하는 아픔을 담고 있는 것 같았기에,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너와 함께 맥주만 연신 들이켰다.
*
너와 만나기로 한 오늘까지, 난 너에게 연락 한 번 하지 않았고, 너도 연락 한 번 오지 않았다. 헤어짐의 준비랄까, 사실 우리에겐 그런 것도 있지 않았는데. 그동안 널 만날 때마다 질끈 동여맸던 내 와인 색의 머리를 풀었다. 한 달 새에 어느 정도 또 자란 것 같았다. 머리를 풀고, 한껏 단장을 했다. 마지막 모습, 더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너에게, 조금이나마 더 예쁜 나로 기억되고 싶어서.
너의 집 앞에 다다라, 전화를 걸었다. 세 번의 신호음이 채 울리기도 전에 네가 전화를 받았다. 지금 내려간다고. 정말, 2분도 채 안 되어 네가 내려왔다. 나를 마지막으로 애타게 바라보는 너의 눈빛이, 내 마음을 또 한번 울컥하게 한다. 심장이 욱신거린다는 느낌이 이런 느낌일까. 마음이 찡- 한게, 너의 눈빛과 내 손을 잡아 너의 코트 속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넣는 네 손이 더욱 내 마음을 아리게 한다.
너에게 나는, 도대체 뭘까.
주위가 어둑어둑해지고, 가로등 불빛이 하나 둘 켜질 무렵, 난 너의 코트에서 슬며시 손을 빼내어 내 코트 주머니로 가져갔다. 이미 겨울로 접어든 날씨는 더없이 추웠다. 우리 사이에는 서먹한 기운만이 감돌았고, 어떻게든 무마시키려는 나는 아, 배고파. 라는 실없는 한마디만 툭 내뱉었다.
그때, 네 목소리가 울렸다.
"이다현. 나, 할 말 있는데."
언제 멈춰섰는지, 너의 목소리가 조금은 멀게 느껴진다. 난 그 자리에서 멈춰서 너를 돌아보려 했지만, 돌아보지 말라는 너의 한 마디가 날 가만히 있게 했다. 네가 말한다. 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너의 옆에 있었으면 한다고. 비록, 비록 친구로 내 옆에 남는 너지만,
너에게, 난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이라고.
눈물이 난다. 웃음도 나온다. 난 정말 드라마 여주인공이 말하는 '기뻐서 우는' 장면이라는 걸 연출하고 있다. 너의 말에 웃음이 난다. 눈물도 난다. 너에게 난, 이런 존재다. 기뻐서도 울 수 있는, 그런 존재.
네가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느껴진다. 조금씩, 가까워질 무렵, 내가 너에게 되물었다. 그럼 내가 너에게, 사랑 말고, 나는 너에게 무슨 존재냐고.
그리고, 네가 말한다. 난, 그냥 너에게 '나'라고. 평생토록 그 자리에서 기억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라고.
그리고 한 걸음, 두 걸음. 다섯 걸음이나 더 다가와 나와의 간격을 좁힌 너는, 뒤에서 날 살며시 안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는 나에게 사랑인 것을, 나도, 너도. 지금에서야 알았다. 16년이라는, 그 긴 긴 세월동안, 서로 모른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서로 알고 있었는지. 너의 손을 꼭 잡았다. 지금에서야 알 것 같았다. 너에게 난,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나에게 넌,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이라고.
네가 나에게 입을 맞춰온다. 입술을 뗀 너에게, 나는 말했다.
"밥... 먹으러 가자."
그리고, 너에게 얼굴을 가까이 한 난 다시 너에게 말한다.
"비싼거, 먹어도 되지?"
그리고 넌, 웃으며 답한다.
"... 얼마든지."
웃음을 띄는 너의 입술에, 난 다시 입을 맞췄다. 넌, 이제 내 사랑이야. 16년간의 우정은, 너와 나의 사랑을 위한 에피타이저였을 뿐이야. 이제, 너와 나의 메인은 시작이야.
그리고 아마, 메인은 평생 갈지도 모르겠어.
다음날, 우리는 다시 만났다. 너와 난, 멋진 영화 한 편과 멋들어진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식사를 즐겼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시작한다.
"야, 이건 너무하잖아-"
"비싼 거 먹어도 된다며!"
사소한 다툼으로.
完
*
아, 번외 막 또 막 ... 써버렸습니다.
오늘 시험 끝났어요! 대감동. 정말 이것저것 미친듯이 막 써제끼는 통에 답이 제대로 나왔으려나 의문이지만;
어쨌든 절 그렇게 괴롭히던 여덟 과목도 무사히 마쳤습니다. 아무래도, 유학생활은 힘들어요.
어이쿠, 그리고 친구의 고백 저 허접한 단편을 재밌게 봐주시고 코멘트까지 달아주신 분들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ㅠㅠ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이 번외는 선물입니다. 이것도 무지하게, 아주 심하게 날려쓴 티가 나지만;
그래도 재밌게 봐주세요^^ - 유리
첫댓글 오오!!해피해피..난 새드는 시러 해피가 조아조아!!..ㅋㅋ 담소설도 기대할게여
감사해요^^
ㅠ_ㅠ 비싼거 먹지마~! 니가 돈낼꺼 아니면....ㅠ_ㅠ ㅎㅎ 헛소리 좀 했습니다~
재미있어요~ 건필하시와요~
어이쿠야~ ㅋㅋ 다현이가 좀 억지를 많이 부리는 캐릭이죠.
감사합니다! 재밌게 봐주셨다니 다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