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청와대 비서관 인사에서 ’첫 여성 춘추관장’인 김 현(金 玄) 보도지원비서관이 취임 2년3개월 만에 물러나고, 그 후임에 역시 여성인 서영교(徐瑛敎)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이 내정된 것.
두 사람 모두 80년대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전위에 섰던 학생운동권 리더 출신이어서 여성 386끼리 자리를 주고 받는 모양새가 됐다.
학번을 기준으로 하는 운동권내 서열로 보면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83학번인 서 내정자가 한양대 사학과 84학번인 김 비서관 보다 한 해 위다.
선배에게 바통을 넘긴 김 비서관에 대해서는 개방형 브리핑제 실시 등 과도기 춘추관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새로운 취재관행 정착에 기여했다는 게 청와대 내부의 대체적인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김 비서관 자신은 지난 대선 때부터 대(對) 언론관계의 최전선에서 노 대통령과 호흡을 함께해온 탓인지 만감이 교차하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언론이란 ’거울’을 거치면서 국민에게 정확히 전달되지 못했다며 대통령과 언론의 ’가교’로서 일정 부분 책임을 느끼는 듯 했다.
그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 4년3개월의 긴 시간 동안 밤낮 없이 청와대 기자들과 함께 지내면서도 자주 교감의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향후 거취에 대해 김 비서관은 “당분간 쉬면서 고민해볼 것”이라면서도 “참여정부의 정신이 계승되기 위해서는 이번 대선이 중요하다”고 말해 정권재창출에 어떻게든 기여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임채정(林采正) 국회의장과 이해찬(李海瓚) 전 총리 등 88년 당시 재야파들이 결성한 ’평화민주통일연구회’(평민연)의 청년그룹 일원으로 참여했다. 이런 인연 등으로 그는 여권의 잠재적 대권후보인 ’이해찬 사람’으로 분류된다.
치밀한 일처리에 공사(公私) 구분이 뚜렷하고 한 번 옳다 생각하면 물러섬이 없는 강단도 이 전 총리와 닮은 꼴이다.
춘추관 관리 외에 대통령 근접취재와 해외순방 일정을 관장해온 김 비서관은 노 대통령이 지향하는 ’열린 경호’ 정신에 맞는 대(對) 언론홍보를 위해, 경호를 우선시하는 경호 요원들과 ’마찰’도 피하지 않아 참여정부 초기 “김 현이 누구냐”라는 말이 경호실에 돌기도 했다.
김 비서관이 경호실이나 국정홍보처 소속 현장 홍보팀에게 깐깐한 시어머니 역할을 했다면 서 내정자는 친정어머니 같은 넉넉함으로 참여정부 청와대의 ’연착륙’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경북 상주 출신으로 86년 이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그는 87년 구속청년학생협의회 청년여성대표와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간사로 활동했다.
이후 서울 강북지역에서 지역활동을 하다 2000년 민주당 창당 때 중앙정치무대로 입성했으며 지난 대선 때 선대위 여성본부 부국장을 거쳐 민주당과 우리당에서 부대변인으로 활약해왔다.
선거 연패로 우리당의 의장이 자고 나면 바뀌는 혼란 속에서도 마이크를 놓지 않을 정도로 메시지 전달 능력이 탁월하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 특히 2005년 중진 의원 등 쟁쟁한 선배 정치인들을 제치고 서울시당 선거에서 3위에 오르는 파란을 연출하는 등 서글서글한 인상에 친화력을 겸비한 점은 임기말 ’외부인’이 춘추관장으로 낙점되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는 후문이다.
서울대 공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운동권 동기인 참여연대의 장유식 협동사무처장이 부군이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참여정부의 성과가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는 데 미력이나마 기여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첫댓글 챙겨줄 자리가 아직도 남아 있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