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생존자입니다]
서울 용화여고·청주 충북여중·경남 함양고
스쿨미투 생존자 3인의 이야기
왜 우리는 학내 성폭력을 고발했나
“목소리 낼 수 있다면 해야 한다고 생각...
망치고 싶지 않아 여기까지 왔다”
2018년 한국 사회를 휩쓴 ‘스쿨미투’ 후 3년이 흘렀다. 용감하게 목소리를 낸 여학생들에겐 괴로운 시간이었다. 자신들이 고발
한 교사들에게 2차 가해를 겪었고, 졸업할 때까지 다른 학생들, 교사들의 비난에 시달렸다. 제대로 된 수사나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역도 학교도 다르지만, 여성신문이 만난 세 생존자의 경험담은 거의 비슷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학교가 10대들에게
안전한 공간인가를 다시 묻게 한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스쿨미투 고발운동 현황 ⓒ여성신문
2018년 스쿨미투의 도화선은 서울 용화여고였다. 2018년 3월 용화여고 졸업생으로 구성된 ‘용화여고 성폭력뿌리뽑기위원
회’가 SNS로 학내 성폭력 피해 제보를 받으면서 고발이 시작됐다. 재학생들이 교실 창문에 ‘미투(MeToo)’ ‘위드유(With You)’,
‘혼자가 아니야’, ‘지켜줄게’ 등 포스트잇을 붙여 호응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많은 시민들도 학생들의 용감한 행동을 응원했다.
졸업생 강한나(가명) 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용화여고 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가해 교사를 상대로 형사 재판
을 이어가고 있다.
가해교사 주모씨는 강씨가 고2 때 면담 중 긴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몸을 만졌다. 교복 재킷을 들치며 “네 속이 궁금해”라고
한 적도 있다.
“처음에는 제가 너무 예민한가 싶었는데, 비슷한 일을 겪은 학생들이 많다는 걸 알았어요. ‘나중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 돼서 이
사람의 잘못을 꼬집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2018년 서지현 검사, 할리우드 배우들의 미투 운동을 보면서, 내게 영향력이 있지
않더라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동창들이 용화여고 내 성폭력 설문조사를 벌인다는 소식을 들
었어요. 기쁜 마음으로 합류했죠. 너무 당연한 일, 너무 기다려 왔던 일이었어요.”
경남 함양고에서는 2018년 6월 여학생들이 교사들의 성차별·성희롱 발언을 폭로하고, 공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앞서
그해 5월, 여성주의 문화단체 ‘문화기획달’이 함양고 일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교육과 인권 특강을 했다. 이후 학교 여자 화장
실에 성차별을 비판하는 내용의 쪽지가 붙었다. 이를 안 일부 남학생들이 SNS와 학교에서 ‘X같은 페미들’ 등 여성혐오적 비방
을 시작했고, 여학생들이 이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스쿨미투 고발이 나왔다.
당시 고발에 앞장섰던 3학년 학생들 중, 반장이던 양모 씨의 얘기를 들었다. “스쿨미투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운동의 중심에서
학생들을 대변하고 학교와 대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교육청 조사, 여러 언론 취재에도 적극적으로 응하면서 외부에 학교의 현
실을 알렸다.
“학내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우리가 아니면 누가 알릴 수 있을까? 그래서 말하기 시작했어요. 학내 분위기는 아주 적대적이었어
요. ‘함양고 스쿨미투’, ‘학내 갈등 심각’ 기사가 나오면서 더 그랬죠. 일부 선생님들은 대놓고 우리 반을 ‘메갈반’, ‘문제반’이라고
불렀어요. 그래도 같은 반 남학생들은 우리 여학생들과 페미니즘 관련 책도 같이 읽으면서 응원했어요. 담임 선생님은 저희를
따로 불러서 ‘너희는 옳은 일을 하고 바꿔나가는데, 조용히 있으라고 해야 하는 게 내 입장이라 정말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이
셨어요.”
충북 청주의 충북여중 학생들도 2018년 9월 SNS에서 직접 성폭력 피해 제보를 받아 공론화했다. 학교 축제에서 외부인의 불법
촬영에 학교가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학생들이 하나둘 고질적인 학내 성희롱·성추행 문제를 알렸다.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키워드 상위권에 연달아 오를 정도로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
그때 다른 학생들과 함께 SNS 계정을 관리했고, 공론화를 주도했으며, 가해교사들을 상대로 민형사 재판을 이어가고 있는 졸
업생 A씨는 “망치고 싶지 않아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저희는 하고 싶은 게 많았어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함께하니까 힘이 났죠. 학교 측의 압력이 거세지자 점점
와해됐어요. 그때부터 제가 총대를 멨어요. 망치고 싶지 않았어요. 이번에 망하면 다음은 없을 것 같았어요. 누군가 총대를 메야
만, 위험 부담을 져야만 폭력을 고발할 수 있어서는 안 되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계속하고 있어요.”
출처 : 여성신문(2021.7.4.)
이세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