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댕하는 스피커소리에 강아지(막내)가 소스라쳐 이리저리 날뛰며 어쩔줄을 몰라한다.
저 놈(?)은 태어나서부터는 줄곧 관리사무소 방송스피커 소리만 나면 저랬다.
"오늘은 투표하는 날입니다...... 주민등록증, 도장을 꼭 가지시고...."
아하 그렇구나 오늘은 투표하는 날이구나!
가슴벅찬 애국심과 민족애적인 감동으로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해달라는 간곡한 관리사무소장의 방송이 없을지라도
월급쟁이가 오늘처럼 느긋하게 늦잠을 즐긴 이유가 있기때문에 세수하고 나서 오늘이 왜 휴일인가에 대해서 깨닫지 않을 도리가 없을진대
관리사무소의 방송소리는 별스레 귀에 다가오지 않는다.
벌써 십수년이 흘렀나보다!
제 5공화국에서 6공화국이 출범하기까지 나는 지대한 공헌을 한 바가 있지만 자부까지는 하고싶지 않다.
정국의 격변기속에서 수많게 치러졌던 선거와 투표의 일선에서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사명감으로 묵묵히 투표업무에 종사했던 쫄병시절이 어찌 없지않았던가?
내가 했었던 일이 동서기 고유의 업무와는 무관한 덤이었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국민의 신성한 주권이 행사된다는 얄팍한 긍지로 힘든 나날들을 버텨왔던 기억이 새롭다.
TV화면을 통해서보는 투표장의 모습에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컴퓨터에서 출력한 투표인명부며, 우리집에 날아온 투표통지표에 인간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컴퓨터활자와 인쇄로만 이루어진 데서.........
예전에 투표가 시작되면 불쌍한 "동서기"들은 초비상이었다.
너댓달전부터 교육이다, 지침이다, 장소확보다, 투표위원선임이다 하면서 정치권이 공천잔치며 출사표를 다듬고 있을 때 이미 그들은 고난의 입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제일 힘들었던 일은 뭐니뭐니해도 끝없이 이어지는 "글쓰기"였다.
예비선거인명부, 선거인명부,투표통지표 교부록, 투표통지표(2장씩), 선거공보발송봉투, 부재자명부...... 이것은 공식작업이고
그외에 누락자(이거 정말 모가지가 왔다갔다하는 문제였다!)를 방지하기 위하여, 검증을 위하여, 통계를 위하여 여러명부들이 만들어진다.
한 투표구에서 선거인이 대략 2~3천명정도되는 데 이사람들의 이름(그것도 한자로)과 생년월일, 주소를 한 열번은 써야 한다.
결국 한 2~3만명의 이름을 써야하는 데 이것을 한달정도에 2~3명이(한 동사무소에 대략 너댓개의 투표구가 있어서 직원들은 1개투표구당 2~3명이 분담한다)
써대야 하니..!
한번에 같은 명부를 4부씩 만들어야 하는 관계로 맨밑에 책받침을 깔고, 먹지를 넣어서 꾹꾹 눌러써야 했다........!
복사기가 있어도 허용되지 않고 오로지 볼펜(잉크도 안됨)으로 써야 했다.
그래서 선거 중반쯤에는 손가락(오른손 가운데손가락 안쪽 첫마디)에 피멍이 드는 건 예사였다.
그리고 보통 볼펜보다 더 부드럽고 선이 굵은 "싸인용 볼펜"이 있다는 것도 안다.(그것은 고무받침대도 있다)
지금 컴퓨터로 출력되는 명부를 보면서 슬며시 부아도 나는 건 사실이다.
그때보다 지금 공무원들이 봉급을 적게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원초적인 질시가 아니라, 하필이면 그리 어려울 때 웬 선거나 투표가 그리도 많았을까 하는 것이다.
법정 일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거의 밤 12시 넘어서까지 한달여를 고생해야만 했고, 덕분에 사무실앞 식당에서는 밤참이며 식사갖다나르기에 신이났다.
물론 그런 돈의 일부는 공금에서 지출되지만 직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게 더 많았다.
피같이 아까운 국민의 혈세를 말단 공무원들의 야근시 군것질용 간식비로 내놓을 리는 없기 때문이 아니던가?
글만 내립다 한달여 써대다 보니 얻은 것도 많다.
지금 나는 사람이름에 쓰이는 한자는 아무리 휘갈겨써도 거의 90%정도는 알아먹는 재주는 얻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한자의 일본식 약자도 제법 많이 안다♬
그 당시에는 구청이나 시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그토록 부러울 수가 없었다. 너무도.......!
물론 그들은 대체로 투표가 끝난 후 밤샘하는 개표종사원으로 투입되지만 그래도 그것은 그날 하루뿐이 아니던가?
어서 빽(?)써서 구청직원이나 시청공무원 해야지!하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도 서글픈 건! 두가지 였는 데...........
하나는 그 고생끝에 고비라고 할 수 있는 투표통지표 교부였다.
밤을새워 작성하고, 구청에가서 구청장 직인을 찍어야 하는 데, 워낙 물량이 많다보니 제대로 찍는다기 보다 인주를 묻히는 정도로 빠른손으로 작업을 해도 늘 밤을 새워야 했다.
그것보다는 각 가정에 교부하는 일이었다.
일일이 집에 찾아가 도장을 받고 통지표를 발부하는 일이었는 데, 대략 3~4일동안 약 1인당 500가구 정도를 방문해야 하는,
정말 공무원으로서의 자부심은 커녕 극단적인 자괴감으로 몸서리치는 일이었다.
좁은 투표구 지역임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계층이 그리도 다양하고 격차가 큰 줄 몰랐고,
상상도 못한 부자집과 닭살돋는 빈민가를 오가는 건 그래도 낭만에 속하고
사자같은 개가 짖어대도 얼굴 안내미는 집, 부부싸움이라도 했는 지 대꾸도 없이 박대하는 집,
투표통지표 필요없다고 심지어 쫓아내는 집, 어떤 집은 눈을 아래위로 홀기면서 뭐 따로 가지고 온 거 없는 가 기대하는 눈치도 드물지 않았고.....
(그 옛적에는 투표통지표 교부는 바로 여당의 표 매수의 기회였다고 하였다더라)
이것은 그동안 제일 정치적인 시비꺼리가 많이 발생하는 부분으로서, 예의 선거운동의 여지가 있는지라 야당에서 무척이나 경계를 해서
언제부터이던가 공명선거 감시원(대개 대학생들이었다)이 따라붙기도 했는 데
글마들은 오전나절 한번 따라다녀 보다가는 정나미가 떨어져서는 무슨 핑계든지 대고는 달아나 버리기 일쑤였다.
생각해보라, 일일이 집집마다 초인종누르고, 고함지르고, 개가 튀어나오고, 계단에서 미끄러지고.... 집집마다 같은 말, 같은 용무를 반복하는 데
뭐가 재미있고 사명감이 남아있겠는 가?
이념과 현실은 항상 이렇게 먼 거리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리라!
하긴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와중에 그 옛날 잊었던 "어느 뇨자"의 집을 찾아 그녀가 아직도 시집안간 처녀라는 걸 알게 되어 잠시나마 가슴 셀레기도 했던 얘기는 전에 한번 한 적이 있다.
두번째 힘든 일은 투표당일이었다.
지금 분명히 얘기하고 싶은 건 "선거부정은 있을지 몰라도 투표부정은 결코없다!" - 결코 시비걸면 안됨!
너무도 타이트하게 짜여진 시스템(고리타분한 행정의 후진성에 비하면 너무 고급스런 표현이 아닐까?)에 따라 진행되는 투표관리는 그야말로 명경지수, 언행합일, 오차제로이어야만 했다.
만에 하나라도 하자가 있다면 그것은 곧바로 "부정선거"의 단초로 몰려 투표현장이 바로 소수 반대파(대체로 당선이 불리한 편)들에 의해 점거되고, 고발되고, 신문에 나고.....
거기다 짤리는 건 당연지사일 테고...!
실제로 투표하는 날 공무원이 후보자의 사무실로 납치되어 난리가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하지만 행정이라는 게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어서 내주변에서는 투표과정에 일어나는 부정시비는 거의 없었다는 기억이다.
여기에는 여.야 감시원들 모두가 눈에 불을켜고 지켜야 했으며 파출소 "순사"도 그날은 총을 갖고 같이 근무를 한다.
밤새워 "고스톱"을 칠 수도 있지만, 다음날 하루종일 긴장할 걸 생각하면 차라리 목욕재계하고 편히 쉬어야 함이 당연하거늘
언감생심 꿈도 못꿀일이다.
냄새나는 숙직실, 소파, 인근 가게에서
비몽사몽간에 동서기들은 밤을 새는 둥 자는 둥하고 새벽 5시에 투표구별로 종사직원들에게 비상연락 전화 때리고,
물품 챙겨놓은 것 리어카에 담아싣고(물론 형편 좋을 때는 경운기, 트럭도 있었다)
투표구별로 위촉된 투표위원들과 함께 투표소에 나가 투표용지를 확인하고, 봉인하고, 선서하고..................
대체로 겨울이라 날이 채 밝기도 전인 7시정각!
투표 시작할 때면 꼭 문앞에 줄 서있는 무리들에서 시비가 일어난다.
제일먼저 투표하려고 꼭두새벽 5시즈음부터 지키고 있던 열성파(주로 노친네들)들이 자리다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차라리 그 어이 정겹지 아니한 풍경일런가!
하지만 낮 때 쯤이면 대체로 입후자들이 투표구를 돌면서 줄서있는 유권자들에게 의미있는 눈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투표구마다 배치되어 있는 자기편 투표위원들에게 격려를 하기도 한다.
여기서 늘상 느끼는 비애감은
비 당선권의 후보 또는 당선권에 있는 야당(그 당시의)후보측 들은 한결같이 "부정투표가 횡행하고 있다"라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하면서
은근히 유권자들을 부추기거나 투표소내 분위기를 위축시키는 행동을 할 때이다.
속으로 "이 투표과정에 이르기까지 공정성유지를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고 있는 데.........."하는 심정에
성깔을 있는대로 부려보고 싶지만 요행히도 그럴 때면 항상 눈앞에 떠오른 게 와이프와 애기들 얼굴이 아니던가!
정말 인간심리 묘하다고 느낄때가 바로 요때쯤이다.
거기다 자기이름 빠졌다고 거국적인 부정선거라면서 항의하다가 집행유예중이라서 선거권이 없다는 얘기를 해주면 슬며시 꽁지를 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투표인 명부의 자기이름에 윗사람의 도장이 비스듬히 찍혀있자 대리투표했다고 난리를 치기도하고,
투표통지표에 자기이름이 틀렸다고 "무식한 동서기들이 있으니 나라가 요모양요꼴이지!"하는 소리까지 다 들을라치면
허파가 열두개라도 모자란다.
투표시간(12시간)내내 팽팽한 긴장감으로 하루를 지내다 보면 두번다시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투표가 끝날 때 쯤이면 늘상 벌어지는 풍경이 있다.
문을 닫으려는 찰나 머얼리서 고함을 지르며 투표통지표를 손에 들고 헐레벌떡 숨이 턱에 차서 달려오는 유권자(주로 아주머니들이다 묘하게도!)들이 있다.
정말 이때는 엄정하게 초를 따져야 하는 상황이기에 아주머니의 달리는 속도로 보아 지금와도 라디오 시보에 맞춰 투표소 문을 닫아야 하는 입장이 묘해질 때가 있다.
이럴 때면 재빠르게 야당측 투표위원이나, 참관인에게 눈짓으로 동의를 구하는 게 그동안 몇번의 투표에서 쌓아온 우리들의 노하우 이기도 하고
상부에서도 이같은 요령(요즘 용어로는 TIP)을 널리 전파하기도 한다.
별로 거부하는 눈치가 없으며 슬며시 문닫던 동작을 굼뜨게 하면서 아주머니의 골인을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별난 경우에는 이럴 때의 유무효성 여부를 놓고 여야 참관인간에 시비도 곧잘 일어나기도 한다.
다같이 공정하고 엄정하게 봉인된 투표함은 개표소에서 순회하는 트럭에 실어 참관인들과 함께 개표소(주로 학교강당)에 가서 인계하고 나면 그동안 몇달동안의 고생기억은 허무하게 사라지고............ 남는 게 없다!
밤새워 방송에서 떠들어대는 개표결과는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내일 날이 밝으면 선거벽보 떼러 물통과 비짜루를 들고 나서야 하기 때문에 모처럼 일찍 집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