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4일
인천-강화 간 시외버스가 없다니 몹시 의아하다.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희멀건 갈비탕(1X3 정도의 갈비 7-8개를 인천 짠 바닷물에 담군 수준. 그나마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하다) 한 그릇 먹고 나오니 800번 버스가 정류장을 벗어나 우리들 앞을 휙 지난다.
이곳에서 강화까지 운행하는 버스는 800, 700, 700-1 세 종류. 상세한 정보를 모르기에 몇 번을 타야 유리한지 모른다. 빨리 도착하는 대로 타는 수밖에.
한참을 기다리자 700번이 도착.
차에 올라 노선도를 보니, 이런 세상에 만상에 내 평생 이리 긴 노선은 처음이다.
<인천터미널-강화 간 버스로 가는 방법>으로 검색을 해보니 총 2시간이 넘게 나온 것을 보고 속으로 ‘설마’했는데, 설마가 설마가 아니라 현실인 것이다.
이렇게 긴 노선을 운전해야하는 운전수가 엄청 딱해 보인다.
차가 바로 가는지 거꾸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구르기는 구르는데 너무나 많은 서고 달리고의 반복에 짜증이 나 낯선 곳의 풍광은 아예 관심도 없고 그냥 눈을 감아버린다.
한참(약 2시간?)이 지나서 밖을 보니 <대곶면>하는 지명이 보인다.
가져간 지도에 나타나는 지명이다.
강화대교를 건너는 차가 아니라 초지대교를 지나는 차다.
강화대교든 초지대교든 강화도에 들어서면 바로 내리려고 마음을 다잡고 있던 터수라 초지대교를 지나자마자 차에서 내린다.
강화에서 인천 간 출퇴근하는 이가 있을까? 얼얼한 엉덩이가 던지는 질문이다.
초지대교 앞에서 한 차례 알바 후 황산도로 향해 걷는다.
인천에 내렸을 때 비가 내렸는데 이미 비는 그치고 따가운 태양이 뭉게구름 뒤로 나타난다.
공기가 맑다.
초지대교를 바탕으로 하는 풍광이 멋지다.
L은 사진 찍기가 바쁘다. L은 사진이 목적이고 나는 그저 시간 죽이기가 목적이다.
차츰 지도 위 지명과 실 지명 사이 간극이 줄어들고 걸음이 자연 빨라지자 L은 더욱 분주해진다. 뷰파인더를 자주 보는 만큼 나를 따라와야 할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L에게 보낼 수 있는 최대의 봉사는 눈치 채지 않게 속도를 조절하는 것.
선두5리 어판장을 지나며 긴장한다. 선두리와 사기리 사이 2개의 샛강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
선두4리. 강화나들길 표식기가 바다 쪽으로 인도한다.
제방길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표식기가 없으면 결코 들어서지 못한다.
제방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갯가 일을 위해 주민이 설치한 수도 시설이 나오는데 어떤 중년의 사내가 막 갯가 일을 끝내고 몸을 씻고 있다.
다리도 쉴 겸 잘 됐다.
이런저런 강화를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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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방 길은 여태의 길과는 차원이 다르다.
시선의 끝을 잡을 수 없을 정도. 바람도 살랑 불고 발밑으로 밟히는 잡풀들이 정겹다.
두 개의 샛강은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
분오리돈대. 마침 석양이다.
강화가 자랑하는 동막해수욕장이 붉게 물들어있다.
오늘 비록 늦게 시작했지만 한 개 구간을 끝냈다. 이제 잠자리.
돈대 아래 관광객을 상대로 음료를 파는 할머니.
-할머니, 혹 할머니 댁에 민박은 안 해요?
-안 해. 전에는 했는데 요즘엔 안 해. 방 8개를 그대로 묵히고 있어.
-잠만 자고 가려는데 방 하나만 빌려줘요.
-아이고 내가 무서워서 안 돼, 여기는 방이 비싸고 동천 쪽으로 가. 그기는 방이 싸.
이렇게해서 왔던 길을 되짚어 함허동천 쪽으로 간다.
날이 많이 어둡다.
길가에 <복숭아 30개 만원>이란 팻말이 많다. 오늘 도보 중 10군데도 넘게 보았다.
함허동천 거의 도착쯤에 또 한 곳의 <복숭아 30개 만원>집. <복숭아 30개 만원>은 손님 발길 끌기용이고 먹을 만 한 놈은 개당 1,000원은 줘야한다.
5,000원어치 사며 민박을 물으니 왜 민박을 찾느냐며 되묻는다.
펜션은 너무 비싸 엄두가 안 난다니 대략 얼마를 잡고 있느냐고 묻는다.
약간 더듬거리며 40,000원쯤이라 답하자,
-요즘은 민박이나 펜션은 거의 비슷하죠. 성수기에는 15만원은 받는데 최하 50,000원은 줘야지.....
하며 내 눈치를 살핀다.
알고 보니 복숭아 아주머니 시집이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곧 이름도 거창한 천은재펜션으로 인도된다. 방도 깨끗하고 화장실이 좁은 것 외엔 흠이 없다.
샤워 후, 마을 입구에 있는 식당. 한 집은 장사가 끝났고 길 맞은 편 집도 영업이 끝났다며 주문을 거절하는데, 이미 앞 식당에서 약이 오른 상태라 쉽게 물러설 우리가 아니다. 홀 안쪽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을 봤기 때문. 주인장과 MOU가 체결된다.
<메뉴는 비빔밥을, 식사는 홀 안쪽에 식사를 하는 사람이 끝나는 시점을 맞출 것>. 쩝.
홀 안엔 한 팀이 아니라 두 팀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두 쌍의 중년부부. 그리고 술을 마시고 있는 두 여자.
술을 마시는 두 여자는 현재 싸우고 있는 중. 싸우는 소리가 똑똑히 들린다.
-언니 흥분하지 말고 들어봐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언니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항상 그렇잖아요.
-아니, 애 그 문제하고 이 문젠 엄연히 다른 게야. 걸 네가 착각을 하면 문제는 더 커져.
서울 말씨는 어찌 싸우는 소리까지 애교스럽고 나긋하게 들리는지.
내 고장 경상도 여자와는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 요즘에야 많이 다르지만, 옛날 경상도 여자 싸움 한번 거하게 하지.
달린 것 파진 것 한창 꺼내다, 구경꾼들이 슬슬 모일 때면 전쟁도구가 입이 아니라 손으로 번진다. 상대 머리채 휘어잡고(경상도식 표현-깔쳐뜯는다) 머리카락이 한 웅큼 씩이나 빠질 때쯤이면 급기야 상대 옷을 죽 찢는 것이다.
브라자가 있나 뭐가 있노. 젖통이 나오는지 물통이 나오는지, 하여튼 구경꾼이 고개를 돌리며 눈은 물통을 계속 바라보는 지경에 이를 때면 뭐가 그리 슬픈지 목놓아 우는 것이다. 아마 자신의 물통을 아무런 전과 없이 만천하에 공개한 게 억울해서 운 공산이 크다.
서울 여자 싸움은 말 속에 칼을 숨긴 듯하나, 경상도 여자 싸움은 손톱 끝에 솜을 감고 싸운다면 표현이 서툰가.
앞 두 쌍 중년부부가 일어선다.
우리도 일어서야 할 시간이다.
마저 남은 술을 홀짝 마시고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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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네가 필요로 하는 모든 걸 내어주니 당장 떠나라.---
누가 그런 말을 했더라? 하여튼 오늘은 잘 나섰다.
L에게 잠자리 인사를 전한다.
-나는 네가 없는 듯이 행동 할테니, 넌 내가 없는 듯이 편하게 해라.
황산도쪽에서 초지대교를 바라보며.
황산도매어시장에서 소황산도쪽을 보며
장흥리 바다를 지나며. 멀리 영종도에서 비행기 뜨는 광경이 자주 목격된다.
걷는 길은 동검도로 연결되나, 지도를 따르다보니 이런 집을 감상한다.
가천의과학대학
택지돈대
지자체가 소개를 않고 지도만 들고 다니면 결코 찾지 못할 제방길이 나온다.
제방에서 선두리쪽을 바라보며
동막의 일몰
분오리돈대에서
첫댓글 퍼온자료
...경상도 여자 싸움 묘사에서 '린 것 파진 것 한참 꺼내다'에서 뿜었습니다.
강화도는 행정구역 상 인천이라 시외버스 개념 자체가 없지 않은가요
강화도 동행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