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525〉
■ 겨울 일기 (문정희, 1947~)
나는 이 겨울을 누워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려
염주처럼 윤나게 굴리던
독백도 끝이 나고
바람도 불지 않아
이 겨울 누워서 편히 지냈다.
저 들에선 벌거벗은 나무들이
추워 울어도
서로 서로 기대어 숲이 되어도
나는 무관해서
문 한번 열지 않고
반추동물처럼 죽음만 꺼내 씹었다.
나는 누워서 편히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이 겨울.
- 1991년 시집 <어린 사랑에게> (미래사)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계속되는 요즘은 밖으로 외출하는 것 자체가 귀찮고 고역이라 하겠습니다. 유행하는 감기라도 걸리면 더욱 그렇겠지만요.
추운 날씨에 투덜대며 일을 나가던 때에 염원하던 예전처럼,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집에 누워서 책을 읽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며 뒹굴거리며 종일 소일하는 게 최근의 일과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상은 오랜 직장을 마치고 은퇴한 사람들에게는 주어진 한겨울의 특권이자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詩처럼 다른 이유로 인해 겨울이 고통스런 사람들도 있을 법하군요.
이 詩를 읽어보면 ‘나’는 사랑을 잃은 상실감에 겨울 내내 집 안에만 웅크리고 앉아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을 일기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명기되어 있진 않아도 아마 젊은 시절의 경험을 쓴 것일 것입니다만.
‘나’는 임의 사랑을 잃은 슬픔과 상실감에 빠져, 밖의 일에 전혀 관심이 없을뿐더러 겨울 내내 문 한 번 열지 않은 채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절망하는 상황입니다. ‘나’는 이를 ‘누워서 편히 지냈다’고 반어적으로 표현하며, 그 상실감이 엄청난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만큼 열렬한 사랑에 흠뻑 빠졌었기 때문에 사랑 후에 오는 고통과 슬픔도 컸던 것이겠지요. 한창 젊었을 때 우리들도 한두 번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Choi.